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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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란 역사학의 탈을 뒤집어썼으나 실은 비과학적, 비역사적,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이비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사역사학이 대체 왜 문제인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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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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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몰상식한 주장을 파헤쳐보자 만들어진 한국사

이름부터 환독에 물들어 있는 <환타임스>에 이덕일의 글이 실려있고, 여기서 나에 대한 모욕을 대대적으로 감행한 바 있다. 그 이야기를 조목조목 살펴보자.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칭 소설가였던 이문영이 「한겨레 21(2017. 6. 26)」에는 자신을 '역사작가'라고 소개했다.

내가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네이버에 내 이름만 넣어도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삼류소설가라고 나를 깎아내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기 때문에 쓴 것이다. 나는 2000년에 첫 책을 낸 이후로 소년한국일보, 문화관광부 등 여러 단체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들을 썼다.

「한겨레 21」의 청탁을 받고 너무 기뻐서 인터넷에 글을 남겼는데,

한겨레21의 청탁을 받고 뭘 "너무" 기뻐하겠는가. 근거도 없는 묘사를 넣어서 사람을 천박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유사역사학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겨레21에서 물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한겨레21 길윤형 편집장에게 물었던 것이다. 이덕일이 내가 쓴 글을 친히 방문해서 읽었다는 이야기인데, 누가 한 말인지 붙여놓지 않았더니 자기 마음대로 오독한 것이다.

「한겨레 21」이 처음부터 마음먹고 독자들과 싸우려고 기획했다는 뜻이다. 단군 죽이기를 마음먹고 특집으로 꾸밀 정도면 순간의 일탈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가 신념이라는 뜻이다. 이문영은 "그런 건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그러니까 위의 저 대답은 길윤형 편집장이 한 것이다. 어차피 이덕일에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을 거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요."라고 떼데거리겠지. 그보다 위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군 죽이기",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라는 말이다.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것이 "단군 죽이기"도 아니고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도 아니다. 이덕일이 그렇게 본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주위는 대부분 책 깨나 보는 사람들인데 아직 이문영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문영이 소설가로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들은 거의 다 소설가로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이런 걸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욕감을 받으라고 쓴 말일 수도 있다. 내가 쓴 소설을 아직 못 읽었다니 그 사람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 재밌는 것을 볼 기회가 아직도 남아있으니.

그런데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의 전위대로 나서니 『매일경제』에서 연재지면을 주고 「한겨레 21」에서도 청탁을 한다. 역시 대단한 카르텔이다.

이 사람은 자신도 연재를 여러 곳에서 해봤으면서 그 연재로 밥 먹고 살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나보다 연재고료를 열 배쯤 줬나?) 그런 거 몇 편 쓴다고 해봐야 소설 하나 쓰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어떻게든 카르텔 만들고 싶어서 그림을 그려보는 이덕일. 이런 사람이 과거 국정원 같은 기관에서 간첩 그림 그리던 거다.

당초 「한겨레 21」에서는 학사출신의 이문영이 아니라 그럴듯한 대학의 교수를 필자로 섭외했을텐데 모두 내뺐을 것이다.

박사 논문도 공개 못하는 이덕일보다야 20여년 간 유사역사학 연구를 해온 내가 훨씬 낫다. 이 사람은 이른바 "재야"와 같이 어울려다니면서 학계 밖의 연구자를 무시하는 속성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문영이 그간 소설 인세로 몇 푼을 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소설을 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봐서 소설가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두 번째 하고 있다. 배금주의로 똘똘 뭉친 속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매국사학 전위대로 나서니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다. 이 신문, 저 신문에서 지면을 주고 고대사학회는 한성 백제박물관에 초청해 강연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리 계산하나 저리 계산하나 남는 장사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글쓰기는 곧 돈벌이다. 남는 장사 말고는 찾아낼 것이 없는 것이다. 미안하게도 앞에도 말한 것처럼 그 시간에 내 글을 쓰는 게 더 돈이 된다. 내가 더 돈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다. 바로 이덕일처럼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러니 그는 전위대의 역할에 충실하다.

