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관 비판 2 - 임승국을 중심으로 (94/08/09) 만들어진 한국사



3. 재야사학 비판 (1)

사실 이 재야(在野)라는 말은 벼슬을 하지 않고 민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만 굴곡된 한국사에서 지조있는 선비들을 가리키는 말처럼도 사용되
어 왔습니다. 덕분에 ‘재야’라는 말만 붙으면 훌륭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
다. 그러나 사학계에서는 강단에 서고 있는 사학자들을 ‘강단사학자’라고
부르며 자신들을 ‘재야’라고 부르는 일부 역사연구가들에 의해서 발생했습
니다. 이 사람들의 상당수는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수업을 받지 않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이점을 더욱 강점으로 내세우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식민
사학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노릇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들이 나름대로 광범위한 조사결과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자신의 전거 이외의 전거는 모두 조
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가 백
이면 백, 모두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야끼리는 상충되는
의견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으며 거론할 때에도 ‘강단사학자’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예의를 갖추어서 말합니다. 가령 1987년 정신문화연
구원에서 개최했던 “한국상고사의 제문제”라는 토론회에서 임승국은

“한편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지만 상고사는 상고사 전문학자가 써야하고 논증
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제발표 중에는 상고사와는 무연한 학자가 상고사학을
마치 명승지관광여행이나 하는 기분으로 어색한 주제 밑에 모험적인 페이퍼
를 내놓고 있다. 세상이 다 아는 근세전공학자가 고조선의 제문제를 운위한다
는 것은 그 용기가 가상하지만 학문은 결코 만용이 허용될 수 없는 분야이다.
(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p 184)”


“이 고대사는 그 A, B, C가...... 고대사학자가 해야 됩니다. 고대사와 관계
없는 사람은 고대사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어요.(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
신문화연구원, 1987, p 231)”


라고 말하며 천관우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사학과 출신이 아닙니
다. 그는 고대 정외과 출신입니다. 물론 그래야 식민사학자 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에 대하여 천관우는

“그런데 저도 고대사 관계 논문이라는 것을 처음 발표한 것이 1974년이니까
지금부터 13년이 되었고, 그 뒤에 고대사관계 논문을 하여튼 열 댓편 써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인제 저도 좀 고대사연구자 속에 넣어 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p 263)”


라고 응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사 연구를 주로 해온 박성수에 대해
서는 임승국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박성수는 여기서 발표는
하지 않고 논평만 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고대사와 관계없는 사람은 고대
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임승국 자신의논리에 어긋난다는 것은 강조할 필
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임승국의 역사관이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자유> 80년 9월호에 “정사광복과 역사인식”이라는 글에서 임승국은 이렇게
말합니다. 80년 5월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는 점도 감안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조국의 산하엔 개천이래 최대의 숙정선풍이 일고 있다. 과연 조국 광
복 이후에 쌓이고 쌓인 부조리를 말끔히 청소해 줄 것인가? (중략) 그 숙정의
규모나 대담성에 있어서 지난날의 어떤 숙정보다 ‘매머드’급이었다고 해서
찬양할 수는 있겠으나 (자유 80.9 pp. 79-80)”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의 천적사상이오, 대항무기는 오직 민족주의 민족철학
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산주의의 면전에서 패배주의적 민족관을 고취
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무장해제를 뜻함이다. 오늘날 이단사학, 반체제사
학, 식민사학의 잔재는 국가안보적인 차원에서 다스려야 한다.(자유 80.9 p 8)


그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급기야 <자유> 11월호에는 “이적 해국사필과 국
가안보”라는 글을 써서 전 보안사령관 출신인 전두환을 자극해 보고자 합니
다.

“지금 정계 ~ 관계에는 환웅천왕 이래 최대의 숙정선풍이 일고 있다. 그야말
로 숙연한 순간이오, 기대했던 후련한 역사의 한토막이 아닐 수 없다.(자유
80.11 p 26)”

“실로 해국사필의 해독은 언필설난의 경지에 있다. 숙정당국은 한국사 1000
년속에 서려온 미해결의 장을 용약처결하는 영단을 내려줄 수는 없는가?(자유
80.11 p 32)”


위에 보다시피 그는 드디어 동료 학자들을 공권력으로 처단해 주기를 요청하
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국사광복은 대통령각하의 의지하나로 결정될 수 있는 민족의 숙원사업
인 것이다. 민족사는 오랫동안 용기있고 과단성있는 민족의 지도자를 감당하
여 왔다. 국사혁명이라는 과업은 애오라지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만이 해결할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가장 뛰어난 영단을 지닌
민족지도자를 모신 <새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중략) 이 모
든 가능성이 오직 새시대 지도자의 의지 하나에 달린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이 시공이야말로 억겁의 세월이 집약된 역사의 찰라라고 아니할 수
없다.(자유 81.4 p 74)”


이 글은 그가 역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가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면 역사의 진리가 입증된다는 무시무시한 논리입니다.

