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석과 이중재의 책에 대하여 1 (98/04/27) *..역........사..*



잠시 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지엽적인 문제를 넘어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시점에 다달았습니다만 지금 제 글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아주 지엽말단의 문제를 다룬 것도 아
닙니다. 정용석과 이중재가 쓴 책과 그 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말
씀드리는 것을 일차로 합니다.

그전에 미리 해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겠습니다.
삼국의 위치에 대해서 <여지>라든가 <타협>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게시판은 물론 개인 메일로 보내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저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평소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사실은 달라 보이는
것 뿐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강경한 자세를 갖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서 이런 사족을 붙입니다.
즉 저는 지금껏 이 문제에 대해서 양보해 온 적이 없으며, 언제나 똑같은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일 올린 제 글들이 그동안의 신중하다고 할
수 있는 어투를 벗어나 약간은 공격적인 자세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
만 문체가 다르다고 글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저는 언제나 토론의 상대방에 대한 인격을 중시해왔으며, 그만큼 나의
인격도 중시되기를 바라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정용석이나 이중재에 대해서 너무 가혹한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문을 던질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물론 <비난>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가혹>하다는 평가에는 일부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런 가혹한 비난을 받아서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책>을 펴
낸 공인이고 자신의 글에 대해서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
다. 그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서 아무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저
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대중 앞에 내어놓을 때는 그에
대한 평가, 그것이 비난이 되었든 찬사가 되었든간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내놓은 논리의 취약성, 한문해석의 오류(또는 고의
적인 속임수), 역사학계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난으로뒤범벅이 된 그들의 <
책>에 의해서 파생된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 한사동의 회원 여러분의
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위와 같은 강도의 비판을 가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
은 한사동에서도 물론 글로써 자신의 주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기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견이며 토론이 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토론
의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깔아뭉개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 것은 감정뿐입니
다. 마치 동네 싸움이 어떤 시비로 시작되어, 연장자가 너는 애비에미도 없
냐라고 외치면 상대방은 나이는 어디로 처먹었냐고 핏대를 올리는 것과 마
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과 토론하는 사람들과 토론하지 않는(못하는) 사람을 따
로 재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단 말이오?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책을 낸 사람(즉 공인)과 한사동 회
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
런 것과 같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등을 비난하더라도 친척 어른이 오셔서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다루는 법은 없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 자식들 당
해도 싸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완곡하게 그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라고 말한다 해서 제가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대한 처벌이 심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유사한 의견일지라도 일반 공중을 위해서 나온 <책>의 지은이
에 대한 것과 한사동의 한가족이 쓴 글과는 다르게 대처해왔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말에 거짓이 없음은 지나간 제 글들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토론에 있어서 서로 합의를 보아야 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상
대방을 인격체로 보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이런 토론문화에
대해서는 제가 그동안 올렸던 글이 너무 많습니다. 학설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가한다는 것은 같은 강도의 공격을 감수하겠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즉 제 글이 이치가 맞지 않거나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면 얼마든
지 제가 쓴만큼의 비판을 가해도 된다 이겁니다.
또한 언제나 제가 주장하듯이, 저는 상대방을 <개종>시키기위해 제 논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종교도 없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분쟁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무가치한 사고를 가진 분들이 제 글에서 정보를
얻어가기를 바라고 그로써 이런 주장에 현혹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따라
서 제게 너는 얼마나 역사에 자신이 있기에 네 의견만 맞다고 그러고 다른
사람 의견은 무시하느냐고 질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제 의견을 피력
하는 것이고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싸울 필요도 얼굴을 붉힐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주의
할 것은 토론 상대방이 글에 쓰지도 않았는데 썼다고 하거나 주장하지도 않
았는데 주장했다고 하는 거짓말입니다.

또한 삼국이 한반도와 만주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있느냐, 없느냐의 문
제일 뿐입니다. 첫째, 정용석과 이중재의 주장은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는
것과 동시에 삼국은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따지기 위해서 만주를 제가 빼놓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아래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삼국이 한반도에 어떤 근거를 가진 상태에서
대륙에 존재했다는 말하자면 <대륙본가론>을 주장하시는 건데, 지금 이 글
에서는 그런 주장들까지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정용석은 한반도에 삼국이
걸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바가 전혀 없으며, 이중재는 한반도는 불모지
였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륙본가론>(또는 <대륙분가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과 같은 설까지 한꺼번에 논의하게 되면 너무 복잡해
지고 비판의 핵심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 글을 정용석과 이중재
의 논리 비판 이외의 목적으로 확대하는 피곤한 일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
다.

