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조선의 진실 - 동방예의지국에 살아있는 기자 만들어진 한국사



아래에 luxferre님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기자조선. 학교다닐때 국사책에는 잠깐 언급되었지만 보통 일제강점기때나 중국에서 식민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허위다라는 말까지 여러가지 얘길 들었었죠.
과연 어느게 진짜일까요....


댓글로 달까 하다가 포스팅 하기로 한다.

역사학에도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가령 이병도를 때려죽일 것처럼 미워하는 재야학자들이 이병도가 목청높여 주장한 <위만조선인설>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자조선도 그렇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사학자들이 기자조선을 긍정했다는 이런 엉뚱한 믿음은 어디서 발생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마도 나쁜 것은 모두 일제가 만든 것이라는 신화에 기인하는 것일 게다.

白鳥庫吉은 <기자는 조선의 시조가 아니다> (동경일일신문 1910.8.31)에서 기자 조작설을 내놓았으며, 今西龍은 <기자조선전설고>(지나학 2-10, 11 / 1922)에서 조선에 전해지는 기자전설은 연구의 가치가 조금도 없는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자조선은 낙랑 韓씨가 가문을 장식하기 위해 기자의 후예라고 거짓말을 했고, 이 덕분에 고구려는 기자신을 숭배했으며, 고려는 기자릉과 사당을 만들고, 조선의 유학자들은 기자의 후예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한국인들은 기자를 2천년 간 우리나라에 온 성인으로 믿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은 살짝 앞부분을 지워서 그렇지,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도 기자의 영향력 아래 있다. 우리가 우리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말할 때, 그 <예의>의 근본은 기자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그것이 허위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는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히브리 깡촌에서 책형을 당해 죽은 예수라는 남자가 인류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기자는 우리민족에게 예수와 별다르지 않았다. 비록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성경의 이야기대로 기자도 이스라엘에서 보는 예수 비슷하게 보이게 되었지만...

덧글

  • 한도사 2005/09/21 10:47 #

    한씨는 기자공의 후손으로 여태 믿고 삽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선우씨, 기씨와는 통혼을 하지 않습니다. 한, 선우, 기씨는 기자를 시조로하는 동성동본이라는 믿음이 있지요. 3성씨는 서로 만나면 종씨라고 반가워합니다.
    그리고 집안 내력으로는 기자는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이었고, 은나라의 제후였다고 합니다. 중국대륙쪽에서 이동해 왔다고 해서, 모두 다 한족인것은 아니라는거죠. 이상 그냥 구전으로 전해온 집안이야기 였습니다.
    낙랑 韓씨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낙랑군에 한씨일가가 있었다고 하나요?
    기자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며, 그에 관련된 전설들 역시 사실여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3성씨가 통혼하지 않는다는것은 분명히 지켜지는 사실입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잘 모르지만...)
    기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밝혀져서 가타부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나던간에...
  • 초록불 2005/09/21 10:57 #

    이병도는 준왕이 한 지역으로 내려와 韓씨 성을 갖게 된다고 했죠. 殷이 동이라고 해도, 우리와 같은 동이는 아닙니다. 이 개념은 오랫동안 역사학계가 이야기했는데도,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여전히 밀리고 있죠...-_-;;

    기자에 대해서는 저도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물적 증거로 보면 기자는 최대한 이동했다 해도 요서 지방에 머물렀다고 보여지고, 조선이 연에 대항하기 위해 기자전설을 채용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뭐 어찌 되었든 韓씨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성씨라고 할 수 있죠...^^;;
  • 한도사 2005/09/21 11:20 #

    한씨가문세보에는 준왕이 배타고 도망 내려와서, 지금의 군산아래 해안에 닿았고, 전북 익산쯤에 도착해 정착, 나라를 또 세우는데, 그게 마한이라고 합니다. 마한에서 12대까지 왕노릇하다가 또 망해서 아들 셋을 고구려,백제,신라에 볼모로 나눠주며 성을 선우, 기, 한씨로 정했는데, 신라로 간 아들이 한씨였고 신라에서 충북 청주땅을 받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씨가 청주를 본관으로 발원했다는겁니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성씨라는건 맞는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문서화된 한씨가문의 족보가 생겨난것은 고려말 조선초 입니다. 그 이전의 한씨족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우리파 종손인데, 33대손입니다. 현대에 존재하는 한씨는 대개 30대-35대 사이이며, 그 이상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상되는 족보는 아마도 위조일 것 입니다...
  • 초록불 2005/09/21 11:25 #

    한도사님 / 족보라는 게 뭐 그렇죠. 저는 경주이씨 72대손인데, 사실 올라가다보면 고려말에서 멈춘다고 보아야겠죠. 그때부터 세면 36대손...
  • 한도사 2005/09/21 11:36 #

    어느 집안이나 다 마찬가지네요. 기자공부터 세는 방식도 있고, 마한때부터 세어서 팔십몇대로 세는 방식도 있어요. 그런데 실제 족보는 존재도 한 적이 없는 구전이고, 한씨족보는 조선초부터 있었다고 하네요.
  • 孤藍居士 2005/09/22 13:49 #

    시라토리만이 아닙니다. 이마니시 류는 기자조선과 단군조선 둘을 모두 부정한 바 있지요. 일본에서는 대부분 기자조선에 대해 회의적인 모양입니다. 왜냐면, 중국의 疑古/釋古적 기풍이 강하니까요.
  • 孤藍居士 2005/09/22 13:51 #

    그리고, 오해가 있을까봐 말해둡니다만, 《조선사》에는 《삼국유사》등의 단군신화가 실려있으며, 중국측 기록의 기자 관련 부분도 엄연히 실려있습니다. 《조선사》1권과 3권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 초록불 2005/09/23 00:54 #

    고람거사님 / 음, 역시 그랬군요. 그게 부록인가, 뭐 그런 형식으로 실려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상하게 그것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분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수정해 놓겠습니다.
  • 孤藍居士 2005/09/23 15:13 #

    단군신화의 경우, 신라 혁거세 원년조에 붙어서 실려있습니다. 조선사는 편년체 사서인데, 연대를 확정하기 어려우면 부록에 두겠지만, 단군신화는 상징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실려있었습니다. 조선사는 사료집으로, 취사선택이 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듯 합니다.
  • 초록불 2005/09/23 16:26 #

    고람거사님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 사과향기 2008/03/17 23:42 #

    초록불님 댓글보고 궁금한게 있어서요. 그럼 아직까지 역사학계에선 동이라면 일단 우리민족이라고 본다는 말씀인가요?
  • 초록불 2008/03/18 00:12 #

    사과향기님 / 뭘 보고 그런 말씀을... 역사학계에서는 선진시대 동이(동이I)와 그후의 동이(동이II)를 완전히 구분하고 있죠.

    흠...

    "목소리 큰 사람"이란 재야사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사과향기 2008/03/18 00:20 #

    초록불님 아 재야였군요. ㅎㅎ 요즘 하도 영어영어 그래서 그런가 국어이해력이 떨어졌나봅니다. 쩝...
  • Tzar Bomba 2009/03/18 17:45 #

    기자의 실체에 대해서 근거를 내세워서 정리좀 부탁합니다. 밑을만한 곳이 없어요.
  • 초록불 2009/03/19 09:42 #

    뭔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원하시는 공부를 하시려면 도서관으로...
  • Tzar Bomba 2009/03/19 12:47 #

    ?? 뭔 말씀??
  • 초록불 2009/03/19 15:55 #

    제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어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오나, 제게 뭔가를 해달라고 하시면 곤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자에 대한 문제는 천관우 선생의 논문을 참고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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