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어떻게 발탁 되었는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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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페로님의 역사연재물을 보다 보니 나 자신도 궁금해 진 점이라 약간 뒤져보았다.

페로페로님은 이순신의 전라좌수사 기용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반년동안 5번의 인사발령과 승진. 기적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인사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적인 인사가 벌어진 것일까? 그 기적의 결과가 우리나라의 위기를 건져올렸으니 궁금해야 마땅한 일인 것 같다. (이순신에 대해서는 작년에 광풍이 불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군요.)

이순신이 단계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노파심으로 추가 : 페로페로님의 의견에 대한 딴지걸이는 아닙니다.)

먼저 일본의 사정을 보자. 1587년 구주(규슈)를 정벌하여 일본의 지배자가 된 풍신수길은 조선왕의 입조를 바라게 된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는데, 그는 대마도주를 부려 그런 요구를 조선에 알리게 했다. 입장이 난처했던 대마도주는 통신사 파견을 위해 노력한다. 그는 조선 정부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서 결국 통신사 파견을 승낙받는다.

그동안에도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1588년 한해 동안 조선왕이 입조할 거라고 생각했던 풍신수길은 1589년 3월에 열이 받쳐서 대마도주에게 최후통첩을 보내라고 방방 뛰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도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아주 모른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능력있는 장수들을 남쪽 지방에 중점배치하게 되었다. 조선통신사는 1590년 3월 6일에 서울을 떠났는데, 그 전에 비변사에서는 무신들의 불차채용(不次採用:관계의 차례를 뛰어넘어 벼슬을 줌)이 있었다. (1590년 1월)

이순신은 바로 이때 추천을 받았다. 이순신을 추천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이산해와 정언신. 이산해는 동인의 거두였고, 정언신은 당시 우의정이었는데,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순신의 능력을 본 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산해의 추천 배경에는 이순신의 후견인인 유성룡이 있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추천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밝혀 두었다. (이산해와 유성룡은 모두 동인의 거물이다.)

이때 추천받은 이들은 정말 능력있는 인물들이었다. 이순신과 같이 추천받은 손인갑은 가덕진 첨절제사로 승진하여 무계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마진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진은 밀양부사가 되었다가 임란 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고 경주성 탈환작전을 성공시켰다. 부산첨사 정발도 이때 추천받은 인물이며 행주산성에서 권율과 같이 싸웠던 수원부사 조경도 명단에 들어있다.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변응정도 이때 추천받아 해남현감이 되었다.

이때 비변사에서는 서득운(徐得運)·이옥(李沃)·이빈(李薲)·이혼(李渾)·신할(申硈)·이경(李景)·조경(趙儆)을 하삼도의 병사와 수사로 추천했다. 그런데 선조는 뜻밖에도 이런 전교를 내렸다.

“아뢴 대로 하라. 서득운을 전라 병사로, 이혼을 우수사로, 신할을 경상 좌수사로, 조경을 제주 목사로 삼고자 한다. 이옥과 이경은 본처(本處)를 고수해야 하고 이빈은 범한 죄가 가볍지 않으니 경솔히 수용(收用)할 수 없다. 또 이경록(李慶祿)·이순신(李舜臣) 등도 채용하려 하니, 아울러 참작해서 의계(議啓)하라.” (1589년 7월 28일)

명단에 들지 않았던 이순신을 따로 지목한 것이다. 같이 지목된 이경록은 누구인가? 이경록은 이순신이 조산만호로 있으면서 녹둔도에 침입한 여진족을 물리칠 때 경흥부사였다. 둘은 함께 싸웠던 전우고, 당시 함께 백의종군한 사이였다. 선조는 이 사건에 매우 관심이 깊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경록은 의병장 김천일과 같이 임란 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 이 추천으로 이경록은 나주목사로 나가게 된다.

이순신이 이때 정읍현감이었는데 페로페로님이 쓴 것처럼 파격적으로 거듭 승진했던 모양이다. (이것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가 하면 전라좌수사가 된 다음 사간원에서는 이순신의 관직을 여전히 정읍현감으로 알고 있었다. 즉 실제 그 자리로 가기도 전에 승진을 거듭해서 이순신은 부임을 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순신은 이후 1591년 2월 1일에 전라좌수사가 되는데, 바로 그 전날 유성룡에게 이조판서 직이 내려진 것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유성룡은 이때 우의정이었는데 이조판서를 겸임하게 된다. 이조판서는 조정의 인사를 총 책임지는 자리다.)

사간원에서는 현감이었던 이순신이 좌수사가 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항의한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 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은 현감으로서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좌수사에 초수(招授)하시니 그것이 인재가 모자란 탓이긴 하지만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체차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순신의 일이 그러한 것은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


그 뒤에도 다시 상소가 올라와 이순신과 이경록을 내치라고 하지만 선조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로써 이순신의 지위는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시기만 해도 선조는 이순신을 능력있는 장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군의 침입이 있을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기에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보아야겠다.

