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실용성 1 (97/08/30) *..역........사..*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먼저 이 글은 온라인 상에서 작성되므로 오타와 글의 논지가 매끄럽게
정리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이점을 먼저 양해 구합니다.

고영준님의 의견은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고영준님이 생각하시는 역사에 대한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저에 대한 질문입니다.

고영준님이 생각하시는 역사란...

1. 모든 민족의 역사는 자기 이익에 맞추어져야 한다...
-> 이것은 현재 역사가들이 취해야 한다고 고영준님이 생각하시는 기준입니다.
2. 역사의 진리는 오직 힘이다.
-> 이것은 과거 역사가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기술되었다는 고영준님의 생각입니
다.

그리고 제게 질문하시는 것은 "역사라 무엇이고 우리는 왜 그것을 알아야 합니까"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의 제목으로 <학문의 실용성>이라고 달아 놓은 것처럼
고영준님의 생각과 질문은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고영준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는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이런 논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사마천 역시 <역사>가 <정의>에 부합하지 않음을
괴로와 합니다. 왜 대학자인 안회는 굶어죽고 대도둑인 도척은
호의호식했는가를 고민합니다.

오늘 전국의 신문에는 일본인 역사가의 승리가 눈부시게 보도되었습니다.
이 일본인 학자가 일본 정부보다 더 <힘>이 있습니까?
링컨은 많은 사람들을 잠깐 속이기는 쉽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나 모두 정부의 위촉을 받아서 역사책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역사는 꼭 <사서>를 통해서만
알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역사가들이 자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해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게 본다면 하워드 진은 <미국사>를 기술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앙드레 소불은 <프랑스대혁명사>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힘>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영준님이 말씀하시는 <이익>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아이가 싫어합니다.
계속 가르치는 것이 아이에게 <이익>이 됩니까? 아니면
그만두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이익>이 됩니까?

거짓말을 써서라도 고대사를 찬란하게 꾸미는 것이 <이익>이 됩니까?
아니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이익>이 됩니까?

제 처는 대학을 다닐 때 주로 <언어학>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래아가 아로 변하든 오로 변하든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지?"
그런데 이런 질문은 어디에나 통용이 됩니다.
"개구리가 번식하는 500가지 방법을 우리가 알아낸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지?"라든가
"5차방정식을 푸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공식을 만들었다고
우리 삶에 무슨 도움이 되지?"
또는
"세상에 0.1초도 존재하지 못하는 108번째 원소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지?"
여기서 더 나아가면
"시간낭비만하는 이따위 만화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만명의 사람 중 한두사람 밖에 이해가 안되는 이런 추상화를
왜 그리지?"
이런 식이 되고 맙니다.

한국사회에서 고등학생이 주기율표를 외우고 미적분 공식을 암기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직접적인 대응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좋은 대학>입니다. 따라서 문과에 진학한다면
<과외>를 하지 않는 한 잊어버리는게 상례입니다.
물론 <과외> 역시 본래의 학문적 의미가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학문의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란
<법대-판관>, <경제.경영-취업>, <영문-취업>, <전산-취업>,
<의대-의사> 등등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저처럼 사학과를
지망한다고 말하면 12시간을 담임과 논쟁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도 이런 문제에 부딪칩니다.
역사학이 실용적인 학문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정의는 당장 눈앞에 그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1대1 대응이 가능한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대학교수들이 학문적 연구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고
언론에 공적을 나타내기 쉬운 것들만 찾아다니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역사학에서는 <실용성>을 국민을 계도하는데 두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 그것이 <이익>일까요?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론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이 국가의 총잡이가 되어서
"국민이여, 이 길이 바른 길이다. 이 길로 매진하라!"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탁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사도 왕윤은 동탁의 시체를
길거리에 내던져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 앞에서
곡을 한 사람이 있어서 잡혀왔습니다. 그는 후한의 유명한
학자인 채옹이었습니다. 동탁은 채옹을 여러차례 만나
그를 높은 지위에 앉혔고 채옹은 그 정을 생각해서
곡을 한 것입니다. 왕윤은 노발대발해서 채옹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채옹은 죽는 것은 국법을 어겼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 쓰고 있는 역사서를 마무리 짓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왕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제께서 사마천을 불쌍히 여겨 목숨을 붙여주었더니
사마천은 황제를 모독하는 글을 남겼다."
채옹은 끌려나가 참수를 당했습니다.

사마천이 한나라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기술한 것일까요?

우리는 분명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실생활에 <실용>적으로 이용됩니까?
어떻게 이용됩니까?
우리는 고교 때 온갖 교과목을 배웠습니다.
그 중 실용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가령 구개음화와 자음접변을 모르면 우리는 한국말을 할 수 없습니까?
우리가 15세기 국어를 모른다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습니까?
왜 이런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대학 시절에 교양과목을 여러가지 듣습니다.
이 과목들은 실용적입니까?
이런 과목들에는 <힘의 정의>가 실현되지는 않습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나온 시간의 자취입니다.
인류의 역사로 한정지어 말한다면
그것은 인류가 지나온 과거입니다.
역사학이란 바로 지나간 시간의 자취를 살피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왜 그것을 알아야 합니까?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알고싶어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자 할 뿐입니다.
달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달에 우주선을 보냈습니다.
별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별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언어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언어를 연구했으며
수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사람들이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용>이라는 말이 가진 함정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서 빠져나올 때 사람은 자유로와집니다.
공자는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일이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대해서 말한 바 있습니다.
달을 보려면 달을 봐야지, 그 손가락 끝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글을 마치려다 보니 제 글이 조금 훈계조인 것 같아
민망합니다. 이 글이 고영준님께 제 입장을 잘 전달하였기를
바랍니다.

마포에서


덧글

  • Agrippa 2006/05/29 04:02 #

    바보들의 계도에 도움이되는 무척 훌륭하고 정당한 훈계로 스스로 민망해하셔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 AMDG 2020/06/27 18:24 #

    20년도 더 된 글인데 너무 좋은 글입니다. 좀...감동...
  • 초록불 2020/06/28 10:31 #

    아, 이런 옛날 글을 읽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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