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는 분서를 했는가? (96/08/23) 만들어진 한국사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최근에 한시적으로 제 손에 왕조실록 CD가 있어서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
해온 세조대의 <고대사서 분서> 사건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러
한 주장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왔지만 실제 실록의 기록은 들어보이지
않은채 세조가 수거하여 불질렀다는 <주장>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럼 먼저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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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D-ROM 제1집

Copyrightⓒ 1995 Seoul System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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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007 03/05/26(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
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 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
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
(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
(磨 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
(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
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
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원전】 7 집 200 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재정-진상(進上) / *역사-편사(編史) /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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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D-ROM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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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종 007 01/09/18(무술) /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
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表訓天
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이성모하사량훈(
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옥거인(玉居仁)·설업(薛業)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
鏡數)》 및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
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
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
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
(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
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
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원전】 8 집 417 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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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D-ROM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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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 001 00/12/09(무오) /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
(表訓天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리성모(
智異聖母)》·《하소량훈(河少良訓)》,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
(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
》·명경수(明鏡數)와 무릇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 등 여러 서
책(書冊)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
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도선참기(道銑讖記)》는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
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8 집 444 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이상의 3대목은 왕조실록에 나타난 이들 책자와 관련된 모든 부분입니다.
불행히도 위 문장에는 책 제목과 관련하여 오역이 조금 있으므로 제 생각
대로 바로 잡아보겠습니다.
성종 대의 글을 보면 <명경수> 이상의 9책이라고 했으므로 그 위에 나타
난 책은 8책이어야 합니다만 10가지 종류가 나열되어 있으며, 세조 때 나
눠 놓은 분류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세조의 유시에는 <표훈삼성밀기>가
있는데 이로 보아서 <표훈천사>, <삼성밀기>는 두권의 책이 아니고 <표
훈천사삼성밀기>의 한 책입니다. <지리성모>와 <하사량훈>도 <지리성
모 하사량훈>의 한 책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8책이
되어 <명경수>와 합해 9책이 됩니다. 또한 세조의 유시에도 <도증 기 지
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라는 부분은 <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의 두 구절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태산(文泰山)·왕거
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
여 권(卷)>이란 대목의 삼인기록, 수찬기소 1백여 권>은 <삼인 기록(三人
記錄)의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으로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예종 때 유시에서는 <지이성모하사량훈>을 <지리성모 하사량
훈>으로, 옥거인은 왕거인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지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위에 열거된 책을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를 수거하겠노라는 의지 표
명은 있지만 어디에도 불태운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유교 사상에 있어서
<분서>라는 말은 진시황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폭군의 대명사와 같은 것
인데 확인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세조를 <분서>의 군주로 몰아세운 것
은 부당한 것입니다. 왜 민간에서 이런 책을 읽지 못하게했느냐? 그것 자
체가 구린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니냐? 못읽게 수거한 것은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론을 펴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
해서는 이미 기호철님이 답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천주교의
책들조차도 압수하여 보관했지, 불태우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책을
수거하려 한 이유에 대해서 후대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이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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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D-ROM 제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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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 035 09/08/26(갑술) / 곽처웅의 일로 남사고에 대해 묻고 잡술에
관한 방서를 금지하는 문제를 의논하다 >>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였다. 제조(提調) 윤순(尹淳)이 수련(修鍊)의
뜻으로 진언(進言)하기를,
“수련가(修鍊家)의 웅경 조신(熊經鳥伸)의 말과 같은 것은 비록 정경(正
經)은 아니나 그 가운데 또한 간요(簡要)한 법이 있습니다. 청컨대 고치(叩
齒)와 얼굴을 문지르며 침을 삼키고 코를 문지르는 너댓 가지를 오랫동안
실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잘 잊어 버려 행하기 어렵다고 답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국청 죄수(鞫廳罪囚) 태진(太眞)의 초사(招辭)가 자백한 것에 가깝다.
그가 이른바 남사고(南師古)란 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윤순이 말하기를,
“곧 명종조(明宗朝) 때 사람으로서 천문(天文)·지리(地理)에 모두 통달
했다고 고금(古今)에 이름이 나서 이인(異人)으로 일컫고 있습니다.”
하고, 도제조(都提調) 서명균(徐命均)은 말하기를,
“남사고의 비기(秘記)가 세상에 전해지고 행해지자 세상 사람들이 말을
덧붙이고 부회(傅會)하여 와전(訛傳)된 것이 많습니다.”
하였다. 윤순이 말하기를,
“대개 호남(湖南)에서 신승(神僧) 의상(義相)과 도선(道詵)이 났기 때문
에 남방(南方)에 그의 방서(方書)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혹은 풍수(風
水)로 전하고 혹은 추명(推命)으로 전하며 혹은 상술(相術)로 전해져 지난
번 송하(宋河)의 무리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승도(僧徒)가 더욱 혹신
(惑信)하기 때문에 태진(太眞)과 같은 자가 있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신라에는 도선이 있었고 우리 나라에는 무학(無學)이 있어, 나라의 운
수가 길다느니 짧다느니 하는 말이 있었다. 대개 신라와 고려는 불교를 숭
상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초엽에도 오히려 여풍(餘風)이 있었고, 중엽 이
후에서야 비로소 물리쳐 금지하게 되었다.”
하였다. 서명균이 말하기를,
“고려는 상하가 오로지 불도를 숭상하여, 그 비기(秘記)에 고려는 5백
년이고 조선(朝鮮)은 8백 년이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고, 부제조(副提調) 윤양래(尹陽來)가 말하기를,
“도선이나 남사고를 물론하고 비기로써 인심을 요혹(妖惑)시키는 자는
모두 처참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승지의 말이 진실로 옳다.”
하였다. 윤순이 말하기를,
“호남의 감사(監司)가 만약 도내의 잡술(雜術)에 관한 여러 방서(方書)
를 죄다 거두어 금지시킨다면 저절로 종식되어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조현명(趙顯命)도 이러한 의논을 한 적이 있었다.”
하였다.


