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97/03/18) 만들어진 한국사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1. 서론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님의 고대 천문학 관계 논문 3편(<단군시대 천문
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삼국시대 천문현상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 <일본
고대 일식기록의 분석>)은 일반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됩니다.
박교수님의 분석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이 연구에 의하여 일반인들에
게 <환단고기>의 신뢰도가 급상승하는 계기를 이루었으며, 최근 정용석 씨 등
을 중심으로 제기된 삼국이 중국대륙에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작용하게 되었
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상황을 크게 우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 박교수님의 논문을 읽지 못한 상황에서 언론 매체가 센세이
셔날하게 전달한 부분만을 확대해석하여 자신들의 주장에 편리하도록 이용하
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제가 작성하는 이글의 제목에 감히 <반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천문학이라는 학문에 무지한 저로서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이
기도 합니다. 저는 다만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 왜곡되어 자리잡은 허상에 대
하여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박교수님
의 논문 중에서 천문학과 관계없는 부분에 대한 반론과 천문학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문외한이 과감하게 던지는 의문으로 이 글은 구성됩니다.
이제 이 글을 풀어 가기 위하여 저는 이 세편의 논문에서 가정하고 있는 대전
제 3가지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대전제 3가지는 아래와 같습니
다.

대전제 1 : 자연현상의 기록은 쉽게 왜곡, 날조 되지 않는다.
2 : 고대 사서의 연대 기록은 오차가 없이 정확하다.
3 : 일식의 집결도가 높은 곳이 관측국가의영토다.

위의 대전제를 가정하여 박교수님은 단군시대에도 천문관측이 이루어졌다는
것과 삼국시대의 천문관측은 실제로 행해진 것이고, 따라서 삼국의 초기 기록
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과 초기 신라의 영토는 양자강 유역(보다
분명하게는 우한(武漢)일대)이었으며, 백제의 영토는 요서지방으로 나타난다
고 주장하고, 초기 일본의 영토는 남지나해와 필리핀 일대일 가능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단기고사에 대한 연대의 불확실성을 한국사 동호회 고대사 게시판
에서 <재야사서 비판>이라는 글을 통해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주장을 간략
하게 다시 설명하면서 본론을 시작하도록 합니다.

2. 본론
2-1. <단군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에 나타난 오류
<단군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은 현재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
는 <환단고기>와 <단기고사>의 천문관측기록을 검토한 것입니다. 이 검토의
결과 박교수님은 최소한 이 두 책의 자연현상 기록은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증
명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미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대전제가 성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이 대목에서 오해하실분이 있을까봐
말씀드립니다만 이런 문제를 박교수님도 이미 알고 계셨으며 해당 논문에 밝
혀두고 있습니다.

...단군시대에는 문헌의 연대에 오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록과 사실과의 비교가 어렵게 된다...

한편, 박교수님은 단기고사의 연대 계산을 아래와 같은 식으로 하였습니다.

...기자조선 시대는 1세 서여 기자가 25세 단군인 솔나 39년(BC 1112)에
건국하였으므로(단기고사) 이때로부터 각 기자의 재위기간을 빼어
연대를 계산하였다...

그런데 위와 같이 계산하면 <단기고사>의 기자조선은 역년이1097년이므로 위
만이 기자조선을 빼앗은 것이 BC 15년이 됩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
다. 위만이 기자조선을 빼앗은 정확한 연도는 사서에 전하지 않습니다만 BC
195-190년 중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연도를 계산하고 말고를 떠나
위와 같이 왕조의 연도가 부정확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있는 일식의 연대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박교수님의 논문 중 일식관계 기사는 3가지 밖에 남지 않습니다.
저는 또한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의 연대를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
적입니다. 역대 단군의 이름이 거의 동일하게 전하는 <규원사화>는 동일한 군
왕들의 역사를 단군세기보다 근 천년이 짧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상시 씨는
이점을 들어 <환단고기>는 위서이며, 단군조선의 역사는 <규원사화>에 올바르
게 전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은 <규원사화>
를 보고 억지로 잡아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따라서 이 안에 들어있는 연
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점은 역시 앞서 말한 제 글에 자세히 논증되어
있습니다. 다만 박교수님의 논문은 제 글과 같은 문헌비판적인 내용에 대하
여, 자연과학적인 증명을 시도한 것이기 때문에 제 글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
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는 <규원사화>는 벗어날 수 없는 위서가
되게 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를 떠나 저는 다섯가지의 자연현상 기록(오행성 집결과 조
수의 후퇴, 세번의 일식기록)으로 한 사서의 진실성을 규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회의적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단군조선의 개국연대에 대한 몇가지 논
쟁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 시대 연대의 논증은 사마천
역시 <사기>에서 절대 연도로 제기하지 못한 전설의 시대라는 점만을 여기에
부언합니다.

