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을 위한 변명 *..역........사..*



1996년 6월 9일에 쓴 글이다.

약간 문제점은 있지만 뭐 그럭저럭 읽을만하다.
옮겨 놓는다.

변명2라고 되어있는데 1은 원래 없다...
김부식을 위한 변명2

삼국사기에 대한 많은 오해에 대하여는 이미 기호철님께서 상세한 설명을
달았기 때문에 부연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학생분들의 오해의
정도가 깊어 몇마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질문을 한 박경구님은 어느정도 의도적으로 삼국사기를 읽고 있습니
다. 다시 말하자면 선입견을 가지고 삼국사기를 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령 김부식이 선덕여왕을 폄하했다라든가, 우리 고유 의상을 깎아 내렸다
는 등의 해석인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삼국사기에서 유교의 경전을
들어 암탉이 울면 나라가 위태롭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숱한 중국고사를 들
며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황후 여씨니, 측천무후 무씨니 하고 기록한 것인데 이를 하늘의
이치로써 말한다면 곧 양은 강하고 음은 유하고, 사람으로써 말한다면 곧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 것이니, 어찌 가히 여자의 몸으로 규방을 나와서
국가의 정사를 결단하랴?


이처럼 삼국사기는 선덕여왕의 일만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유교
경전에 입각해서 중국의 일까지 들어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이 <사대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의복제도에 있어서도 우리 의상이 비루하다는 말을 한 바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색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역시 당시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
려고 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봅시다.
삼국사기 잡지 제2 색복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신이 삼차나 상국에 奉使하였는데, 일체의 의관이 송나라와 다름이 없었다.

만일 이 구절을 가지고 김부식이 <민족의식>도 없이 송나라의 의복을 입고
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뚤어진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이 늘
양복을 입고 미국을 방문했으니 우리는 후손들에게 사대주의자라고 욕을 먹
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적은 책을 <성경>이라고 부르며
교회에 나가 <이스라엘의 주>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러한 신자들
을 사대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으며 신자들 역시 스스로를 사대주의자라고 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교를 신봉한 신도인 <김부식>은 오늘날 왜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러니칼하게도 그 유교신도가 한민족의 역
사를 후손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편찬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야 무슨 공덕이 생긴다고 역사를 기록하게 되겠습니까?
김부식이 없었다면 한나라와 결전을 벌인 고구려의 명림답부, 유유, 밀우
등의 사적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지겠습니까? 사대주의자이고 중국에 대해
서는 무조건 설설 기었다면 김부식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을 기록했
을까요?
여기에 사실은 삼국사기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김부
식 및 편찬자들은 유교의 신봉자로서 유교의 관점에 의해 사서를 편찬한 것
인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자에 의해서 사대주의적
관점에 의해서 편찬되었다고 믿고, 그 증거를 찾아볼 요량으로 이 책을 읽
어 봅니다(왜 우리 역사를 알아볼 생각으로 읽어보지 않습니까?).
그러면 두 관점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1. 서술의 차이
사대주의자 - 사대에 맞춰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유교주의자 -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술이부작의 원칙을 지킨다.


술이부작이라는 것은 있는대로 서술하고 고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부식
은 백제본기의 말미에 이렇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논컨대 신라고사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온 까닭으로 성을 김
씨라 했다'고 하니 이 말은 괴이하여 믿을 수가 없으나, 사신史臣이 수사修史할 때
옛날 그대로 전하여 그말을 깎아 없앨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유교에 입각한 <술이부작>입니다.

2. 열전의 인물 고르기
사대주의자 - 중국에 충성한 인물을 고른다.
유교주의자 - 충효를 알릴 수 있는 인물을 고른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 열전에는 중국과 대결을 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김유신, 을지문덕, 명림답부, 계백 등등입니다. 을지문덕은 김유신 열전 바
로 뒤에 등장하며 이런 논찬까지 붙어 있습니다.

논컨대 수양제가 요동전역에 군사를 동원한 성황은 전고에 아직 보지 못
한 일이었다. 고구려는 한 편방의 작은 나라였으나 능히 이를 막아 스스로
국가의 안보를 도모하였을뿐만 아니라 적의 대군을 격멸시키기까지 했으니
이는 을지문덕 한사람의 힘이었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하기를 '군자가 없으
면 능히 그나라가 안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믿을만한 말이다.


이렇게 을지문덕을 유교에서 최고의 인간을 가리키는 <군자>라는 말을 동원
해 칭찬하고 있습니다. 유교주의자는 가능하지만 사대주의자는 불가능한 대
목입니다.

사실 사대주의라는 것은 우리역사에 없는 신종용어인데 이 용어를 만든 이
는 바로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대>는 있었지만
<사대주의>라는 것은 없었는데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폄하하고자
만들어낸 용어인 것입니다. 이런 일제 잔재를 여지껏 물고 늘어지면서 스스
로 조상들을 깎아내리고자 눈에 불으 켜고 꼬투리를 잡을 대목을 위해 우리
역사서를 읽어내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기는 커녕 비틀린 부분만을 커다랗게 과장해서 말하게 됩니다. 이
런 폐해가 계속 확대되어 나가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 역사를 통해 많은 유교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유교를 창시한 공자가
중국사람이고 그 뒤를 이은 맹자, 주자가 모두 중국인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인도를 불교의 성지로 여기고, 이스라엘을 기독교의 성지로
여기며, 통일교 신도들이 한국을 성지로 여기며, 한번이라도 순례를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유교 신도들이 중국을 성지로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
릅니다. 중세 유럽국가들은 교황의 명령이라면 꺼벅 죽고 대항할 엄두도 내
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황제를 교황이 파문을 내려 쫓아낸 적도 있습니
다. 그런데도 서양의 역사를 사대주의의 역사라고 부르는 역사가는 없습니
다. 무슨 이유일까요?

