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회 교수의 대쥬신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총칭이다.
동호-숙신-거란-몽골-여진-한국이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근거는 복잡다단하지만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전적으로 가깝다.
2. 천손신화를 가지고 있다.
3. 풍속이 같다.(이 부분은 견강부회가 너무 심하다)
4. 언어가 같다. (이 부분도 견강부회가 너무 심하다)
대쥬신족은 알타이산맥 또는 바이칼 호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 전체에 퍼졌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다라는 것이 김운회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가? 그럼 대체 민족이라는 게 뭘까?
역사적 경험을 같이 하지 않고, 서로를 동족이라고 인식하지 않아도 같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이런 이상한 논리 때문에 김운회 교수는 자기 글 속에서 이미 모순을 드러낸다.
가령 백제와 일본을 연맹왕국이라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이 칠지도는 혈맹, 또는 거의 하나의 나라에 가까운 존재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의 나라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말이 가지는 뉘앙스는 공동의 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것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천년의 숙적 고구려지요. 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은 쥬신의 역사에서 최대의 비극입니다.
위 글에서 보면 백제는 고구려와 아무런 혈연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본래 부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들은 같은 민족이 되고, 더불어 서로 싸운 것은 동족상잔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내 견해는 불필요하므로 쓰지 않는다)
이러한 김운회 교수의 일본껴안기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고 만다.
왜(倭)라는 말은 요동 - 한반도 남부 - 북규슈(北九州) 등에 광범위하게 거주한 친부여계 연안 거주민들(해양세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왜놈'이니 하면서 놀리고 욕하던 그 말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 '조센징'하면서 비하하던 그 말과도 다르지 않죠. 앞에서 보았지만 일본은 조선의 다른 표현이 아닙니까?
앞에 백제와 고구려의 이야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대쥬신과 결별을 했다고 김운회 교수는 스스로 밝힌다.
어쨌든 칸무 천황 이후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와의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은 채 천수백년이 지나도 이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김운회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일본인은 무의식 속에 대쥬신을 그리워한다는 망상론을 전개하게 된다.
일본은 바로 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여를 지키기 위해 요동과 한반도의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분국(分國)을 건설했으며 부여 - 요동부여 - 남부여(백제) 가 차례로 멸망해가자 부여의 중심세력은 다시 열도(일본)로 이동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일본의 실체지요. 부여는 일본에서 비로소 안식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입 밖으로 부여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정치는 현실이니까요. 백제나 남부여는 사라지고 이젠 일본만 남아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열도 부여인들은 멀리 두고 온 산하(山河)를 항상 열망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본인들의 무의식에 내재한 정한론의 본질일 겁니다.
김운회 교수는 대쥬신론을 펼치면서 무의식에 무척 기댄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제가 보기에 쥬신은 어떤 지역에 있든지 유목생활에서 오는 어떤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단한 유목생활과 떨어져 살아가야 하니 외롭고 쓸쓸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 같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사람을 보는 게 더없이 반갑고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따뜻함을 나누려 하지요. 반면 전형적인 농경민인 중국인의 경우에는 사람의 살이 맞닿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워낙 다른 점이 많으니 어쩌랴?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자기 파탄을 한다. (농경민이 스킨십을 싫어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론 같은 쥬신이라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산업구조를 포함한 경제 환경 및 지리적 차이로 인하여 그 공통성이 약화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한반도의 쥬신(한국인)입니다. 이들은 유목민으로서의 쥬신의 동질성보다는 보다 발달되고 세련된 세계적인 중국문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일이 이쯤 오면 대체 대쥬신이 뭔지, 우리와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김운회 교수는 자기 글을 통해 저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는 끊임없이 우리와 일본-여진-거란-몽골은 하나다라고 세뇌공작을 시도한다.
저 민족들과 우리 한민족 사이의 공통점을 끊임없이 골라낸다. 하지만 저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일단 저 글의 논리에 휘말리면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기껏해야 무의식, 유목민족, 언어, 유전자 뿐이다. 그것이 종족이지, 민족인가?)
그런 파탄을 보이다보니 마치 절대선처럼 이야기해온 대쥬신에 대한 결론도 이상하게 맺어진다. 대쥬신 중 일본에 대해서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보기에 일본은 범쥬신의 전통을 회복할 만한 학문적 전통이 새로이 수립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쥬신의 전통이 회복될수록 일본이라는 구조가 범쥬신의 구도 속에 함몰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일본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여 사까모토 료마(坂本龍馬)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안주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쥬신은 절대선인데 쥬신의 전통이 회복되면 일본이라는 구조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아마 김운회 교수 본인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저것이 진실이다. 일본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있지도 않은 허상에 매진하는 그런 일이 생기겠는가? 저 말은 일본은 왜 대쥬신을 찾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나오면 입막음을 하려고 쓴 말에 불과하다.
