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변이 국경? *..역........사..*

<뉴스메이커>중국 고지도에도 “간도는 조선땅”<원문클릭>



위 지도가 그 근거이다. 국경선처럼 보이는 것은 유조변(柳條邊)이다. 버드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가리킨다. 이 경계 표지는 한인漢人이 만주족의 용흥지지인 만주에 들어가지 못하게 청조淸朝가 세운 것이다. 지금 지도에 나와 있는 것은 청 태종과 순치제(녹정기에 나오는 강희제의 아버지) 때 세워진 것으로 노변老邊이라고도 부른다. 후일 또 설치된 것이 있어 그것을 신변新邊이라 불러 둘을 구분했다.

이 내용은 위에 링크한 원문에도 나온다.

청나라는 자신의 발상지인 이 일대를 보호하고자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봉금지대로 삼았다.

그런데 이 자신들의 발상지를 보호하기는 커녕 그것이 조선의 땅이 되도록 국경선을 설치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 다음에 나오는 박선영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중국 근·현대사)는 “유조변은 북쪽으로는 몽고를, 남쪽으로는 조선을 방어하기 위한 경계선이 될 뿐만 아니라 민족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을 했다”면서 “각종 사료에 근거해볼 때 이곳이 조선땅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지만 중국측은 유조변 밖도 중국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 박선영 교수는 기사에는 포항공대 교수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임용에서 탈락해서 지금 법정투쟁 중이다. (연합뉴스에는 전 포항공대 교수라고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었다.) 위 내용으로만 보자면 짤려 마땅한 사람이다. 중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청은 유조변 너머의 땅을 공지로 비워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만주인(여진족)이 살았다.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1644년부터 1653년까지는 진수성경총관이 요동을 통할 관리했고, 1653년부터 1683년까지는 진수요동등처장군과 영고탑등처장군이 요동을 둘로 나눠 관리했다. 1683년 이후에는 성경(봉천)장군과 영고탑(길림)장군, 애혼(흑룡강)장군이 파견되었다. 그런데도 유조변 밖이 중국 땅이 아니었다고?

저런 말도 안 되는 증거를 들이밀고 간도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면 국제적인 비웃음을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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