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란 무엇인가?우리 문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불교는 인도의 것이고, 유교는 중국의 것이니 우리 것이라고는 무속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것이라는 말은 남의 것이라는 것의 상대어이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제부터 문화에 있어 우리 것이라는 관념이 생겼을까?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천오백년이 넘고, 성리학으로 좁혀 보아도 오백년이 넘었다. 불교는 그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것은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섭정이 왕이 되는데는 천년도 부족한다는 그런 식이다.
이렇게 근본이 남의 것이면 결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관념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것이 되어 사고방식까지 규정해버린) 유교에 기인하고 있다.
어느 문화현상을 가지고 그것이 고유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는 것은 과연 올바른가? 서양 역시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고유문화나 외래문화를 따지지 않았고, 오직 중세적 보편주의를 따졌을 뿐이다.
이것은 유교라는 동아시아를 규정지은 보편성에 넣어보아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스스로를 소중화라 불렀다는 것을 비웃는다. 또한 명의 멸망 이후 중화의 근본이 우리에게 왔다는 믿음을 가진 것을 비웃는다. 이것은 그 시대의 문화, 사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오늘날의 시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삼국시대 이래의 불교라든가, 고려-조선 시대의 유교라는 것은 <문화>라고 보기에는 그 수준이 매우 높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인데다가(사실 나도 이기일원론이나 사단칠정론으로 들어가면 뭔 소리냐...라고 말한다), 그것이 기층민중에게 문화로 스며들 때는 상위 지식인 층이 갖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말을 따지는 오늘날의 자세라는 것이 유교 문화의 영향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여기서 인식의 괴리가 시작된다. 조선의 불교나 유교문화를 이야기하면, 냉소적으로 "그래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냉소적인 태도는 크게 두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이미 이야기한대로 우리 것도 아닌 것이라는 자세고 다른 하나는 세계사 및 우리 역사에 기인한 것이 무엇이냐는 뜻이다.
이들이 말하는 세계사란 결국 유럽 중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해도, 우리 역사에 기여한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매우 아프다. 왜냐하면 그런 부분을 잘 설명해내지 못한 것이 한국 역사학의 한계였고, 그 결과 오늘날의 오해를 불식시키지도 못하고 한국사가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역사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류 계층이 누리는 문화와 하층 민중이 누리는 문화가 동일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이런 것을 모두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가위질하는 것은 문화를 보는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거기에다 조선시대의 유교가 우리의 문화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라는 것은 거대한 이야기가 된다. 내가 논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그보다 먼저 논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오늘날 조선을 멸시함과 동시에 우리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우리들이 나아간 것은 무엇 때문인가? 흔히 일제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일제의 조선 멸시의 관점이 그대로 우리들에게 투영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핑계거리기는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일제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오직 그것만인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경희대 김태영 교수의 글이 좋은 참고가 된다.
한국인은 외래문화를 전통문화로 정착시키면서 그 문화형태를 유독 국가권력과 결탁시킴으로써 정치지배권을 주도하고 또한 전제왕권을 영속시키는 특유의 역사현상을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전일적 문화형태가 보편적 사리에 따라 점검되지 않고 주로 지배층의 편익에 따라 운용되었으므로, 특히 역사적으로 격변하는 상황에 직면할수록 거기에는 수습할 수 없는 혼돈 사태가 벌어지는 수가 있었다.
가령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교조적으로 운용해 온 조선왕조 말기 사회에 외래 자본주의문명이 침투한 경우, 거기 어떠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가? 개화 사상과 척사운동, 갑오 을미개혁과 갑오 농민전쟁, 독립협회와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전쟁은 모두가 근대화의 길목에서 외래 자본주의문명의 침투를 맞아 벌어진 한국인의 대응형태로 일어난 큰 사건들이었다.
결국 봉건적 사회관계를 정리, 청산하고 근대국가를 세우는 일이 지상의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여럿의 대웅방식에는 보편성을 전혀 결여하고 있었다. 상호간에 대화조차 통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게 되는 위기의 현실을 맞아, 동일한 시기에 추진된 동일한 민족운동으로서의 역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호간에 가장 치명적인 적대관계를 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같은 갈등관계는 이후 한국인의 근대 역사에 길이 치명적 결과를 남겨놓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사 시민강좌 20집 <한국사에서의 고유문화와 외래문화> 중에서)쉽게 말하는 이들이 조선은 임진왜란 때, 또는 병자호란 때 망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홍경래의 서북 반란, 남도에서 일어난 진주민란과 같은 거대한 반란을 진압하며 존속했다. 조선의 이데올로기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과연 우리의 발밑도 모르면서 우리의 근원을 찾아내겠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일까?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나무 뿌리를 잡고서 이것이 우리의 뿌리일거라고 주장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