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데하라 히로시, 사야가, 김충선 *..역........사..*



김운회 교수의 대쥬신론 비판 (1) 시데하라 히로시 [클릭]
김운회 교수의 대쥬신론 비판 (2) 대쥬신의 정체 [클릭]

김운회 교수의 이야기를 쓰면서 시데하라 히로시에 대해서 몇마디 한 적이 있다. (최근에 본 책에는 시데하라 히로시를 시데하라 타이라카[弊原坦]라고 쓰고 있다. 첨언해 놓는다. -2012.3.11)
최근에 알게 된 시데하라 히로시의 연구에 대해 한마디 첨언 해두기로 한다.

임진왜란 때 항복해온 일본군을 가리켜 "항왜"라고 부른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사야가 - 김충선이다.

사야가는 본래 가등청정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침략군의 선봉이었다가 조선의 풍속에 반해 투항했고, 그후 일본군과 싸워 관직과 김씨 성을 하사받았다.

그는 후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오기까지한 인물이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고자 할 때, 이 김충선의 존재가 문제가 되었다. 황국신민인 일본 장수가 조선에 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시데하라 히로시는 1904년 [역사지리] 제10권 1호에 [사야가], 1924년 [조선사화]의 제15화 [모하당](모하당은 김충선의 호)에서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날조라고 주장했다.

시데하라의 영향을 받은 일본 역사학자들은 [모하당문집]은 포로가 된 일본군이 살아남으려고 지은 책이거나, 왜구와 조선인의 혼혈아인 가짜 일본인이 지은 책이다라고 말하거나, 조선인이 일본군을 모해하기 위해 만든 위서라고 주장했다.

이런 일본인에 의한 자기 선조의 핍박은 양심적인 일본인 학자에 의해 풀렸다.
1933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찬에 참여하고 있던 일본인 학자 나카무라 히데타카(中村英孝)는 사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서 "항왜"에 대한 많은 자료를 찾아냈다. 특히 [승정원일기]의 인조 조에 수록된 [어영청등록]에 김충선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실린 것을 알고, 김충선의 후손들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는 1933년 5월, [청구학총] 12호에 [모하당 김충선에 관한 사료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사야가가 김충선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렇게 하여 시데하라 히로시가 국가의 수치라고 덮어버리려고 한 사야가-김충선의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시 한번 이런 인간을 한국사가라고 부르며 감명받았다는 김운회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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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페로페로 2006/03/05 15:24 #

    저 사람이 한 말이라고 다 틀린것은 아니겠지만 한두가지가 맞다고 해서 빼딱하게 본 시선까지 몽땅 털어 그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으니...아니! 저도 어디가서 그런게 아닐까 겁나기도 하고 말이죠.

    근데 혹시 일제시대 식민 역사교육책 보셨어요? 참으로 황당하더군요. 그거보면 일본은 정말 신이내린 나라입니다. =.=
  • 孤藍居士 2006/03/05 16:36 #

    中村英孝는 "나카무라 에이코"가 아니라 "나카하라 히데타카"입니다.
  • 초록불 2006/03/05 16:37 #

    고람거사님 / 아, 그렇습니까? 분명 어느 역사학자가 쓴 논문에서 본 것인데...
    英자를 "히데"라고 읽기도 하는 모양이군요.
  • 孤藍居士 2006/03/05 16:47 #

    의미상 秀(hide)=英이니까요.
  • 2013/11/06 12: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6 16: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11/06 23: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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