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기록으로 본 삼국의 강역 (97/03/31) *..역........사..*



안녕하세요? 이문영입니다.

홍수와 가뭄 기록을 검토해서 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기로 합니다.

정용석은 신라에 홍수 기록이 있으면 백제에도 있어야 하고,
백제에 가뭄 기록이 있으면 신라에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반도는 좁은 땅이라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결론이 나오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음
과 같습니다.

1. 삼국사기에는 해당 국가의 전 홍수기록과 가뭄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2. 한반도의 한 지역에서 홍수가 나면 다른 지역도 홍수가 나고 한반도의 한지
역에서 가뭄이 들면 다른 지역도 가뭄이 든다.

그러나 위 두전제가 모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다만 증거가 없
이는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여 나온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먼저 아래글을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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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opyrightⓒ 1995 Seoul System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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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 080 30/07/15(갑술) / 경상도 지역 홍수에 대한 경상도 감사의 계본
내용 >>

경상도에 홍수(洪水)가 났다.
감사의 계본(啓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주(星州) 지방은 6월 8일부터 13일까지 비가 내려 홍수(洪水)가 났으며
주민 8명이 사태(沙汰)에 깔려 죽었습니다. 김해 지방은 6월 5일부터 11일까지
비가 내려 가옥 88채가 물에 잠겨 쓰러졌는데 한 사람은 집과 함께 사태에 깔
려 죽었으며 또 한 사람은 집과 함께 떠내려가다 죽었습니다. 밀양 지방은 6월
9일 홍수가 나서 부(府)의 동·서·남쪽 삼면의 들이 모두 물에 잠겨 벼가 많
이 상했고 가옥 42채가 떠나려갔으며 34채는 무너져 쓰러졌고 남아 있는 것도
모두 벽이 무너졌습니다. 양산(梁山) 지방은 6월 5일부터 10일까지 비가 내려
집 4채가 유실되었고 6채는 무너졌습니다.웅천(熊川) 지방은 6월 9일부터 큰
비가 내려 가옥 13채가 유실되었고 사람 3명이 빠져 죽었습니다.”

위 내용은 경상도에 홍수가 나서 경상감사가 올린 장계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시기에 전라감사는 아무런 홍수 피해를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선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단 말입니까? 중종 대의 기록을 모두 검토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중종 6년 8.11 경상도에 홍수
9년 8.20 전라도에 홍수
10년 6.13 평안도에 홍수
15년 7.29 경기도에 홍수
17년 7.28 평안도에 홍수
19년 7.13 함경도에 홍수
20년 5.21 함경도에 홍수
21년 6.22 황해도에 홍수
23년 9. 4 경상도에 홍수
30년 7.15 경상도에 홍수

경상, 전라, 경기, 충청 등에 동시에 홍수가 난 기록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
다. 이런 기초적인 조사도 하지 않은채 정용석 등은 버젓이 책을 내어 사람들
을 혼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아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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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opyrightⓒ 1995 Seoul System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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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061 15/08/04(갑신) / 내금위 사람들이 도목에 따라 전직되게 해 줄
것을 상언하다. 임금이 풍흉을 묻다 >>

내금위(內禁衛)의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상언하여 갑사(甲士)나 별시위의 예와
같이 도목(都目)에 따라 전직되게 해 주기를 청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태종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금위의 근시하는 군사는 특지로서 재능을
헤아려 서용할 것이요, 추천장으로 전직시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하시었
는데, 그 뒤에 의정 이원(李原)이 갑사도 오히려 현역으로 시위하는데 내금위
는 종전의 직명으로 근시하는 것이 미편하다고 아뢰어서, 이로 인하여 법을 정
해서 항상 현직을 받아 가지고 시위하게 되었는데, 이제 이렇게 상언하여 도목
으로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옛날에 창씨(倉氏)·고씨(庫氏)는 창고
지키던 아전의 자손이니, 이로써 보건대 옛적에는 종신토록 한 벼슬을 맡아서
윗사람이 재능을 헤아려서 탁용하였고, 지금도 중국에서는 역시 그러한데 우리
나라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여 벼슬을 받은 지 겨우 한두 해만 되어도 또 다른
벼슬을 희망한다. 이제 내금위는 모두 현역으로 시위하는데 비록 현역을 떠날
수는 없지마는 역시 그 인품의 재능 있고 없음의 여하에 있는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금년에 곡식들이 평안도에는 물론 감수되고, 경상도에도 가물어 말라붙고,
경기에는 홍수로 벼가 쓰러졌다고 하나, 금년의 수재 한재는 갑진년에 비하여
좀 덜한 모양이 다. 태종께서 풍양 이궁(豊壤離宮)에 계실 적에 내가 문안하러
가는데 홍수로 인해서 두어 밤을 지나서야 겨우 갔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금년
에는 반드시 흉년든다고 하더니 그 뒤에 다시는 비가 과히 오지 않아서 벼가
곧 며칠 아니 되어 무성하게 되었고, 다만 몹시 저습한 곳만 좀 감소될 뿐이었
으니, 사람의 말만으로는 그 풍흉을 꼭 알지 못하겠다.”
하매, 안숭선이 아뢰기를,
“금년의 밭곡식은 각도가 모두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자세히 물어서 다시 아뢰라.”
하였다.