위의 구절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 세대도 이런 시기를 겪었습
니다. 맑스에 관한 모든 책이 금서가 되고 반입도 되지 않던 시절이 있습
니다. 이때에 한 교수는 심지어 막스 베버의 책도 그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의 근본을 치유하지
못한채 책자를 말살시켜서 논의 자체를 없애버리려 하는 것이 위정자들의
손쉬운 생각이라는 점이 위 대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조선왕조 초창기에 위와 같은 책을 거둬들이려 한 것도 영조 때의
일과 별다를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남일사기 등등의 책
은 천문지리, 역술에 관계된 것으로 우리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없는 책인
데, 문제는 고조선 비사, 대변설, 조대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조선 비사
는 그 이름에 고조선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변설과 조대기는 환
단고기 등의 책에 인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에 열거된 책들은 그 이름이 열거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조
정에는 이미 가지고 잇던 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그것을 수거하기
위하여 내린 유시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증 문제의 세 책은 예종과 성
종의 유시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세 책이 다른 책들과는 성격이 다른 책이라는 것이 그것
입니다. 이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좀더 깊이 파고들기에는 불행히도 제가
아는 바가 적습니다. 여기서는 다만 이 정도로 그치며, 세조 및 조선 왕들
이 <분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더구나 왕조실록에 적혀 있는 바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기로 합니다.
다만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인용된 <조대기>의 의문점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사 게시판에 제가 상술한 바 있으며, 알고 싶으신 분들은 제 글을 읽
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위에 대한 책들에 대해서는 한국사 시민강좌 2집 조인성 교수의 글에
도 잘 나타나 있으므로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포에서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지난 번에 글을 쓰면서 세조가 고기를 수집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쓰
면서 더 공부를 한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조선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때문이
라는 것이 그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권에는 이 부분
에 대해서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 책을 사놓고 가끔
필요한 부분만 읽었기에 비롯된 일입니다.