“망국적인 국사학자들은 마땅히 국가안보적인 입장에서도 그 해국이적사필이
응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중략) 저들은 이 나라의 정신전력을 와해시킴으
로써 결과적으로 김일성에게 부전승을 안겨주려는 해국적 심보가 아닌 다음에
야...(자유 81.4 p 81)”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 아닙니까?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
롭게 한다면 처벌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뭐라 변명한다해도 학자가 할 수 있
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바라보는 역사관은 어떤 것일까요? 위 세 글 안에는 그의 역사관
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그는 민족주의를 반공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국가안보(반공)에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역사를 국가체제철
학이라고 주장합니다.

“국사는 물론 사회과학의 한분야이다. 그러나 국사가 영향하고 점유하는 국
가 ~ 사회적 그리고 현재 ~ 미래에 걸친 위치나 좌표 ~ 비중은 사회과학분야
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다름아닌 국가체제철학이기 때문이다.(
자유 80.9 p 83)”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국가체제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공산주의와 지금 대결하고 있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은 반공!이니 승
공!이니 하는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오 통념이다. 그런가 하
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무기력 무
방비적인가를 광복 35년의 체험을 통해서 절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
유민주주의의 제원칙에 일부 수정을 가해서라도 보다 중요한 국가안보를 지키
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던 것이다. 제외국이 뭐라고 비판하드라도 우리는 우리
의 실정에 어울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하였든 것이다. 정치
는 이상이나 꿈이기에 앞서 싸늘한 현실이기 때문에 국가안보를 위한 이러한
자유유보 인권유보는 국민적인 양해사항으로 용인되었든게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하여 Excuse me, I am sorry를 애걸하면서
까지 자유민주주의에 집착해야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물론 국제정치사
회라는 현실때문에 ‘자유민주......’라는 상호(?)는 떼어내 버릴 수 없겠지
만 지금이야말로 한국정치가 강력한 민족주의를 내걸 때가 아닌가 한다. 혹자
이를 국수주의라고 비방해도 좋다. 도이취나 일본은 국수주의때문에 멸망했
지만 우리나라는 도리어 사대주의로 나라가 망했던 것이다. 우리가 국수주의를
경계할 이유가 없다. 근세 이후 국수주의다운 국수주의 한번도 못해본 한국
사의 치욕은 차라리 국수주의가 숙원 섭리일지도 모른다. 항차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통해서 국가안보를 추구하려면 공산주의의 사상적 철학적 천적인 강
력한 민족주의!(그것을 국수주의라 혹평해도 좋다)와 그 토대 위에 뿌리박은
강력한 체제철학의 필요성은 차라리 숙명적이오, 필수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철학있는 독재는 설득력을 갖는다’는 정치철학을 들먹일 필요
도 없이 오늘날 한국정치엔 철학을 필요로 한다.(자유 80.11. pp. 29-30)”


좀 길게 인용했습니다만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국민
적 양해라고 말하는 유신체제는 지금 국민적 합의 사항으로 “악”이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외국에 보여주기 위한 간판이고 철
학있는 독재는 설득력을 갖는다니요? 여러분은 이런 사고방식 위에서 건전한
역사의식이 뿌리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러면 임승국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또 어떤 것일까요?

그는 위 <자유> 80. 10월호에서 도이취 민족이 제1, 2제국의 위대한 조국을
이어받아 나치즘 아래 1차대전 패배 불과 20년만에 세계를 상대로 전쟁할 수
있는 현대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낫세르의 아랍민족주의 기치
아래 아랍은 세계경제를 좌우하게 되는 ‘좋은 전례’를 남겼다고 합니다.
(pp. 62-63)

민족주의는 또한 민족주의는 위대한 민족사의 발견광복에 있으며 민족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국사를 미화하고 외국사를 왜곡하기도 해왔던 것이 세계
민족주의의 추세라는 것입니다.(p 63)

그는 이어 우리 민족사는 역사를 왜곡하지도 않은 채 민족주의를 고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주장합니다.(p 64)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의 민족주의란 자민족만이 잘살면 된다는 민족주의일
뿐입니다. 그것은 민족주의도 아니고 그저 (그가 폄하해도 좋다는 대로)국수
주의일 뿐입니다.

