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역........사..*



조선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페로페로님의 블로그로 트랙백

이 글을 트랙백한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의 오해와, 그 오해로부터 파생한 극우민족사관의 영향으로 조선을 아주 비참한 나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에는 조선이 베르사이유 궁전이라든가, 자금성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저 거대한 국가인 중국과 비교하는 것도 문제지만, 조선이 그런 거대 유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조선이 백성을 철저히 보호한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오늘날 식으로 말한다면 조선은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것이다.

조선 말기의 혼란을 부각해서 조선 역사 500년을 무시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임진왜란 때 파죽지세로 일본군에게 밀려난 것이 창피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백년을 평화롭게 지내온 나라가 무슨 무시무시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겠는가? 일본은 그 이백년을 전쟁으로 지샌 나라고.

더구나 그 전쟁에서 결국 우리가 이기지 않았는가!

잘못된 점을 바로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없었던 누명을 씌우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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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서산돼지 2005/10/10 11:18 #

    그렇게 평화롭게 200년을 지낸 국가가 갖춰놓은 국방체계를 보면 매우 놀랄 지경입니다. 문제는 지휘관들이 경험이 없어서 제대로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데 있지요. 물론 20만대군을 바다건너에 파견하고 보급을 유지한 것을 보면 종합적인 국력에서 이미 일본에 뒤져있을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조선이 가난하고 망국으로 간 이유중에 17-18세기에 걸친 간빙기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얼음칼 2005/10/10 11:35 #

    서산 // 종합적인 국력이라는 건 약간 어폐가 있지 않을까? 네가 이야기한 걸 요즘 개념으로 GNP 총량의 비교라는 측면에서 파악한다면 그건 결국 인구의 차이에서 비롯된 거 아냐? 인도나 중국이 평균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임에도 종합적 국력이 큰 것처럼 말이다.
  • 찬별 2005/10/10 11:36 #

    좋은 말씀이네요. 사실은 저도 조선을 비참한 나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극우역사관 또는 친일사관이 아니라 좌파 성향의 역사소설 탓인 것 같습니다.
  • ExtraD 2005/10/10 12:14 #

    적어도 19세기 서양인들의 눈에 보인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사진 자료에 보이는 조선의 모습은 결코 풍요로운 모습이 아니어서 조선을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로 은연중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임난이 16세기 말이니 그 후의 피폐한 모습에 가려져 그 이전 14-15세기에 조선의 경제상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사회 제도가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미처 생각이 잘 미치지 못하는 거죠.
  • 2005/10/10 13:0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서산돼지 2005/10/10 13:05 #

    얼음칼> 20만이나 되는 병사를 외국에 파병하려면 경비가 얼마나 들까? 알렉산더의 동방원정때 보통 병사 1인당 월 1.5톤 정도의 보급이 필요했다고 하거든. 임란이전까지 그 어떤 국가도 그런 대병력을 바다건너에 파견하지 못했어. 그짓을 7년이나 했다면 조선과 일본은 인구의 차이에 의한 총량의 차이를 넘어서는 국력의 격차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명치때 개척한 북해도를 빼더라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면적도 넓고 기후도 온화해서 식생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해
  • 초록불 2005/10/10 14:18 #

    비밀글 /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 페로페로 2005/10/10 14:49 #

    트랙백 감사합니다. 그리고 서산돼지님/ 18세기 이후 일본의 국력은 분명 조선을 능가했지만 임란시기의 일본이 조선을 능가했다고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우선 일본이 전란시대 내내 부국강병책으로 많은 토지가 개척되고 상업적으로 부흥하기는 했으나 그만큼 전란으로 인한 피해도 만만찮았습니다. 토요토미가 집권한 시기와 임란의 시기는 그러한 피해를 회복할 만큼의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20만 대군을 원정 보내기는 했지만 충분한 보급을 갖추어 보낸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정군은 속전속결식의 방법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하자 이후 왜군은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고요. (해상으로 인한 보급의 실패도 한몫합니다)

