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 비문 (96/01/08) *..역........사..*



이 글은 제가 3학년때 공부한 내용으로 시간이 지났고 번역에도 오역이 있을 수 있으나 지금 새로 해봐야 그 시절보다 나을 리가 없으므로 그대로 싣습니다.
글자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 부분은 붉은색으로 표시를 하고 밑에 다시 설명을 달았으며,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분홍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글자 판독이 안된 부분은 □표시로 합니다.
글의 원문은 왕건군의 것에다 기타 보충을 해 놓은 것으로 여기시면 됩니다. 좀 뒤섞여 있습니다.

1면 1행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天帝之子,
母河伯女郞, 部卵絳, 生有聖, □□□□□命駕
옛날에 시조인 추모왕이 나라를 건립할 때에 그의 부친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여랑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 곧 성덕이 있었다.

世 : 出로 읽음. 水谷悌二郞만 世로 봄
而 : 子(雙勾本)
德 : 彳만 보임.

1면 2행
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言曰 ;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葭浮龜”應聲卽爲(我連葭浮龜;3행)
순행 남하하였다. 그는 남하하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었다. 왕은 나루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해 거북을 띄워 배로 삼고 갈대로 다리를 만들어라” 소리에 따라 즉시 거북과 갈대로 이루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幸 : 車
津 : 聿

1면 3행
連葭浮龜, 然後造渡, 于 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不迎王. 王于忽本東岡, (龍升天;4행)
연후에 강을 건넜다. 비류곡 홀본지방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다. 세상의 왕위를 즐기지 않아
(하늘은) 황룡을 보내 왕을 영접하였다. 왕은 문득 홀본 동강에서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沸流 : 송양의 전설과 관계가?

黃 : 水谷悌二郞은 履로 봄.
負 : 水谷悌二郞은 首로 봄.

1면 4행
龍負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治. 大朱留王紹承基業.
至十七世孫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이 치국지도로 사업을 진흥시켜 국가가 大治되었다. 대주류왕은 양대의 기업을 계승하여 계속 발전했다.
이어 17세를 전하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興 : 大
遝 : 윗부분에四자가 남아있음. 朴時亨은 遝(=及)으로 봄.

1면 5행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恩澤于皇天, 威武被四海,
掃除不□,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6행)
18세에 즉위하여 존호를 영락태왕이라 했다. 그의 은택은 황천과 같았고, 그의 무공은 사해에 진위하였다.
외래의 침략을 제거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평안히 그 업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도 은실(殷實)했다. 오곡이 풍숙했다. 하늘은 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洽 : 合, 和
桭 : =振, 雙勾本은 柳로 봄.

1면 6행
弔, 卅有九, 宴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勛績, 以示後世焉其曰.
39세에 국가와 세상을 사별해 내던지니, 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왕을 안장했다.
그 앞에 비를 세워 왕의 훈적을 명기하여 후세인에게 보이노라. 각사(刻詞)로 말한다.

詞 : 水谷悌二郞은 辭로 봄.

1면 7행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 躬率往討,
富山, 負山至鹽水上, 破其六七百, 牛馬群(羊;8행)
영락5년은 을미년으로 왕은 비려가 고구려 함몰인들을 귀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영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碑麗 : 거란의 한 지파. 태자하 상류지역에서 활동. 고구려와 인접하여 늘 전쟁 상태. (소수림왕 8년 9월)
富山 : 당시 현도군과 고구려 중간 위치. 현재의 우모대산.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삼국사기 등에 보임.
鹽水 : 1. 동가강설 / 2. 천관우 - 시라무렌강(요하줄기) / 3. 왕건군 - 태자하

歸 : 息
人 : 又
三 : 丘
落 :이형구는 族으로 봄.
營 : 當

위 내용은 삼국사기 원년의 일로 보고 있음.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으로 거란 정벌, 남녀 5백명을 사로잡고 본국인으로 사로잡혔던 백성 1만인을 설유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1면 8행
羊, 不可稱數, 于是旋駕, 因過道, 東來□城, 力城, 北豊,
王備, 游觀土境, 田獵而還. 百殘, 新羅, 舊是屬民,
헤아릴 수 없이 노획했다. 그곳에서 돌아오면서 양평도를 거쳐 동으로 왔다. □성, 역성,
북풍에 이르러 왕은 사냥준비를 시켰다. 순유와 사냥을 하며 돌아왔다. 백잔(=백제), 신라는 옛 속국으로

襄平 : 지금의 요양
力城 : 요동군에 속함(진서 지리지에 보임)
北豊 : 지금의 통화일대. 발해의 풍주.
土境 : 국토를 가리키는 말.