결론은 이렇다.

이순신의 등용은 파격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다 조사할 수는 없었지만 비변사의 불차채용이 이순신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불차채용을 걸고 무신들을 발탁한 것인데. 그중 이순신이 가장 위대하게 우리 역사에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처럼 조선정부가 아무 대비도 없이 임진왜란을 맞았던 것은 아니다. 엉성한 면이 많기는 해도 조선정부도 대비를 하긴 했던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이순신의 발탁이었다.

역사라는 것은 실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의 등장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라는데 나도 동의한다. 다만 그 기적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덧글

  • 서누 2006/02/07 04:54 #

    명나라 도독 진린이 신종에게 요청했던 것처럼 왜란종결 후 이순신장군을 요동으로 초빙해 갔더라면 아시아 역사가 훨씬 재미있어 졌을 텐데 말이에요.
  • 서산돼지 2006/02/07 07:54 #

    http://www.whitebase.pe.kr/pilmyul/ 가보시면 그때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 초록불 2006/02/07 09:00 #

    서누님 / 만력제는 이순신을 부릴 재목이 못 되었죠.

    서산돼지님 / 여긴 글이 너무 많군요... 항복...
  • 자그니 2006/02/07 09:17 #

    이런 역사는 다시 보면 볼수록 두근두근-
  • 듀란달 2006/02/07 10:39 #

    선조가 로또 1등 뽑은거군요.
  • 나아가는자 2008/10/31 23:59 #

    로또 1등이 되려고 했다면, 경상 좌수사나 우수사는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뭐, 전라좌수사도 충분히 당시 이순신의 입장에서는 파격승진 입니다만...(아,또 if를 생각하고 말았군요. ㅜㅜ )
  • luxferre 2006/02/07 12:28 #

    처음엔 그렇게 인정해주다가 나중엔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된걸까요.. 역시 당파싸움의 언론플레이일까요..
  • 써니 2006/02/07 12:51 #

    으아~ 정말 가슴이 뛰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왕조의 왕들이 결코 나약하지만은 않았다는 점. 자부심을 느껴야할 일이네요.
  • 꼬야 2006/02/07 13:22 #

    선조도 자기 몸만 사리는 꼴통이 아니었던 것이군요. 개안했습니다.
  • M-style 2006/02/07 13:28 #

    아- 가슴이 뛰네요! 크-
  • toonism 2006/02/07 14:01 #

    1591년 2월 12일의 자료에서는 李舜臣이 아니라 李純臣이군요. 혹시 李舜臣 휘하에 있었던 장수의 자료가 아닌가요?
  • 초록불 2006/02/07 15:02 #

    toonism님 / 아, 그렇군요. 역시 새벽에 졸다가 썼더니..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06/02/07 15:12 #

    듀란달 / 멋진 표현이야. 선조가 로또 뽑은 거 맞아...^^;;

    luxferre님 / 이순신이 구국의 영웅으로 너무 큰 거죠. 선조는 신하의 세력이 커지면 그것을 가차없이 짓눌러야 한다는 정치 철학의 신봉자였습니다.

    써니님 / 선조는 조선 왕조에서 왕위에 오래 있기로 세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인물이죠. (2윈지 3윈지 잘 기억이...) 이렇게 오래 해먹은 인간들은 다 뭔가 있게 마련이라는...

    꼬야님 / 페로레로님이 잘 정리한 것처럼 평화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M-style님 / 고맙습니다.

    toonism님 / 원래 쓰려던 이야기는 빼먹고 그것만 넣어놓았었군요. 수정했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 young026 2006/02/07 18:00 #

    4위입니다.^^; 영조-숙종-고종 다음.
  • 초록불 2006/02/07 18:27 #

    young026님 / 아, 그랬군요. 다섯 손가락이라고 할 것을...^^;;
  • oldman 2006/02/07 18:34 #

    이오공감보고 찾아왔습니다.
    역사에 관한 좋은 글들이 많은 곳이로군요.
    링크 신고하겠습니다.
  • 冷箭 2006/02/07 19:14 #

    좋은 내용 잘 읽고 갑니다.
  • 바람 2006/02/08 00:01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링크 신고드립니다 ^^
  • 언에일리언 2006/02/08 00:05 #

    또 이오공감에 선정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 초록불 2006/02/08 01:27 #

    oldman님 / 네 고맙습니다.

    冷箭님 / 고맙습니다.

    바람님 / 고맙습니다.

    언에일리언님 / 페로페로님 글이 올라갔어야 할텐데 말이죠...^^;;
  • 루드라 2006/02/08 23:44 #

    명나라가 공 있는 장수들을 처리한 솜씨는 이순신의 해임과 투옥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관료 웅정필은 자결했고 명나라 최후의 간성이었던 원숭환은 시장에서 살점을 한 점씩 잘라내는 혹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이순신이 투옥만으로 끝난 건 그나마 조선이 일을 처리하는데 나았기 때문 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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