그는 한국사를 5개의 조국으로 구분합니다.
제1조국은 환인의 나라인 환국, 제2조국은 신시개천의 환웅의 나라, 제3조국
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제4조국은 부여 -> 삼국 -> 고려로 이어지며 제5조국은
5공화국으로 이어집니다. 조선이 없습니다. 그의 조국에는.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조선사>를 일인들이 왜곡한 것을 바로잡
으려 하지 않고 그것을 덮어서 없애버리려는 자세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올바
로 보는 자세일 수가 없습니다. 일인들이 왜곡한 조선사를 되돌리지 않으려는
자세는 곧 일인들이 해석한 조선사가 옳다라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조선은 역사에서 이야기하지 말자, 부끄러운 나라다라는 것이지요. 바로
일본인 식민사학자가 바라는 바입니다. 고려에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것
은 어느 나라입니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
나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민중은 어느 시대의 민중입니까? 왜 그 시대를
버려야 합니까? 기껏 일본인이 날조한 역사때문에요?

임승국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선 그는 일본 국어 교과서에서
“후지산”운운하며 시작한다는 점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들의 민족주의
정신을 부러워 합니다.(자유, 81.4 p 77-78, 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신
문화연구원, 1987, p 239) 또한 이미 그 함정에 대해서 설명한 기마민족설에
대해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고 있습니다.(자유, 80.11 p 31)

근본적으로 일왕실은 백제왕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자유, 81.
4 p 77-78)이므로 언젠가 그들이 백제 땅을 다시 찾겠다고 돌아온다면 그는
“어서 오십시요”하고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글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임승국의 글은
일제의 식민사관이 파놓은 함정에서 벗어나 있습니까? 만주의 영향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만선사관에서 그는 과연 벗어나 있습니까? 일제가 파놓은
덫에서 빠져나가려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가 조선을 버리는 것은 만선사관의 영향이며, 기마민족설 및 백제와 일본
천황가를 연결하는 주장은 일선동조론의영향입니다. 그는 일왕실을 집나간
자식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백제가 왜 집나간 자식이 되겠습니까? 나찌
아래서 프랑스는 괴뢰 비시정권과 망명 드골정권으로 나뉘어지는데 임승국의
논리대로라면 정통은 비시정권에 있는 것입니까? 이런 논리라면 일본이 한반도의
주인이라고 주장해도 반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본말을 전도하고 선후를 뒤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
다. 그 근본을 잘라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주의 영향을 받았다에서
만주는 본래 우리 것이다라는 주장은 반도라는 지형적 환경 아래 놓여있는
우리에게는 더 패배감만 조성하는 무의미한 주장입니다. 반도라는 지리적 조
건이 우리민족에게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이론을 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
선동조론도 그렇습니다. 조상이 누구건 일본과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주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재산권 행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주장일 뿐입니다.

사실 단지 지배층만 가지고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가령 지금까지 발해를 지배층만이 고구려 유민인것처럼 주
장한 학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때문에 중국에서는 발해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킬 근거로 그것을 활용했습니다. 일종의 정복왕조처럼 본 것입니다. 그
러나 최근 발해의 기층민인 백산말갈 등은 고구려 시절부터 우리 민족으로 취
급받은 족속으로 발해는 명실공히 우리민족 국가라는 학설이 나왔습니다. 이
런 자세가 진정 민족을 생각하는 역사자세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학자들의 경우 은근히 여기저기서 비쳐
집니다. 아직 노골적으로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만주 없이는 영광도 없
다는 그들의 논리를 쫓아가면 결국 동일한 결과에 부딪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는 만주 없이도 영광스러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고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입니다. 만주 없이는 영광없다는 주장은 일제 식민사학자가 파놓은 악
질적인 함정일 뿐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잘보여주는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한배달 창간호(1988 가을)
에 실린 육군대학 교수 도갑현의 “고토회복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를...”을
살펴보면

“즉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된 해(AD 926년)가 지금부터 1062년 전이라는 세월
은 이스라엘이 옛 연고권을 주장한 2000년이란 기간과 비교해 볼 때 불과 그
반 밖에 되지 않아 우리 민족이 망각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고토회복의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선례로 삼아, 신념으로 연고권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p 108)”


라고 되어있는 것입니다.

(계속)

덧글

  • matercide 2010/09/11 19:55 #

    옳지 옳지. 그래서 전범수괴(이면서 치사하게 면피한) 히로히토와 그의 아들인 아키히토가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와서 백제의 혈통을 들먹였고, 남경대학살을 지휘했으면서 이와이 미츠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살아남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의 아들인 토모히코가 무녕왕릉에 제사를 지낸 게 그런 까닭이구나.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에서 간단히 보도하고 다른 언론들은 없는 사실처럼 무시해서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다.(천황을 한때 신으로 숭배했으면서 이렇게 무시하다니)

    이러니 일본황실의 의도가 알 수 없다. 일선동조론? 일본우익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니면 한일양국의 화합?(히로히토가 전두환 때 간 걸 감안하면 한국의 친일파하고만 화합하는 거지만) 도대체 이들의 의도는 어느 쪽일까?

    확실한게 있다. 메이지유신 뒤에도 일본민중은 천황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선침략이 진행될수록 천황을 더욱 공경했다. 천황이 살아있는 신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조선-대한을 지배해서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