    조선은 임란이후 총 토지결수의 회복이 구한말까지도 이루어 지지 못합니다만 (그만큼 인적 물적 피해가 막심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토지 자체가 전란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서 그만큼 회복이 빨랐지요.
  • 2005/10/10 14:5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狂風 2005/10/10 15:50 #

    단일 왕조로 500년이나 통치를 했단 것 부터가 대단한 것이지요.
  • 2005/10/10 16:2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5/10/10 16: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uxferre 2005/10/10 22:37 #

    왕이 자금성 같은 궁궐을 짓겠노라 라고 어명을 내리면
    수많은 유생들이 일어나 중국에 대한 예의와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라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국 시위가 벌어지는 장면이 떠오르는 군요...
  • Prometeus 2005/10/10 22:37 #

    흔히 오해들 하는 부분이지요. 16세기 임란 전, 조선의 생산력 규모가 당시의 기준에서 볼 때 대단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합니다.
  • Fillia 2005/10/11 02:57 #

    글쎄요....
    16세기까지의 풍요(과연 풍요로웠는지 의문입니다만)가 조선의 공이라면, 임진왜란 뒤 300년이 지나도록도 그 생산력을 회복하지 못한 것 역시 조선의 과입니다.

    얼마나 무능했으면 18세기 이후 외래인들의 기록마다에 나타나는 나태함, 가난함, 피폐함 등이 그렇게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박혀들어 있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왕조가 500년이나 갔다지만, 1390년대에도 1890년대에도 심지어 마차도 아닌 소나 말, 또는 가마를 타고 다니고 19세기말 한양의 풍경을 묘사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내용을 보면 베이징보단 낫다 하나 일본의 도시들과는 아예 비교할 수도 없었더군요.
  • 루드라 2005/10/11 05:00 #

    Fillia// 임진왜란 뒤에도 생산력 증가는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미개척의 토지가 많아서 토지개간이 가장 이익이 큰 산업이었습니다만 임란 이후로 가면 이미 더 이상 개척할 토지가 없었기 때문에 생산구조의 변화 즉 노예노동을 중심으로 한 대토지 경영에서 소작제를 중심으로 한 중소규모 경영으로 바뀌고 농법의 개량으로 생산력이 증가합니다만 이런 방법은 전근대 시대에는 금방 한계가 옵니다. 그리고 이건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근대 사회 어디서나 보이는 문제입니다. 생산력의 급격한 상승 뒤에는 반드시 퇴보기가 옵니다. 사람들이 흔히 일본 에도시대의 상업발전상을 보고 에도시대가 지속적으로 경제가 발전한 걸로만 아는 분이 많습니다만 에도시대 초기의 발전이 정지되는 19세기 초로 들어가면 이미 퇴보가 시작됩니다. 일본은 다행히 19세기 중반에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개항하여 산업화의 길로 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저 퇴보상황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잘 안 띌 뿐입니다. 중국도 18세기 까지 급속도로 발전하지만 19세기부터는 퇴보의 길로 들어 간다는 건 설명 안 해도 아실 겁니다.
  • 루드라 2005/10/11 05:02 #

    18세기 이후의 누가 남긴 기록에 그렇게 조선을 나태하고 가난하고 피폐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전 과문해서 그런지 하멜의 표류기 말고는 모르겠습니다. 19세기말 개항 이후의 기록이라면 이미 산업화된 서구인의 눈에 어디가 그렇게 안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하멜은 십수년간 억류돼 있었는데 뭔들 곱게 보이겠습니다.

    위에서 조선이 가난하지 않아다고 말하는 건 전근대 상태의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이미 근대 사회로 접어든 나라들과 비교하면 얘기가 안 됩니다.

