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관 비판 1 - 식민사관에 대하여 (94/08/09) *..역........사..*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1. 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식민사학에 대하여 말합니다. 여기에는
1차적으로 조선사편수회와 같은 일제의 기관에서 역임한 이병도, 신석호 등
의 인물이 해방 후에도 역사학자로, 또 교육의 책임자로 있었던 탓도 있습니
다. 그래서 왕왕 이병도 사관과 식민사관은 동일한 용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있게 이야기하게 되면 사람들은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대개 식민사학이라고 이야기할 때,
70년대에는 역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한다든가, 단군을 신화로
여긴다거나, 백제가 일본을 지배하고 요서를 경략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삼국사기는 우리민족의 열등
성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며 삼국유사는 늙은 중의 헛소리이며 발해
멸망 이후로 우리민족은 비참한 연명을 해온 것이기 때문에 역사로 언급할 가
치도 없는 것인데 식민사학자들이 통일신라 운운해 온 것으로 차부되었습니다.
급기야 90년대에 들어서자 여진족이 세운 금과 청이 발해 이후의 맥을 이었
다는주장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당연히 ‘한반도’에 처박힌 고려, 조선은
별볼일 없는 민족이 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주장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식민
사학에 찌들어서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식민사학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최소한 위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식민사학이
란 ‘조국의 영광됨을 믿지 않고 위대한 민족의 과거에 어긋나는 사실을 열거
하는 이들이 갖는 역사관’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식민사학이란 본래 일본
이 우리를 못난이 2등민족으로 만들어영구히 식민지 노예로 부려먹기 위하여
세운 사학입니다. 해방된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2등됨을 위하여 역사를 연
구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때문에 식민사학의 해독은 빠져들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역사관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실증사학
이란 있는 사실들만을 수집하는 것이라 민족혼이 결여되어 과학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자민족의 역사를 살피는데는 부적합하다는 주
장도 나왔습니다. 더불어 식민사관에 빠진 이병도가 서울대에서 후배를 기르
고 그 제자들이 다시 또제자를 길러 식민사관은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학에서는 학문적인 발전이 없고 이병도 이하
일제의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한국사를 계속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이미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객관적인 사료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고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부족국가라는 말이 사라졌고
진골과 성골의 구분에 대하여 새학설이 나왔으며 발해에 대한 연구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학계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
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대학은 식민사학을 답습하는 곳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에 대해서 확실한 정의도 내리지 않은채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하여 식민사학이란 무엇인가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식
민사학에 대한 비판따위는 필요없는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보다는
민족사학이라고 자처하며 대륙사관을 갖췄다는 재야사관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2. 식민사학의 종류

