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1차 추가 : 2007년 9월 19일
2차 추가 : 2007년 9월 21일
3차 추가 : 2007년 9월 24일
4차 추가 및 수정 : 2007년 12월 5일
5차 추가 : 2008년 1월 20일
6차 추가 : 2008년 1월 27일
7차 추가 : 2008년 2월 24일
8차 추가 : 2008년 7월 25일
9차 추가 및 수정 : 2008년 10월 29일
10차 추가 : 2008년 11월 11일
11차 추가 : 2008년 11월 23일
12차 추가 : 2009년 1월 30일
13차 추가 : 2009년 2월 9일
14차 추가 및 수정 : 2009년 7월 20일 - 불의의 사고로 수정 작업
15차 추가 : 2009년 8월 24일
16차 추가 및 수정 : 2009년 10월 24일
17차 추가 및 수정 : 2010년 2월 14일
18차 수정 : 2010년 7월 25일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본 인덱스 중 몇 편은 제 글이 아닙니다. 원저자가 삭제를 요청하면 지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하지만 이 블로그의 글들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거나, 오류를 찾는 경우 수정되기 때문에 글을 퍼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목록 자체도 추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떡밥을 펼치세요 [클릭]

잡담

1.
반지의 제왕을 옛날옛적 나온 예문판 <반지전쟁>으로 가지고 있는데,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이벤트에 당첨이 되는 통에 한 질이 더 생기게 되었다. 사실 나는 황금가지판 <반지의 제왕>도 가지고 있다가 처분해버린 경력이 있는데...

2.
조상이 같으면 자동으로 역사가 종속된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는 제발 좀 그만 보았으면 좋겠는데, 날이면 날마다 재생산된다. 으아니, 챠!

3.
때로는 어떤 조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도 있다. 아마 라즈니쉬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꼬마 악마가 대장 악마에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신의 독생자가 태어났습니다!"
"알고 있다."
"신의 독생자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나는 그 제자들에게 손을 써놓았다. 제자들은 조직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다."

하인리히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셋 이상이 되면 합의는 없다... 였던가...

4.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오해를 두려워한다기 보다는 오해를 귀찮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5.
몇가지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자꾸 시간에 밀려서 못하고 있다. 아쉽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논어에 나오는 동자의 수는? *..만........상..*

논어 선진편 25장에 보면 관자 5~6인에 동자 6~7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용이 쓴 영웅문 3부작 중 제일 앞의 것인 <사조영웅전>의 여주인공 황용이 대리국 황제의 수하인 어초경독을 돌파하던 중에 이것을 가지고 말장난 하는 대목이 있다.

"공자의 문하에 제자가 몇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습니까? 공자의 문하에 제자가 3천명이 있었고 그 중 달인이 일흔두 명이었지요."
"일흔두 명의 나이가 각각 달랐을 터인데, 그 중 젊은 사람이 몇이고 소년이 몇이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서생은 크게 당황하여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논어나 다른 경전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니 공자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지 않습니까? 방금 읽지 않으셨습니까? 관자오륙인, 동자육칠인이라... 5에 6을 곱하면 서른이니 젊은 사람은 서른 명이요, 6에 7을 곱하면 마흔둘이니 소년은 마흔두 명. 서른과 마흔둘을 더하면 꼭 일흔두 명이 아닙니까? 글을 읽으면 무엇합니까, 생각을 하셔야지요. 쯧쯧..." - 김용, 사조영웅전 7권 21~22쪽, 김영사


보면서 재밌다고 깔깔댔었는데, 옛날부터 전해오던 유머라는 걸 몰랐다.

한천 이재(1680~1746)의 집에 낯선 이가 불쑥 들어왔다. 의복은 말쑥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는데 대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논어 무우장의 관동의 수가 몇 명인지요?"
"관자 5~6인, 동자 6~7인 외에 무슨 딴 뜻이 있겠소?"
"제 소견으로는 그렇게 볼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천은 무슨 특별한 견해가 있는가 싶었다.
"고견을 듣고 싶소."
"관자는 30명이고, 동자는 42명이 아닌가요?" - 허경진, 악인열전, 152쪽, 한길사


찾아온 사람은 박남이라 자기 이름을 밝히고 이재의 학문이 밝지 못하다고 조롱하고는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박남은 호남에 유명한 명창인데,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한천의 학문을 칭찬하자 자기가 골려줄 수 있다고 술내기를 한 것이었다.

박남은 코메디 센스가 대단해서, 꼬장꼬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청음 김상헌도 웃게 만들었다고 한다.



예덕선생전 *..만........상..*

연암 박지원은 일찍이 이덕무와 엄행수의 사귐에 대해서 글을 남긴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이다.

이 글에서 이덕무는 진실한 벗을 사귄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깊이 사귀면 체면 같은 것을 볼 것이 없고 진실하게 사귀면 특별히 죽자 사자 할 것이 없다. 오직 마음으로 벗을 사귀며 인격으로 벗을 찾아야만 도덕과 의리의 벗이 된다. 이렇게 사귀는 벗은 천년 전의 옛 사람도 아득히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요, 만 리의 거리도 소격한 것이 아니다.

이덕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엄행수가 똥을 치는 똥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제자가 어찌 그런 더러운 인간과 벗을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그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매우 좋은 말이고, 진실된 사귐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세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된 벗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이 그 앞에 있다.

이덕무는 그저 사람끼리 듣기 좋은 말만 해주면서 벗인양 구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전근대와는 달리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속에 놓여 있다. 진실한 벗만을 챙기고 만나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

서로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실된 벗을 만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한순간에 불꽃처럼 영혼의 울림을 통해 꽃보라처럼 찾아올 수도 있고, 저 먼 길을 돌아 집 앞에서 발견하게 된 파랑새처럼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말해도, 그것은 사실 114 안내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사람을 대하는 데는 경중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이덕무의 저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려운 데를 긁는 데도 도가 있다. 등에 손을 댈 때에는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지 말고, 가슴을 만질 때에는 목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상대와 말을 하지 않겠다면 몰라도, 상대와 말을 하겠다고 한다면, 바로 위에 이야기한 도를 지키며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도를 지키지 않고, 벗도 아닌 주제에 거침없이 무례하게 쳐들어와서는 오히려 상대를 보고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인터넷 세상에서는 정말 자주 본다.

넷 상에서 사귀어도, 물론 진정한 벗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진실한 벗을 만나면 만 리를 소격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목과 겨드랑이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요즘 세상에는 처음부터 목과 겨드랑이를 노리고 들어와서는 그저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많다. 참 많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알라딘TTB2

구글광고


유사역사아웃

다음마이뷰

알라딘TTB

자명고_알라딘_다음

Daum 블로거뉴스 베스트 블로거기자

올블로그2009

올블로그 어워드 5th 엠블럼

애드센스 검색

맞춤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