    1890년대 일본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서구화를 이룬 상태였습니다. 이미 근대사회로 접어든 일본과 전근대적 상태의 조선이 어떻게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비교한다면 1850년대의 에도와 비교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비숍은 1850년대의 일본은 구경도 못해 본 사람입니다.
  • ExtraD 2005/10/11 05:13 #

    루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19세기의 조선이 세계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풍요롭고, 합리적인 나라였다는 주장은 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 孤藍居士 2005/10/11 07:58 #

    조선사회에 대한 연구는 자료가 오히려 "너무 많아서" 연구가 더딘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대동문화연구소에서 비로소 조선시대 후기 호적을 정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중이라 합니다만, 과연 이것으로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는...
  • 초록불 2005/10/11 08:41 #

    ExtraD님 / 세계적 기준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유럽적 기준이 아닐까 싶은데요? 17세기-18세기는 효종 - 숙종 - 영조 - 정조로 이어지는 때이며 안정적인 조선 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통치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럽의 어느 국가에 비해 조선이 더 떨어졌을지 의문인데요? 이 시기는 완만하게 국가운영시스템이 붕괴되어가는 왕조의 노령화 증상이 보인 시기긴 하지만, 광기나 무지가 지배한 시대는 아닙니다. 세계는 넓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초록불 2005/10/11 08:44 #

    우리가 아는 직접적인 문화유산은 대개 이 시대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시조문화가 개화한 것도 이때고, 한글 소설 문화가 나타난 것도 이 시기고, 실학파들이 수많은 연구성과를 내놓은 것도 이 시기입니다. 조선역사상 가장 훌륭하다는 수원성을 쌓은 것도 이때고, 판소리가 정착하는 것도 이때입니다. 김치 문화가 발전하는 것도 이때죠. 제가 볼 때는 세계적 기준에서 상위권에 있으면 있지, 하위권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ExtraD 2005/10/11 09:13 #

    네 확실히 조선이 하위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미개한 나라들도 많은데 비하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조선이 하위권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으리라 봅니다.
  • alias 2005/10/11 09:17 #

    '세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도 우리는 최상위라고 할수 있지요. 인터넷에 도는 유명한 글 있잖아요. 세계가 100명이라면 그중 구십몇명은 뭣도 못하고 뭣도 못하고 하는...
  • ExtraD 2005/10/11 09:24 #

    세계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한 면이 있네요. 하지만 '세계 수준의 야구 선수'라고 할 때 네팔이나 몽고의 야구선수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뭐 아무튼 지나친 자학의식은 지나친 우월주의 만큼이나 위험한 거니,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면 조선의 장점을 부각시켜 인식한다는 것 자체에 반감이 없습니다.
  • 루드라 2005/10/11 10:13 #

    야구야 미국 한 나라 뿐이지만 축구를 비교하자면 유럽과 남미를 비교하겠죠. 당연히 정치체제 비교도 당시 어느 정도 문명권에 속해 있는 유럽이나 중국 일본등과 비교하는 겁니다.

    초록불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보다 잘 살았다거나 근대적 의회민주주의 국가보다 정치체제가 나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전근대사회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조선은 나름대로 법치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이런 노력의 이유가 아무리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생산력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상공업에서는 주변 나라들에 비해서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전근대사회에서 산업생산액의 9할 이상을 차지하는 농업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농지 단위당 생산량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심지어 삼모작이 가능한 지방보다도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예전에 데이터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가지고 있질 못하네요)
  • 페로페로 2005/10/11 14:50 #

    어이구... 거의 트랙백 해야 할 내용까지 와 버린것 같네요, 이렇게 댓글로 쓰는것도 싫어 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암튼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조선시대를 통털어 미곡생산량은 현대 대한민국의 산출량과 동일합니다. 수입이란 것이 있고 쌀보다 다른 식품류의 소비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4천만 인구를 먹여 살리는 산출량이 조선시대에 이미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의 구휼제도나 의학정비는 타국에 비할바가 아닌것으로 국가에서 규정된 구휼창이 존재하고 구휼에 대한 구체적 사항까지 법령으로 기록한 나라는 19세기까지 전 세계에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18세기말과 19세기에 이르면서 서양에서 기술 발전에 의한 급속도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아도 시스템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구한말등의 혼란시기는 나라가 망해가는 징조였습니다. 각종 제도적 장치가 혼란해 지고 상공 농업이 문란해 지고 계급제도 자체도 혼란해 지는 전형적인 현상인 것이지요. 이는 아무리 잘난 나라라도 이런 상태를 겪는다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 페로페로 2005/10/11 14:55 #