김운회 교수는 일본에 대해서 이렇게 재차 말한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일본은 쥬신적인 전통보다는 일본 고유의 새로운 역사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어 중화 패권주의와 그의 부산물인 동북공정에 "실질적으로" 대항하는 세력은 남한 지역의 극소수 지식인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김운회 교수 말대로 해도 역사가 갈라진지 천 수백년인데 이제 와서 고유의 역사공동체를 모색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걸까?
그리하여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양심고백을 한다.
세상에 남은 쥬신이라고는 (몽골에 극소수가 있지만)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인데, 이들도 스스로 쥬신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있는 개념을 창조하더니, 그 개념을 모른다고 한탄을 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음모론으로 읽히게 된다. 쥬신 스스로는 쥬신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 적인 중국인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동북공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골적으로 쥬신사를 말살하려는 동북공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쥬신사를 영원히 해체하려는 동북공정의 이상한 논리를 이기는 길은 고구려 역사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역사가 만주족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역사적 공통성이 존재했음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가만 내버려두면 아무도 쥬신인줄 몰랐을텐데, 중국인들이 왜 쥬신을 알려주는 동북공정을 시작해서 김운회 교수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더 재밌는 것은 역사적 공통성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도 세뇌작업을 통해서는 하나다, 하나다 중얼거린 결과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①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이 우리민족에게 강하게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 ② 고구려가 끊임없이 몽골쥬신, 만주쥬신, 반도쥬신 까지 역사적 공동성이 연속되었는가 하는 점 입니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뭐라고 했던가? 다시 한번 그 말을 보자!
칸무 천황 이후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와의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유목민으로서의 쥬신의 동질성보다는 보다 발달되고 세련된 세계적인 중국문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인데, 이들도 스스로 쥬신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역사적 공동성이 어디 있어요? 있던가요? 그래서 김운회는 얼른 이렇게 말을 바꾼다. (같은 글 안에서...)
사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연속성(連續性) 즉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가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를 동족이라고 생각했다거나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를 역사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형제라는 인식이 있든 없든 형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횡설수설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역사적 공동성이라는 말은 역사적 연속성으로 바뀌었다. 과거는 금방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승의식, 정말 중요한 것은 역사적 공동성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위의 말로 보면, <역사적 공동성이 연속되었는가>에서 그냥 <종족의 피가 계속 전해졌는가>로 입장을 교묘하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라는 <문화>를 <혈연>이라는 생물체로 둔갑시킨 것이다.
김운회가 보는 입장에서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다. 그 <피>는 집단의 무의식을 전달하여 역사와 무관하게 동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피>가 같으면 알든 모르든 형제가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건 한국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고, 국가 간에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김운회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지리적 공간이다. 한번 우리 종족이 밟았던 땅에 살고 있는 종족은 다 우리 종족인 것이다. 다른 요소를 버리고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한국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반도쥬신(한국)의 보수적인 사학계가 멀리 떨어진 부여(夫餘) 지역이나 요서 지역(遼西 : 고조선의 영역의 일부)을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로 인정해온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역사를 영토주의 관점에서 보니까 그렇다. 동시에 아래와 같은 말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여는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보면서도 바로 백두산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바로 인근의 만주인(만주쥬신 : 청의 건국세력)조차도 우리 민족의 구성원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죠.
김운회 교수는 자신의 이런 주장이 바로 동북공정의 중국학자들과 같은 논리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 중국이 지배하고 있던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조공-책봉 시스템을 이용한다.
김운회 교수도 영토주의적 역사관을 피력한다. 다만 그는 조공-책봉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유전자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혈연이 민족을 결정한다고 믿는 자는 김운회 교수 뒤에 줄을 서도록...
김운회 교수가 몽골과 우리를 그토록 연결짓고 싶어했으나 과학은 그런 망상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을 참고.
대쥬신의 환상 - 몽골족과 한민족 [클릭]
그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총칭이다.
동호-숙신-거란-몽골-여진-한국이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근거는 복잡다단하지만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전적으로 가깝다.
2. 천손신화를 가지고 있다.