102쪽에 나와있는 총론적인 설명 부분을 먼저 옮겨 보겠습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서 더욱 이탈하여 고대사를 더욱 긍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는 세조대에 다시 이루어졌다. 세조의 주도
하에 추진된 <동국통감>의 편찬이 그것이다. 세조는 신비주의적 세계관
으로 씌어진 각종 고기류들을 수집하여 웅장하고 자랑스러운 상고사를
재구성함으로써 잃어버린 만주의 고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신화
로 분식된 고대 제왕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이는 그가 현실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부국강병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성리학적 명분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자신의 쿠데타적 집권과정을 옹
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유신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습니
다. 지금 전해지는 <동국통감>은 <신편 동국통감>으로 성종 16년(1485)
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세조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성리학적 명
분론에 입각한 역사서로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성종 15년에도 <동국
통감>이 편찬되었는데 이것을 <구편 동국통감>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좀더 세조의 뜻이 반영되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이것도 전해지지 않습니
다.

세조는 4년(1458)에 동국통감의 편찬을 지시했으며, 이에 앞서 3년에 <
고기>들을 수집하라는 명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155쪽에 나오는 내
용을 옮겨 봅니다.

이때 수합령이 내려진 서책은 대개 민간신앙이나 도교, 또는 풍수사상
등과 관련된 설화, 전설, 기담, 예언 등을 적은 고기류이고, 시대적으
로는 주로 상고사에 관련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여기에 포괄
된 고기류는 단군조선 중심의 역사를 다룬 서책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것과 동국통감의 편찬목적을 결부시켜볼 때 세조는 고기류를 널리 수합
하여 기존에 소홀히 하였던 신화나 전설등을 자세히 동국통감에 수록하
는 한편, 상고사를 단군중심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세조에게 이런 역사의식을 갖게 한 사람은 양성지라고 합니다. 양성지
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을 개탄하고 문과의
과목에 <삼국사기>, <고려사>를 포함시키게 하고, 태백산, 묘향산, 구
월산에 단군의 치제를 지내도록 주장하는 등 민족적인 역사인식에 앞장
섰습니다. 세조는 그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고 합니다. 145쪽의 글을 옮
깁니다.

세조는 삼국사기나 동국사략 등 삼국시대에 대한 기왕의 사서가 소략한
점을 늘 개탄해왔다. 게다가 이들 고대사서는 한반도 중심의 고대사를
체계화함으로써 축소된 반도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세조는 삼국
사기에 토대를 두되 각종 고기류를 가지고 이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고
기류는 군주의 권위를 신성화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일체감을 조성하
며, 나아가 잃어버린 요동을 회복하는데 심리적 자극을 주는 효과가 있
다고 판단되었다. 즉 고기류는 세조대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세조의 노력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유생들의 철저한 반
대에 부딪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느끼게 된 것이 많습니다.
이글은 역사를 살필 때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얼마나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어떤 사례 같습니다. 세조는 역사편
찬을 위해서 고기를 수집했는데, 후대의 어떤 이들은 세조가 그 책들을
불태워 없애기 위해서 수집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정반대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한 것에는 많은 선입관들이 들어있다는 것은 쉽
게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역사학이라는 것은 선입관과의 전쟁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마포에서


덧글

  • matercide 2010/08/21 16:05 #

    그랬군요. 조선왕조실록에서 왜 고대사서를 모으려는 기사가 실렸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 세조가 수집했던 사료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구 동국통감과 같은 운명이 되지는 않았겠죠.
  • 초록불 2010/08/21 16:14 #

