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교보에 나가서 샀다.
교보에서 이 책을 사면 5천원 도서상품권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결국 1만5천원 짜리 책을 1만원에 산다는 이야기.
(단 선착순 이벤트라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 책은 역사학자가 쓴 책이기는 하지만 무척 쉽게 쓰여졌다. 때문에 전문 연구자가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는 하나, 전문 연구자는 얼마든지 부족한 것을 보충할 방법을 알고 있으니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중국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적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수백번의 침략을 받아온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걸핏하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떠들곤 한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은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 수문제와 수양제의 고구려 침공, 당태종과 당고종 때의 고구려 침공이 전부라는 것이 저자 김택민 교수의 주장이다. (현대사에서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 나머지 우리나라의 전쟁은 거란, 몽골, 여진 등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식인>에 대해서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다양한 전거를 소개하고 식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다뤄도 김운회 교수처럼 억지 주장이 없는 것을 보면 선동가와 학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령 춘추전국시대의 식인에 대한 이야기를 죽 늘어놓으면서 <해=식인요리>라는 이해는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근거는 <해醢>는 <당육전>에 사슴, 토끼, 양, 물고기로 담그는 젓갈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고, 이를 주관하는 관청인 <장해서>도 나라에서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택민 교수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따라서 <예기>의 "공자는 이후 해를 즐기지 않았다."는 기사는 자로가 죽어 <해(醢=젓갈)>로 만들어진 뒤로는 밥상에 오른 젓갈류조차 먹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지 인육으로 만든 해를 즐기다가 이를 먹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김택민 교수는 중국인의 식인기록을 가지고 중국인이 식인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인행위가 기근과 무관하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이를 두고 중국인들에게 야만적인 식인문화가 있었다는 논법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뒤에서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겠지만 극히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식인의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극한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에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청이 중국에 들어가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못지 않은 학살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일단 재밌어 보일 부분부터 먼저 봤다. 앞에 쓴 것처럼 쉽게 쓰여져서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문장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추가]최근 어디선가 황당한 이야기를 보아서
(어디서 보았는지는 잊어버렸다) 간단한 몇마디를 붙여놓기로 했다.
1. 醢는 인육으로 만든 젓갈을 의미하는 글자다. 따라서 공자가 醢를 즐겨먹었다고 한 것은 인육을 즐겨 먹었다는 뜻이다.
-> 조선왕조실록에서 위 글자
([해]라고 읽는다)를 쳐보기 바란다. 검색 결과 383건이 나온다. 醢가 인육젓갈이라면, 우리 조상도 인육젓갈을 매우 즐겨 먹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2. 공자의 제자 자로를 젓갈로 담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은 중국인들이 인육을 자주 먹었다는 증거다.
-> 이런 바보같은 이야기! 발상이 놀라울 정도다. 삼국사기 열전을 한번 볼까? 궁예 열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송함홍 등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지금 임금께서 잔학하고 난폭하기가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 만일 이를 사실대로 아뢰었다가는 우리들은 절임채소葅나 젓갈醢이 될 것이고 파진찬까지도 반드시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고는 꾸며서 거짓으로 아뢰었다.견훤 열전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그대는 털끝만한 작은 이익을 보기 위하여 천지의 두터운 은혜를 잊고 임금을 목베고 궁궐을 불질렀으며, 신료들을 죽여 젓갈醢을 담고, 관료와 백성을 도륙하였으며,
어쩌면 좋겠는가? 사람으로 젓갈을 담았다는 기록이 우리한테도 있네? 그럼 우리 조상도 식인종? 이런 기록은 또 어떤가?
임금(의종)이 또 이공승 및 중승(中升) 송청윤(宋淸允)과 시어사(侍御史) 오충정(吳忠正) 등을 불러 말하기를,
“정함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근(辛勤)하게 보호하여서 오늘날에 이르렀기 때문에 권지 합문 지후(權知閤門祗候)를 제수하여 그 노고를 보답하려 한 것이 이미 삼재(三載)를 지났거늘 경등이 고신장(告身狀)에 서명하지 않음은 실로 신하된 자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만약에 서명치 않으면 너희 무리를 다 죽여서 젓갈醢을 담을 것이다.”
하니 송청윤과 오충정은 엎드려 땀을 흘렸으나 홀로 이공승만은 뜻을 받들지 않았다.
고려사 열전 제신 이공승 조에 나오는 기록이다. 부디 이런 얼토당토한 이야기에 낚이지 말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