3. 풍속이 같다.(이 부분은 견강부회가 너무 심하다)
4. 언어가 같다. (이 부분도 견강부회가 너무 심하다)
대쥬신족은 알타이산맥 또는 바이칼 호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 전체에 퍼졌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다라는 것이 김운회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가? 그럼 대체 민족이라는 게 뭘까?
역사적 경험을 같이 하지 않고, 서로를 동족이라고 인식하지 않아도 같은 민족이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이런 이상한 논리 때문에 김운회 교수는 자기 글 속에서 이미 모순을 드러낸다.
가령 백제와 일본을 연맹왕국이라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이 칠지도는 혈맹, 또는 거의 하나의 나라에 가까운 존재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의 나라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말이 가지는 뉘앙스는 공동의 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것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천년의 숙적 고구려지요. 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은 쥬신의 역사에서 최대의 비극입니다.
위 글에서 보면 백제는 고구려와 아무런 혈연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본래 부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들은 같은 민족이 되고, 더불어 서로 싸운 것은 동족상잔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내 견해는 불필요하므로 쓰지 않는다)
이러한 김운회 교수의 일본껴안기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고 만다.
왜(倭)라는 말은 요동 - 한반도 남부 - 북규슈(北九州) 등에 광범위하게 거주한 친부여계 연안 거주민들(해양세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왜놈'이니 하면서 놀리고 욕하던 그 말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 '조센징'하면서 비하하던 그 말과도 다르지 않죠. 앞에서 보았지만 일본은 조선의 다른 표현이 아닙니까?
앞에 백제와 고구려의 이야기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대쥬신과 결별을 했다고 김운회 교수는 스스로 밝힌다.
어쨌든 칸무 천황 이후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와의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은 채 천수백년이 지나도 이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김운회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일본인은 무의식 속에 대쥬신을 그리워한다는 망상론을 전개하게 된다.
일본은 바로 부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여를 지키기 위해 요동과 한반도의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분국(分國)을 건설했으며 부여 - 요동부여 - 남부여(백제) 가 차례로 멸망해가자 부여의 중심세력은 다시 열도(일본)로 이동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일본의 실체지요. 부여는 일본에서 비로소 안식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입 밖으로 부여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정치는 현실이니까요. 백제나 남부여는 사라지고 이젠 일본만 남아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열도 부여인들은 멀리 두고 온 산하(山河)를 항상 열망합니다. 바로 이것이 일본인들의 무의식에 내재한 정한론의 본질일 겁니다.
김운회 교수는 대쥬신론을 펼치면서 무의식에 무척 기댄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제가 보기에 쥬신은 어떤 지역에 있든지 유목생활에서 오는 어떤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단한 유목생활과 떨어져 살아가야 하니 외롭고 쓸쓸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 같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사람을 보는 게 더없이 반갑고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따뜻함을 나누려 하지요. 반면 전형적인 농경민인 중국인의 경우에는 사람의 살이 맞닿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워낙 다른 점이 많으니 어쩌랴?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자기 파탄을 한다. (농경민이 스킨십을 싫어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론 같은 쥬신이라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산업구조를 포함한 경제 환경 및 지리적 차이로 인하여 그 공통성이 약화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한반도의 쥬신(한국인)입니다. 이들은 유목민으로서의 쥬신의 동질성보다는 보다 발달되고 세련된 세계적인 중국문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일이 이쯤 오면 대체 대쥬신이 뭔지, 우리와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김운회 교수는 자기 글을 통해 저렇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는 끊임없이 우리와 일본-여진-거란-몽골은 하나다라고 세뇌공작을 시도한다.
저 민족들과 우리 한민족 사이의 공통점을 끊임없이 골라낸다. 하지만 저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일단 저 글의 논리에 휘말리면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기껏해야 무의식, 유목민족, 언어, 유전자 뿐이다. 그것이 종족이지, 민족인가?)
그런 파탄을 보이다보니 마치 절대선처럼 이야기해온 대쥬신에 대한 결론도 이상하게 맺어진다. 대쥬신 중 일본에 대해서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보기에 일본은 범쥬신의 전통을 회복할 만한 학문적 전통이 새로이 수립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쥬신의 전통이 회복될수록 일본이라는 구조가 범쥬신의 구도 속에 함몰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일본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여 사까모토 료마(坂本龍馬)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에 안주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쥬신은 절대선인데 쥬신의 전통이 회복되면 일본이라는 구조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아마 김운회 교수 본인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저것이 진실이다. 일본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있지도 않은 허상에 매진하는 그런 일이 생기겠는가? 저 말은 일본은 왜 대쥬신을 찾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나오면 입막음을 하려고 쓴 말에 불과하다.