먼저 기본텍스트로 한국사 시민강좌 제1집을 사용한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식민사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일본학
자들에 의해 나타난 것이므로 일본학자들이 한국사를 어떻게 다뤘는가에 대하
여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사학의 뿌리는 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에 의해서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을 연구해서 태고에 일본
의 신, 천황이 한국을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당연히 일본이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식민사관의 이론적 근거의 하나인 일선동조론(
日鮮同祖論)이 보입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도록 한국사에 대한 연구는 없었
습니다. 물론 사학이라는 학문도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1869년 국
사편찬국에서는 <일본사략>이라는 책이 나왔고 다시 이책은 1888년 <국사안>
이라는 책으로 개정됩니다. 여기서 일본학자들은 고대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
했다고 주장하고 신공황후의 신라정벌기 등을 전파했습니다. 이 책이 일본의
차후 학문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87년 제국대학(동경대)에 사학과가 창설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사를 다루
는 사학과는 아니였고 1889년 국사(일본사)과가 만들어지는 정도입니다. 이때
위 국사안을 만들기도 한 久米邦武는 1892년 神道는 祭天의 古俗이라는 논문
을 발표했다가 신사의 책임자인 神主들의 맹렬한 공격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久米邦武는 위의 책으로 볼 때 일본의 ‘영광적인’ 역사관에 충실
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이런 사람도 인정할 수 없
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청일전쟁을 맞이
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旗田巍는 이 시대의 분위기를 세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한국의 고대사에 대
한 연구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 둘째 문헌적 고증을 통한 전통적인 도그마에
대한 비판(일본서기, 고사기의 연대비판이 이때 이뤄집니다), 세째 언어연구
가 역사연구에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언어연구에 의해 일본민족 독자 형
성론이 나옵니다. 이 연구의 흐름은 일선동조론에 위배되는 것이였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이에 대한 비난이 일어납니다. 星野恒이라는 학자는 <본방의
인종, 언어에 붙여 비고를 서술하여 참된 애국자에게 묻노라>라는 논문에서
일선동조론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도그마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있던 인물은 白鳥庫吉이었습니다. 이 인물은 한
국사와 관계되어 중요한 위치를 점합니다. 白鳥庫吉은 동양 각국의 신화를 가
차없이 비판했는데 그는 비판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와 제휴하여 만선지리역사조사실을 설치합니다. 이
조사실에는 이병도를 가르친 쓰다 소우키치(津田佐右吉)를 비롯해서 이병도를
조선사편수회에 추천한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조선사편수회의 주무 이나
바 이와키치(稻葉岩吉)등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 만선지리역사조사실에서
역시 식민사관의 하나인 만선사관이 발생합니다.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묶어
서 만선사라고 부르는 것은 노일전쟁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만선사관에는 한국사는 독자적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는 타율성론이 들어 있습
니다. 旗田巍는 만선사는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을 부정하고 한국사를 대륙 특
히 만주세력 파급의 역사로 풀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봅니다. 이런 노력은
일선동조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나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일선동조론을 주장하는 세력은 일제의 한국강점에 의해서 더욱 고무되었습니
다. 이들은 일제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사로부터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세력에는 앞서 나왔던 久米邦武, 星野恒등의
학자들이 있습니다. 久米邦武는 <왜한 모두 일본신국임을 논함>이라는 글로
일선동조론을 주장하였고 星野恒은 <역사상에서 본 일한동역의 복고와 확정
>이라는 논문으로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일선동조론을 가장
광적으로 주장한 학자는 喜田貞吉입니다. 그는 <한국의 병합과 국사>라는 저
서를 통해 日韓同種을 주장했으며 일본을부유한 본가로 한국을 의해 일본열
도가 정복되었다는 가설로 내놓은 것입니다. 에가미는 진왕이 4세기초에 북큐
슈지방으로 이동하여 변한과 북큐슈를 망라한 왜한연합왕국을 건설했으며 이
것이 야마토 정권이며 이 왜한연합왕국은 고구려에 대항하여 한반도 남부지방
에서 싸웠다고 주장합니다. 에가미의 기마민족설은 일본내에서는 천황의 지위
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습니다만 우리의 입장에서도 그가 임나일본부를 포기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 남부의 권리는 넘
어간 기마민족에게 있다는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인 점을 우리는 그저 일본왕
가가 우리민족에서 기원했다는 일본학자의 양심선언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정 아직도 살아있는 변형된
식민사관의 한 증거이며 저들이 기회와 힘만 된다면 다시 우리의 강역에 대해
소유권을 지배하고자 감추고 있는 발톱인 것입니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학자들은 한국은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정
체성 이론을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서양의 사회발전론에 기인해서 봉건제도
를 거쳐야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한국은 이 근대화
는 커녕 봉건시대에도 진입하지 못한 후진국가라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였습
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본의 고대를 발견하고 일선동조론을 지지하게 됩니
다. 일선동조론쪽 뿐만 아니라 만선사관 쪽에서도 정체론은 지지되었습니다.
이나바는 1925년에 <조선문화사연구> 에서 한국에 봉건제도가 없었음을 지적
하고 한국사회는 일본보다 600년이 뒤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체성론을 주장한 이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습니다. 福田德三은 1
900년대초에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정체성론의 근본은 봉건제도의 유무에 달려있습니다. 이 이론은 일
본은 자신들이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서구와 같은 봉건제도를 거쳤기
때문에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이때문에 아시아의 근대화를 책임져
야 한다는 기묘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일본의 문화를 이
해하지 못했듯이 일본과 유럽의 봉건제도는 그저 형태만이 유사한 것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한국사회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유형은 유럽과는 다른 경로를 밟아왔
고 유럽사회의 발전단계를 이론화한 역사관을 동양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동양사의 사회발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본사 역시 이단적인 존재로 흥미로운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정말 오랜 기간동안 중앙집권을 이루
지 못한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훌륭한 것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
니다.

정체성론과 더불어 당파성론을 식민사관의 하나로 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
들이 고대사 이외에는 식민사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
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한국이 일본에 강점된 이유가 당쟁에 있다는 논리
를 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조선의 역사를 더럽히고자 한 일
제의 악랄한 시도였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문화적으로
국가적으로 우리에게 훌륭한 유산을 남겨준 조선왕조를 우리는 상당히 경멸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약간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일제는 국학자들을 통해 일선동조론으로부터
남선경영론(임나일본부) 등을 이끌어 내었으며 역사학자들은 만주와 조선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만선사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에 경제학자가 합세해
서 한국은 발전할 수 없는 나라였다는 정체성 이론이 보태집니다. 이 이론은
국학자와 역사학자 모두에게 환영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멸망은 당쟁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하기 위해 당파성론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식민사관에 근거해서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나 기마민족설 등이 등장
한 것입니다.