【원전】 3 집 498 면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 / *인사-관리(管理) / *농업-농작(農作) / *
가족-성명(姓名) / *과학-천기(天氣)

위 글에 세종대왕이 "경상도에도 가물어 말라붙고, 경기에는 홍수로 벼가 쓰러
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아래 내용을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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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Copyrightⓒ 1995 Seoul System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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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 045 05/07/14(정묘) / 호조의 청에 따라 각도 여러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풍흉을 살피게 하다 >>

호조에서 아뢰기를,
“각도의 여러 고을에서 재상(災傷)을 당한 전토(田土)는 수령(守令)이 답험
(踏驗)하여 감사(監司)에게 보고(報告)하고 감사가 핵실하여 계문(啓聞)하면
경차관(敬差官)을 보내어 다시 살피는 것이 《대전(大典)》의 법인데, 수령이
스스로 답험하지 않고 감고(監考)에게 맡기며 감사도 두루 살피지 못하니, 이
때문에 등제(等第)가 알맞지 않아서 공사(公私)가 모두 그 폐해를 받습니다.
올해에는 각도의 가뭄과 홍수가 같지 않아서 겨우 산 하나가 막힌 곳에서 풍흉
이 매우 다르므로, 수령이 친히 살펴서 핵실하지 않으면 공가(公家)의 세입(稅
入)이 알맞지 않을뿐 아니라 백성도 그 폐해를 받게 될 것이니, 여러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친히 풍흉[損實]을 검사하여 장부를 비치하고 푯말을 세우게
하여, 감사·도사(都事)로 하여금 길을 나누어 친히 살펴서 사실대로 아뢰게
하고, 경차관을 보내어 규적(糾摘)하게 하되, 어긴 것이 있으면 신묘년의 수교
(受敎)에 따라 시행하게 하소서. 강원도·평안도·영안도 등은 아직 공법(貢
法)을 시행하지 않았으니, 전례에 따라 손실 경차관(損實敬差官)을 보내지 말
고, 수령으로 하여금 친히 살피게 하고 도사(都事)로 하여금 다시 살피게 하며
감사도 순행할 때에 친히 살펴서 사실대로 아뢰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9 집 129 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전세(田稅)

위 글에서도 "올해에는 각도의 가뭄과 홍수가 같지 않아서 겨우 산 하나가 막
힌 곳에서 풍흉이 매우 다르므로"라고 말하여 홍수와 가뭄이 지역마다 다르다
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검토하여 <삼국사기>의 가뭄, 홍수 관련 기사
를 분석하여 삼국이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
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정용석의 책에서는 가뭄, 홍수 외에
도 메뚜기 문제와 지진 문제, 황룡사 탑 문제를 거론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기
본적인 사료를 검토하지 않은데서 나온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용
석이 자신의 책에서 거론한 문제 중 저나 다른 분이 답변하지 못한 사항은 토
함산에서 3년간 산불이 났다는 것 뿐입니다. (모지악이 분화구라는 주장은 거
론할 필요성을 못느낍니다) 이 문제는 정용석 스스로 일부 사람들이 천연가스
의 분출이라고 말한다고 하면서 이런 주장은 엉터리라고 하고 있으나, 저로서
는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용석은 동책에서 경주 일대에 천연가
스가 나올 곳이 없다고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대서특필된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까지 내려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매장량이 경제성이 없
다는 등의 이유로 시추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잘아
시는 분이 있으면 글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이외에도 이현수님이 인용하신 <산해경>문제나 <자치통감>
문제 등에 대해서도 모두 반박이 올라와 있습니다.

마포에서

그 뒤에 화산에 대한 주장도 잘못된 것임을 증명했다. 아래 글을 참조하시라.
토함산 화산론의 허구
[DC역갤] 검은 구름과 불 타는 땅 - 고대의 서상(瑞祥)정치와 재이설(災異說) [무지랭이님의 글]

덧글

  • 지나가다 2007/06/21 14:17 #

    그래서...? 어느 구절이 같은해 같은달에 홍수와 가뭄이 따로따로 일어났었다는것을 증명하는건지요? 구체적으로 어느해 어느달 어느 지방과 어느 지방에 같은 때에 동시에 각각 가뭄과 홍수가 났었다는건지요? 동시에 홍수라...?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나온건지.. .. 동시에 홍수는 조선시대까지 갈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시대에도 여러번 있었는데요?
  • 지나가다 2007/06/21 14:21 #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가뭄의 피해는 4~6월에 극성이고, 홍수의 피해는 7~9월에 극성인데, 두번째 실록의 기록은 세종께서 어느달을 말씀하신 건지요? 혹시 1년을 통틀어서 결과를 말씀하신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지요?
  • 지나가다 2007/06/21 14:29 #

    "올해에는 각도의 가뭄과 홍수가 같지 않아서 겨우 산 하나가 막힌 곳에서 풍흉이 매우 다르므로"라고 말하여 지역마다 다른것은 잘 알겠으나, 역시 모호한 표현이군요. 또한, 가뭄과 홍수가 같지않다라는 표현은, 한때 가문때에은 어느곳은 심하게 가물고, 한때 홍수가 든때에 어느곳은 심하게 들었다는 말같군요. 이것이 동시에 어느곳은 홍수나고 어느곳은 가물었다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풍흉이 같지않다는 말을 가뭄과 홍수가 같지 않다라는 말과 혼돈하여서도 안되겟습니다.
  • 초록불 2007/06/21 14:41 #

    지나가다님 /
    트랙백을 거는 방법 - http://orumi.egloos.com/2745495
    내가 트랙백을 걸라고 하는 이유 - http://orumi.egloos.com/2663890
    블로그에서 덧글 방식 토론이 나쁜 이유 - http://orumi.egloos.com/1486729
    블로그를 통한 의사소통이란 무엇인지 알리는 글 - http://orumi.egloos.com/1486729

    왕조실록은 공개되어 있고, 원문도 볼 수 있으니, 직접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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