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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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차 추가 : 2009년 8월 24일
16차 수정 : 2009년 10월 24일
17차 추가 및 수정 : 2010년 2월 14일
18차 수정 : 2010년 7월 25일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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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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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연재] 숙종의 그녀, 장옥정 *..역........사..*

[그 시절 그 연애] 숙종의 그녀, 장옥정 [클릭]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영상화된 여인, 장희빈을 소개합니다.

장희빈 이야기에서 숙종이 뜻밖에 부각되지 않는데, 이번 기회에 숙종이 왜 장희빈을 자살시켰는지 밝혀봅니다.

장희빈을 자살시킨 이유는 그녀의 당찬 성질머리를 후대에 잡아내지 못할 것을 걱정한 숙종의 과도한 처사로 보입니다.

그러자면 타이밍은 인현왕후가 죽었을 그 시점밖에 없었겠죠.

누가 먼저 죽을지는 하늘만 아는 시절이니, 자기가 죽고 장희빈만 살아남으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이 끔찍했던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진실 *..역........사..*

주초위왕은 走肖 즉 趙씨가 왕이 된다는 뜻으로 심정, 남곤의 무리가 조광조를 몰아내기 위해 나뭇잎에 벌레가 갉아먹게 만들어서 뿌렸다는 이야기에 등장하죠.

모 TV에서 나뭇잎에 꿀을 바르면 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쓸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도 했는데, 물론 실패했죠.

다들 어쨌든 나뭇잎에 이런 걸 썼겠거니 생각들 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역사에서 "사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사례와 같은 것이 바로 "주초위왕"의 진실입니다.

조선초에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비로운 조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상서로운 조짐이 등장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수보록受寶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보록이라는 것의 내용도 시시각각 달라지는데요(그러니까 당연히 조작품이라는 거죠). 아무튼 이 수보록 안에 주초走肖라는 말이 처음 나타납니다.

맨 처음 등장할 때는 설명도 없이 "走肖"였는데, 그 다음에는 "走肖其德。" 주초가 그 덕이다라는 말로 변합니다.

조선 개국 후에는 이런 참언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수보록에 나오는 다른 성, 배씨, 조씨, 정씨 등에게 어떤 빌미를 줄 수도 있으니 이 내용을 지워나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태종의 유명한 수거령입니다. (유사역사가들은 이걸 고조선 지우기라고 헛선전하죠.)

태종은 정도전도 이걸 안 믿었는데 하윤 같은 것이 믿어서 문제였다고 하면서 딱 잘라 이렇게 말합니다.

"빨리 불살라 버리게 함이 이씨 사직에 있어서 반드시 손실됨이 없을 것이다."

사실 정도전이 안 믿었다는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삼봉집에 수보록을 찬양한 시가 있거든요. 일부만 소개합니다.

누가 그를 돕느냐 / 誰其輔之
주초의 그 덕이로세 / 走肖其德
비의의 군자가 / 非衣君子
금성으로부터 오고 / 來自金城
삼전 삼읍이 / 三奠三邑
도와서 공 이루리 / 贊而成之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후일 좀 더 살이 붙어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바뀝니다.

목자장군검木子將軍劍 비의군자지非衣君子智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

목자는 이씨로 이성계, 비의는 배씨로 배극렴, 주초는 조씨로 조준을 가리킵니다.

중종실록에는 이른바 주초위왕이라는 조광조 모함 건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때는 1520년입니다.)

최운이라는 자가 이신이라는 사람에게 전한 말로 심정이 궁궐 안에다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는 참서를 떨어뜨려 중종을 놀라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초위왕이라는 나뭇잎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종 때 기록에도 "남곤"이 주초라는 참서를 궁궐에 투입했다고 나옵니다. 심정과 남곤은 한 몸인 셈이라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1544년의 기록에 나뭇잎을 벌레가 파먹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목자는 이미 쇠퇴하고[木子己衰] 주초가 천명을 받는다[走肖受命].’라는 등의 말을 나뭇잎에 새겨 마치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만들어 귀인으로 하여금 상에게 올리면서 ‘후원 나뭇잎의 벌레먹은 무늬가 이상합니다.’ 하게 하였다.

보다시피 여기서도 "주초위왕"은 아닙니다. 무려 여덟글자를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이건 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사관이 덧붙인 것입니다. 명종실록은 1550년에 완성되었으니 이때 붙인 말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주초위왕"은 언제 등장할까요?

이건 선조1년 9월 21일자에 역시 사관이 적은 말에 등장합니다.

남곤은 유감을 품고서 조광조 등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나뭇잎의 감즙甘汁을 갉아 먹는 벌레를 잡아 모으고 꿀로 나뭇잎에다 ‘주초위왕走肖爲王’ 네 글자를 많이 쓰고서 벌레를 놓아 갉아먹게 하였다. (중략) 남곤의 집이 백악산 아래 경복궁 뒤에 있었는데 자기 집에서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을 물에 띄워 대궐안의 어구御溝에 흘려보내어 중종이 보고 매우 놀라게 하고서 고변하여 화를 조성하였다, 이 일은 《중종실록》에 누락된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략 기록하였다.

선조실록은 161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광해군 때입니다. 이때는 주초위왕 전설이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중종실록에 실리지 않아서 억울했던 사관이 분개하여 선조실록에 삽입한 것이죠.

이후 현종 때 송시열이 이런 말을 올립니다.

"심지어 그들은 궁액(宮掖)과 짜고 궁궐의 수풀 나뭇잎 위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써놓아 현혹시키는 계책으로 하였으며, 또 희빈의 아비 홍경주(洪景舟)와 서로 안팎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심정이 꺼내서 확대했던 국초의 참언 "주초"는 "주초위왕"이라는 엽기적인 사실로 둔갑했던 것입니다.

네이버 연재 - 양녕대군을 속인 기생 고정정 *..역........사..*

[그 시절 그 연애] 양녕대군을 속인 기생 [클릭]

월요일. 네이버 연재가 딱 1년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52회 연재.

한 편을 연재하기 위해서 최소한 대여섯 편의 논문을 뒤집니다. 그래도 뭔가 틀릴까 조마조마한데 대과없이 여기까지 와서 다행입니다.

원래 써달라는 분량은 원고지 7~8매였는데 보통 15매... 경우에 따라서는 30매 가까이 쓸 때도 있습니다.

1년이나 연재를 해도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튼 관두라고 할 때까지 줄기차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돈이 활력의 원동력...

이번 회 연재하는 고정정의 경우 흔히 정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름의 근거는 매우 희박합니다. 이런 거 발견하면 어느 쪽이 맞는지 찾아보느라 걸리는 시간이 참 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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