2-2.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에 대한 반론과 의문
2-2-1. 자연현상 기록을 통한 반론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에 의하여 박교수님은 초기
신라가 양쯔강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증명법이 이
용되었습니다. 하나는 평균식분이 최대인 곳이 일식관측국가의 영토라는 방법
을 통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삼국사기>의 홍수 기록을 분석하여 대략 서기
500년을 경계로 홍수의 발생 월수가 바뀌며, 500년 이전의 홍수는 양쯔강 일
대의 자연현상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당해 보이는 이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홍
수에 대한 분석을 통한 양쯔강 유역의 영역 설정이 잘못된 점을 말씀드립니
다.

일식분석을 통하여 지목된 우한(武漢)일대는 동 기간인 중국의 삼국시대에는
유표의 형주지방 중 그의 장남이 지키고 있던 강하라는 지역입니다. 뒤에 적
벽대전을 준비하는 유비가 군세를 보존하고 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
는 매우 상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다른 민족구성원이 이 지역에 머물러 있
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논리를 <식민주의 사관>에
물든 <제도권 사학>의 병폐로 몰아부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논리로는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반론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제가 내세우는 것은 박교수님과 같은 방법입니다. 즉 첫번째 대전제, 자연현
상의 기록은 쉽게 왜곡, 날조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합니다.

