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학문은 왜 이리 쉬워 보일까? *..역........사..*



어제 이종욱 선생님을 뵙고 <고구려의 역사>를 받아왔다.

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기가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니 고민이 산더미다.

역사학에는 미결된 분야가 아직 어마어마하게 많다. 미시적으로 파고들면 오만가지 의문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정밀한 방법론을 들이대면 해결할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자료가 없는 것이다. 한문은 매우 축약적인 언어라 여러가지 뜻을 함축할 수 있다. 그 각각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도 있다. 풍부한 용례를 가진 단어는 선학들의 연구결과가 축적되어 있기도 하다. 가령 <동이>나 <民>과 같은 단어다.

옛날에는 검색을 할 방법도 없었으니 한번 제대로 하려면 저 25사를 끼고 앉아 뒤져야 했다. 사실은 지금도 별 다르지 않다. 인터넷에 각종 중국사료들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오탈자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분야를 한국사로 좁혀보면 필요한 사료들은 대개 다 알려져 있을텐데 웬 엄살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정된 자료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다 나왔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그 때문에 역사학계는 일찌감치 비교사에 주목했다. 중국을 매개로 해서 전개되어온 동아시아의 역사. 중국이 각각의 나라에 어떻게 대했는지를 파악하면 한국사의 미스테리가 좀더 분명해진다. 이리하여 역사학은 미지의 영역을 다시 개척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온 것이다. 거기에 발굴 자료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주변학문에 대한 파악도 필요하다.

그런 탓에 진전이 드물다. 물리학과 같은 영역과는 다른 것이다. 전세계가 하나의 학문을 파고들어가는 것과는 달리 한국사에 매진하는 학자의 수는 그에 비하면 극히 적다. (물리학과 같은 학문에도 세부적인 영역이 무수하다는 이야기는 하지마라. 한국사도 세분화된다...-_-;;) 그리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겠지만, 학자라고 다 같은 학자는 아니다. 학문의 세계에 있는 학자 중 정말 우수한 사람은 몇 %나 될까? 다시 말하지만 한국사도 마찬가지다. 주목할만한 학자는 드물다.

하나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공자가 읽어야 하는 논문도 당연히 만만치 않다. 내가 그 같잖은 학사 졸업논문 쓸 때 읽은 논문과 책자만 해도 50여종은 됐으니까. (극히 적은데 논문은 왜 많냐고? 연구자가 많아진다고 읽어야 할 논문이 더 많아지지는 않는다. 불필요한 논문들은 정리되어버릴테니까. 현재 읽는 정도는 의당 읽어야 하는 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그 양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김한규 교수가 내놓은 것 같은 거대담론이 도출된 것은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다. 물론 이 이론은 아직 거칠어서 많이 다듬어져야 한다고 들었다. (그 박사과정 친구가 해준 이야기다. 그리고 아직 다 보지는 못했지만 물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은 억측에 억측을 더해서 나갈 수 없는 학문이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본래 어떤 학문이건 억측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역사학은 인문학 안에서는 그 정도가 좀더 심하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의견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역사학자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억측을 하지 못하게 훈련된 내 두뇌는 소설을 쓰는데 일정 정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역사학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역사학은 그런 장애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본래 남의 학문은 쉬워보이는 법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도 문외한이 보면 쉬워 보인다. 그것은 그 안의 자질구레한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은 항상 쉬워 보인다.

이종욱 교수는 20년이 넘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몽촌토성이 발굴되고서야 조금 인정받는 상황이다. (화랑세기 건으로 공식적으로는 논문 인용도 안 하고 있어서 공이 인정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한걸음 앞으로 나가기 힘든 게 학문의 세계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는 안 그렇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노벨문학상, 노벨물리학상 같은 것을 못타온다고 그 학문의 세계를 비판한다. 쉽게.

덧글

  • 2005/09/22 11: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孤藍居士 2005/09/22 13:46 #

    중국 사료 데이터베이스라면, 최근 북경대에서 5000여권의 선진~민국시대 전적에 대하여 데이터베이스화를 마쳤으며, 10월부터는 다시 5000권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협정이 맺어진 대학에서는 사용할 수 있지요. 오 탈자의 문제 때문에 원본 사진과의 대조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이 대단한 장점입니다.
  • 초록불 2005/09/23 00:57 #

    고람거사님 / 확실히 발전이 있어서 좋군요. 우리쪽 사료들도 전산화 작업이 진행되면 좋을텐데요. 때로는 왕조실록도 원문으로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불과 10년 전에 그 문제로 모 교수님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 외우다시피 하는 걸"이라고 이야기하셔서 찔끔했던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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