襄 : 雙勾本은 咢으로 봄.
獵 : 獵의 간자로 쓰여져 있음.

왕건군은 430년대에서야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다고 주장.
385년 고국양왕이 요동 점령, 같은 해에 연의 모용농이 회복했다고.
그러나 삼국사기 광개토왕 14년에 연 모용희가 요동성 공격에 실패하고 있음.


1면 9행
由來朝貢, 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殘國. 軍至窠(南;10행),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 군사가 백잔소굴의 남쪽에 이르러

辛卯 : 광개토대왕 원년
六年 : 396년

倭 : 이형구는 後로 봄.
□□ : 이형구는 倭寇로 봄.
伐 : 雙勾本은 利로 봄.

정인보는 “도해파”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고 목적어 왜가 생략되어 있다고 여김.(박시형도 같은 의견)
菅政友는 “도해, 파백잔”으로 읽음.
김석형은 “왜이신묘년래 (고구려가) 도해파백잔으로 주어를 고구려가 백제를 친 것으로 이해.

1면 10행
南, 壹八城, 臼模盧城, 各模盧城, 干氐利城, □□城, 各彌城, 牟盧城, 彌沙城, 古舍蔦城, 阿旦城, 古利성, □
일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단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고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各彌城 : 關彌城을 가리킨다.
阿旦城 : 삼국사기 백제본기 책계왕 원년조에 阿且城이 보임.

1면 11행
利城, 雜彌城, 奧利城, 勾牟城, 古莫耶羅城, 鄒城, □□城, □而耶羅城, 瑑城, 於利城, 農賣城, 豆奴城, 沸城, (利城;2면1행)
□리성, 잡미성, 오리성, 구모성, 고막야라성, 수추성, □□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농매성, 두노성, 비성, 비리성,

比利城 : 진흥왕 순수비의 碑利城과 관련?

미 : 彌의 고자.
須 : 이형구는 彌로 봄(비류가 자리잡았던 미추홀). 貢, 莫자로 보는 경우도 있음.

2면 1행
利城, 彌鄒城, 也利城, 大山韓城, 掃加城, 敦拔城, □□□城, 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蘇(城;2행)
미추성, 야리성, 대산한성, 소가성, □□성, 누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소적성,

赤 : 灰

2면 2행
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城, 林城, □□□, □□□, □利城, 就鄒城,
□拔城, 古牟婁城, 閏奴城, 貫奴城, 彡穰(城;3행)
연루성, 석지리성, 엄문총성, 임성,  □□□, □□□,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古牟婁城 : 중원 고구려비에 보임.
총 : 뫼 산 밑에 날 일자. 뜻은 至. 

2면 3행
城, 曾拔城, 宗古盧城, 仇天城, □□□□逼其國城, 殘不服義, 敢出迎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迫城, 殘兵
증발성, 종고로성, 구천성... 그 국성에 다가갔다. 백잔은 의에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영전했다.
왕은 위엄으로 대로하여 아리수를 건너 선두부대를 보내 성으로 진격했다. 백잔 군대는

阿利水 : 한강
자 : 夾에 칼도 방. 죽일 자.

2면 4행
歸穴, 就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太王恩赦
구렁으로 돌아갔다. 쫓아 이어 성을 포위했다. 백잔의 주는 곤경에 빠져 남녀 생구 1천인과 세포 1천필을 헌납하고
왕 앞에 꿇어 앉아 맹세했다. “지금으로부터 이후 영원히 노객이 되겠소” 태왕은 은혜를 베풀어 용서하고

生口 : 노비보다 하층으로 인간 대우를 하지 않는 존재(이종욱)
奴客 : 牟頭婁 묘지 墨書銘에도
          1. 大使者牟頭婁□奴客
          2. 聖王奴客祖先
          3. 奴客牟頭婁 등이 나타난다.
일종의 귀족 신분으로 신하가 왕에게 자신을 일컬을 때 쓴 말인듯.

