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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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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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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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의 원균 *..역........사..*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때 서인이 정권을 잡은 동인&북인의 시각으로 작성된 선조실록의 일부를 수정한 실록이다.

이순신은 동인이었고, 원균은 서인이었다. 그러니 이 수정실록은 원균에게 유리할 것 같은가? 천만에도 서인도 원균을 실드치지 못했다. 그만큼 원균은 무능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독해를 하면 원균에게 유리한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한번 보자.

수정실록 선조 25년 5월 1일.

均使雲龍、致績爲先鋒, 到玉浦遇倭船三十隻, 進擊大破之, 餘賊登陸而走, 盡焚其船而還。 復戰于鷺梁津, 燒賊船十三隻, 賊皆溺死。
언양 현감(彦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수로(水路)의 향도가 되기를 자청하여 앞장서서 마침내 거제 앞 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운룡과 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하였다. 이에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노량진(鷺梁津)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이 대목만 떼어서 보면 원균은 어마무시한 장군이다. 왜냐? 원균에게는 배가 딸랑 판옥선 3척에 협선 2척 뿐이었다. 원균이 배 3척으로 10대 1의 싸움을 하는 동안 판옥선만도 24척을 거느리고 출전한 이순신은 대체 뭘했단 말인가?

그런데 저 글 바로 뒤에 나오는 걸 한 번 보자.

是戰也, 舜臣左肩中丸, 猶終日督戰。 戰罷, 始使人以刀尖挑出, 軍中始知之。
이 전투에서 순신은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는데도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하니 군중(軍中)에서는 그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원균 혼자 북치고 장구친 것 같았는데, 이순신은 종일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다. 싸우지도 않았다면 총탄에 왜 맞고 무슨 전투 독려를 할 수 있겠는가?

이 전투에 대해서는 일본측 기록도 남아있다. 자기네 배 50여 척이 조선 수군 7~80척과 만나 배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쓴 것이다. 이충무공전서에 남은 장계에는 이때 전투 상황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원균의 경상우도 수군의 활약도 적혀 있다.

경상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왜 대선 5척을 격파했다고.

이순신의 장계를 보면 이순신은 총통으로 적선을 격파, 활을 쏘아 적군을 사살, 불화살을 날려 배를 태워버리는 전법을 썼는데, 이것은 조선 수군의 일관된 전략이 되었다.

적선 13척을 불태운 사실도 장계에 잘 나타나 있다.

선조수정실록 해당 기록에는 원균이 달아날 곳만 찾았는데, 옥포만호 이운룡이 꾸짖으며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 한 내용이 앞에 실려있다. 이것이 서인도 같은 당파지만 실드칠 수 없었던 원균의 정체다.

심심하다에 대한 일 고찰 *..잡........학..*

심심한 사과를 이해하지 못해서 넷상에서 난리가 났다.

심심한은 한자어다.

甚深이라고 쓴다고 알고 있는데...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深甚이라고 나온다. 그럼 어느 게 맞는 걸까?


궁금해서 일단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다. 딱 하나 나오는데 일제가 편찬한 순종실록에 있다.


深甚이다. 1977년에 나온 동아국어사전(이숭녕 감수)에도 深甚으로 되어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왜 甚深인 것일까?

그럼 혹시 이 말은 일본어인 걸까?

일본 야후에서 검색해봤다.


그런데 일본어 사전에는 甚深도 있다. 두 단어를 다 쓴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 바이두에서 검색해봤다. 深甚이 일본어로 나온다. 중국어로 번역하면 十分으로 한다고 나온다.


여기서 甚深을 찾아보면 단어가 안 나온다. 그러니까 일-중 사전에서는 深甚을 주된 단어로 판단한 모양이다.

그럼 바이두에서 甚深을 찾아보자.

법화경에 나오는 단어라고 한다. 诸佛智慧,甚深无量。(여러 부처의 지혜는 깊고 깊어 끝이 없다)

그러니까 "심심한"은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인 걸까? 그래서 일본에서 많이 쓰는 深甚을 불교 용어인 甚深으로 누군가가 바꾼 것일까? 이제 누가 일본 단어 아웃을 외칠지도...

춘추필법의 오해 만들어진 한국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 "전후삼한고"에서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지나의 信史(신사)를 찾으려면 사마천에게 제일지第一指를 굴屈할 터이나, 그러나 사마천은 충실하게 원방 외국인 이집트 바빌론의 역사를 채록하던 희랍의 헤로도투스 같은 사가가 아니요, 즉 공자 춘추의 존화양이尊華攘夷, 상내약외詳內略外, 위국휘치爲國諱恥 등의 주의를 견수하던 완유頑儒(완고한 유학자)라.

공자가 지은 《춘추》에 저런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데, 이 말들은 어떤 내력을 지닌 것일까?

존화양이尊華攘夷는 춘추시대 패자의 원칙이었던 존왕양이尊王攘夷(주나라 왕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무찌른다)를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상내약외詳內略外란 안의 일은 상세히 적고 밖의 일은 간략하게 적는다는 것으로 역사책을 쓰는데 있어서 딱히 문제가 될 내용은 아니다. 청나라 때 쓴 《春秋要指》라는 책에서 《춘추》를 가리켜 "詳內略外,詳尊略卑,詳重略輕,詳近略遠,詳大略小,詳變略常,詳正略否。"라고 말한 것이 검색된다. (길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자세히 쓰고 안 중요한 건 간단하게 쓰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도 나온다.

讀《魏書》《通典》. 亦載其事. 然略而未詳. 豈"詳內略外"之意耶.

《위서》《통전》을 읽어보니, 또한 그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간략하고 상세하지 않으니, 이것은 (자국) 내의 사실은 상세하고 외국은 간략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헤 수치를 감춤)는 어디서 온 말일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8년 기사의 김부식 사론.

마침내 (당태종이) 스스로 빠져나가기는 했으나, 위태로움이 그와 같았는데도 《신당서》, 《구당서》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 어찌 자기 나라의 체면을 위하여 이 사실을 숨긴 것이 아니겠는가(豈非爲國諱之者也).

그리고 《춘추곡량전》에 이런 말이 있다.

爲尊者諱恥, 爲賢者諱過, 爲親者諱疾.
높은 사람을 위해 수치를 숨기고,
어진 사람을 위해 잘못을 숨기고,
친한 사람을 위해 괴로운 것을 숨긴다. (노성공 상편 9년)


"爲國諱之"와 "尊者諱恥"가 합해져서 "爲國諱恥"가 탄생한 것 같다.

신채호가 이 말을 한 이래, 유사역사가들은 중국사를 폄하하기 위해서 늘 이 말을 애용한다.

더불어 따라나오는 "矜華夏而陋夷狄"(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낮춘다)이라는 말의 내력은 또 복잡하니,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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