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문자는 한글을 모방한 것 (99/08/14) 만들어진 한국사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이 글은 아시아 동 15번 게시판 718번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운 형성사 간행 <일본고대문자연구>
라는 김문길 교수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성훈 (Redford )
<404>신대문자(아히루)는 한글을 모방한것. 1995-06-01 17:13 175 line

1.신대문자(神代文字)란 무엇인가.

일본신사에는 神代文字라는것을 위폐로 모시고 있는곳이있다.
일본의 국어학자들 가운데 神社의 神主들이나, 神道思想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 신대문자가 일본 神代때 창제되어 세계로 보급되어서,
버마어가 되었고, 조선에도 들어가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대문자란것은 반대로 우리의 한글을 가지고 모방하여
만든것이다. 한글을 모방하여 신대문자를 僞作한 사람은 日本國學의
巨星인 平田篤胤(히라다아쯔다네)이다.

일본국학은 江戶幕府말엽 서구문화가 물밀듯이 들이 닥칠때, 서구문화를
배격하고 순수한 일본고유문화를 숭상하자는 뜻에서 일어난 학문이다.
즉 일본국학은 서구문화 특히 오란다(네델란드)문화인 蘭學을 배격하자는
뜻에서 형성되어 발전하게된다. 그러므로 자연히 정치적인면에서는
王朝國家를 부르짖고, 문학적인면에서는 古典學을 중시하게 되는것이다.
이에 한걸음 나아가 武家政治가 대두됨으로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神道敎를 제정비하는데 큰 뜻을 두게 되었다.

일본인의 정신바탕을 이룬 신도교, 신도사상이 이때 국학자들에 의해서
교리가 형성되었고, 많은 신사가 재건되고, 교파가 생겨 神道가 갑작스럽게
팽창하였다. 이러한 국학사상이 거세게 일어날때 平田篤胤이 국학사상에
邪魔敎로 생각했던것이 불교와 유교이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를 박해한
排佛,排儒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일으키면서 儒敎에서 나온 漢字를
쓰자니 마땅치 않았고, 또한 불교경전에서 나온 가타가나, 히라가나도
못마땅히 여겨 글을 쓰지않았다. 때문에 平田篤胤은 새로운 글을 만들
필요성을 느낀것이다. 그리고 일본국민들에게 고전의 신비를 불어
넣어주기위한 수단으로 고심끝에 한글을 모방하여 音과 모형은 우리글이고
뜻은 日本語인 신대문자 47자를 만들어냈다.

이 신대문자를 僞作한 시기와 서적은 1811년부터 1819년 사이,
「古史徵開題記」네권을 집필할때부터이다. 「古史徵開題記」는
춘,하,추,동 4권으로 분류하는데 이 신대문자는 春卷에
「神代文字의 論」이라 하여 저술한것이다 위작된「신대문자」의
「古史徵開題記」를 그 8년후인 1819년 그의 문인들이
다시 「日文傳」이란 이름으로 재판하여 국민들에게 보급시켰다.

平田篤胤은 신대문자가 神代때부터 창제되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즉, 天照大神(아마테라스)이「天의 岩穴」에 들어가 나오지않아,여러신들이

자기가 만든 예물을바치고 제사를 올릴때, 天兒屋根命(아메노코야네미코)이

神代文字를 만들어 祝詞를 해서, 天照大神을 동굴에서 나오게 했다고하였다

그후 신대문자는 天兒屋根命의 후손인 對馬國 卜部阿比留 가문에 전해져서
阿比留(아히루)문자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했다.
그러나 이 신대의 글자는 백제의 왕인박사가 천자문,논어등 한자를 갖고
들어와 불교문화권에서 자취를 감추게되어 절과 신사에 방치됐었는데,
막부의 공신 佐藤信淵과 新井白石이 이 글을 모으고 연구하기 시작하여
겨우 빛을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平田篤胤 자신이 만든것이다. 그는 신대문자를 두종류로
僞作하였는데 하나는 신대문자 眞書體인 「肥人書」이고, 다른 하나는
신대문자 草書體인 「薩人書」이다.
진서체는 한글을아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읽기가 쉬운글이다.
반면, 초서체는 진서체로 토를 달지 않으면 매우읽기힘든것이다.
平田篤胤은 읽기어려운 초서체를 男筆이라했고, 읽기쉬운 진서체는
여자글인 女筆이라고했다.