우한 일대는 온대습윤기후 지역으로 1월 평균 기온이 섭씨 0도와 10도 사이의
정중앙에 있는지역입니다. 이것은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는 지역이라는 뜻입
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500년 이전의 기상이변을 기록한 것들이 있습니
다.
남해 차차웅 19년(AD 22)에 11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이런 기록을 남길만큼 이변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초기 신라는 11
월에는 당연히 얼음이 어는 지역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물왕 33년(388)에도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 신라는 겨울에 눈이 오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탈해이사금 8년(64)에도 12월에 눈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105년 2월, 187년 10월, 192년 4월, 229년 10월에 큰 눈이 내린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아직 눈이 오지 않을 때거나 올 때가 지난 눈이 온 이
상현상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기록들을 보아도 신라의 위치는 눈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또한 박교수님이 조사의 근거로 제시한 강우량 도표를 보면 양쯔강 일대는 음
력 4-5월 간에 우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500년 이전의 홍수 기록
21건을 분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이 21건은 제가 <삼국사기>를 근거로 조사
한 것이므로 박교수님과 약간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이 수치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500년까지 신라는 33차례의 가뭄을 겪는
데 그것은 거의 3월부터 7월간에 포진하고 있습니다(2월에 2회 기록이 있습니
다). 즉 양쯔강 일대라면 우기여야 하는 곳에서 15년에 한번 꼴로 가뭄을 겪
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라가 양쯔강 유역에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500년 이후의 신라는 역시 근 500년간에 동일한 33차례
의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이 전후기 가뭄들의 해소는 물론 장마를 만나 해갈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전후 기록상 월별의 차이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제 추측으
로는 이것은 제방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눌지왕 13년(429)
에 矢堤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법흥왕 23년(536)에 영천에 청제가 건립됩니
다(영천 청제비). 이러한 기록과 비문을 근거로 볼 때 신라는 5-6 세기에 걸
쳐 제방을 통한 치수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2-2-2. 삼국사기 연대를 통한 반론
이제 박교수님이 갖고 계시는 두번째 대전제에 대하여 논하기로 합니다. 두번
째 대전제는 고대 사서의 연대 기록은 오차가 없이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그
러나 삼국사기의 연대를 단 1년의 오차도 없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
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첫째, 광개토대왕비를 통하여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광개토왕 조가 1년의 오
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삼국사기는 광개토대왕의 즉위를 392
년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광개토대왕 비문을 통하여 즉위년이 391년인 것
이 밝혀졌습니다.
둘째, 1995년 발굴된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사리감의 명문을 통하여 백제
위덕왕의 즉위년이 <삼국사기>보다 1년 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꿈이 담긴
한국 고대사 노트>, 이도학, 일지사, 1996).
이러한 기록들이 일식 기록의 연대를 변경하는 사례인지는 저로서는 뭐라 말
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연대의 절대성은 이로써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때는 일식기록이 없습니다만 위덕왕 때는 3개의
일식기록이 있으므로 정정된 연대에 의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 것인지 궁금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기록의 오차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시 삼국이 모
두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제는 간지로써 연도를 표시
하였으며, 고구려나 신라도 독자적으로 연도를 표기했습니다. 신라는 650년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여 소위 <국제질서>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이후의 기록은 연대의 절대성을 인정받는다고 하겠습니다.
여담격이지만 문무왕 대인 674년 역법을 개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효소왕 대
인 700년에 寅月을 다시 정월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674년에서
700년간 월 표시에 이상이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월 표시에도 이
상이 있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2-2-3 일식 기록 적용에 대한 의문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중국사서에도 있으나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분석
하면 집중적인 결집도를 보이므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들은 실제 관측된 결
과라고 박교수님은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중국 사
서로부터 임의로 추출하여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측 기록 중 실제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
식계산법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위덕왕 6
년의 일식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때문에 박교수님이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식은 무조건 해당 국가에서
관측이 되었다는 견해에 찬동할 수가 없습니다. 즉 신라 시대 일식 중 141년,
186년, 201년의 일식은 신라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일식입니다. 당연히 이 일
식 기록은 "계산에 의한 일식"으로 보아야 마땅하며 일식의 관측지역 예측에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생각에 천문학적인 어떤 문제
점이 혹시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저 자신이 천문학의 문외한으로써
갖는 첫번째 의문입니다.
박교수님의 방법을 적용하여 국가의 영역을 추정한 결과는 위 논문들에 따르
면 초기 신라, 후기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 후한, 초기 일본, 중기 일본
등이 있습니다. 이중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8개 중 후기 신라, 고구
려, 고려, 중기 일본의 4개입니다. 즉 위 방법의 정확성은 50% 밖에 보장되지
않는 것이며 정확도의 연대는 8세기 후반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100%의 확
률을 갖지만 그 이전에는 부정확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독법일 것입니다.
이를 제가 잘못 해석한 것일까요? 이점이 제가 천문학의 문외한으로써 갖는
두번째 의문입니다.
박교수님은 고려의 기록을 토대로 그 기록이 양쯔강 일대로 나올 확률에 대하
여 검증을 했으며, 그 값은 무시해도 좋을만큼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런데 저는 여기에 적용된 방법이 너무나 엄격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
대 일식 기록들을 볼 때, 평균 식분이 0.55이상이 되면 유의미한 값을 갖는다
는 것을 해당 논문들을 볼 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관측지역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영역에 유의미한 값이 나타날 확률을 계산해 보는 것
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특히 고려의 일식들의 실현을 어떻게 계
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때 한반도에서 관측되지 않은 일식이 제외되
었다면 앞서도 표명한 의문처럼 신라의 경우도 한반도에서 관측되지 않는 3개
의 일식은 제외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의문이 제가 천문
학의 문외한으로써 갖는 세번째 의문입니다.
박교수님은 앞서도 말한바와 같이 무작위적인 중국기록의 전사는 있을 수 없
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나, 저는 이점에대해서도 의문을 한가지 가지고 있습니
다. 신라의 일식관계 기록은 박혁거세 거서간에게 무려 7차례나 집중되어 있
습니다. 박혁거세 거서간이 전설적인 기록을 함께 포함한 왕이라는 것을 생각
할 때, 그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중국사서의 일식관계 기록을 전사했을 가
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같은 시기의 중국 사서(<한서>가 되
겠지요)에는 얼마만큼의 일식관계기사가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 저는 이 기록이 작성되던-아마도 진흥왕대인 545년의 <국사>-당대에 경주
지역에서 관측될 수 있는 기록들을 중국사서로부터 역계산하여 적어넣었을 가
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이 제가 천문학의 문외한으로써 갖는
네번째 의문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까봐 사족을 붙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신뢰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대학교 2-3학년
경에 작성한 리포트를 통하여 확립된 입장입니다. 이 사족은 저를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빠진 사대주의자 운운하는 헛된 비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추가하였습니다.

