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란 무엇인가? 만들어진 한국사



우리는 종종 근본주의적인 생각을 한다.

남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도 유교, 불교, 기독교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줄여나가다보니 우리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 부딪친다.

더구나 우리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것에 애정도 없다.
불교는 혹세무민의 종교고,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며
개중 역사가 짧은 기독교는 민족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며, 서양사대주의의 원천이다.
특히 유교는 말할 나위없이 없어져야 마땅한 가치관으로 치부된다.
대개 우리나라의 안 좋은 관습은 다 유교 때문이라고 매도되기도 한다.

그럴까?

이 때문에 우리는 종종 더 이상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다.
왕의 힘을 빌려 세상을 지배하는 섭정들처럼, 이제는 권리를 주장할 사람들이 없는 것이 우리 것이라고 한다.
그것의 근원으로 올라가면 우리와 하나였던 것이고, 이제는 그 과실을 맛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행위가 우리의 역사 2천년을 배반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가?

기마민족의 신화, 대쥬신족의 신화다.
우리는 2천년을 농경민족으로 살아왔는데도, 이런 사실들은 이 주장들에서는 은폐되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유목민의 기질은 우리에게 유전으로 전해내려져 오는 어떤 것이 된다. 이것은 불멸의 존재처럼 세월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를 규정하려고 든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의 실제 역사는 하찮은 것이 되고,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며,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 된다. 대신 아무리 작은 것이고,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이 없는 것이라 할지도 기마민족의 전통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땅히 숭배받아야 하는 그 무엇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거란과 몽골과 금과 청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고 강변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

이런 훌륭한 잣대를 서양사에 대입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그런데도 이들은 우리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조상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면서도 그것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불교국가와 유교국가를 지나쳐온 민족이며, 그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도대체 이것이 창피한 일이 되는 이유가 뭘까?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은 유럽국가들은 모두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갈리아족, 켈트족으로부터의 유산만을 부둥켜 안아야 하는 것일까?

유교적 가치관이 오늘날 우리에게, 특히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마당에서 보면 어울리지 않으며 고쳐나가야, 또는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과거에도 유효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은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하든 조선의 적자다. 조선왕조의 불행한 몰락은 우리를 아비없는 자식처럼 만들었다. 그것은 아비의 부정, 사생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역대 정권의 부조리성, 이승만의 개헌, 박정희의 5.16, 전두환의 12.12는 우리에게 원죄로 남았다. 앞을 부정하는 일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우리의 모순은 소급된다. 우리의 모순은 집권의 부도덕성에서 오는 것이며, 일제강점기에서 오는 것이며, 조선에서 오는 것이며, 드디어는 신라의 삼국통일로부터 오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천년의 역사를 통째로 내다버리게 된다. 우리는 광활한 평원을 말달리던 기마민족이었으며, 우리는 예의와 범절을 따지는 좀생이가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통을 이은 거란과 몽골과 금과 청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업적을 주장할 후손들이 없으니까.

결과가 어찌될까 생각하지 않고 일본 천황의 조상이 백제왕가라 주장한다. 끝내는 일본과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논리로 치닫는다. 다만 희한하게 숨어있는 유교적 천성이 발휘되어 우리는 종가이고, 일본은 말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는 말류가 근본을 친 하극상이라는 유교논리로 자신들을 범벅한다. 여기까지 오면 유교를 배척한다는 그들의 주장이 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들은 동아시아의 그 수많은 국가들, 그 종족들 중 살아남아 정치결사체를 구성한 종족은 우리와 몽골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일본은 원래 이질적인 존재니 거론하지 않아도 좋다) 이 두나라가 살아남은 것은 정치적 역학문제기도 하고, 현명한 선조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우리를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개선은 현재의 문제다. 과거를 따지고 근원을 논하며 저 먼 곳의 문제를 진단하려고 한다. 불행히도 이것 역시 유교적인 자세다. 근본이 바르지 않으면 그 말단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대학>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유교정신이다. 물론 공자와 맹자 역시 누누이 강조한 사상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고는 역사가 바로 설 수 없다고 주장하며, 친일파가 오늘날 우리 사회 만악의 근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논리가 유교에 기반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그런데 그래서?

자신의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를 긍정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선 것이 허상이라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의 발밑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 우리의 철학, 우리의 선조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비젼을 수립할 수 있다. 우리의 발밑. 거기에는 가장 가까운 역사로부터 가장 먼 역사가 시간순으로 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천년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한 뒤에(또는 부분적으로 부정한 뒤에) 시공을 뛰어넘어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먹고 입고 살아간 그 모든 것이다. 그것이 중국에서 왔건, 일본에서 왔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우리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것이다. 그것이 아직 우리 입안에 남아 있어 삼키지 않았다면 뱉어버리면 된다. 그러나 이미 목구멍을 넘어가서 우리의 자양분으로 변해버렸다면 그것을 분리해낼 수는 없다. 그것은 허상이며, 가공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물어본다. 우리 것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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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少年家長 2005/09/01 03:10 #

    잘 들어가셨군요. 그런데 이 야심한 시각에 블로깅이라니... 과연 막강하십니다. ^^
  • 초록불 2005/09/01 03:20 #

    남의 말할 처지가 아니시잖습니까...-_-;;
  • 루드라 2005/09/01 03:42 #

    과연 대단하신 분들 ^^
  • DEMON13 2005/09/01 05:00 #

    다들 대단하세요.+_+
  • 이지스 2005/09/01 14:04 #

    옴마나....
  • alias 2005/09/01 18:08 #

    근데 일본 천황의 조상이 백제왕가라는 것은 거의 사실일 거라고 일본에서 아주 오랫동안 유학하며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친구가 말하던데요. 학문적으로는 믿을만한 친구인데...
  • 서누 2005/09/01 18:53 #

    우리 조상이 품종 좋은 원숭이였다고해서...
  • 초록불 2005/09/01 19:03 #

    alias님 / 영국 왕실은 독일에서 온 것이 <사실>이죠. 그것이 영국사를 독일사에 종속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교적 감성에 찌든 재야학자들은 일본을 집나간 탕아로 여기고, 본가로서의 우월감을 거기서 느끼려 하죠. 그들에게는 왕실이 어디에서 왔는가가 그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이 됩니다. 저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 honest 2005/09/01 23:52 #

    음. 친일인명사전 때문에 올리신 글인가 보네요.^^ 근데 집권의 부도덕성, 일제 강점기와 조선왕조, 신라의 삼국통일은 같은 수준의 모순으로 볼 수 없는 것 같은데요.;
  • 초록불 2005/09/02 08:20 #

    honest님 / 친일인명사전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나열하신 것들을 같은 수준의 모순으로 보는 인간들 때문에 쓴 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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