    전해지지 않습니다.
  • matercide 2010/08/23 11:16 #

    이런...제길... 구 동국통감이라도 전해진다면 중화사관에 얼룩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텐데... 모화주의적인 조선의 유학자들의 작태를 보면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중국으로 가 버려!!!"
    안 그래도 이러한 모화주의,성리학적 명분론(이 명분에서 중국이 아닌, 화하華夏가 아닌 겨레와 나라는 모두 제후나 대부죠.)이 일제가 퍼뜨린 유언비어인 "한국부용론"이 한국인에게 잘 먹히게 만들었고 중국인들은 한국이 옛날에 조공하고 책봉받은 민족이라고 업신여기는데... 아 자존심 상하네요.
  • matercide 2010/08/23 11:17 #

    아참 초록불님 제가 님이 [신찬성씨록]을 인용한 것에서 고대 일본의 성씨제도를 댓글로 기술했는데 보셨습니까?
  • 초록불 2010/08/23 11:55 #

    보았습니다.

    모화적인 유학자들이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혐의를 덧씌운 일제의 주술에서 벗어나서 글을 보면, 국제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글로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이 문제는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 쉽지 않군요.
  • matercide 2010/08/23 23:19 #

    관련없는 얘기입니다만 이제 8월 29일이 머지 않았습니다. 국권피탈일 100주년(이런거에 주년이라는 말이 어울린지 모르겠지만)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습니다. 저만 해도 겨우 몇 년 전에 알았던 사실입니다. 국권피탈조약 제1조에서 대한大韓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는 영구히 가진 존재는 "천황"입니다. 즉, "천황"이 식민지배의 주체이죠.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사람 대부분은 천황의 존재를 모르거나 알아도 힘 없는 입헌군주로만 알고 있습니다.(그건 광복 뒤거늘). 그리고 "일본황족"은 조선-대한제국을 지배한 씨족이고 전세계에서 잔악한 귀축鬼畜행위를 저지른 족속입니다.(우서사건 때 대만사람을 학살한 키타시라카와노미야北白川宮 요시히사能久친왕親王과 남경대학살의 진짜 지휘자이면서 이와이 미츠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살아남은 아사카노미야朝香宮 야스히코鳩彦왕王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사교과서에서는 "천황"이 식민지배&전쟁범죄의 수괴라는 것도 "일본황족"의 죄상도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교과서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빠진거와 다를게 없습니다.모두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초록불님이 이것을 주제로 글을 쓰기를(제가 쓰고 싶지만 딸려서) 바랍니다.
  • 초록불 2010/08/23 23:52 #

    천황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의 책을 참고 해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http://orumi.egloos.com/3448805
  • 아슈 2011/11/30 13:42 #

    너무 자기생각을 적으셨군요;;
    무슨 추측이 사실인 마냥;;

    금서목록중에 하나인 조대기는 북애선생이 규원사화를 쓰기전 조대기를 참고하여 썼다고 첫면에 써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조대기등을 보고 썼다고 되있구요,,

    예종실록에선 위 금서목록을 소지하면 능지처참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딱봐도 중화사상에 거스르는 내용이 있으니 금서로 거둔걸로 추정이 되는군요;;


    그리고 무슨 세조가 성리학적 역사관을 탈피하여, 단군중심으로 역사서를 다시 집필하려고 했다고 근거도 없이 말씀하시는거죠??

    제가 봤을땐 님은 환단고기보다 말도 안되는 소리르 짓걸이십니다.

    그리고 금서목록의 모든책이 현재 전해지지도 않고, 어떤내용인지도 모르는걸 봐서
    신화,설화,야사를 묶은게 아니라 중화사상에 위배되고, 단군조선 중심으로 써진 참역사서일 가능성이 훨신 크다고 봅니다.