이덕일은 전혀 모른다. 그는 "전위대"라는 말을 써서 내가 역사학계의 사주를 받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한다. 내가 수십 년동안 연구를 해온 끝에 역사학계가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의 망상에 진실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적반하장은 이문영의 특징이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를 되뇌이면서도 『매일경제』에 때로는 '심산 김창숙이 그립다' 운운의 글도 쓴다. 물론 김창숙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정신과에 좀 가볼 필요가 없다. 내가 조선총독부가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고 되뇔 이유가 대체 어디있을까? 그는 몇 푼 안 되는 원고료가 그 대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이가 승천하는 이야기일밖에. 사유가 이렇게 빈약하니 심산을 추앙하는 내 심정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입으로 독립운동가를 찬양하면서 친일파 문정창을 가장 존경한다는 소리나 지껄이는 그 자신에 대해서 위 글을 쓰면서 찔리는 심정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했던 인사들을 극우파나 쿠데타 동조세력으로 모는 것은 이문영의 특기다. 이문영은 광복 후 민족사학에 전념했던 문정창에 대해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이사관)을 지낸 일제 부역자"라고 비판했다. 문정창이 일제 때 관료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남은 평생을 사재를 털어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바로잡기에 바쳤다.

문정창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한 증거를 제출한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가 유사역사학에 돌입한 것은 그의 반민족행위를 물타기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자유』지를 창건한 박창암 장군에 대해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자 5·16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박창암 장군이 박정희에게 민정이양을 계속 촉구하다가 박임항·김동하 장군 등과 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되어 숱한 고문을 당한 끝에 1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는 사실도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이 안 좋다.

박창암에 대해서는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한 적 자체가 없다. 그는 자유지 발행인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여기저기 나올 뿐이다. 그가 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된 이야기가 중요할 것도 없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겨우 1년 복역을 하고 풀려났으며 1968년에 자유지를 창간해서 군에 납품했다. 그가 무슨 민주화 투사처럼 이덕일은 말하고 이런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이 안 좋다. 더구나 나는 박창암에 대해서 좀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뒤 박정희와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덕일 글로 돌아가자.

반면 자신이 추앙하는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그러니까 이덕일은 자신이 추앙하는 대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나 보다.

나는 이병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병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이병도의 학설에 민족주의적인 관점이 꽤나 많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위 대목은 이 블로그에 내가 써놓은 글이다. 이덕일이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조사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망상에 의거해서 글을 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문영은 반성의 삶을 살았던 문정창, 박창암의 전력만 극력 비난한다.

이런 거짓말이 그의 입에서는 술술 잘도 나온다. 문정창과 박창암이 반성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도 없이 떠든다. 뿐만 아니라 "극력 비난"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문정창, 박창암 등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사실도 모른 체 하고 덮어 씌운다.

이덕일 스스로 문정창을 존경한다고 말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지금 유사역사가의 주장 대부분이 다 자유지에 실려있던 것들이다. 시치미를 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일제 고등계 순사 앞잡이 수법과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정체성이 같은 「한겨레 21」에서 원고 청탁을 했을 것이다.

바로 그 자신의 수법이 그러하다. 자기 자신이 그런 수법을 사용하니 남도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리라. 한겨레21의 정체성이 친일파, 용공조작과 같다고 한다면 이건 정말 모욕적인 발언이다. 한마디로 무리수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과 시민들 대다수는 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서 문정창, 박창암이란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의 인식 관계가 파탄지경이라는 게 바로 이런 대목에 나타난다. 한국사를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인 식민사학자의 글을 본 적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 역사가 식민사관에 오염되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이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학계 대다수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일이관지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고대사도 비판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비판한다.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계시다!'는 고대사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근현대사는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고대사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이른바 짝퉁 진보 근현대사학자들의 분절적, 쪼가리 역사인식도 웃기는 짓거리로 본다.

위에 말하는 이들은 유사역사가들이다. 이들이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다니... 임승국이 전두환에게 아첨하는 꼴을 내가 그렇게 써놓았는데도 이덕일은 그걸 못 본 척 한다. 지금도 이들 중 여러 명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박정희 찬양에 골몰해 있다.

이문영의 웃기는 자화자찬은 한 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가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건이 있다.