而殘主 : 이진희는 百殘王이라고 봄. 그러나 비문에서 고구려 왕 이외는 왕의 호칭이 보이지 않는다.
始 : 水谷悌二郞은 先으로 봄

2면 5행
迷之愆, 錄其後順之誠. 於是五十八城, 村七百, 將殘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八年戊戌, 敎遣偏師, (帛愼土谷;6행)
미혹하여 저지른 허물을 용서하고 뒤에 그가 공손한 성의를 다 할것인지를 살피기로 했다. 이번에 58성과 7백촌을 얻었다.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이끌고 
개선군대를 거느리고 환도했다. 8년 무술에 군대를 변경의 백신토곡에 보내어 살피게 하여

戊戌 : 398년. 백제 아신왕 2년, 관미성 공격 실패.
偏師 : 전체 군대 중의 일부분
觀 : 천관우 - ‘관찰’의 뜻으로 복속관계의 확인 / 왕건군 - 자기 국경의 순시 / 박시형 - 무력 시위의 ‘관병’

主 : 이형구는 王으로 봄
得 : 拔

2면 6행
愼土谷, 因便抄莫斯羅城, 加太羅谷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通;7행)
인하여 다시 막사라성, 가태라성에서 남녀 3백여인을 잡아왔다. 이 이후로
조공하여 일을 논하게 되었다. 9년 기해에 백잔은 자기의 맹세를 위반하고 왜와 더불어 통호했다.


帛 : 천관우는 息으로 보아 영안지방의 숙신(말갈)으로 파악. 왕건군은 이 부분을 모두 백제와의 관계에서만 파악한다. (그러나 왕제까지 잡아온 마당에 조공관계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형구는 肅으로 봄. 津田左右吉은 帛으로 보고 경원지방 비정. 이형구는 이에 대해 지방인과 조공으로 논사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함.
己亥 : 399년. 十年 庚子조와 함께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삼고 있다.

和 : 이형구는 賊으로 봄

2면 7행
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人滿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恩, 稱其忠誠,
왕은 남으로 평양을 순유했다. 그리고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왜인이 나라 안에 가득 차 성과 못이 파괴되니
노객(신라왕)은 백성으로써 왕의 명을 듣기를 원한다고 했다. 태왕은 인자하여 그들의 충성을 칭찬했다.

其 : 이것으로 보아 신라 사신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님
以奴客爲民 : 일본학자와 왕건군은 “대왕의 노객을 천민으로 만들었다”라고 해석

倭 : 이형구는 殘으로 봄
慈 : 後

2면 8행
特遣使還, 告以計.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救新羅.
男居城新羅城, 倭滿其中. 官方至, 倭賊退.
신라 사신을 특별히 돌려보내며 비밀계획을 말했다. 10년 경자에 보병, 기병 5만을 파견하여 신라를 구원하게 했다.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에 걸쳐 왜인이 가득했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은 퇴각했다.

庚子 : 400년. 신라 내물 이사금 45년으로 이시기에 주목할만한 기사는 없음. 단 393년 왜인이 금성을 포위하고 5일 동안이나 공격했다는 기사는 있음.
男居城 : 박시형은 고구려 성으로 봄. 왕건군은 신라 남부의 성으로 봄
新羅城 : 국도

住 : =往(비문에 往자는 모두 住로 되어 있음)
軍 : 兵(초기 雙勾本)

2면 9행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城, 倭寇大潰, 城內
왜의 배후를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이르자 성은 즉각 항복하여 신라인으로 지키게 하였다.
신라성과 염성을 장악하여 왜구는 크게 무너졌다. 성안의


