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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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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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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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이야기 (21) 만들어진 한국사

팩트체크 전문지 뉴스톱에 두 번째 컬럼이 실렸습니다.

[뉴스톱] 천부경 '모순'이 환단고기 '위작'을 입증하다 [클릭]
단군의 가르침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천부경(天符經)>이라는 글이 있다. 81자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주의 진리를 담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천부경>에 대한 이야기에는 너무나 많은 거품이 끼어 있어서 그 실체를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따라서 <천부경>의 비밀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또 어느 유사역사학 동네에서 좌표를 찍은 뒤에 인신공격 발언을 달려고 올 가련한 인생들이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 분들은 늘 상대방에게는 넓은 마음으로 여러 가능성을 두루 살피라고 좋은 이야기를 하시는데, 왜 자기들 사안에는 그런 여러 태도를 안 가지는지 참 궁금합니다.

일단 자기 의견과 다른 것을 보면 머리꼭지가 열려버리고 마는 성품들인 모양이니 어쩌겠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죠.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소.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공평의 문제에 대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오."

유사역사학 이야기 (20) 만들어진 한국사

이덕일은 2016년 6월 2일 세계환단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환단고기의 역사성과 사학사적 의미>라는 발표를 했다.

여기서 이덕일은 이렇게 말한다.

1979년 <환단고기>가 공개되면서 위서논쟁에 휩싸여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 중이다. <환단고기>가 공개와 동시에 위서논쟁에 휩싸였다는 사실은 한국 역사학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가?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한 결론으로 '위서론'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먼저 위서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이 전제에 꿰어 맞춘 연구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이덕일의 나머지 궤변은 볼 것도 없고... 그의 결론이나 보자.

앞으로 연구가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환단고기> 내용은 최소한 조선시대에 주자학에 반기를 들었던 선비들 사이에 전승되던 역사관을 담은 사료라는 사실이 밝혀질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역사관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그 이전에 형성된 역사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는 조선 초기 세조의 수압령 이전에 이런 역사관을 담은 사료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무 근거도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는 딱 20년 전인 1996년에는 자신이 쓴 책 <침묵과 왜곡 속에 숨겨진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일부 재야사가들이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에서 말하는 영광의 고대사에 집착하는 심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일본서기>에 매달리는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고증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학자도 <환단고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사실이 아닌 후대의 위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덕일은 이런 지당한 이야기도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료가 있을 때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료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비판해보아야 하는데...

이랬던 그는 20년 후에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 후대의 위서임이 분명"한 <환단고기>를 역사학자들이 철저하게 검토하고 비판하지 않고 생략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년 전에 민족주의 심정에 불타 일본을 비하하고 있을지언정 비교적 멀쩡한 정신 상태였던 사람이 왜 20년 후에는 되도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위서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둔갑한 것인가?

해답은 바로 그 불타는 민족주의 심정에 있다. 내로남불의 심정으로 우리 민족 만세를 가슴 속에 품고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환단고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유사역사학 이야기 (19) 만들어진 한국사

1996년에 이덕일이 낸 책이 하나 있다. 이덕일은 유명해진 뒤에 자기가 낸 책을 대부분 복간했는데, 이 책은 그러질 않았다. 그럴만도 하다. 재미도 없고 글도 못 썼다.

다만 이 책에서는 이덕일의 버릇 하나를 알 수 있다. 그의 비논리를 잘 읽을 수 있다. 그는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달라져도 아무 감정을 느끼질 못하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이덕일은 <침묵과 왜곡 속에 숨겨진 이야기>라는 이 책에서 일본을 시골 깡패에 비유하고 있다. 일본의 무사 정신이라는 게 시골 깡패들 정신머리인지라 페리라는 전국구 깡패가 나타나자 바로 굽혔다는 게 그의 논지다.

>지금까지 살펴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일본을 개국시켰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는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침략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30~40년대 일본인들은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국인들을 겁장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 겁장이들은 일본처럼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굴복하지 않았다. 총을 쏜다는 위협에 알아서 기지도 않았다. 적어도 개국에 관한 한 누가 더 겁장이였는가는 명약관화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상당히 호전적인 민족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외국인들은 일본인들을 호전적인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덕일은 그것이 2차대전에서 보여준 일본인의 악착같은 저항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일본인들이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전원이 옥쇄를 감행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중략) 9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겁이 많았던 일본인들이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민족으로 변한 것일까? 과연 한 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민족의 성향이 그렇게 개조될 수 있는 것일까? 한 인간이라면 모를까 민족 전체가 한 세기만에 개조될 수 있을까?

이덕일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이런데서도 잘 볼 수 있다. 한 인간이 변한다면 그 구성원 전체가 변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다. 그리고 그의 사고관에서는 일본인들이 긍정적인 형태로 변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결코 개조된 것이 아니었다. 1854년의 일본인이나 1945년의 일본인이나 똑같은 일본인이었다. (중략) 그럼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일까?

자, 글이 이렇게 오면 "왜"에 대한 해답이 나와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덕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뒷골목을 주름잡던 깡패가 있었다고 치자 그의 앞에 전국을 무대로 노는 소위 전국구 깡패가 나타났다. 시골 깡패는 얼굴만 척 보고도 그가 예사 주먹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결국 시골 깡패는 전국구의 눈짓 한 번에 자신의 구역을 헌납하고 그의 부하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전국구의 시중을 들며 그의 주먹솜씨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저렴한 비유를 들어서 일본과 미국의 상황을 설명한다. 전국구의 주먹을 잘 배운 깡패가 진주만 기습처럼 전국구 깡패를 습격한다.

>전국구는 불의의 습격을 받고 휘청거리지만 곧 전열을 수습해 반격에 나선다. 곧 전세는 역전된다. 시골 깡패도 이번에는 쉽게 항복하지 않는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온갖 솜씨를 다 동원해 대항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일본이 전세계에 호전적인 민족으로 기억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 중이고 바로 그 대목에 이르른 것이다. 이덕일은 앞서서 이렇게 찬양(?)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급속하게 무너지리라고 믿었던 연합군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군은 격렬하게 저항을 계속했던 것이다. 일본군의 저항은 연합군이 놀랄만한 경지를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미군은 1만이 넘는 병력이 유황도에서 전원 옥쇄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일본군들은 집단적인 정신병에 걸린 환각 상태로 연합군에 저항하고 있었다. 마치 마약에 취해 칼을 휘두르듯이 집단 정신병에 취해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보기에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할 바로 그 대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덕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전국구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골 깡패의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코피가 터지며 입술이 찢어진다. 시골 깡패는 자신이 전국구의 상대가 아님을 절감하고 그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아이고 형님, 잘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00년간에 걸친 미국과 일본의 관계이다.

이게 대체 뭥미? 그러니까 힘의 우위가 증명된 상황에서 일본군이 저항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겠다고 해놓고는, 미국이 막강하게 두들겨패니까 깨갱했어요로 이야기가 끝난다. 대체 이 사람의 정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환단고기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난해하다.

그의 주옥같은 논설은 차차 더 소개하기로 하자. 한꺼번에 풀어놓기에는 좀 아까우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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