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범자들 - 임지현 (두번째 감상) *..역........사..*

-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 또한 현실로 존재하는 국가를 무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현존하는 국민국가의 존재를 세계사의 현실로 인식한다는 것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지평이 그 안에 갇혀있다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리하여 임지현 교수는 결국 전회에서 내가 지적한 문제로 나아간다.

- 개개 국민국가가 중심-반주변-주변이라는 국가간 체제의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집권한 민족해방운동세력이 국가의 구조적 집중화 이외의 대안을 찾기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이리하여 임지현 교수는 그 선량한 의도는 의심하지 않지만, 민중 민족주의 운동 세력에 대해서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

- 민중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이고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루자는 민중 민족주의가 그 주장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남의 권력과 북의 인민> 대 <북의 권력과 남의 민중>이라는 남북관계의 담론적 동맹 구도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의문이다.

저 대목은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북한의 기아, 인권, 탈북 문제에 대해서 남한의 진보 통일운동이 침묵하고, 이 남한의 진보 통일운동에 대해서 북한 정권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남의 민중과 북의 권력이 사실상 동맹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남의 보수-극우 세력이 북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남의 권력과 북의 인민에 대한 동맹이 성립한다고 임지현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역시 <그래서?>라는 질문은 유효하다. 임지현 교수는 여기에 대해 몇가지 가능성을 검토하지만 그것으로는 약하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백기를 올린다.

- 내 자신이 근대의 자식이면서 근대를 넘어선다는 노력이 시시포스의 노동인지도 모르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민족주의에 기초하든, 맑스주의에 기초하든, <전진하겠다는 선의>가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를 압도하는 상황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한 뒷페이지의 장은 그래서 이 책의 내용과 조금 다른 것이다.
임지현 교수는 이 장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 주변부 민족주의의 지배적인 유기체적 민족 이론은 국가주의를 더더욱 강화하는 이론적 기제였다. 자율적 개인에 대해 민족이라는 전체를 앞세우는 유기체적 민족 이론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민족 투쟁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영속적인 민족과 국가의 고유정신을 강조함으로써 무한한 힘을 가진 국가 권력 아래 개개인을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임지현 교수는 80년대에 일어난 민중 역사학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한다.

- 민중 역사학은 맑스주의 역사학에 민족적 정체성을 추가하여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 민중의 내적 역동성을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변증법이라는 추상적 담론 속에 가두는 한, 그것은 민중 없는 민중 역사학으로 남을 위험성이 컸다. 근대화와 진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변증법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추구, 해방의 거대 담론에 대한 집작 등은 사실상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민중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 엄격히 말하면 <민중을 위한 역사>는 있었지만, <민중의 역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 대목도 조금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학은 계급 모순에 대해서 일어난 운동들도 민족의 관점으로 왜곡시켜왔다는 것이 임지현 교수의 설명이다. 백정들의 형평사 운동 같은 것을 신분제에 대한 운동이 아니라 민족해방운동으로 읽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에 대한 임지현 교수의 대안도 앞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명확하지 못하다. 사실은 자신의 주장에 반하고 있을 수도 있다.

-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역사가들의 유일한 무기는, 다양한 정체성에 바탕을 둔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접목되기도 하는 민중들의 다양한 욕구에 겸허하게 귀를 열어 두는 것이 아닐까? 바꿔 말해서, 운동의 강령과 진영과 노선 속에 파묻혀 잃어버린 민중의 목소리를 찾아서 복원하고, 역사가 자신의 노선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민중의 목소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가 그렇게 열심히 주장해온 것처럼 나찌즘, 파시즘, 민족적 국가주의에 수동적으로 동의해온 사람들은 민중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런 수동적 동의, 적대적 동맹을 추종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결국 임지현 교수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아직 그 앞으로는 전진하지 못했다. 가령 이런 대목은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다.

- 최근의 역사전쟁에서 보듯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 한다는 점에서 현상적으로는 첨예하게 충돌하지만, 사유의 기본적인 틀과 이데올로기적인 전략을 공유한다. 적대적이면서 동시에 공범자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적대적 공범관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하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강화시켰다.

말하자면 극우민족주의자로서 당연히 일본을 극도로 증오해야할 <한단고기>의 임승국이 일본제국시대의 교과서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국사의 해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인 벽이 너무나 높다. 흔히 이 대목에서 극우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왜 우리만 손해를 보아야 하는데?"이기 때문이다.

멋진 점은 난관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지현 교수는 실천을 통해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포럼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위해 발걸음을 떼고 있다.

비록 정답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늘 이야기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해서 비판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대안은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실천 속에서 온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에는 그간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나온 시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출판 가능성은 알 수 없지만 <고조선에서 살아남기> 같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써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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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traD 2005/09/28 12:51 # 답글

    "북한의 기아, 인권, 탈북 문제에 대해서 남한의 진보 통일운동이 침묵하고, 이 남한의 진보 통일운동에 대해서 북한 정권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남의 민중과 북의 권력이 사실상 동맹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남의 보수-극우 세력이 북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남의 권력과 북의 인민에 대한 동맹이 성립한다고 임지현 교수는 주장한다."=> 요 부분이 난센스라 생각지 않으시나요? 남한의 극우가 북한 인민을 위해 인권문제를 지적한다??
  • ExtraD 2005/09/28 12:59 # 답글

    초록불님께선 [적대적 공범자들]을 권할 만한 책이라고 보시나요?
  • 초록불 2005/09/28 14:20 # 답글

    ExtraD님 / 그래서 적대적 동맹(공범)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권할만한 책입니다. 다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 Prometeus 2005/09/28 15:08 # 답글

    이 주제는 사실 쉽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임교수의 지향과 주장은 우리 사회 속에서 여러모로 생산적인 자극이 되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의 체계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고, 또한 논리전개 상에 제법 약점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사>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방법에 입각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현실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더 전개되어 나갈지 궁금합니다. 다만, 절대로 낮은 단계에서 좌초하기 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05/09/28 15:14 # 답글

    Prometeus님 /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 사바욘 2005/09/28 15:36 # 답글

    요지는 어떻게해서 벋어날수있는지는 모르지만
    민족주의의 함정에서 빠지지 말라라는거군요?
  • 초록불 2005/09/28 15:43 # 답글

    사바욘님 / 결국은 같은 이야기겠지만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고 요약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 사바욘 2005/09/29 14:05 # 답글

    음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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