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서 비판 - 단기고사 (95년) 만들어진 한국사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이글은 이미 예전에 올려 지금은 자료실 속으로 들어간
부분입니다. 게시판 개편으로 사라진 글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이전부터 다시 올리겠다고 말씀드렸으며
기술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습니다.

그동안 규원사화 등의 도가류 사서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제 의견을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그 첫번째로 <단기고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기고사는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지은 책으로 되어 있고 1946년에 간행이
되었습니다. 한문 원본은 사라졌고 번역본만 남아있습니다.
기록된 내용은 간지가 적혀 있지 않고 기록들과 역대왕들의 제위 기간만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의심이 가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중국을 원망하면서도 중국에 대해서 일관되게 ‘중화’라는 존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인데 그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요.

아래의 글은 정말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대목만 추려본 것입니다.

9세 아술에 이르면 을성문덕이 국민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의회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0세 노을은 최고 자문처로 자문기관을 설치합니다.
11세 도해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합니다. 기계공창을 설치하여 온갖 기계를 만
듭니다. 양수기, 경기구, 천문경, 자명종, 어풍승천기, 흡기잠수선 등등.
12세 아한 때는 후세의 역사를 예언하는데 노스트라다무스는 비교가 되지 않
습니다. 또 단기고사의 거의 모든 왕들은 태자가 왕위를 물려받는데 이때 아
우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3세 흘달 때는 근대 천문학 강의가 있습니다.
14세 고불 때는 인구조사가 있었는데 인구가 1억8천만명이라고 나옵니다.
16세 위나 때는 전거가 분명한 奇遇를 우리 역사에 엉뚱하게 붙여 놓고 있습
니다(이런 대목은 여기 말고도 몇군데 더 있습니다).
17세 여을은 민권옹호정치를 펴고 국립장관학교를 만듭니다.

후단군조선으로 들어가서
2세 추로의 신하이름이 왕이라는 뜻의 이사금입니다.
7세 등올은 입법, 사법, 행정을 분리한 삼권분립을 시행합니다.
9세 감물 때에는 유황발사총이 발명됩니다.

그리고 기자조선에 들어가면 철학, 윤리학 등의 책이 지어지고(이것은
전 부분에 걸쳐 다 나오는 바인데 자본론이니 심리학이니, 논리학, 도
덕경 등도 다 우리가 지은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10세 등나때에 성선설, 성악설, 무성설 등이 주장됩니다.
20세 때에는 사상의학이 나오는데 우리 선조들의 고귀한 업적이 모두
고조선 시대에 올라가 붙어있는 격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기고사 안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번역자가 잘못 옮겼을지도 모르고 또 책제목이 같다
고 해서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는 거
지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으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단기고사 안에 나오는 인용서적들의 목록을 뽑아보았습니다. 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桓氏典
진단기
거칠부 소사
만리원론
고사
탐고사(금국 황자운 지음)
돌궐사
금국정송기
고구려 유기
만주실록
만주산사

일단 저중에 고구려 유기가 고구려 역사책인 유기라면 그것을 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인용서적들의 목록이 됩니다. 단기고사 서에는 소정
방, 설인귀가 고구려사와 백제사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했는데 고구
려의 정사인 유기가 남아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또 대야발
의 시절에는 금나라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는데 금나라 황자운이 썼다
는 탐고사가 웬말이고 금국정송기는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것을 만
약 역자가 본 다른 전거를 대느라고 써넣은 것이라는 주장은 성립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최소한 구한말까지 탐고사나 금국정송기
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책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만주실록이라는 것은 청의 태조와 태종에 대한 실록으로 알고 있
습니다. 그런데 발해시대에 웬 청나라의 역사책이 등장한답말입니까?
(비록 만주실록을 뒤져보지는 못했지만 단기고사에 있는 내용이 그곳
에 없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할 것입니다)

또 거칠부소사는 그 황당한 발명품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용
되었다고쓴 것이 틀림없고 돌궐사를 참조하라고 되어 있는 내용은 제
가 잘은 모르지만 칸트철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 합니다(기자조선 29
세 마간). 또 만리원론은 우주기상학부터 원자론에 이르기까지 설명이
나오는 부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저는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주의한 것은 연대입니다. 단기고사는 갑자를 하나도 기록하
지 않아연대를 알 수 없도록 해 놓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
냐하면 역대 왕들의 연대가 나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연대를 합산하면
일련의 연대표가 형성되고 역사상 확실한 사건이 있던 때를 대입하면
각 왕들의 시대를 판별해낼수 있습니다.