김운회 교수는 일본에 대해서 이렇게 재차 말한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일본은 쥬신적인 전통보다는 일본 고유의 새로운 역사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어 중화 패권주의와 그의 부산물인 동북공정에 "실질적으로" 대항하는 세력은 남한 지역의 극소수 지식인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김운회 교수 말대로 해도 역사가 갈라진지 천 수백년인데 이제 와서 고유의 역사공동체를 모색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걸까?
그리하여 김운회 교수는 이렇게 양심고백을 한다.
세상에 남은 쥬신이라고는 (몽골에 극소수가 있지만)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인데, 이들도 스스로 쥬신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있는 개념을 창조하더니, 그 개념을 모른다고 한탄을 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음모론으로 읽히게 된다. 쥬신 스스로는 쥬신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 적인 중국인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동북공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골적으로 쥬신사를 말살하려는 동북공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쥬신사를 영원히 해체하려는 동북공정의 이상한 논리를 이기는 길은 고구려 역사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역사가 만주족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역사적 공통성이 존재했음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가만 내버려두면 아무도 쥬신인줄 몰랐을텐데, 중국인들이 왜 쥬신을 알려주는 동북공정을 시작해서 김운회 교수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더 재밌는 것은 역사적 공통성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도 세뇌작업을 통해서는 하나다, 하나다 중얼거린 결과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①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이 우리민족에게 강하게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 ② 고구려가 끊임없이 몽골쥬신, 만주쥬신, 반도쥬신 까지 역사적 공동성이 연속되었는가 하는 점 입니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뭐라고 했던가? 다시 한번 그 말을 보자!
칸무 천황 이후 일본은 더 이상 한반도와의 역사의 무대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유목민으로서의 쥬신의 동질성보다는 보다 발달되고 세련된 세계적인 중국문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민족적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인데, 이들도 스스로 쥬신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역사적 공동성이 어디 있어요? 있던가요? 그래서 김운회는 얼른 이렇게 말을 바꾼다. (같은 글 안에서...)
사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연속성(連續性) 즉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가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를 동족이라고 생각했다거나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를 역사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형제라는 인식이 있든 없든 형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횡설수설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역사적 공동성이라는 말은 역사적 연속성으로 바뀌었다. 과거는 금방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승의식, 정말 중요한 것은 역사적 공동성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위의 말로 보면, <역사적 공동성이 연속되었는가>에서 그냥 <종족의 피가 계속 전해졌는가>로 입장을 교묘하게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라는 <문화>를 <혈연>이라는 생물체로 둔갑시킨 것이다.
김운회가 보는 입장에서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다. 그 <피>는 집단의 무의식을 전달하여 역사와 무관하게 동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피>가 같으면 알든 모르든 형제가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건 한국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고, 국가 간에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김운회 교수에게 중요한 것은 지리적 공간이다. 한번 우리 종족이 밟았던 땅에 살고 있는 종족은 다 우리 종족인 것이다. 다른 요소를 버리고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한국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반도쥬신(한국)의 보수적인 사학계가 멀리 떨어진 부여(夫餘) 지역이나 요서 지역(遼西 : 고조선의 영역의 일부)을 우리 민족 역사의 일부로 인정해온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역사를 영토주의 관점에서 보니까 그렇다. 동시에 아래와 같은 말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여는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보면서도 바로 백두산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바로 인근의 만주인(만주쥬신 : 청의 건국세력)조차도 우리 민족의 구성원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죠.
김운회 교수는 자신의 이런 주장이 바로 동북공정의 중국학자들과 같은 논리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 중국이 지배하고 있던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조공-책봉 시스템을 이용한다.
김운회 교수도 영토주의적 역사관을 피력한다. 다만 그는 조공-책봉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유전자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혈연이 민족을 결정한다고 믿는 자는 김운회 교수 뒤에 줄을 서도록...
김운회 교수가 몽골과 우리를 그토록 연결짓고 싶어했으나 과학은 그런 망상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을 참고.
대쥬신의 환상 - 몽골족과 한민족 [클릭]







덧글
슈타인호프 2005/09/10 12:32 # 답글
위대한 선지자 한 사람 나타나셨군요.
Prometeus 2005/09/10 12:37 # 답글
별 희안한 얘기가 다 나오는군요.
corwin 2005/09/10 17:42 # 답글
히틀러의 횡설수설하지만 선동적인 연설과 유사한.내용도 비슷하고.