    구한말과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조선민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나라를 빼앗긴 자괴감등이 겹쳐져 그 책임을 조선시대라는 시대상으로 돌려 버리는 무책임한 행위덕분에 지금까지 조선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동시대 적어도 1850년대까지 조선만큼의 국가체계를 가진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초록불님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05/10/11 15:09 #

    페로페로님 / 죄송하다니요. 무슨 말씀을... 논쟁이 있으면 인식의 지평이 확대될 수 있지요. 논쟁 당사자에게는 더 왜곡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더 풍부한 사례와 인용이 등장하면서 글을 읽는 다수의 침묵자들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양을 늘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 ExtraD 2005/10/11 17:19 #

    인터넷을 뒤져서 좀 조사를 했습니다. 임난전 전국 토지가 대략 170만결 이었고 임난후 54만결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토지 1결당 수확량을 대략 300두=20섬으로 보고, 1섬=15말=89kg 정도로 놓고 계산해 보니 대략 임난전에 303만톤, 임난후엔 96만톤의 미곡이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1912년 통계를 보면 대략 180만톤 정도가 생산되었고 2003년 통계에는 대략 445만톤이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 루드라 2005/10/11 19:34 #

    ExtraD// 님이 말씀하시는 숫자는 정부에서 파악한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결수를 말하는 겁니다. 임란이후에는 소위 은결이라고 부르는 숨겨진 토지가 많아서 정부에서 말하는 결수와는 차이가 심합니다. 훗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시대에는 나름대로 이 은결에 대해 김씨 집안 나름대로 파악한 비밀장부가 있어서 지방관직의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 초록불 2005/10/11 21:36 #

    ExtraD님 / 그 부분은 매우 복잡합니다. 제가 정확한 논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170만결이라는 것은 세종 26년의 조사 결과입니다. 이때 <결>이라는 단위는 면적 단위가 아니고 생산력 단위입니다. 1등급 결 대략 3천평(1결)은 6등급 결 대략 만2천평(역시 1결)과 같습니다. 대략이라고 쓴 이유는 정확한 비율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을 감안해서 들쭉날쭉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늘날에는 결수 * 평균 생산량을 하면 전체 생산량을 구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겠죠.

    그런데 임란 후에는 이런 단위를 포기하고 기계적인 수치로 결을 정합니다. 1등급 결의 면적 4배가 6등급 결이 되는 식입니다. 기계적인 방식이죠. 각각 생산력이 동일했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더 이상은 무리)

    그런데 조선 전기의 생산량은 1결당 평균 300두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17세기에 400두, 18세기에 600두였습니다. (성호사설, 천일록) 농업생산력이 이앙법 등으로 비약적 발전을 하거든요.
  • 초록불 2005/10/11 21:44 #

    ExtraD님 / 전에도 말했지만 조선 후기는 조선 문화의 꽃이 핀 때였습니다. 생산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면 문화가 어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 조사 수치는 루드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은결이 빠져있는 수치이며, 조선 전기 조사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당시 조사가 얼마나 부실한가 하면 세종때 각 도별 인구수 계산해 놓은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답니다.

    다만 저 결수에서 모두 쌀을 생산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네요.
  • 초록불 2005/10/11 21:45 #

    우리나라가 쌀을 이처럼 많이 생산하게 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쌀 생산기지화 하려는 일제의 계획에 따라 다른 농작 짓는 것을 없애버리고 쌀농사만 짓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심하게는 일본에 천만석을 수출했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습니까?
  • ExtraD 2005/10/12 04:05 #

    구글링 10분으로 찾아낸 수치고 정작 17-19세기 자료가 빠져있기 때문에 제 추산에 오차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12년 조사는 비교적 믿을만 하다고 본다면, 은결과 이양법등의 요소를 생각해도 180만톤 이상 생산되었다고 생각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제가 조선이 못살았다를 증명하고 싶은게 아니라 잘살았다는 증거를 찾고 계신 거 아시죠?)
  • ExtraD 2005/10/12 04:07 #

    아무튼 조선초 현재 생산량의 거의 2/3를 생산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한 번도 그 사실을 인식했던 적이 없었는데, 조선이 다시 보이는 군요!
  • 초록불 2005/10/12 08:18 #

    ExtraD님 / ExtraD님이 계산한 방식은 좀 이상하긴 합니다. 본래 섬은 144킬로그램입니다. 일제가 만든 가마니라는 단위는 80킬로그램이고요.