    아무튼 님의 근거없는 말은 잘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11/11/30 14:16 #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다고 써놓고 참역사서일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없는" 댓글 잘 보았습니다. 근거가 궁금하신 부분은 위에 책자도 소개해놓았으니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초록불 2011/11/30 14:23 #

    그리고 다음에 댓글을 달려면, 예종실록에 있다는 해당 구절을 옮겨주신 뒤에 댓글 달기 바랍니다.
  • 아슈 2011/11/30 18:22 #

    예종 1년(1469년)에 내려진 금서 조치 (《예종실록(睿宗實錄)》 1469년 9월 戊戌日)

    수거대상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천사(表訓天祠)》, 《삼성밀기(三聖密記)》, 《도증기(道證記)》, 《지리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 옥거인(玉居仁) 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권》, 《호중록(壺中錄)》, 《지화록(地華錄)》, 《명경수》 등의 천문·풍수·음양에 관련된 서적들
    수거 방침
    집에 보관하고 있는 자들은 서울에서는 10월 말까지 승정원에 바치고 지방의 가까운 도에서는 11월 말까지, 먼 도에서는 12월 말까지 기한을 정하여 살고 있는 고을에 바치게 하였다.

    진상조건
    책을 바친 사람에게는 … 두 품계를 올려주며 상을 받겠다고 지원하는 사람과 관청노비, 개인 노비에게는 무명 50필을 상으로 준다. 감추어 두고 바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신고하게 하고 신고한 사람은 위 사항에 따라 표창할 것이며 감춘 사람은 참형에 처할 것이다.
    성종 즉위와 함께 내려진 조치 (《성종실록(成宗實錄)》 1469년 12월 戊午日)

    《주남일사기》 등 9종과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도선참기(道詵懺記)》등 2종을 포함하여 11종의 서적을 이전과 같이 수거할 것을 8도관찰사에게 지시하였다. 다만 이들 서적 외에 천문·풍수·음양 등으로 총칭된 서적의 수거는 중지하고 수거된 것도 돌려주도록 지시하였다
  • 초록불 2011/11/30 20:21 #

    예종 때 일은 이미 이 포스팅에 있는 것입니다.

    위에 말씀하실 때는 "예종실록에선 위 금서목록을 소지하면 능지처참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지요? 이런 식으로 슬그머니 과장법을 쓰는 것을 역사학에서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잘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 초록불 2011/11/30 20:27 #

    한가지 더.

    왜 멀쩡히 본 포스팅에 있는 실록 구절을 위키백과에서 긁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글을 읽긴 읽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 아슈 2011/11/30 22:08 #

    과장한거는 제가 착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함이 없는건, 금서목록 소지시 참형에 처한건 사실이지요...

    님의 생각을 적으신 위글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당시 명나라와 중화사상에 위배되는 내용은 용납이 안된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삼성기,조대기,고조선비사등등 배달결례의 강성한 기록을, 이조왕실이 용납할수 없었던게죠,,,물론 그중심에는 사림파도 있습니다.
  • 초록불 2011/11/30 22:24 #

    당시 명나라와 중화사상에 위배되는 내용은 용납이 안된시기 -> 근거는요?

    그러니까 삼성기,조대기,고조선비사등등 배달결례의 강성한 기록 -> 근거는요? (결레는 겨레의 오타겠지요...-_-)

    이조왕실이 용납할수 없었던게죠 -> 근거는요?

    물론 그중심에는 사림파도 있습니다. -> 근거는요?




    이 짧은 댓글의 네가지 주장에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냥 아슈님이 상상하는 역사관에 의해서 - 즉 위 포스팅에서 지적하는 "선입관"에 의해서 재단한 결과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죠.
  • 초록불 2011/11/30 22:26 #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금서 목록을 소지하면 참형이 아니라 그것을 숨기면 참형인 겁니다. 즉 왕명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으면 참형에 처한다는 겁니다. 이런 차이를 인지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일로 참형에 처해진 사람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 아슈 2011/12/02 19:37 #

    초록불님 말장난 하지마시죠?

    숨기면 참형이란말이 국가에 안내고 소지시 참형이란 말이랑 똑같은거 아닌가요?
    생각을 해보시죠

    당시 이씨조선이 명나라에 사대하는건 개나소나 다 아는내용입니다.

