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 천재의 시대 *..역........사..*



명종에서 선조로 이어지는 16세기 중후반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인재가 많이 배출된 천재의 시대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고 했다. 이들 성리학을 대표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시대가 바로 이 때다.

16세기 중반 조선에는 4개의 학파가 성립되었다.

이황의 퇴계학파
조식의 남명학파
서경덕의 화담학파
이이의 율곡학파


야은 길재로부터 김숙자, 그의 아들 김종직, 그리고 조광조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계보는 저들 학파와 전혀 줄이 닿지 않는다.

마치 달마대사로부터 6조로 이어진 선종의 계보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조선 전기 성리학의 계보는 대략 조광조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일반인은 잘 모르는 김인후가 이 계통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이이와 같이 거론되는 성혼의 경우 아버지가 조광조의 문인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은 그런 계통과는 별 상관없이 만발하게 된다.

저 네 사람은 따로 스승이라 부를만한 사람들이 없다. 스스로 경지를 개척한 인물들인 것이다.

이황은 한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두 살때 삼촌 이우에게서 논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위에 잠깐 나온 김인후와 성균관에서 사귀었는데, 사귄 것은 사귄 것일뿐 학문을 사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학문은 50세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의 저술들도 대부분 50세 이후에 작성되었다. 이황의 학문은 영남과 기호 지방에서 각기 번성했다.

영남쪽의 인물로는 유성룡, 김성일, 조목 등이 있고
기호쪽의 인물로는 정구, 허목 등의 인물이 있다.
기호쪽의 퇴계학파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모두 남인)으로 이어진다.

조식도 아버지 외에는 이렇다할 스승이 없다. 그는 25세 때에 성리대전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식은 관직에 나간 적이 없다. 명리에 연연하지 않은 점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운 조식은 이황도 우습게 보았다. 이황이 출사하고도 은자연하는 것이 마땅찮았던 것이다. 그는 재야에 있었지만 [서리망국론]과 같은 상소를 올려 조정의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하곤 했다. 조식의 문인들은 이황의 문인들과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학파로 성장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나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유명한 홍의장군 곽재우도 조식의 문하였다. 그러나 조식의 문인들은 뒤에 북인에 대거 가담했다가 숙청당했기 때문에 조식의 학문은 그후 제대로 전해질 수 없었다.

서경덕은 개성3절로도 유명하다. 그는 집안도 한미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급 무관이었다. 서경덕의 대에는 남의 소작인 노릇으로 먹고 살아야 했을 정도로 곤궁했다. 그는 18세때 대학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어 학문에 매진했다. 서경덕의 문하에는 유명한 토정 이지함 같은 이가 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이황에 의해서는 이단으로, 이이에 의해서는 일부만 취해짐으로써 주류로는 나설 수 없었다.

이이는 어떤가?
이이도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어려서 공부를 배웠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이이는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그후 23세 때에 퇴계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이이의 제자로는 이항복, 조헌 등이 유명하다. 율곡학파는 서인-노론 계열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여당 노릇을 했다.

이들은 조선 성리학의 태두인데, 이들이 거의 동시대에 등장했으며, 스스로 학문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점은 재미있지 않은가?

덧글

  • 페로페로 2006/02/13 03:06 #

    흐흑~ 남명 조식 선생님~~~ㅠ.ㅠ
  • 冷箭 2006/02/13 09:02 #

    네분다 거의 동시대분들이셨군요.
  • 루드라 2006/02/13 10:06 #

    이순신과 한석봉도 16세기 사람이죠. ^^
  • 초록불 2006/02/13 10:18 #

    루드라님 / 천재들만 이야기한다면 사람은 더 많아요. 의학의 허준이나 불교계의 사명당도 있죠.
  • 루드라 2006/02/13 14:11 #

    예 그렇죠. 저때는 정말 각 방면으로 인재들이 쏟아진 시기죠.
  • Prometeus 2006/02/13 18:31 #

    어느 나라마다 이럴 때가 있습니다. 다수의 인재가 출현했다는 얘기는 그 시기 조선의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이 제법 안정적이었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겠죠.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만큼 문화적, 경제적 수준이 되었다는 얘기고, 또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체계였다는 얘기일테니.
  • 초록불 2006/02/13 18:37 #

    Prometeus님 /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왕조가 교체되었을지도...^^;;
  • kunoctus 2006/02/14 09:18 #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것은 잔인한 진실이죠^^
  • 암호 2006/02/19 19:50 #

    근데, 제 생각으로는 지식만 대단한 인물들이 다수이어서 그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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