2면 9행의 처음 7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任那加羅 : 금관가야. 삼국사기 강수전에 본래 임나가량인이라는 대목이 있음. 昌原 鳳林寺 眞鏡大師 寶月凌空塔碑(924)에 선조가 임나의 왕조이다라고 적혀 있음.
安羅人 : 일본학자들은 安羅를 아라가라의 다른 명칭으로 임나일본부의 용병이라고 해석한다. 신공황후 49년 3월조에 보면 신라의 安羅卓淳 등 7국 점령...이라는 기사가 있음. 그러나 왕건군은 安은 동사로 羅人은 新羅人으로 봄.
倭寇大潰 : 雙勾本에는 倭滿倭潰로 적혀 있다. 이진희는 이점을 들어 비문조작의 구체적 증거로 봄

倭 : 기존의 판독에서는 來로 보았음
鹽 : 이형구는 農으로 봄

2면 10행
十九, 盡拒隨倭, 安羅人戍兵. 羅城□□其□□□□□□□言
십분의 구는 왜를 모두 따라가기를 거절하여 신라인으로 수성하게 했다. 신라성......

이 행 위의 16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拒隨倭 : 臣有來, 更有來, 臣隨來, 臣順來
新 : 이진희의 주장으로는 이 글자는 샤반느 탁본에 滿으로 나타나 있어 위조의 증거라고 함

3면 1행
□□且□□□□□□□□□□□□□□□□□□□□□□□辭□□□出□□□□□□□倭潰(逃;2행)
나머지 왜구는 무너져 흩어져 도망갔다.

殘 : 백잔?

3면 2행
逃. 拔□城, 安羅人戍兵. 昔新羅寐錦, 未有身來論事,
□□□□廣開土境好太王□□□□寐錦□家僕句
성을 탈취하여 신라인을 안치하여 지키게 했다. 전에 신라 이사금은 스스로 와서 조공청명함이 없었다.
광개토경호태왕에 이르러 이사금은... 복구를...


寐錦 : 중원고구려비에도 보인다. 이사금 또는 마립간의 뜻일 것.
論事 : = 朝貢
□□ : 뒤에 寐錦이 있는 것으로 보아 新羅일 것이다.
僕句 : 佐伯有淸은 실성이사금 11년 (412년)에 나오는 卜好와 동일인물로 봄

3면 3행
請□□□朝貢.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石城,
□連船□□□, 王躬率討, 從平穰

...조공했다. 14년 갑진에 왜는 양국의 관계를 파괴하고 대방의 경계를 침입하여 백잔병과 연합하여 석성을 공격했다.
...왕이 몸소 병사를 영도하여 토벌했다. 평양을 떠나

甲辰 : 404년
帶方 : 김석형은 불분명하다고 이진희는 위조라고 함.

□ : 下, 攻, 取로 추정함
住 : = 往

삼국사기 4년 (395) 8월에 백제와 패수 위에서 싸워 이를 파하고8천여명을 사로잡았다. 백제 아신왕 4년 8월 좌장 진무 등으로 고구려 공격, 담덕이 친히 군사 7천으로 항전으로 백제 대패. 6년에 왜와 결호. 태자를 인질로 보냄.

3면 4행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 王師
선봉이 적과 만났다. 왕의 군대는 길을 끊고 막아 사방에서 추격하여 살해하여 왜구는 궤멸되어 패했고 참살된 자가 무수했다.
17년 정미년에 보병과 기병 5만을 파견토록 하여... 왕의 군대는


丁未 : 407년 후연 모용희 建始 1년, 전지왕 3년

17년 정미조의 정토대상국가는?
1. 今西龍 - 倭
2. 三宅米吉, 박시형, 김석형 - 백제(왕건군은 백제쪽에 기록이 없다고 반박)
3. 이병도 - 가야, 왜
4. 김정학 - 왜, 백제
5. 浜田耕策 - 선 왜, 후 백제
6. 정두희, 천관우 - 후연(자치통감 403년 숙군성 공격)


3면 5행
四方合戰, 斬煞蕩盡. 所獲鎧甲一萬餘領, 軍資器械, 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 牛甶城, □城, □□□□□
사방 포위 작전을 썼다. 적은 전부 참살되었으며 개갑 만여령을 노획하고 군자 기계는 수를 셀 수 없었다.
돌아오며 깨뜨린 성이 사구성, 누성, 우불성, □성, ...