그렇다면이제 여러분은 제가 처음에 한말, 즉 이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이
나 양보의 여지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 논
쟁이 벌어진다면 여러 가지 해결로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활
자화된 책과 다투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은 한보를 양보하고 싶어도 양보할
수 없는 화석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뭔가 유익하거나 발
전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면 애정을 가지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선과 오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점에 대해서 당신은 이미 이 책을 예단하
고 잘못된 것만을 찾으려고 눈이 벌개서 본 것 아니냐, 그런 사람이 공정한
비판이 가능할 리 없다라고 반박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재야사서 비판을 쓴 이래 그런 말을 많이 들
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를 잘못된 것만 찾아보겠다고 읽었던 것이 아닙니다. 읽어나가면서 생긴 의
문점을 그 글에 작성해 놓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그 책들은 <사료>라
생각하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용석과 이중재의 책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을 다루
고 있는 책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공정>과 같은 중도적인 입장이 있는 것
이 아닙니다. 가령 누군가가 나찌즘을 찬양하고 유태인 학살을 찬양하는 책
을 썼다고 합시다. 그러면 무조건 그것을 하나의 의견이라고 받아들이며,
공정한 입장에서 애정을 가지고 비판해야 합니까? 물론 그가 신나찌주의자
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나찌즘의 신봉자가 아닙니다. 그런
제가 그 책은 잘못된 것이며,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외치면 제가 불합리한
사람이 되고, 맹목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불
편부당을 외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자신이 갖고 있는 입장이 있고 제 자
신의 철학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속한 계급적 관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계급적 관점이라는 말에까지 신경을 쓰시는 분이
계시다면 훗날 해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쯤되면 당신은 도대체 왜 그책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거냐, 근거가 뭐냐라
고 물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본론을 시작합니다.

삼국의 위치가 어디인가하는 문제는 <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
>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이점에 대해서 본래 아무 의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소위 <삼국재중국설>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삼국이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다는 <사실>이 덩달아 <설>이
되어서 어떤 이들은 <삼국재한반도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
꼬리 잡기 식이지만 당연히 위의 용어는 틀렸습니다. 삼국은 만주와 한반도
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식의 위 용어는 용어자체
가 틀린 것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주장이 각기 하나가 옳으면 하나가 틀릴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
문에 혹 두가지 학설이 대립하는 것이니까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
하시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삼국이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
다. 이런 명백한 사실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증거를 갖
춰야 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사실>이란 무엇인가를 최우선으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사전적으로 보면 사실이란 <실제로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는 일>이라고 합
니다.
그런데 역사학적으로는 사실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단순 사실(simple facts, plain facts)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립니다.
단순 사실은 그 실재성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적나라한 사실들을 가
리킵니다. 우리가 건물의 앞면을 볼 때, 그 뒷면이 있다는 것을 당연히 지
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가 보았든 안보았든, 우
리가 느꼈든 안느꼈든지간에 실재(實在)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492년에 콜룸부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

위와 같은 <사실>이 단순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용석의 주장이 있기 전까지 삼국의 위치는 이런 <단순 사실>이었
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그런데 정용석의 주장 이후 삼국의
위치는 <단순 사실>의 자격을 박탈당했을까요? 그의 주장이 <단순 사실>의
위치를 뒤흔들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후술합니다. 지금은 역사적 사
실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역사가들은 단순 사실만을 모으는 것이 아니고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뭔
가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석>입니다.