    님이 위에 쓰신 금서목록이 이야기,설화,신화일 가능성이 있다 (근거없음)

    세조가 자주적으로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 금서목록을 제정한 것이다 (근거없음)

  • 초록불 2011/12/03 10:06 #

    근거없음에 대해서 물어본 말에 대한 대답은 어디 있을까요?
  • 아슈 2011/12/02 19:42 #

    그리고 이씨조선이 사서를 수정하고, 왜곡한걸로 추정한것도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고려사도 원래 있던 고려실록을 수정,보완 했습니다.

    세종실록 기록을 봐도 고려왕이냐 고려황제냐 등등 호칭문제 가지고도 서로 난리를 쳤습니다.

    또한 중종실록에 보면 삼국사기를 2번에 걸쳐 수정한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내용중 많은 부분이 당서나 중국사서의 기록을 고대로 배낀 부분도 있지요...

    그걸봐서 이씨조선이 그당시 있었던 역사책을 크게 훼손하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마에스트로 2011/12/02 22:23 #

    조선이 사서를 왜곡했다? 정황논리군요. 그리고 조선 시대 수거령이 떨어진 책들의 이름을 분석해 본 결과 거의 다 고담이론에 해당되는 내용들입니다. 고조선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마에스트로 2011/12/02 22:24 #

    그리고 세조의 북방정책, 천신 제사 관련 기록을 보면 조선이 당시 명에 대고 큰 소리 뻥뻥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미국에 대고 조선처럼 큰 소리 뻥뻥 치던가요? 군사적 위세를 조선처럼 그렇게 부렸던가요?
  • 초록불 2011/12/03 10:08 #

    근거를 제시하고 이야기를 좀 해보시죠. 어디에 뭐가 있다, 라고 하면 제가 찾아봐야 하나요? 아니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야 하나요?

    제가 늘 이야기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근거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논거를 푸는 것을 도통 보지 못하니,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 아슈 2011/12/03 08:01 #

    고담이론은 님 생각이시고 근거가 없죠^^
    세조때 걷은 고조선비사, 조대기, 삼성기등은 역사서입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서라고 인정하고 보관중인 '규원사화'는
    조대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써있습니다.

    현재 이씨조선때 걷어진 금서들이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죠,,

    그나마 환단고기가 삼성기,대변설등 금서목록을 참고하여 썼다는데
    국사학계는 못믿겠다고 아이에 연구조차 할 생각도 안하니;;
    뭐 저도 환단고기가 전부 사실이라고 믿지 않지만, 삼성기나 대변설같은 부분은 참고할만하다고 봅니다.

    특히 얼마전 삼국유사의 원본이 환인이 아니라 환국이라고 적혀져 있는것이 확인됬고
    원효결서, 남사고의 격암유록등을 자세히 찾아보면 환국,배달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책들을 구라인지 진짜인지 간에 연구좀 하자는데
    왜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사학계 대부분이 이병도가 만든 사학을 배웠고
    이병도의 제자인 이기백의 제자들이 현재 국사학계에 앉아 있고,

    이병도는 국사교과서와, 근현대사 교과서에 식민사학에 맞선 실증주의 사학자였다
    라고 기록 되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미 이병도를 친일사학자로 규정했고, 여러차례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을한 기록을 갖고 있죠
  • 초록불 2011/12/03 10:26 #

    지금까지 아슈님의 댓글을 보면 아슈님은 뭔가를 알기 위해서 제게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동의하기를 바라고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그런 짓은 그만둬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주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하시면 됩니다. 왜 남의 블로그에 와서 자기 생각이 맞다고 우기는 일만 반복하시는지요?

    1. 규원사화 : 어느 역사책에 이러이러하다, 라고 적혀 있으면 그게 사실인가요? 그럼 왜 아슈님은 이병도의 역사책을 믿지 않습니까? 규원사화의 정체에 대해서는,

    http://orumi.egloos.com/3519105

    에 이미 기술한 바 있습니다.