자화자찬이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높이 올리는 것이다. 이병도와 제자들의 일화가 무슨 자화자찬인가.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덕일. 그 뒤에 이덕일이 쓴 글은 내가 유사역사학의 이율배반을 비꼰 글인데, 역시 이런 글을 이해할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학계가 선대의 연구를 딛고 새로운 견해를 개진한 사례는 정말 여러가지를 들었는데도 이덕일은 그런 사례들은 모른 척 한다.

매국사학자들은 이병도가 매국사학을 추종할 때만 태두로 모신다. 감히 쓰다 소키치 선생님, 이마니시 류 선생님을 넘어서려 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문영은 역사학계가 스승에게도 대든 사례로 든다. 희한한 머리구조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이는 것만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왜곡해서 설명하는 것, 이 모두가 역사가에게는 금기 사항이다. 이런 논리구조를 가진 이덕일은 진정 희한한 머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부 출신의 이문영이 교수 출신의 매국사학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그가 고안했다고 하지 않고 따왔다고 하는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용어를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선총독부 만세가 가득 차다 보니 조선총독부식으로 사고하게 된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천도교, 동학교, 단군교, 대종교, 보천교, 증산교 등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꼽아 탄압했다. 또한 미륵불교, 불법연구회 등의 불교단체도 '유사종교'로 꼽았다. 지금 매국사학에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학위가 있어도, 없어도 '유사사학자'로 모는 방식과 완전히 같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 천황폐하와 조선총독 각하들은 영원히 우리의 앞길을 지도하신다!"는 충성선언의 무한반복이다.

일본제국은 사라진지 오래다. 충성을 바쳐도 나올 게 없다. 그런 사라진 것에 충성을 한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한하다. 더구나 나는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해외에서 사용되는 말이라는 점을 이미 밝혔다. 물론 이덕일은 그런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환단고기』 추종자로 몰기 위해서 광분한다. 그러나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범례에 따르면 '홍범도, 오동진' 두 독립운동가가 출간자금을 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진위 논쟁은 앞으로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오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문제지만 매국사학자들처럼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다 죽여야 한다’고 거품을 물 책은 아니다.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다 죽여야 한다라니... 이 사람이 역사학계를 보는 관점을 이 말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광분, 거품을 문다... 이런 천박한 말을 대놓고 쓴다. 박사나 되어서 품위라고는 갖추지 못했다.

『환단고기』에 대한 내 생각은 추후 자세히 밝힐 것이지만 한두 가지만 미리 말하겠다.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지 애미를 잡아먹었는지, 지 애비를 잡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극도로 저주한다. 박노자도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저주를 늘어놓았다. 나는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위판정은 다양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환단고기』를 교차검증한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연구했다. 다양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위서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 혼자 논문 하나 보지 않고 연구가 없다고 울부짖을 뿐이다.

그러나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검증 자체를 거부한다. 학문의 다양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일제가 한 세기 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대하는 자세와 같고, 유신, 5공정권이 맑스의 『자본론』을 대하는 자세와 같다.

그러니까 이런 거짓말을 잘도 한다. 입에 침은 바르고 이 대목을 썼을까?

2016년에 세계 환단학회에서 기조강연을 부탁하기에 나는 기조강연보다 논문을 써서 발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논문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문영은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학문적 분석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이덕일이 한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다 확인이 가능한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더구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는 말한 논문 같은 건 없다. 논문이라고 하면서 제목도 써놓지 않았다. 애초에 무슨 논문을 자기 연구소에 걸어놓나. 논문이라고 주장하면 논문인가. (이제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이 포스팅을 이덕일에게 제보할 것이고, 이덕일은 예전부터 걸려 있었던 것처럼 논문 비스무레한 무엇을 사이트에 걸어놓을 것이다. 그럼 다음엔 그 자칭 논문을 분석해주도록 하겠다. 내가 분석해 주겠다고 말했으니 무서워서 못 걸을 것 같기도 하다.)

역사학계의 학문적 분석을 하나만 살펴보자.

방금 위에서 이덕일은 역사학계는 검증 자체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런데 학문적 분석 하나를 살펴보겠다고 한다. 정말 질이 안 좋은 희한한 두뇌구조다.