3. 결론
이상으로 박교수님의 논문에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마쳤습니다. 박교수님이
노력하신 글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감히 이런 글을 작성한 것에
대하여 송구스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박교수님의 논문은 너무나 강
한 충격을 일반인에게 유포했으며, 학문의 세계 이외의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
이 많기 때문에 저는 충정을 가지고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다. 이 점을 알아주
시면 고맙겠습니다.
박교수님은 위 논문을 통하여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했으
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초기 신라가 양쯔강 유역이라는 주장에 의하여 초기
신라의 천문학 관계 기록 이외의 기록은 모두 거짓으로 몰릴 가능성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구구절절이 많은 구절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초기 신라가 동쪽으
로 해변을 끼고 있다는 모든 기록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니
까요. 이러한 것은 결국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부르짖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의 거짓을 증명하는 일이 되고 마니, 저는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끝으로 이 글에 대한 제반 책임은 오로지 저에게 있습니다. 제 글을 통하여,
전공자의 시각이 어떻다는 등, <식민사관>이 어떻다는 등의 말은 삼가해 주시
기 바랍니다. 저는 학부를 졸업한지 10년이 되어가는 사람으로 제 시각이 제
시각일 뿐인 것입니다. 일반화 시켜서 저를 비난하려는 행위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해당 논문을 제게 보내주시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신 안
상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천문학에 무지하여 저지른 실수가 있다
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날카로운 비판의 글을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
니다. 혹 저의 글이 읽힐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박창범 교수님께 전
달해 주시면 더 큰 영광이 없을 줄 압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마포에서




[추가]
사실 박창범 교수의 연구가 엉터리라는 것은 이 점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http://orumi.egloos.com/4288965 [클릭]

위 포스팅을 보면 후한과 백제의 최적관측지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논리가 우르르 무너지는 거죠.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환단고기의 23가지 실증 사례 2007-07-17 17:11:57 #

    ... 래 링크들을 확인하라. [DC역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클릭] 박창범-나대일의 삼국시대 일식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클릭]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클릭] 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 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 [클릭] [DC역갤] 박창범 교수의 `하늘에 아로새긴 우리의 역사` kbs 책을 말한다를 보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우리나라의 역사, 그 미스테리에 대해 [한국사 미스테리 60] 2010-08-17 15:10:08 #

    ...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클릭] </a> 이것도 추가한다. 전북대 이문규 교수의 반론이다. 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 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 [클릭] 하나 더 추가한다. DC역사갤러리에 올라온 글이다. 적은 수의 자료를 가지고 위치를 추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열 명의 사람에게 설문조사를 하고나서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DC역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 more

덧글

  • 孤藍居士 2005/07/21 23:22 #

    최근 역사21에서 박창범-나대일의 일식 연구에 대해, 지난 수십년간 서울에서 육안으로 관찰가능했던 일식 16개를 뽑아서 최적관측지의 평균을 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위치가 태평양-중국 동북지역-다싱안링으로 바뀌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박-나의 설명대로 하면 우리는 라퓨타에 사는 것일 터입니다.
  • 愚公 2005/08/27 13:57 #

    안녕하세요. 愚公이라고 합니다. 링크타고 왔다가
    잘 읽었습니다. 트랙백 해가도 될런지요?
  • 초록불 2005/08/27 14:09 #

    愚公님 / 반갑습니다. 제 글 중 일부는 트랙백이 되지 않습니다. 주로 역사관련 글이나 제 소설들인데, 역사 관련 글들의 트랙백을 막아둔 것은 험한 일을 많이 당했던 탓이라는...^^;;
    그런데 제 글은 추론에 의한 것이지만 위 댓글의 고람거사님 블로그에 가 보시면 과학적인 반론이 올라와 있습니다. 참고하면 도움이 되시겠네요.
    에, 그렇긴 하지만 트랙백은 예전에 내막을 잘 몰라서 막아두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트랙백을 풀어두겠습니다. 즉, 트랙백 하셔도 됩니다...^^;;
  • 2009/10/09 21:5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10/09 22:27 #

    논문을 다시 본 다음에 말씀 드릴게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