    2.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연구할 생각도 안 한다... 참 지겨운 이야기죠. 학계는 연구를 했고 위서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http://orumi.egloos.com/2626150

    3. 삼국유사의 환인, 환국 : 이것도 지겨운 떡밥이죠.

    http://orumi.egloos.com/251832
    http://orumi.egloos.com/4296932

    4. 이병도의 영향력에 대한 과대평가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죠. 이병도 본인이 제자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아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인데... 더구나 이기백 선생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조카뻘 되는데 어디다가 친일파 잣대를 들이대나요? 이병도 책을 본 건 있나요?

    http://orumi.egloos.com/4209547

    자, 국사교과서 공청회장에서 유사역사학 쪽에서 이병도 말 좀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현장입니다.

    이병도가 단군에 대해서 한 이야기.

    http://orumi.egloos.com/3583416

    이병도가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있었던 것은 사실. 그걸로 비난을 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학술논문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아슈님은 자신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아는 것을 왜 역사학 박사들은 모른 척하는 것일까라고 생각을 좀 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이야기를 다했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들만 소중하게 껴안지 말고, 다른 글들을 좀 "읽어"보세요. 최소한 저는 유사역사학 비판을 해도 안 읽고 쓴 글은 없습니다. 제 방에는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이 백여 권이 넘게 쌓여 있습니다. 아슈님은 역사학자가 쓴 책을 얼마나 읽어보았나요?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 마에스트로 2011/12/03 13:53 #

    으이그. 고조선비사의 사(詞)가 역사(歷史)할 때 사(史)인 줄 아나? 고조선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시라고 해석해야 하건만...... 추측하건대 내용은 고조선의 건국신화나 유교적 가치관과 맞지 않는 남녀간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때 엄청 비판한 고려 시들이 보통 그런 종류의 시다. 고조선의 시들을 강제로 수거하도록 했다면 그런 종류의 서적에 거두었을 것이다. 국사학계가 이병도, 이기백을 이어? 장담하건대 이미 우리 학계는 그들의 수준을 뛰어넘었고 그들보다 연구 자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설사 이병도가 친일파였다고 해도 이미 학계는 그의 설을 따르지 않으며 그를 뛰어 넘었다.

    저자는 고담이론이 근거가 없다했으나 난 이미 먼저 리플에서 근거를 제시했다. 이름을 분석해보았을 때라고. 악령에 들린 자 같으니라고.
  • 아슈 2011/12/05 09:06 #

    마에스트로/// 고조선비사 말고도 조대기,대변설,삼성기등은
    어떤내용인지 알수가 없죠 ^^ 그것을 이야기묶음집,신화,설화등으로 보는 것은
    자기가 상상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 국사학계조차 식민사학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국사책이 이병도,이기백등에 의해 써진게 사실이고,
    이병도도 죽기전에 자기가 역사왜곡에 앞장섰다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아직까지 식민사학에서 못벗어나고, 중화사상에 벗어나지 못했는데 뭘 뛰어 넘습니까?

    초록불//님의 말이 틀렸으니까 님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거지요...
    근거없이 금서목록들의 책이 역사서보단 설화라니 등등

    친일기록과 역사왜곡에 앞장섰던 이병도가 국사책엔 식민사학에 맞선 학자라고 나오는데
    그부분이 잘못됬다고는 말은 하지 않으시군요 ^^
    그럼 민족문제연구소의 말이 틀렸다는건가요?
    그리고 이병도가 말하는 단군 봤지만, 역시 식민사학에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 초록불 2011/12/05 10:37 #

    1. 국사학계가 식민사학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한 근거는요? 그리고 여기서 식민사학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2. 현재 대부분의 국사책이 이병도, 이기백에 의해서 쓰였다는 근거는요?

