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삼한일통의 이야기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나옵니다.
이때의 삼한이 삼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집니다.
저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아마도 삼한=삼국이라는 이러한 점이
후대에 여러가지 문제를 낳는 걸로 짐작됩니다.
가령 최치원의 삼한=삼국 비정이라든가...
최근에도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북삼한설이라든가..
일반적으로 마한은 백제에 병합되고
진한은 신라로 발전하고
변한은 가야제국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렇게 되면 삼한안에는 고구려가 제외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연도 마한과 고구려의 연관성을
언급한 적이 있고
최치원의 마한=고구려 설도 있고 보니
북삼한설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계와 조선계 부여계의 세 종류가
우리민족의 원형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체계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문득문득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한계는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하던 종족이고
조선계는 요동과 한반도 북부에
부여계는 송화강상류에서 백두산일대까지 존재한 종족으로
고조선이 한족(중국)과의 대결에서 위협을 느끼면서
남하를 시작하고(고조선 준왕의 마한 건국 및 위만조선 시절에도
남하한 종족들이 있습니다) 끝내 한무제에 의해
멸망당한 뒤 사로국까지 이동하게 되면서
발전된 문명으로 韓족을 다스리게 된 것 같습니다.
漢의 고조선 영역 지배는 물론 금방 끝나고
거의 유일하게 낙랑만 유지되는데 이 낙랑은
물론 현 평양 일대입니다. 정치권력의 공백지와 같았던
만주 일대는 곧 고구려라는 신흥세력이 차지하게 되죠
고구려는 이로써 고조선의 과거 영토와 아직 그곳에
남아있었을 유민들을 수중에 넣게 됩니다.
물론 이들 고구려인은 부여계고요...
고구려에서 또 일단의 무리가 남진을 해서
백제를 세우게 되는데 이들도 역시 온존하게
부여계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한과 어떤 동류의식이나 혈연의식을 갖지 않은 점을
보면요...
따라서 고조선 멸망 이후 마치 로마제국으로 게르만족이
몰려간 것처럼 각 부여계의 집단이 고조선의 과거 영역에
쏟아져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제 온조왕의 모친 조시누는 이미 한국가의 공주였죠?
그외에 고구려 근처에는 여러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부여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마한을 밀어내고 한반도 서남부의 지배권을 장악한 백제는
지배층-부여계와 조선계(구지배층)-한계(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지고
고조선의 과거 영역을 차지한 고구려는 지배층-부여계와
조선계(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지고(물론 더 많은 종족들이
흡수 용해됩니다만)
한반도 동남부의 패자 신라는 지배층-조선계, 피지배층 한계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닐까...
물론 국가 건립 당시에 말입니다.
반면 가야는 한계로만 이루어진 국가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발전이 더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제 견해는...
이것이 확연하게 지배-피지배로 갈렸다거나
후대까지 이런 구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 오해는 없으면 좋겠군요...^^;;
처음 국가형성에서 주도권을 누가 쥐었느냐 정도로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럼 원점으로 돌아가서...
삼한일통이라고 할 때 삼한은...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을 가리켰던 것으로
그들의 영토를 계승한 영역만을 가리켰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고조선과 부여 쪽은 제치고
백제만을 가리킨 용어였을 수도 있습니다.
뒤에 신라가 대동강 이남선만을
확보하는 것으로도 만족하는 것은
삼한일통이라는 목적이 달성된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영역까지라면
마한진한변한의 영토를 모두 확보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렁뚱땅의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깨 감사를...^^;;
좋은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마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