사발대사 2005/09/11 13:12 # 답글
살이 맞닿는 것을 싫어하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인구가 15억이 되었는지?
자그니 2006/03/06 00:18 # 답글
...저런 논리를 중동 지역에 한번 들이밀게 되면... 난리가 나겠군요.
R_H_Ryu 2006/09/08 15:56 # 답글
사실 김운회 교수의 글을 읽으며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님이 가장 비판하시는 '역사적 동질성과 경험의 공유도 없는데 민족 운운하는 것'은 제가 봐도 재고의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봤을 때 북한이 벌써 50년이 넘어가는 분단상황에서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요? 통일을 해야할 이유가 있나요? 저도 소위 '민족주의' 특히 정치적인 부분에선 염증을 느낍니다만 현재 동아시아에서 '민족'문제는 엄존하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부분을 떠나 현재 중국의 팽창구도에서 위협을 느끼는 소수 국가들(몽골,한국,일본 등)은 대응논리로써 '역사 공동체를 물색'하는 것도 뭐 굳이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바람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뜻). 물론 일본도 예전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서구의 압박에 대응하는 척 했지만 그건 가짜고요. 적어도 '민족'을 떠나서 동아시아 공동체로써 훨씬 긴밀한 지역연합이 생겨나길 바라는 게 제 마음입니다.
초록불 2006/09/08 16:36 # 답글
R_H_Ryu님 /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이 가짜였듯이, 김운회의 대주신 공동체도 가짜입니다. 중국의 위협에 공동대처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내세워 연합을 구성할 수는 없는 거죠.나머지 이야기는 짧은 댓글로 할만한 성질이 아니군요. 언젠가 포스팅하거나 다른 경로로 이야기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궁극사악 2007/06/04 14:02 # 답글
아아 역시 초록불님이 관련글을 올리셨었군요.김운회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강연회를 한다고 학교에 포스터가 붙어있길래...
강연 일정을 보니 영 수상해서 궁금증이 났었는데 ㅎㅎ;;
좋은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짝 링크도 했습니다^^;;)
제절초 2007/06/04 21:58 # 답글
저 사람 말대로면 한일합방은 오래전 갈라진 쥬신민족이 하나로 합치는 계기였군요.(...)
초록불 2007/06/04 23:54 # 답글
궁극사악님 / 그것참... 하여간 그런 주장이 돈벌이는 되죠. 쩝제절초님 / 당연한 이야기죠.
Cuchulainn 2007/09/21 17:20 # 답글
김운회씨의 헛소리는 이미 오랜 일이지요 -_-;삼국지 운운하면서 뻘소리를 풀어제낄때 낌새를 챘습니다만 -_-;
*여포가 영준한 명장이었는데 몽고출신이란 이유로 한족에게 배척을 받아... 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것만 같은 이 느낌 -_-!!*
雅人知吾 2008/02/20 16:31 # 답글
가만 내버려두면 아무도 쥬신인줄 몰랐을텐데, 중국인들이 왜 쥬신을 알려주는 동북공정을 시작해서 김운회 교수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 부분이 참으로 촌철살인입니다.
잘 읽고 있읍니다. 요즘 이 포스팅 읽느라 바쁘네요.
초록불 2008/02/20 18:46 # 답글
雅人知吾님 / 고맙습니다.
saythatname 2009/09/19 17:31 # 답글
딱 제가 하고 싶던 말들이군요.저 책이 저에겐 고대사 관련해서 처음 접하는 책이었기에 처음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누워서 생각을 해 보니까, '잠깐만, 근데 그렇게까지 동족상잔을 하고 민족성 정체성이 새롭게 형성되고 따로 떨어져 살고 어쩌고 했는데 그래도 대쥬신인지 뭔지로 봐야 되는거야?' 싶더군요.
자세히 보니까, 동북아시아 유목민 - 제가 역사를 잘 모르는지라 이 정도로만 표현하겠습니다; - 들 사이에 어쩌다가 있는, 그리고 있을 법 한 공통점들과 김운회 교수 본인의 '느낌', 그리고 끼워맞추기식 언어학적 설명이 근거의 거의 전부를 형성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또 어찌 보면 맞는 얘기같기도 하고 해서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이 포스팅을 읽으니 꽤 눈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그 책에서 김운회 교수가 그토록 비난하던 중국인들의 견강부회식 논리를 오히려 본인이 펼치고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