    3. 이병도가 죽기 전에 자기가 역사왜곡에 앞장섰다고 말한 근거는요?

    아슈님은 아무 근거도 없이 떠도는 소문에 의거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차례 아슈님의 말이 무근거하다고 이야기하는데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고 계속 말을 돌리고 있습니다.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왜 근거를 찾을 수 없는지 생각을 좀 해보시기 바랍니다.
  • 아슈 2011/12/06 08:30 #

    1. 이병도의 역사왜곡에서 시작됬으니까요,,,국사편찬위원회조차
    이병도,이기백이 현재국사교과서에 대부분을 만들고 연구했지 않습니까?

    2. 국사편찬위원회에 이기백의 영향이 컸단걸 모르시는건 아니겠죠?

    3. http://blog.daum.net/happy353/375

    1986년 조선일보에서 대서특빌됬던 이병도 기사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변복하고, 일제시대때 역사가 많이 왜곡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최태영박사에게 자신이 조선사편수회때 역사를 왜곡했고,
    단군조선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고 돌아가셨죠....

    현재 고대사만큼은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때 쓰여진 국사나 지금의 국사나
    별차이 없단 말입니다.
  • 초록불 2011/12/06 10:47 #

    1. 이병도가 뭘 왜곡했는지 근거를 대어보시라니까요. 그리고 그 왜곡이 식민사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은 해봤나요? 아니, 식민사학이라는 게 뭔지 알기는 하시는지요? 이병도의 책을 하나라도 읽어본 게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남의 말만 듣고 왜곡했다고 "믿고" 계신 거죠?

    2. 이병도와 이기백이 국사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갖고 계신지요? 이기백이 국편위원을 사퇴하는 것이 1981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이죠. 그 사이에 교과서는 몇 번 개정되었을까요? 남이 하는 말을 잘 "믿으시는데" 왜 제 말은 안 믿으세요? 그 잣대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 맘에드는 것만 믿겠다? 그렇다면 여기에 댓글 달 필요가 없겠지요? 맘에 드는 것만 믿으면서 사세요. 안 말립니다.

    3. 저는 글을 다 읽어본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저 글을 안 읽었겠어요?

    http://orumi.egloos.com/2462275

    위 글에서 제가 잘 설명해놓았습니다. 아슈님과 달리 저는 모든 부분을 검토합니다. 불리하게 보인다고 띄엄띄엄 읽지도 않고 없는 말을 지어내지도 않습니다.

    이병도의 학설은 그의 초창기부터 말년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됩니다.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http://orumi.egloos.com/3356771

    4. 현재 고대사 부분이 조선사편수회 때 쓰여진 국사와 별 차이가 없다고요? 그때 국사책을 읽어나보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역시 그냥 남이 하는 말을 덥석 "믿고" 계신 거죠? 어디 비교해서 별 차이없는 걸 증명한 근거를 좀 가져와 보시죠.

    역사학은 의심하는 학문입니다. 그냥 달달하게 들린다고 덥석덥석 믿지 말고 의심 좀 해보세요. 제말도 의심하고 다른 사람 말도 의심하고. 공평하게 말이죠.
  • 초록불 2011/12/06 10:52 #

    초록불 2011/12/06 10:51 # 삭제
    하나 더 달아드릴게요.

    http://orumi.egloos.com/4652076

    이 포스팅을 보면 백남운이 "부족국가"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 용어를 놓고 역사학계가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병도가 만든 용어도 아니고, 이병도가 계승한 용어도 아니지만 우리 국사교과서에도 실려 있었고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사라진 용어죠. 고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논쟁아 있고 학설이 부침을 거듭하는데, 일제강점기와 지금 교과서가 거의 비슷하다니... 참으로 뭐라 말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 파랑나리 2012/11/08 20:52 #

    자 이제 세조의 정책에 반대했던 유생들을 썩어빠진 사대주의자라고 욕할 애들이 분명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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