한국사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만선사관과 일선동조론이라 할 것입니다.
이 두 학설은 식민사관의 근본이었으며 여기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한국에
근무 또는 연구하면서 우리 역사의 왜곡을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만선사관에는 반도적 성격론과 타율성론이 포함됩니다. 때문에 이 半島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너희는 반은 섬이다라는
뜻으로 만든 용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반도는 영어로는
peninsula라고 쓰며 이것은 라틴어의 paene와 insula가 복합된 말로 paene는
almost, insula는 island로 우리말로 푼다면 ‘반은 섬’ 정도가 아니고 ‘
거의 섬’이 됩니다.

鳥山喜一은 1935년에 <동아시아의 역사적 대국에서 본 조선반도>라는 글에서
“이 반도를 동아시아의 역사적 대세에서 볼 때, 거기에는 하나의 경향을 인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반도는 밖에서 일어난 세 세력으로부터 그 역
사가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세 세력이란 중국 본부 방면으로부터
의 힘과 만주 방면으로부터 세력, 이러한 대륙방면으로부터의 두 세력과, 또
하나는 바다로부터의 우리나라(일본)의 그것입니다.” 그는 더구나 대륙의
힘은 일본에 의해서 분쇄되어 조선은 해방(식민지로써 말이지요)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쓰고있습니다. 즉 조선은 스스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는데 그
것은 반도이기 때문에 외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반
도는 무조건 타율적인 민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이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민족은 본래 대륙을 호령하던 민족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
니다. 그러나 발해 이후로는 우리 민족은 대륙(만주)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
에 이런 주장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며 고려 이후의 역사
천년이 반도적 성격론, 타율성에 의해 좌우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
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신중하게 생각하며 제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이 대륙을 호령했다는 주장으로 반도적 성격론, 타율성론
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우리가 지금 반도,
그것도 남쪽 끝에 몰려 있으므로 역사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하며 우리는
우리 땅인 만주를 찾아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다른 한 부류는 우리가 대륙
을 호령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한다면 반도적 성격론은 극복될 수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부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달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땅은
천년전에 우리에게서 떠나 간 것입니다. 지금 그곳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천년전의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두번째 부류의 생각은 논리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대륙을 호령했으
나 반도로 밀려왔고 결국은 나라를 잃었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대륙을 호령
했던 세력은 본래 만주에 근거했던 세력이지 반도에서부터 뻗어나간 세력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역사에 있어서 지리적인 요인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반도라는 점에 매몰되면 일제가 파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거
는 것이 됩니다.

현실적으로 만주를 회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계속 좌절의 역사 속에 있게 된
다는 이 비판은 반도사관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반도적 성격론 즉 만선사관은 기괴한 형태로 커지게 되는데 그 결과를 그
대로 받아들이며 원인부분만 고친 새로운 역사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동
북민족이 모두 우리의 지파라는 주장이며 우리가 그 본가라는 것입니다. 여기
에 망라되는 민족은 중동의 수메르를 비롯해서 유태인, 몽고족, 만주족, 일본
인 모두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변형된 만선사관과 일선동조론일 뿐인 이 그로
테스크한 사관은 대륙사관, 민족사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
러한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이 사실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여진(만주족)을 우리 민족에
포함시킨다면 우리의 역사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후금-청-멸망으로 이
어지는 계열과 고조선-신라-고려-조선-한국(북한)으로 이어지는 계열을 갖게
되며(물론 만주족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역사일 것입니다만) 흔히
말하는 ‘대륙 역사의 정통성’은 청으로 이어지다가 청이 멸망함으로써 사
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항한다고 말하며 사실은 그 결과물을 그대로
이어받아가고 있는(뿐만 아니라 청이 우리나라를 자기에게 종속시키고자 했던
역사관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재야사관에 대한 비판을 시작합니다.

(계속)


덧글

  • 라이온킹 2007/10/15 22:37 #

    전 지금 21살의 대학생이라 우리가 식민사관에 빠져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식민사관에 빠져있는 우리의 윗 세대가 우리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기때문에

    글을 읽다보니 제게도 약간 패배주의가 깃들어있는것 같네요~
  • 초록불 2007/10/15 22:48 #

    라이온킹님 / 글을 약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본 블로그의 글들을 일독하다보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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