그러면 平田篤胤은 언제 우리 한글을 입수하여 위작하였는가.
임진왜란이후 朝.日관계가 어느정도 회복된후 일본의 德川家康은 조선의
문화인을 초빙하여 조선문화를 수용하게된다. 이것이 조선통신사이다.
이때 우리 한글도 많이 배웠는데, 당시 儒人으로서 國學者인 靑木敦書같은
이는 한글을 배우도록 우리글 교본인「昆陽漫錄」책까지 펴내게 되었다.
平田篤胤은 이「昆陽漫錄」을 입수하여 신대문자를 만들어 낸것이다.
平田篤胤이 한글을 토대로하여 신대문자를 만든 이유는 한글이 음양오행에
맞추어 만들어졌기때문이다. 당시 일본신도는재정비되면서 유교에 바탕을둔

음양오행설을 기초로했기때문에, 음양오행에 맞추어 만들어진 한글을
모방하게된것이다. 국학자들은 이 신대문자를 가지고 신도의 찬가인 祝詞로

주로사용했고 그후 신대문자가 신사나 유적지에 부착되어, 이글을 섬기면
가정이평안하고 모든 시험에 합격한다는 식으로 전해져오고있다.

2.신대문자에 대한 논쟁.

平田篤胤이 神代에 문자가 있었다 하고「日文傳」책을 펴낼때,
국학의 동료였던 伴信友는「假字本末」이란 저술에 「神代字辨」이란제목을

붙여「조선의 언문이 일본에 들어와서 변형된것이 日文傳이 되었고, 따라서
조선언문과 불가분의 관계에있다」「지금 일본에 신대문자 운운하고있는데
江戶시대 이전에는 아무 논한도 없었고, 또는 신대문자라고 지지한다든가
문헌이 존재하지않았다」고 철저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國學의 동료들과 스승들도 일본 古代 신대기에는 고유글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平田篤胤의 스승인 本居宣長도「古事記傳」
에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일본 고유의 글이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명치유신이 단행되어 平田篤胤의 문하생들이 대거 등용되어
신정부를 수립하게 되면서 신대문자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물이 신대문자보급의 계승자로 지목되는 落合直澄이다.
그는 명치6년에 神道學校인 神宮敎院을 설립하여 神道學을 일반국민들에게
보급하면서 신대문자의 우월성과 존재성을 논하였고, 신대문자가 조선에
들어가 중인,下人들이 사용하는 조선언문이 되었다고 하였다.
명치신정부가 들어서자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전통적 일본문화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명치정부의 초대 문교대신이었고, 일본근대교육에 많은 공헌을 남긴
森有禮는 일본인의 두뇌를 개발하기위해서는 일본남자들이 외국여자와
결혼해야하며, 서구의 과학기술 종교등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어와같이

빈약하고 불확실한 전달수단은 버리고 영어를 國語로 채택하자고
주장하기도했다.
이러한 구화주의자(歐化主義者)들의 일본어폐지주장에 대해,
平岩渲保와같은 국수주의자들은 신대문자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일본어대신 로마자를 쓸바에는 신대문자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기도했다.
신대문자는 전쟁時까지는 존왕사상아래 긍정되어왔다.
또한 패전후인 1949년에와서도 吾鄕淸彦은「古道大系硏究所」를
설립하고 日本神學연맹상임이사로 있으면서 일본신대문자를 후세들에게
지도하면서 「일본신대문자, 古代和字總觀」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전후 국어학회, 국문학회, 일본학회등의 일본국어학자들은
여러자료들을 들어 신대문자를 거세게 부정하였고,그 허구성을 입증해왔다

우리 한글에 많은 공헌을 한 金允經도「朝鮮文學及語學史」를 통해
「일본에서 2,3백년전에 神道家와 국학자중 애국심을 가진 몇사람이
자국의 고대에 문자가 없었던것을 부끄럽게 여겨 서로 모의하여
조선문자를 모방한 글자를 돌에 새기어 그것을 산중에 묻어둔뒤에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그리로 놀러갔다가 우연히 발견한것처럼 그것을
파내어 신대문자라고 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훈민정음문자는
그 신대문자가 조선에 전해진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라고
일제식민지치하에서도 신대문자를 부정해왔다.