3면 6행
□城. 卄年庚戌,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 中叛不貢. 王躬率住討,
軍到餘城, 而餘國駭服. 獻出□□□□
성이었다. 20년 경술, 동부여는 옛적에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중도에 이반하여 다시는 조공하지 않아 왕은 몸소 군대를 이끌고
동부여를 토벌했다. 군대가 동부여의 도읍에 다다르자 동부여는 두려워하여 항복했다.


東夫餘 : 이병도는 동예지방으로 천관우는 두만강 하류로 봄
餘城 : 부여의 국도

擧 : 城

3면 7행
□□. 王恩普, 于是施還. 又其慕花隨官來者,
味仇婁鴨盧, 卑斯盧鴨盧, 타社婁鴨盧, 肅斯舍鴨盧, □□□
...왕의 은혜가 고루 미치자 왕이 돌아왔다. 그 교화를 흠모하여 관군을 따라온 자가
미구로 압로, 타사루 압로, 숙사사 압로,
□□□

覆 : 덮을 부
鴨盧 : 귀족의 명칭? 이병도 - 수장의 직명 / 박시형, 왕건군 - 동부여의 귀족 / 三宅米吉 - 동부여의 위호 / 佐伯有淸 - 인명

3면 8행
鴨盧. 凡所攻破城六十四, 村一千四百. 守墓人烟.
賣句餘國烟二烟三. 東海國烟三看烟五, 敦城
압로였다. 무릇 성 64개를 공파하고 촌 1천4백을 취득했다. (광개토왕의) 수묘인연호다.
매구여의 백성은 국연2 간연3. 동해가는 국연3 간연 5, 돈성


六十四 : 영락6년의 58개성과 17년의 6개성을 합한 성의 수로 봄. 박시형은 8년조의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을 합하면 66이 되므로 64성이란 동부여에서 얻은 성의 숫자라고 주장.
守墓 : 삼국사기 열전 명림답부전(179년) - 質山에 장례 지내고 수묘 20가를 두었다.
戶 : 왕건군은 이것이 대량의 노예戶라고 함.
賣句餘 : 지방명. (고구려의 구민?)
民 : 왕건군은 民은 노예를 뜻한다고 함. 김석형은 良人으로 봄. 이형구는 수묘인이 되기 전에는 노예였다가 수묘인이 되고나면 양인이 된다고 함.
看 : 조인성은 看이 간수, 간호의 뜻이라고 봄
賈 : 왕건군은 商戶의 뜻으로 천민으로 판정. 박시형은 谷으로 보아 東海谷으로 봄. 東海谷은 삼국사기 태조왕 55년조에 보임

국연과 간연은 1:10 정도 비율. 국연이 보다 상위개념일 듯. 박시형은 국연1 + 간연10의 집단으로 파악

3면 9행
民四家盡爲看烟. 于城一家爲看烟. 碑利城二家爲看烟.
平穰城民國烟一看烟十. 此連二家爲看烟. 徘婁
백성의 4가는 모두 간연이 된다. 우성의 일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평양성 백성은 국연1, 간연10. 차련2가는 간연이 된다. 배루


3면 10행
人國烟一看烟卌三. 梁谷二家爲看烟. 安夫連卄二家爲看烟.
改谷三家爲看烟. 新城
인은 국연1, 간연43. 양곡2가는 간연이 된다. 양성2가는 간연이 된다.안부련22가는 간연이 된다.
개곡3가는 간연이 된다. 신성3


梁谷 : 梁貊之谷 (요양지방)
新城 : 서천왕 7년 (276) 왕이 신성에 이르렀다. 봉상왕 2년 (293) 5년 (296) 전연의 모용외와 신성에서 충돌. 광개토왕 9년 (399, 400) 거기대장군 모용희가 선봉이 되어 신성, 남소 2성을 장악했다. 박시형은 심양으로 왕건군은 집안현 서북, 혼강 일대로 봄

