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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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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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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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랑대사와 무협소설

중국의 소림사는 무림의 성지로 유명하죠.

사실 이 때문에 달마가 서역에서 내공심법을 가져왔고 혜가를 비롯하여 선종의 대가들이 권법의 숨은 고수였다는 설정을 무협소설에서 익숙하게 써먹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전설의 배경에는 수말의 반란 시절에 소림사 승려들이 당태종 이세민을 도와준 것에 기인합니다. 이연걸의 첫 영화 <소림사>가 바로 이때를 다뤘죠.

사실 저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한테도 있기 때문입니다.

후삼국 시대에 화엄 일파는 북악파의 희랑은 왕건을, 남악파의 관혜는 견훤을 지지했습니다. 희랑은 해인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대사원들은 신라말의 혼란기에 이미 자체 무력을 갖추고 있었죠. 이 무력집단을 "치군"이라 불렀습니다.

해인사의 승병은 신무왕(김우징)을 도왔다는 야사도 있죠. 이때 이들을 "용적대군"이라 불렀습니다.

북악파는 부석사를 중심으로 의상의 직계고, 남악파는 화엄사를 중심으로 연기라는 스님의 후계자들이었습니다. (막 북소림, 남소림이 연상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왕건은 견훤에게 밀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희랑대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후백제의 월광 태자(견훤에게 이런 태자가 있다는 기록은 없는데 야사에는 월광 태자가 등장합니다)와 대결할 때 희랑대사가 보낸 "용적대군"이 후백제군을 무찔러 승리했다고 합니다. 이 전투는 합천에서 이루어져서 승병들은 해인사의 치군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후 왕건은 희랑대사에게 "태대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논밭도 하사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의상은 화엄신중삼매신공을 전한 해동 무림의 비조로, 그가 부석사를 세울 때 그 커다란 돌멩이를 휙휙 날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으잉?)

그리고 의상의 진전을 물려받은 희랑 대사...와 이 화엄신중권법의 후계자 권왕의 이야기는...

현재 쓰고 있는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십육 년 째 쓰고 있음)

사진은 희랑대사의 목조상
희랑대사는 가슴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모기가 그리 들어가 피를 빨았다 합니다

잠깐 동안 봄이려니 *..자........서..*

네이버 연애결혼판 <그 시절 그 연애>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펴낸 <잠깐 동안 봄이려니>에 대한 언론 소개글을 모아보았습니다.
이문영 작가는 책 속에서 ‘오늘날에는 사랑도 과거와는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이 옛날보다 더 크고 더 넓은 개념으로 변화하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옛날 일을 돌아본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 올라간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라고 말한다. 사랑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닐지언정, 부분으로써 거듭 우리의 몸과 마음을 두드려 준다면 어제가 만드는 오늘, 오늘이 만드는 내일이 차츰차츰 보배로워질 수밖에 없음을 이 책 『잠깐 동안 봄이려니』으로 깨달을 수 있다.

‘역사로 글쓰기’ 작업을 해온 저자가 한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랑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로 농촌 계몽 운동에 힘쓴 최용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고결한 성품으로 당차게 자기 사랑을 한 황진이 등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사랑의 힘을 증명해낸 이야기와 고귀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인들의 연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역사로 글쓰기' 작업을 해온 저자가 한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랑을 찾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해온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로 농촌 계몽 운동에 힘쓴 최용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고결한 성품으로 당차게 자기 사랑을 한 황진이 등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용기로써 사랑의 힘을 증명해낸 이야기와 고귀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인들의 연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었던 고려의 여성들, 세자의 여인으로 비운의 삶을 산 어리, 여자를 사랑한 세자빈 순빈봉씨, 조선의 대표적 자유연애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어우동 등의 이야기로써 다채로운 형태와 색채의 연애담도 들려준다.

작가 이문영이 고된 현세에서 자유롭고 자주적으로 사랑을 지킨 여성의 이야기를 묶었다. 선구적 사생활로 알려진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기생에서 여성 운동가로 주체적 삶을 산 주옥경 등 실존 인물부터, 결혼이 선택이었던 고려 여성들 이야기까지 사랑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송양지인 *..역........사..*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인 B.C.638년에 송나라의 군주 양공이 연합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침공했습니다.

송양공은 좀 재밌는 사람입니다. 선대 군주가 죽었을 때 후계자가 둘이 있었는데 송양공이 적자이기는 했지만 나이가 더 많은 서자가 있었습니다.

송양공은 짐짓 왕위를 받을 수 없다고 양보했지만 적자 위주로 돌아가던 세상이니만큼 결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서자인 형을 재상에 앉혀서 국정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패자 제환공이 죽고 나서 중원을 이끌 지도자가 공백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송양공은 야심을 드러냈죠.

서자 재상이 말렸으나 송양공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힘도 없는 작은 나라 주제에 패자 행세를 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정나라라는 더 작은 나라가 초나라와 맹약을 맺었습니다그려. 송양공은 자길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해서 참지 못하고 서자 재상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정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합니다.

송나라가 정나라를 치니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초나라가 가만 있을 수 없죠. 출동합니다. 사실 남방의 대국 초나라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양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됩니다. 초군이 기세등등하게 강을 돌파하는 상륙작전을 펼칩니다.

서자 재상이 얼른 공격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군자는 이미 상처 입은 자를 다시 다치게 하지 않으며, 머리가 반백인 자를 사로잡지 않는 법. 어질지 못한 전쟁을 할 수는 없소."

그야말로 개멋을 부리는 중입니다. 이래서 송 연합군은 대패하고 송양공도 이때 입은 부상으로 얼마 후에 죽고 맙니다. 일생 개멋부리는 걸로 일관한 인물이죠.

개멋을 부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이길 수 없을 때. 압도적 실력으로 밟아버릴 수 있을 때. 이 두 경우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개멋에 집작하면 안 됩니다. 노력해야 하는 타이밍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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