한편 한국학자중에서도 고대 한글론을 주장하면서 일본신대문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에서 출판하는「廣場」제125(1984.1월호)를 보면
당시 미국 베일러대 명예교수로서 한국사상사를 전공하는 송수호씨는
「한글은 世宗이전에도 있었다」라는 제목에서 태백일사에 나오는
고대 한글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학계에 파문이 일었다.
송호수씨는 일본의 신대(神代) 문자인 아히루(阿比留) 문자, 인도의
구자라트문자가 가림다문자와 유사한 것은 서로 동일계(同一系)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고대 문화의 흐름을 볼 때 아히루 문자는 고대
한글인 가림다문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송호수씨는 또 「단군제3세 가륵임금때에 만들어진 가림다문을 한글의
기원으로 보지않으면, 일본에서의 親子관계설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해
한글이 만들어졌다는주장)은 배격할 통로가 없는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음달에는 이관수씨(홍익대 교수)가 즉각 반박 기고를 했다.
(廣場126호 2월호) 이씨는 「우리들은 세종때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고
하는 설을 정설로 믿고있으며, 명백한 典據를 가지고있다. 종래 정설을
부정할때는 그 설의 부당함을 검증하는 일부터 선행되야하고 뒷받침되는
典據를 제시해야한다.단군시대 원시한글이 있었다고 내세우는 환단고기속에
「단군세기」나 「신대문자」의 자료들이 종래의 정설을 뒤엎을만한 과학적
근거가없다」고 논했다. 그는 송호수씨가 주장하는 가림다문은
그 자형과 그런 글자가 있었다는 기사만 있을 뿐이며, 단군 이래
고려초까지 가림다문 또는 한글로 된 글이 단 한 조각도 발견되지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가림다문이 실린 책인 태백일사 등이 출처를
고증할 수 없는야사라고 못박았다. 특히 일본의 아히루문자는 일본에서도
인정받지못하는 가설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씨는 「단군3세때 한글이 있었다」 「일본고대에 신대문자가있었다」
「일본신대문자와 한글은 친자관계라는 등등의 일련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역사관과 언어관의 차이에서 비롯된것이다. 神代를 긍정하는 사회에서
생성된 신대문자觀은 현대언어 철학으로서는 본질적으로 받아들일수없는
언어관이다」라고 반론하였다.

3.결론

송호수씨의 예에서 알수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신대문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군시대 있었다는 가람다문자가 일본에 들어가서
신대문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단군신화를 중시여기고 단군종교를
신봉하는 계층에서는 고대 가람다 문자의 존재를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찾을려고 하는것이다. 반면, 일본에서 신대문자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대문자가 天照大神이 강림시부터 있었던 일본 고유의 글이며 한글은
이 것을 모방한 글이라고 주장한다.
신대문자를 인정한다는점에선 같지만, 서로가 먼저 존재했고 후세에
위작했다는 주장에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신대문자는 한.일 양국
학회에서모두 부정되고있다. 특히 일본국어 국문학회에서도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훈민정음 즉 한글이 일본 國學者사이에서 조작되어 전쟁전에는 거의

인정해왔다고 자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은 부산외대論叢 제11輯 제12輯에실린. 김문길교수님의
「日本 六合雜誌와 신대문자에 관한연구,」「신대문자와 長尾神社」
그리고 스포츠서울에 실렸던 기사에서 발췌.정리한것입니다.

마포에서

추가 : 날조된 신화-신대문자 <孤藍居士님의 블로그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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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張鎭旭 2005/10/14 21:32 #

    이 글의 링크 좀 따가겠습니다.
  • 초록불 2005/10/14 22:42 #

    張鎭旭님 / 트랙백 풀어두었습니다.
  • 노군 2007/10/18 13:06 #

    이글 링크좀 따가겟습니다..
  • 게으른 사냥꾼 2012/11/08 04:40 #

    그래서 지금 당신은 한국에는 "신대문자는 가림토의 영향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사람이많다는 것입니까??? 만약에 한국에 "신대문자는가림도 영향을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면,당신 글이 바로 오염물질 아닙니까?? 내가 "초록불님, 오바마는 호모가 아니라니까요!!"하고 주장한다면, 바로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치 "초록불이 오바만느 호모였다고 주장했다"고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만약에 한국에는 "신대문자는 가림토의 영향으로 만든 것이다"란는 주장이 별로 없다면,당신은 이런 글 쓰면 안되는 것입니다. "초록불 부모는 서울역 거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당신은 무조건 기분 나블 것 아닙니까? 똑같은 이치입니다. 아무도 당신 부모가 서울역 거지라고 주장하지 안핬으므로 나도 초록불 부몬는 서울력 거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요
  • 초록불 2012/11/08 10:39 #

    자기가 무슨 글을 쓰는지는 이해하고 글을 쓰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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