3면 11행
家爲看烟. 南蘇城一家爲國烟. 新來韓穢沙水城國烟一看烟一.
牟婁城二家爲看烟. 豆此鴨岑韓五家爲
가는 간연이 된다. 남소성1가는 국연이 된다. 새로 들어온 한예로 사수성은 국연1, 간연1.
모루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두차압잠한의 5가는

南蘇城 : 신성 부근

3면 12행
看烟. 句牟客頭二家爲看烟. 求底韓一家爲看烟.
舍조城韓穢國烟三看烟卄一. 古模耶羅城一家爲看烟.
간연이 된다. 구모객두2가는 간연이 된다. 구저한1가는 간연이 된다.
사조성의 한예는 국연3, 간연21. 고모야랴성 1가는 간연이 된다.

3면 13행
炅古城國烟一看烟三. 客賢韓一家爲看烟. 阿旦城,
雜珍城合十家爲看烟. 巴奴城韓九家爲看烟. 臼模盧
경고성은 국연1, 간연3. 객현한1가는 간연이 된다. 아단성,
잡진성의 합10가는 간연이 된다. 파노성한의 9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로


3면 14행
城四家爲看烟. 各模盧城二家爲看烟.牟水城三家爲看烟.
干저利城國烟二看烟三. 彌鄒城國烟一看烟
성의 4가는 간연이 된다. 각모로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모수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간저리성은 국연2, 간연3. 미추성은 국연1, 간연


4면 1행
七. 也利城三家爲看烟. 豆奴城國烟一看烟二. 奧利城國烟二看烟八.
須鄒城國烟二看烟五. 百
7. 야리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두노성은 국연1 간연2. 오리성은 국연2 간연8.
수추성은 국연2간연5.


4면 2행
殘南居韓, 國烟一看烟五. 大山韓城六家爲看烟. 農賣城國烟一看烟七.
閏奴城國烟一看烟卄二. 古牟婁
백잔 남거한은 국연1간연5. 대한산성 6가는 간연이 된다. 농매성은 국연1간연7.
윤노성은 국연1간연22. 고모루


4면 3행
城國烟二看烟八. 瑑城國烟一看烟八. 味城六家爲看烟.
就咨城五家爲看烟. 彡穰城卄四家爲看烟. 散那
성은 국연2간연8. 전성은 국연1간연8. 미성의 6가는 간연이 된다.
취자성의 5가는 간연이 된다. 삼양성 이십가는 간연이 된다. 산나


4면 4행
城一家爲國烟. 那旦城一家爲看烟. 句牟城一家爲看烟.
干利城八家爲看烟. 比利城三家爲看烟. 細城三
성 1가는 국연이 된다. 나단성 1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성 1가는 간연이 된다.
간리성 8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 3가는 간연이 된다. 세성 3


4면 5행
家爲看烟.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存時敎言. “祖王先王但敎取遠近
舊民守墓洒掃. 吾慮舊民轉當嬴劣,
가는 간연이 된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생존시에 교시로 말했다. “조왕, 선왕은 다만 원근의
구민으로 수묘함에 청소만을 명령했다. 나는 구민이 쇠약해져버릴까 염려한다.


舊民 : 왕건군 - 노예. 조인성 - 수묘인은 본래부터 천민은 아니었을 것이고 원거주지에서 사민되어 세력이 약해진 사람인듯. 노비보다는 부곡과 같은 위치인듯. 수묘인은 1) 선정된 장지를 관리, 2) 장례 후 묘 수호

4면 6행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言敎如此, 是以如敎令, 取韓穢二百卄家. 慮
내 만년의 후에는(죽은 뒤에는) 묘를 안전하게 지키는 자는 다만 내가 몸소 순행하여 약탈해온 한예를 취해
청소를 준비케 한다.” 교시가 이와 같아, 이것으로써 교령과 같이 한예 220가를 취하였다.