    그리고 일제 강점기 자료가 <쌀>만 표시한 것이라면 문제가 조금 더 달라지겠죠? 보리, 콩, 밀, 수수, 조 등도 많이 길렀으니까요...^^;;
  • ExtraD 2005/10/12 09:28 #

    다른 곡물까지 포함하여 더 정확한 자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쌀만을 비교한 것입니다. 조선시대나 현대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선 쌀 뿐만 아니라 모든 곡류, 육류를 다 포함시켜야 할텐데 인터넷에 있는 자료로는 그런 비교까지 할만한걸 찾지 못했습니다. 섬(石)은 원래 부피 단위고 1977년 도량형 개정안 시행령에 따르면 대략 1섬=180리터 입니다. 이 단위를 따르면 세종당시대략 3천4백만 섬(1결당 20섬 생산기준)에서 임난후 대략 1천 백만섬(1결당 20만섬 기준)으로 그리고 일제강점기 초기 1천 2백만 섬 그리고 1977년 4천만 섬 2003년 3천 1백만 섬으로 미곡생산량이 변화한다는게 제가 찾은 자료입니다.
  • ExtraD 2005/10/12 09:33 #

    세종당시 섬의 단위가 현재와 같은지, 1결당 20섬 생산량을 기준으로 잡은게 옳은지 등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루드라 2005/10/12 10:10 #

    당시의 토지 조사량 자체가 신뢰할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등록 토지와 토지 생산량을 바로 곱해서는 정답이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차라리 당시 인구를 추산해서 역산하는게 나을 겁니다. 조선의 대략 선조 때에 1천만을 넘었고 임란 때 줄었다가 그 뒤로 꾸준히 증가해서 1200-1300만 수준에서 안정되어 개항 시기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합니다.
  • 초록불 2005/10/12 10:19 #

    루드라님 / 저 시기에 누락분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살펴보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1결당 소득이 보통 600두, 많으면 800두, 적으면 400두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300두 밖에 생산하지 못했는데, 조선 후기에는 제일 나쁜 땅에서도 조선 전기의 생산량보다 많은 양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산력의 성장으로 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 초록불 2005/10/12 10:19 #

    ExtraD님 / 네, 단위의 일정성만 보존이 된다면 비교 측정할 수 있겠지요. 제 생각으로는 세종 때 자료는 곡물 전체가 될 것이고, 일제 초기 자료는 쌀만 따진 것이기 때문에, 곡물 전체로 보게되면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일제 초기(1910년)에 이미 쌀이 천만섬 이상 나오고 있으므로 조선 후기에 곡물 중 쌀로만 천만섬 이상을 생산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제강점기 중 쌀 생산량은 2천4백만섬까지 올라간 듯 합니다.(1941년 기록)

    부분적인 기록이지만 콩도 1919년에는 378만석이 생산되었다고 하는군요. 1941년 보리 생산량은 730만석이었습니다. 1941년 생산량을 쌀과 보리만 합해도 3천만섬이 넘어가는군요.

    결당 20섬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면 맞습니다. (조선 전기에 한해서요.)
  • 초록불 2005/10/12 10:25 #

    루드라님 / 조선 말기의 인구가 1300만이었다는 것은 일제 조사결과(1910)인데, 거기에도 누락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925년 인구조사에서 1850만으로 너무 심하게 뛰어오르기 때문입니다. 대개 조선 말에는 1700만은 되지 않았나 생각들 한답니다.
  • 루드라 2005/10/13 09:43 #

    아 제 말은 조선 말 1910년에 1300만이었다는 것이 아니고 개항직전 그러니까 조선 후기에 이미 1300만 수준은 됐고 그 숫자로 개항시점까지 유지됐다는 거죠. 그리고 개항뒤에 인구가 다시 증가 1910년즈음에는 1500-600만은 됐을 겁니다. 1910년에 1300만이면 그 이후의 숫자가 설명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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