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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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차 추가 : 2009년 8월 24일
16차 수정 : 2009년 10월 24일
17차 추가 및 수정 : 2010년 2월 14일
18차 수정 : 2010년 7월 25일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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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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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생물학 병기 *..역........사..*

을사사화 때 유관이라는 선비가 걸려서 죽고 을사삼간의 하나인 정순붕이 그 집의 노비들을 모두 차지했다.

그 노비 중에 14~5세 쯤 되는 갑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무척이나 총명해서 정순붕도 총애하게 되었다. 갑이도 정성을 다해 모셨을 뿐만 아니라 전 주인인 유관의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유관을 욕했다. 이에 정순붕이 더욱 갑이를 믿게 되었다.

갑이는 어느날 집안의 보배인 그릇을 빼돌렸다. 정황상 갑이가 범인이 분명해서 정순붕이 추궁했지만 갑이는 극구 부인했다. 정순붕도 긴가민가 해서 갑이를 놓아주었다.

갑이는 사내 종 하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걸려들게 되어서 매를 맞으면 네가 시켰다고 그럴 것이다."

난데없이 걸려든 사내종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내가 필요한 게 있다. 기도를 올리는데 사용할 것인데, 역병에 죽은 자의 몸뚱이를 가져와라."

종은 갑이의 협박에 무서워서 역병으로 죽은 자의 팔뚝을 구해왔다.

갑이는 그것을 정순붕의 베개 밑에 숨겼다.

정순붕은 이 때문에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 일이 안 걸릴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들통이 나서 갑이는 심문을 받게 되었다. 갑이가 말했다.

"정순붕이 내 주인을 죽였으니 내 원수이다. 내가 죽이려 한 지가 오래였는데 드디어 원수를 갚았다."

갑이 역시 죽임을 당했다.

물론 당대에는 죽은 자의 팔이 저주를 불러와 죽은 것으로 이해했겠으나... 사실은 그로 인해 전염병에 걸리거나 다른 감염에 의해서 노인네가 당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천고마비를 찾아서 *..역........사..*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의 출전이 <한서> "흉노전"이라고 해서 거금을 들여 <한서>를 사서 찾아보니 이런 말이 없다.

텍스트로 검색해보니 <한서> 열전 중에는 "천고天高" 자체가 나오지 않고 "마비馬肥"는 네 번 나오는데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에 한 번,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에 두 번 나온다. "흉노전"에는 이렇게 한 번 나온다.

秋,馬肥,大會蹛林,課校人畜計。
가을에 말이 살찌면 대림대회를 열고, 사람과 가축의 실제 숫자를 맞추어 센다. (대림은 흉노의 제사이자 제사가 열리는 장소라고 한다.)

천고마비와는 관련이???

어딜 보면 "到秋馬肥, 變必起矣. 宜遣使者行邊兵豫爲備"(가을이 되어 말이 살찌면 변란이 반드시 일어날것입니다. 마땅히 사자를 보내 변방의 병사들을 둘러보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출전이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서> 열전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에 나오는 말이다. (조충국이 한선제에게 올린 상소)

천고마비의 출전이 <한서> 흉노전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저기 찾아본 결과 가장 출전이 오래된 것은 1919년 8월 8일 <매일신보>에 실린 것이다.


천고마비 대신 추고마비秋高馬肥라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고(세조실록, 성종실록) 승정원일기에도 나온다(영조). 여기서 高는 "깊다"라는 뜻으로 가을이 깊어졌다=가을이 왔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대체로 추고마비는 "유비무환"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가을이 되어 말이 살찌면 외침이 있을 것을 대비해야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두보의 시 《留花門(유화문)》에 "高秋馬肥健(가을이 되어 말이 살찌고 튼튼해지면) 挾矢射漢月(활을 날리며 한나라 땅에 쳐들어오지)"라는 구절이 있다.

고추마비건... 고추마비건... (아으, 이게 무삼말이고!)

두보의 할아버지인 두심언의 시 《贈蘇味道(소미도에게 주다)》에 "秋深塞馬肥(가을이 깊으니 변방의 말이 살찐다)" 또는 "秋高塞馬肥(가을이 오니 변방의 말이 살찐다 - 여기서 塞는 새북塞北 즉 흉노의 땅을 가리킨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 이 말을 출전으로 잡기도 한다.

秋가 天으로 바뀐 것은 일본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다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가을을 가리키는 용어로 "천고마비"가 사용된 것은 맞다.

백거이의 시 《江南遇天寶樂叟(강남에서 천보 연간의 악공 노인을 만난 노래)》에 "弓勁馬肥胡語喧"(활은 굳세고 말은 살쪘으며 오랑캐의 언어는 시끄러웠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런 것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겠다.

정생의 독서일기 *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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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산으로 올라가 피서를 하기로 한 정생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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