4면 7행
其不知法則, 復取舊民一百十家. 合新舊守墓戶國烟卅,
看烟三百, 都合三百卅家. 自上祖先王以來, 墓上
(그러나) 그 법칙을 모를까 염려하여 구민 110가를 다시 취해, 합이 신구 수묘호 국연 30,
간연 300으로 도합 330가이다. 윗조상, 선왕 이래로부터 묘 위에


4면 8행
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석비를 안치하지 않아 수묘인 연호에 차이나 착오가 생기게 되었다.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은
선대왕 묘 모두에 비를 세워 연호를 명기하여 차이, 착오가 없게 하였다.


4면 9행
又制守墓人自今以後不得更相轉賣. 雖有富足之者, 亦不得擅賣.
其有違令, 賣者刑之. 買人制令守墓之.
또 수묘인의 제도를 만들어 지금 이후부터는 서로 전매를 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부유한 사람이 있어도 역시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그 령을 위배하면 판자는 형을 받고 산자는 제도에 따라 수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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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8일 업데이트. 아직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2007년 2월 10일 업데이트. 누락 부분 수록. 일단 완성. 
2007년 3월 21일 업데이트. 사소한 오류 수정

덧글

  • zert 2007/02/09 16:42 #

    대단하십니다 >_<)
    수고하셨습니다~
  • hkmade 2007/02/09 17:10 #

    대단하다는 말밖에 ^^.
    이쁘게 출력해서.. 벽에 걸어두고 싶어요.
  • francisco 2007/02/09 18:24 #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왜가 백제를 쳤다는 기록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 점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 francisco 2007/02/09 18:26 #

    3면의 ##且#######################辭###出#######殘倭潰(逃;2행)
    부분은 왠지 훼손됐을 것 같다는 망상이..;;
  • 초록불 2007/02/10 00:46 #

    francisco님 / 왜가 백제를 쳤다는 것은 고구려의 뻥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종욱, 왕건군 등 여러학자가 당시 왜가 백제나 신라를 지배할 힘이 없었다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강대한 적을 물리쳤다고 해야 폼이 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뿐인 거죠.
  • 초록불 2007/02/10 00:48 #

    hkmade님 / 아이쿠, 아직 미완성입니다. 다음 주쯤 도서관에서 자료를 빌려다가 수정할 생각입니다.
  • 찬별 2007/02/10 09:35 #

    왜이신묘년내도해파백잔,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에서 파란만장하게 분석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아무튼 그런 식으로 걸려있는 글에 대해서는 항의하면 내려주지 않을까요?
  • 초록불 2007/02/10 10:46 #

    찬별 / 나는 이런 경우에도 오컴의 면도날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간단한 해석과 복잡한 해석이 있는 경우는, 간단한 해석이 옳다는 거지...^^;;
  • 사과향기 2007/05/01 11:12 #

    오컴의 면도날...ㅋㅋㅋ 옛날에 법철학 공부할 때 생각이 나네요. ㅎㅎㅎ
  • 야스페르츠 2007/09/10 23:05 #

    헉... 이걸 일일이 직접 하신겁니까??? 대단대단하십니다...
  • 초록불 2007/09/10 23:12 #

    야스페르츠님 / 내가 지금 봐도 좀 미쳤던 것 같습니다...-_-;;
  • 講壇走狗 2007/09/22 19:28 #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安邪"가 바로 安羅로 비정되는데, 제가 볼 때 安羅는 그냥 아라가야 같습니다. 《日本書紀 神功紀》에는 파사이사금이 "婆娑寐錦"으로 나오고 寐錦을 mukimu라 읽는데, 아마 이것은 이사금으로 생각됩니다.
  • YNWAlone 2008/03/31 06:06 #

    보고서에 인용했습니다. 출처는 분명히 밝혔는데(http://orumi.egloos.com/214234), 양해를 미리 구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08/03/31 14:34 #

    YNWAlone님 / 출처를 밝히셨으면 괜찮습니다. 대단한 자료도 아닌데 인용하셨다니 제가 쑥스럽습니다.
  • 국제석유연합 2011/07/14 22:02 #

    퍼갑니다 부흥카페
  • 초록불 2011/07/15 00:38 #

    요즘 연구 성과가 더 나은 것이 있을 텐데, 아직도 이런 게 유효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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