『환단고기』 위서론자인 박광용 교수는 '무서운 아이들'의 본거지인 『역사비평(1992)』에 실은 「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는 논문에서 '잠청배'라는 용어를 위서의 근거로 들었다.

이 하나만 분석해보겠다는 것은 딱 하나 틀린 부분을 물고늘어져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걸 이야기하면서 임승국을 예로 가지고 온다.

민족사학자였던 임승국은 『한단고기(1986))』의 번역·주해에서 이를 "잠(潛)이나 청(淸)과 같은 무리"라고 해석했다.

앞에서 이미 내가 말했지만 임승국은 전두환에게 역사학자를 국보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청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인용하면서 이들은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질이 안 좋다.

지금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주창하는 학자들 가운데 『환단고기』를 정독해 본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중에 환단고기를 보는 자를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사람이 없다. 이덕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양 늘어놓는다. 뿐만아니라 본인이 워낙 사료를 정독할 줄 모르는 관계로 남들도 그런 줄 알고 있다.

매국사학자들이 공부 안 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저 사람들은 공부 안 할까요?"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배운 것이 틀렸다는 내용이 나오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자신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나요?" "평생 안 하던 공부 지금 와서 하겠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면 적절하다. 명도전의 원절식이 뭔지도 모르고 글을 쓰고, 묘예라는 단어 하나 해석할 줄 모르면서 글을 쓰고, 조조가 황제인 줄 아는 이덕일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한다.

수많은 독자들, 수많은 광고주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아직도 조선총독부 만세를 외치는 저들의 역사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살을 베고 뼈를 깎는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독자들은 카르텔 언론들의 역사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보도 내용도 무조건 부인하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글의 결론인데, 나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속에서 나같은 잔챙이는 어차피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서도, 한겨레에서도 글자리를 빼앗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가 위 문장에 녹아들어 있다. 모든 것이 돈으로밖에 환산되지 않는 그의 논리구조에 맞춰서 독자와 광고주를 들먹이며 협박을 해서 자기 글이 다시 등장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 만들어진 한국사

확증편향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결론을 내는 거죠.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663840223668679&id=100001281515042&pnref=story


그런 사람들은 위 링크가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겁니다.

요즘 바쁘고 피곤해서 바보 놀음에 일일이 이야기할 수가 없군요. 이런 아무 이득 없는 일은 그저 여흥에 불과하니까요.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역........사..*



산하 김형민 PD가 시사인에 연재한 글을 모아 푸른역사에서 책을 냈다. 태반의 글은 시사인을 볼 때 읽었던 글이기는 하나 다시 보면서 또 한 번 감탄한다. 이렇게 글쓰기란 참 쉽지 않다. 그리고 매주 이런 글을 뽑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그래도 역사책 줄이나 읽었다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소개된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내가 읽은 건 유사역사가들 책이 더 많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더구나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김형민 PD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인데, 그 나이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친구들은(나는 아니다! 나는!) 딸과의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김 PD는 대화를 넘어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역사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나도 식탁머리에서 종종 아이들의 의문에 답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꺼내곤 하는데, 아이들은 저 이야기가 언제 끝나나 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고백하건대, 대부분 그러하다.) 그러나 김 PD의 이야기는 생각컨대 이 책 속의 글처럼 그리 길지 않게 끝났던 것은 아닐까? 내 이야기처럼 붕어똥마냥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역사적인 새로운 고찰을 하는, 그런 연구서적이 아니다. 저 먼 시대의 한 사건과 오늘날 우리 주변의 한 사건을 역사라는 동앗줄로 묶어서 내미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로서의 역사다.

김형민 PD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신의 척도가 있고 그것을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글 속에서도 그만의 척도를 볼 수 있다. 그것이 시시콜콜한 역사 속의 일화를 단순 소개하는 책과 이 책이 다른 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역사학도를 위한 책은 아니오, 역사 속을 살아가는 이 땅의 부모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라 하겠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을 집어주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자기 아이에게 거짓과 위선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까. (아니야, 어딘가에는 있겠지. 인간 말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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