가령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등에 업은 불완전한 통일로 국력의 위축을
가져왔다.>라는 문장과 <신라의 삼국통일로 중국측의 위협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국력의 신장이 가능해졌다.>라고 말한 문장이 있다면 <삼국통일>이
라는 사실에 역사가의 해석이 덧붙여진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
리고 그 해석이 정반대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말이 <사실>
일까요? 이렇게 특정한 사실이 역사가들마다에 의해 달라진다면 도대체 <역
사적 사실>이란 무엇일까요? 성급한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
역사적 사실>이란 <상당한 수의 역사가들이 타당하고 의의있다고 인정해야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름도 유명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삼국통일> 역시 역사적
사실입니다. 김유신전에 보면 삼한일통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삼국
통일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후대에 신라가 백제를 점령하고 고구려를 함락
시키킨 사건에 대하여 다수의 역사가들이 동의하여 발생한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그럼 <단순 사실>과 <역사적 사실>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요?
역사가들은 <단순 사실>에 해석을 붙여서 <역사적 사실>로 만들어갑니다.
이때 상당수의 역사가들이 그 개념에 찬성하게 되면(그것도 이삼십년간에
걸쳐서 말입니다!) 역사적 사실로 굳어집니다. 가령 우리는 <제1차세계대전
>이라고 하면 1914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을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제1차세계대전>은 <30년전쟁>이라고 주장하
는 역사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런 주장이 <역사적 사
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니 여러분도 1914년에 제1차세계
대전이 일어났다고 외웠던 것입니다). 1914년의 일련의 전쟁들을 후대의 역
사가들은 제1차세계대전이라고 정의했고 이것은 다수의 역사가들에게 받아
들여져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진경시대>라는 책자가 나왔습니다. 조선 후기의 한 특징을 잡아 그
시대를 일컫는 명칭으로 역사가들이 채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아직 <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삼국재중국설>은 어떨까요? 이것은 역사적 사실일까요? 물론 아니지
요. 그럼 이것이 단순 사실일까요? 그것도 물론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가설일 뿐입니다. 하나의 가설이 기존의 사실을 뒤흔들 목적으로 나
왔다고 해서 기존의 사실이 바로 가설의 위치로 전락되는 일은 있을 수 없
는 것입니다.

1534년은 천문학에서 기념할만한 해입니다. 이해에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완전히 가설에 불과하므로
독자 여러분은 읽어보시되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천동설은 오늘날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그야말로 공인되었지요. 지동설은
당연한 진실이고요. 이 두가지 학설은 서로 <타협>이라든가 <양보>와 같은
것이 없었음은 물론 토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동설을 주장한 수도사 조르다노 브르노는 1600년에 화형에 처
해졌습니다.(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이 발표된지 1갑자도 더 지난 때에도 지
동설은 박해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갈릴레이가 교황청에서 협박
을 받은 해가 1633년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100년이 지났으나 지동
설은 여전히 <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동설이 천동설을 이긴 이유는 어디있을까요? 그것이 진실이기 때
문이라는 답변은 물론 0점짜리 답변입니다. 그것은 지동설을 증명할 수 있
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관측자라고 불리는 티코 브라헤는 지동설의 타당
성을 믿었지만 자신의 관측결과로는 지동설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망원
경이 발명되고 나서야 서서히 진실은 밝혀졌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기에
는 너무나 당연한듯한 이 지동설이 말도 안되는 천동설에 이기기 위해서는
1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성급하신 분들은 <삼국재중국설>도 그러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인
정받을 수 있다는 거냐? 이렇게 물으실겁니다. 그러나 단연코 그렇지 않습
니다. 천동설을 이기는데 지동설은 가혹한 비판을 받았고 그것을 이겨냈습
니다. 단지 시간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타협이나 양보를 말하기
이전에 이 학설이라는 것이 이정도의 비판도 못이긴다면 가치가 없다고 생
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삼국재중국설>이 잘못된 것이니까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역시 0점 짜리 답변이겠지요.
이 문제를 설명하는데는 머리 속으로 정리가 필요합니다. 뭐부터 이야기해
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많으니까요.
다음부터 이야기하는 다섯가지 반박은 매우 중요하며, 사실 이런 주장들이
갖고 있는 맹점을 짚은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개별적인 사례에
대한 반박은 이제 그만해도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
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첫 번째, 이중재나 정용석이나 한문을 읽을 줄 모릅니다. 또는 고의적으로
엉터리로 읽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떠나 근본이 잘못된 것이
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재는 역사학자들이 한문을 읽을 줄 몰라 식민
사학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한문의 문법이
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료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고대사
게시판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바 있었습니다.
(고대사 게시판에서 지적된 것은 한사동 회원 중 한분이 올린 글에 대한 것
인데, 그 해석은 정용석, 이중재와 동일합니다. 여기서 제게 그러는 너는
한문을 얼마나 읽느냐고 질문 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참고로 하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전문가들
이 한 번역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차로 의지하는
책은 김성구님의 <중국정사조선열국전(동문선)>입니다)

더구나 서로 상반되는 자료들이 있는 경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자료만을 이
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정용석이나 이중재
가 자신의 체로 사료들을 걸러냈다는 사실을 모른채 그들인 선택한 사료만
이 유일한 것인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자신의 책에서반론을
제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자기 논지를 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수
야 있는가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
입니다. 사료 선택에서 상반되는 두가지가 있을 때, 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가는 분명히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학자의 양심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변호해 주실 분도 있을 겁니다.
- 그 사람들이 몰랐을 수도 있지 않아? 그렇다면 약간 불성실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당신처럼 말하는 것은 심한 처사라고 생각해.
그런데 먼저, 그런 기초적인 것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불성실 정도의 이
야기가 아니며, 다음으로는,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입
니다. 고대사의 사료는 산더미 같은 것이 아닙니다. 번연히 눈에 보이는 것
을 못본척하고 자기 주장에 그럴싸한 것만 모아서 그나마 자기 마음대로 오
역까지 보태서 만들어 놓은 것이 그들의 책입니다.

