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회 교수의 대쥬신론 비판 (1) 시데하라 히로시 만들어진 한국사



김운회 교수가 최근에 프레시안에 극우민족주의 이론인 대쥬신론을 전개했다.

읽어보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냥 웃어넘기자니 그럴 수가 없어서 몇자 적기로 했다.

김운회 교수의 이 연재물의 서두부터 심상치가 않다.
김운회 교수는 시데하라 히로시(幣原坦) 의 다음과 같은 말에 감명을 받았다 한다.

한국 근대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과거 조선의 교육 식민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한국사가(韓國史家) 시데하라 히로시(幣原坦)가 한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직접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04년 10월 나는 우연히 문부성(文部省)으로부터 한국의 학부고문(學部顧問)으로 부임하지 않겠느냐는 교섭을 받았다. 나는 홀로 깊이 생각했다. 이 무슨 인연인가? 천세(千歲)의 문은(文恩)에 보답[應報]할 좋은 기회[好機]가 열린 것 같다. 신명(身命)을 걸고 맡기로 마음을 먹고 상월(霜月)의 차가운 바람[寒風]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갔다.”


시데하라 히로시를 <한국사가>로 표현하고 있다. 시데하라 히로시가 과연 누구인가? 김운회 교수의 위 글에도 나오듯이 <조선의 교육 식민정책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식민지사관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으며 나는 예전에 이미 그것들을 정리[클릭]한 바 있다. 그 중 하나인 당파성론. 그 당파성론을 최초로 주장한 이가 바로 시데하라 히로시다.

시데하라 히로시는 1907년 발간한 <한국정쟁지>에서 "조선인의 오늘날의 작태를 이해하려면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역사적 사실의 근원으로 고정적인 것은 당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이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된 이유가 당쟁과 사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시데하라 히로시는 일제의 조선 통감정치에 개입한 인물이다. 학제를 일본식으로 개정하고, 일본어를 가르치게 하고, 일제 식민지 사관의 교과서를 편찬했다. 그가 조선을 바라본 관점은 ‘문명개화된 일본’ 과 아직 ‘미개한 조선’ 으로 조선의 일본화를 단행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시데하라 히로시는 선별적 동화정책을 썼다. 일본에 충성할 수 있는 신민들을 최소한 가르치는 것이 그 정책의 본질이다.

시데하라 히로시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다. 시데하라 히로시는 당쟁이 없던 시절까지 소급하여 사림과 훈구의 사화도 당쟁으로 파악하여 기술했으며, 이것이 조선인의 고질적인 분열병이라고 단정했다. 일제의 교육은 이런 기초 위에 수립되어 오늘날까지도 우리 스스로를 분열적인 민족이라는 자기 비하의 최면에 몰아넣고 있다.

시데하라 히로시는 식민통치를 위해 <한국정쟁지>를 썼으며, 그외에도 <조선교육론>, <식민지교육>과 같은 책도 썼다. 그 스스로 자신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조선인의 오늘날의 작태를 이해하려면, 그 원인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역사적 사실의 근원으로 고질적인 것은 당쟁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중략) 대저 당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정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편리하고, 또 국정의 심사에 가장 유익하다.

내친 김에 <한국정쟁지>의 서문 일부를 옮겨보자.

한국의 정치는 사권의 쟁탈에서 유래한다. 정가(政家)는 한번 정국을 담당해 일을 행하려 하면 여러 의론이 백가지로 나오고 유언비어가 떠들석하게 퍼지며, 음모를 꾸미면 암살을 꾀하고 한번 집권하면 정적을 일망타진하는 참화를 불사한다. 대신의 교체가 주마등같으니 국정의 개혁을 기할 수 없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는 일찍이 한국정부의 초빙을 받아 그 학정(學政)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과거에 대한 조사는 현재의 착수에 자신을 주고 장래의 계획을 안전하게 하는 바라는 것을 느껴 공사를 보는 여가에 국정의 연혁에 대하여 탐구해 보았다. 본서의 정쟁에 관한 연구도 그 중 하나다. (중략) 이조 500년의 현상순치의 주 원인 중 하나가 정쟁인만큼 이에 관해 누군가는 그 연원을 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를 동경제대 국사학과 졸업자라고 <한국사가>라고 부른다는 것부터 김운회 교수의 사상에 어딘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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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한도사 2005/09/13 13:10 #

    김운회씨는 사학자가 아니니까, 개나 소나 다 '史家'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디지털 경영학으로 학위받은 사람이 왜 고대사연구는 하는건지, 당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미메시스 2006/12/18 21:29 #

    중국동북 공정에 아무 의견 없는 사람들이나 끌려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훨씬 나아보입니다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군요.

    무대응으로 일관하는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런지요?
    어떤 방침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의견이신지 잘 알수가 없어서 질문드립니다.
  • 초록불 2006/12/18 22:49 #

    미메시스님 / 동북공정보다 일제강점을 조장한 친일사가를 따르는게 낫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네요. 둘다 나쁜 거죠.

    더구나 김운회 교수는 황당무계한 이론으로 세계 학계에서는 코웃음도 안 칠 이야기를 한국 시장에서 팔아먹기 위해 내놓았을 뿐입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 언급된 바도 있으니 관심있다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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