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과거에 이현수님과 면(綿)에 대하여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 면(綿)이 뜻하는 <솜>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제 의견을 유보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 <천공개물>이라는 중국 명나라 시절 송응성이라는 사람이
만든 고대기술백과사전에 이 면(綿)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나오고 있어서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 부분을 설명합니다.
과거 이현수님은 면(綿)은 면직물을 의미하므로
목화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 사서에 실린
면(綿)이라는 글자로 볼 때 삼국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쌍견이나 실을 켠 후 솥바닥에 남은 부스러진 고치나,
나방이 날아가버린 고치 껍데기 등은 다같이 실마리가
얽혀 실로 켤 수 없어서 풀솜으로 사용한다. 볏짚 잿물에
삶은 후 맑은 물이 들어있는 동이에다 넣고, 미리 엄지손톱을
깨끗이 깎은 두 엄지로 네 개의 고치 꼭지를 열어 펼친다.
이 고치를 왼손의 네 손가락을 모은 데다 하나씩 네 개를 겹쳐
끼웠다가 뽑아낸다....(이하 계속 자세한 설명)
...실을 뽑고 남은고치로 만든 솜을 과저면(鍋底綿:솥 단지 밑의 솜이라는
뜻이 됩니다...)이라 하며, 이런 솜(綿)을 옷이나 이불에 두어
추위를 막는데 이를 풀솜옷 또는 풀솜이불이라 한다. 풀솜(綿)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실잣기보다 8배나 들어서 종일 일하더라도 단지 4냥 남짓
밖에 만들지 못한다. 이런 솜(綿)으로 지은 실을 갖고 짠(織綿) 호주(湖紬)는
값이 매우 비싸며, 이런 실을 써서 화기로 짠 것을 화면(花綿)이라 하여
값이 비싸다.
위에 나온 바와 같이 고대 사서에 나오는 綿은 고치솜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만든 제품은 絹과는 다른 취급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현수님은 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또 비단을 가리키는 綿이라는
말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특히 재야를 자처하는 분들이 자신의 지식만으로 고대사서를
이해하고 재단하려는 것을 종종 봅니다.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 그 반론의 타당성은 검토해보지 않은채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려고 드는 경우를 또한 가끔 봅니다.
마포에서
과거에 이현수님과 면(綿)에 대하여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 면(綿)이 뜻하는 <솜>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제 의견을 유보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 <천공개물>이라는 중국 명나라 시절 송응성이라는 사람이
만든 고대기술백과사전에 이 면(綿)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나오고 있어서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 부분을 설명합니다.
과거 이현수님은 면(綿)은 면직물을 의미하므로
목화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대 사서에 실린
면(綿)이라는 글자로 볼 때 삼국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쌍견이나 실을 켠 후 솥바닥에 남은 부스러진 고치나,
나방이 날아가버린 고치 껍데기 등은 다같이 실마리가
얽혀 실로 켤 수 없어서 풀솜으로 사용한다. 볏짚 잿물에
삶은 후 맑은 물이 들어있는 동이에다 넣고, 미리 엄지손톱을
깨끗이 깎은 두 엄지로 네 개의 고치 꼭지를 열어 펼친다.
이 고치를 왼손의 네 손가락을 모은 데다 하나씩 네 개를 겹쳐
끼웠다가 뽑아낸다....(이하 계속 자세한 설명)
...실을 뽑고 남은고치로 만든 솜을 과저면(鍋底綿:솥 단지 밑의 솜이라는
뜻이 됩니다...)이라 하며, 이런 솜(綿)을 옷이나 이불에 두어
추위를 막는데 이를 풀솜옷 또는 풀솜이불이라 한다. 풀솜(綿)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실잣기보다 8배나 들어서 종일 일하더라도 단지 4냥 남짓
밖에 만들지 못한다. 이런 솜(綿)으로 지은 실을 갖고 짠(織綿) 호주(湖紬)는
값이 매우 비싸며, 이런 실을 써서 화기로 짠 것을 화면(花綿)이라 하여
값이 비싸다.
위에 나온 바와 같이 고대 사서에 나오는 綿은 고치솜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만든 제품은 絹과는 다른 취급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현수님은 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또 비단을 가리키는 綿이라는
말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특히 재야를 자처하는 분들이 자신의 지식만으로 고대사서를
이해하고 재단하려는 것을 종종 봅니다.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 그 반론의 타당성은 검토해보지 않은채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려고 드는 경우를 또한 가끔 봅니다.
마포에서
덧글
분명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를 끌어다 붙여서 빠져나갈려고 할게 뻔합니다. 환단고기 신봉자(통칭 환빠)들의 18번이 논점일탈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사마천의 궁형 사건으로 이현수님과 설전이 오가 한국사동을 탈퇴하던때가...그때 저도 인간이 덜되었던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