기자조선 말년에 연인 위만이 나라를 빼앗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해는 정확하게 안나와 있지만(환단고기 등에는 BC 194년이라고 합니다
만 중국측 기록에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BC195 - 190년 사이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190년에 놓고 연대를 역산해 나가기 시작했
습니다.

그러면 단군조선은 BC 2509년에 건국된 것으로 계산이 나옵니다. 믿기
지 않는 분들은 직접 해보세요. 전단군조선이 1222년이고 후단군조선
은 875년으로 통합 2096년이 되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역년이 일치
하지만 기자조선은 전단군조선이 끝날때 세워져서 1097년을 갑니다.

그러면 기자조선의 멸망이 BC 190년이니까 여기에 1097을 더하면 BC
1287년에 기자조선과 후단군조선이 건립된 것이 되고 여기에 다시
1222를 더하면 BC 2509년이 되는 것입니다.

자, 단군세기와 역년은 같지만 연대는 영 딴판인 것입니다. 이 점을
여러분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음에 저는 외국과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설명을해보지요.

단군왕검의 연대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고 2세 부루
는 우임금과 동시에 왕위에 올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동작빈의 계산에
따르면(이 사람의 계산에 따르면 단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무진년이 BC
2333년이 되게 됩니다) 우가 왕위에 오른 해는 BC 2183년이 됩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삼국유사기록대로 단군의 치세가 150년이었다면
우 임금이 자리에 오른 2183에 150을더해보십시오. 딱 2333이 나옵니
다. 아마도 단기고사의 저자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기고사식 계산법으로는 부루가 왕위에 오른것은 BC 2416년이
됩니다. 200년 이상이 차이가 나지요.

12세 아한 38년에 하가 멸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때는 BC 1972년인
데 역시 동작빈의 계산법으로는 BC 1751년이므로 2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23세 아흘 12년에 돌궐 사신이 왔다고 하는데 돌궐은 545년에 건설된
유목제국입니다. 742년 멸망하지요. 그런데 이때는 BC 1108년입니다.
너무 빠릅니다.

그때에도 돌궐족이 있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습니
다만그럴 확률은 별로 없고 또 돌궐의 원래 부족명은 ‘궐’,알타이어
로는‘큘’이라 합니다. 당대의 돌궐제국도 자신들을 ‘쾨ㄱ튀르크
제국’(쾨ㄱ는 잘못 쓴 것이 아니고 완성형에 없는 글자입니다)이라고
불렀습니다.

24세 연나 8년에 월남만이 왔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시대에 월남이 있
었는지없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단조에 드러가면 단기고사는 치명적인 과오를 일으킵니다.
2세 추로 28년에 달단의 추장이 입조했다고 되어 있는데 역시 이당시
에 존재했는지 알 수가 없군요.

6세 나휴 때에는 동돌궐과 수호조약을 맺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
돌궐의 나라가 있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러나 돌궐에 대해서는 앞에
서 살펴본 바와같습니다.

8세 추밀 이후에는 춘추전국 시대의 국가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때는 BC849년경으로 춘추시대(BC 770 - 453)도 시작되기 전입니다. 저는
일단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는 주의 제후국들
이었으니까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전에도 이들 나라와 사신교류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위魏, 조趙, 한韓은 진晋의 대부들
이 진을멸하고 세운 나라입니다. 바로 이 때를 기점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가 나뉘어집니다. 그렇다면 진과 조위한은 함께 등장할 수는 절대로 없는 것
입니다. 그런데 9세 감물 때에 위가 나타나고 11세 사벌 때에는 위, 한, 진이
모두 사신을 보내며, 15세 두홀 때는 아예 진과 조가 동시에 사신을 보낸 것
으로 되어 있습니다.

21세 여루 45년에는 노에서 주역을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이
때는 BC 526년으로 공자가 아직 26세 밖에 안되었던 때입니다. 주역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때인 것입니다.

23세 고열가 때에는 衛에서 사신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때는
BC 454년으로 이미 衛는 BC661년에 晋에 의해 멸망당한 나라입니다.

기자 조선으로 고찰을 돌립니다.
3세 솔귀 때에 은이 멸망하고 기자가 망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채로 같은 세기에는 속합니다.

14세 누사 때에도 돌궐에서 사신이 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5세 이벌 때에 전국시대가 되었다고 하면서 秦이 북구강병책을 알려
왔다고되어 있는데 이때는 BC 870년대로 아직 춘추시대도 시작되지 않
았습니다. 또 진에서 부국강병을 시작하는 것은 상앙의 변법을 가리키
는 것으로 그 시대는BC 359 -350년간 입니다.