불과 수십년전에 우리나라는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뭐라고 이
야기하든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
존이 어려운 지경을 우리 윗세대는 거쳐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그
세대에게는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에 대해서 회의를 가
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 위기를 넘기고자하는 참된
민족의식과 더불어 국수적인 민족의식도 발생합니다. 참된 민족의식과 달리
국수적인 민족의식은 진실을 가지고 말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재편함으
로써, 민족을 실제로는 위태로운 지경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러한 것은 바
로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즉 1차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어려움에 처한
독일민족은 국수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나찌즘에 빠져듭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인류 역사에 가장 참담한 전쟁, 그리고 학살이었습니다. 일본
역시 개방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제국주의로 극복하고자 하
며 끝내는 대동아 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인류역사에 유래가 없는 일
대 범죄국가로 전락합니다.
얼마 전에 모 잡지에서 본 컬럼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지은이는 지금
50대입니다.

기브 미 어 초컬릿을 외치면 미군 찌프를 쫓아다니던 기억이 생생한 나에
게 우리 민족이 사실은 그들이 아직 문명도 갖추지 못했던 시절에 광대한
영토를 호령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너무나 가슴벅찬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잘 알려 내 후손들에게는 언제나 자부심을 갖고 있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거짓된 기초에 의한 자부심은 갖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환단고기와
단기고사 등의 <사서>에 대해서는 제가 고대사 게시판에 사료비판이라는 이
름으로 만들어 둔 것이 있습니다. 꼭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123 이문영 nymphal 01/31 24 9 [의견] 재야사서 비판 (7)
122 이문영 nymphal 01/31 20 12 [의견] 재야사서 비판 (6)
121 이문영 nymphal 01/31 27 17 [의견] 재야사서 비판 (5)
116 이문영 nymphal 01/29 27 13 [의견] 재야사서 비판 (4)
115 이문영 nymphal 01/29 29 14 [의견] 재야사서 비판 (3)
114 이문영 nymphal 01/29 29 19 [의견] 재야사서 비판 (2)
113 이문영 nymphal 01/29 53 15 [의견] 재야사서 비판 (1)

이상으로 긴 이야기를 마칩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의 의견으로 생각해 주기
를 바랍니다. 인쇄되어 있다고 모든 것이 진리는 아니며, 제 이야기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마포에서

이문영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2008-02-29 11:28:05 #

    ... 해당될 부분에 무슨 글을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두번째 장에서 유시민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을 노예 사상을 지닌 사대주의자로 매도한 뒤(김부식에 대해서는 김부식을 위한 변명 [클릭]을 참조) 이런 말을 한다.우리가 [삼국사기]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쓴 역사를 사실 그대로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 more

덧글

  • 미친과학자 2007/09/18 17:26 #

    재야사서 비판에 대한 링크가 아직 안돼있는듯 하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연 이틀째 읽고 있어요.

    ...직장에서 숨어서...ㅡㅡ;
  • 초록불 2007/09/18 17:31 #

    미친과학자님 / 아, 저건 링크가 안 걸려있습니다. 하이텔에서 썼던 글이라서요. 제 리스트를 보시는 게 더 나으니까 굳이 따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색창에서 검색하시거나 태그에서 [재야사]를 선택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 선무공신 2011/05/09 00:17 #

    잘읽었습니다.^^
  • 초록불 2011/05/09 10:55 #

    고맙습니다.
  • 내눈을바라봐 2016/10/18 17:57 #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뇌천 김부식 선생이 잘한건 고안승이라는 인물을 꺼낸 것이죠. 뇌천 선생께서 고안승의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신라보고 사대주의론 매국노론을 까며 고구려를 미친듯 빠는 인간들을 향해 "고안승" 이 3자의 이름만으로 입을 닫게 해버릴 수 있던 계기가 완성된 것이죠

    알다시파 고안승과 그 일당들은 검모잠을 참살하고 신라에 투항해서 고구려 부흥운동을 끈 고구려 최악의 매국노였던 것이죠. 그리고 나중엔 고안승은 신라 내에서 고안승 친인척 즉 일당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마침내 신라에서 진압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고안승이라는 존재를 없애버려도 결국 고구려 부흥운동이 누굴 중심으로 했냐는 것도 없었던 것이죠.

    뇌천 선생이 고안승 이야기는 잘꺼냈어요. 어떤 인간은 고안승을 고구려 부흥운동을 이끌던 위대한 영웅이라며 미화를 해대더군요. 한심스럽습니다.
  • 초록불 2016/10/18 18:04 #

    안승의 성이 "고"인지는 확인 안 된 것 아닌가요?
  • 내눈을바라봐 2016/10/18 18:59 #

    뭐 한간에는 고구려 본기에선 연안승이라는 설도 있고 그냥 안씨성인 설도 있고 친인척이 대문인데 그건 아닌 것같고 논란은 많겠죠. 삼국사기에는 안순이라고 하더군요. 뭐 그 자칭 횡성고씨입장에선 고안승이라고 하더군요. 보장왕의 서자론이 삼국사기에 나오니 일단 고안승이라고 했습니다만 뭐 성씨가 중요한게 아니니깐요. 단지 안승 이야기 꺼낸건 괜찮네요
    고구려에선 배신자 신라에선 역적이라면 참 안승 수준이 어느 수준인지 알법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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