두 번째, 이미 여러분들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한반도에 대한 설명을 하
지 않고 있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령 정용석은 설명
할 수 없는것은 모두 조작입니다. 즉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는 당연히 조
작입니다. 이 비석은 추사 김정희가 판독한 것입니다. 추사 시대 이전에 이
산에다가 누군가가 역사를 조작하고 싶어서 비석을 세워 놓았다 이겁니다.
경주의 왕릉들도 모두 조작입니다. 누군가가 이곳을 신라 수도로 꾸며놓고
싶어서 그 큰 무덤들을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조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조작된 것
일까요? 이중재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하면서 중국땅을 잃어버렸다는 식
으로 설명하는데 이에 따른다면 이런 조작들은 모두 조선초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그의 책에서 아주 분명하게 이성계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반도에는 국가도 없었고, 그저 불모지에 지나지 않았다고 공언하
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초에 억불숭유의 정책을 가진 나라가 경주 남산에 그 많은 불
상을 만들고 도처에 탑을 세운 뒤 허물어버리고, 절을 지은 뒤 무너뜨리고
각종 무덤(신라의 무덤과 백제의 무덤은 형식이 다릅니다)을 만들어 놓았다
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각 나라의 영토에는 그 나라에 해당하는 비석들까지
곳곳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중원고구려비, 남산신성비, 영천 청제비, 울진
봉평비, 단양 적성비 등등을 맞는 위치에 갖다 놓아야 했으니 얼마나 수고
로왔을까요? 더군다나 곳곳에 전설을 한두가지씩 만들어 두었다는 이야기입
니다. 여기서 다시 이중재나 정용석은 그런 이야기까지 한 적이 없지 않느
냐, 왜 네 맘대로 그렇게 단정짓느냐라고 말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데 사실은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삼국재중국설)을
하려면 반드시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인데도 아무 설명이 없다는 것이 오히
려 큰 문제인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칩니다. <삼국재중국설>이 갖는 현재
적 의미를 따져볼 순간에 왔습니다. 불행히도 적지않은 한국인이 한국의 역
사에 대해서 냉소적입니다. 그것은 한국이 주변국이며 세계 역사에서 주도
적인 역할을 하지 못해서 세계사에 별반 기술되지도 않는 썰렁한 나라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세계 역사에 당당히 등장하는 저 중국의 땅덩어리가 사실은 우리 것이었다
는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빈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것입니다. 뿌
듯해지고 조상들이 존경스러워집니다. 아울러 언젠가는 저곳으로 돌아가야
지라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중국사람을 만나면 주눅이 들지 않고, 일본
사람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나는 뼈대있는 집안이야, 하고 큰기
침을 내뱉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뿐입니다. 실제 우리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
리가 자랑스레 말해온 고려청자는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입니다.
한반도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것이 아닙니다. (이중재
의 책에 이시점에서 한반도가 우리 영토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최초의
목판인쇄물이라고 우리가 핏대 올리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사실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강진의 도요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전 박물관의 한반도 출토 삼국/고려의 유물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분들은 타협의 여지를 찾을 것입니다. 한반도도 우리 땅이었
다. 아마 이곳에는 식민지가 있었던지, 담로가 다스렸다든가 하는 일이 충
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니었겠느냐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러나 백제의 영토와 신라의 영토, 고구려의 영토에서 나타나는 유물/유적은
서로다릅니다. 그렇다면 대륙에 있는 세나라가 한반도 땅도 세조각으로 나
눠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더군다나 그렇게 하자면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에
가로막혀서 어떻게 한반도의 전라, 충청 지역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요? 이
에 대해서 더많은 의견이 나올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정용석과 이중재의 논리로만 한정하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상
기해 주십시오. 가지 수가 너무 많아지면 일일이 상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
다.
삼국재중국설은 결국 우리가 알고있고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의 태반을 파괴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중차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학설이 그에 대해
서는 일부에 대한 조작 이외에는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는 이런 자세를 가리켜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