21세 불리 때에 몽고 사신이 왔다고 되어 있는데 그 때 몽고는
그 이름도 없던 시절입니다.

27세 고태 때에 주에서 도덕경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이때는 BC 583년
으로 아직 노자가 나타나지도 않았던 때입니다.(그리고 도덕경은 장자
이후의 전국시대에 만들어진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31세 노물 때에 주에서 춘추, 예기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 때는 BC
545년으로 공자가 7살 때입니다.

36세 인한 때는 북부여에서 사신이 오는데 이때는 BC 431로 아직 후단
군조선이 멸망하지 않았고 따라서 북부여도 없던 때입니다. 이로써한
책안에서도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들의 왕위는 거의 부자상속으로 되어 있는데 도저히 인간의 수명
으로는감당할 수 없는 나이들까지 살았던 셈이 되는 왕들이 많습니다.
이 점은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 단기고사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겹치는 기사가 상당수 있습니
다. 두 책중에 어떤 책은 보고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무엇을 보았을까요?

단기고사가 발해의 책이 맞다면 조대기는 그 이후의 발해의 책이 됩니
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전하는 조대기의 내용과 단기고사의 앞부분에
나오는 단군왕검의 세계는 영 딴판입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요? 조대기가 발해에서 만들어진 책이라면 그 제작연대가 단기고사보
다 빠를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기고사를 쓴 대야발은 대조영의 동생이
니까요. 그렇다면 조대기는 작성될 때단기고사를 가장 크게 참고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단기고사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고조선에 대한 역
사책들은 모두 없어진 것이니까요. 또한 단기고사는왕실에서 만든 책
으로 발해인들이 널리 보았을 텐데 말입니다.

중간서를 쓴 단재 신채호의글은 이 책이 진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으로되어 있는데 왜 그의 글에는 이와같은 내용이 하나도 없을까요?
모든 신학문과 그 찬란한 발명품에 대해 단재는 왜 입을 다물었을까
요? 단재가 친일파라서 우리 선조의 위대한 역사를 말살하려고 그랬다
는 생각을 가지실 분은 없을줄 압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
까? 단재가 이책을 본 것은 임자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1912년이 됩니
다. 그러면 조선상고사를 비롯한 단재의 책들이 다 그이후인 것입니
다. 단재는 1880년생으로 1912년이면 33세였고 <조선상고사>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습니다. 단재는 이글에서 “고기에 가로되 단군왕
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하우를 도산에서 만났다하고....”라고 쓰
고 있습니다만 이 <고기>가 단기고사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단기고
사에는 부루가 팽오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또 신채호는 <천부경>, <삼일신고> 등이 근자에 처음 출현했다고 하며
이를사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다음번에는 사서와 지은이들에 대한 의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포에서

[추가] 단기고사에 들어있는 신채호의 중간서는 위작이라는 기사가 나왔군요. 그래서 추가해 놓습니다.
[연합뉴스] <'檀奇古史' 중간서 저자는 단재 아닌 이관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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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07/28 14:1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7/28 14:18 #

    그렇네요. 수정했습니다. 오래된 글인데 살펴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질유키 2012/05/16 18:29 #

    7년전에 대학도서관에서 단기고사를 빌려본 적이 있었는데 시대착오적인 기록을 보면서 웃었던 게 생각이 납니다.
  • 초록불 2012/05/16 20:30 #

    황당하기 그지없는 책이지요..^^
  • 삽질少年 2015/03/16 09:36 #

    의외로 신채호 선생님이 단기고사를 읽어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 창조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진화(進化)의 계급을 어지럽힐 뿐이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명장(名匠)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말은, 옛날에 어디선가 누가 보여준(아마 단기고사를 위조한 사람) 단기고사를 기억하며 쓴 구절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여준 사람은 단재께서 이 책을 보셨다⇒단재께서 서문을 써주셨다 로 스리슬쩍 왜곡해 버리고....
  • 초록불 2015/03/16 15:18 #

    재밌는 생각이네요.
  • 꼬질꼬질한 둘리 2015/09/28 07:29 #

    환단고기가 위서인지 진서인지는 잘 모르겠읍니다... 다만 양쪽 주장을 하시는 분들 모두 공통적으로는 너무 지나치게 좁게 우리나라위주로만 보시는 듯 합니다...
    만약 환단고기의 12환국이 전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있었다면 당연히 우리나라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기록이나 흔적이 나와야겠지요...
    예...
    중앙아시아에 이런 기록들이 있읍니다. 참조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7qp3aiB8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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