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광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연합뉴스] 원로사학자 이광린씨 별세 [클릭]
키가 작은 분이었으나 단단하게 보이는 외모를 지니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87년에 [한국사적해제], 88년에 [한국최근세사]를 수강한 듯 하다. (세월이 이쯤 흐르니 이런 기억도 불확실해진다.)
88년 때, 나는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다. 실습 기간 동안 결강을 하게 되기 때문에 담당교수님들을 찾아 뵙고 양해를 구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중간고사를 리포트로 대체해 주시기로 했기에 사학과도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선생님들의 경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광린 선생님은 남다르셨다.
"시험을 볼 수 없다고? 그럼 성적도 없지."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교생실습 나가는 사학과 4학년들)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건 부전공 필수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건데요..."
이광린 선생님은 여전히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자네들이 교직 과정을 부전공하는 것은 장차 미래를 위해 대비하려는 것 아닌가? 자네들의 미래를 위해 내 수업에 빠지겠다는 건데, 자네들에게 점수를 주면 수업 열심히 듣고 시험까지 치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하는 일이 되지 않는가?"
그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4학년 선배들은 교생실습 기간동안 이광린 선생님 과목은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매년 같은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가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있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건가?"
"중간고사를 리포트로 대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러지. 하지만 좋은 점수는 기대하지 말게."
그것은 그냥 엄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과목에서 B+를 받았는데(물론 열심히 공부했다.) 그 정도면 나쁜 점수는 아니었다.
결혼할 때 이광린 선생님이 주례를 서 주셨다. 나는 수운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알다시피 수운회관은 천도교 건물이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형식적이나마 입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나도 어느 종교단체에 소속된 사람으로 통계에 잡히리라 생각한다.) 그때 수운회관측 관계자가 이런 주의를 주었다.
"주례를 어떤 분이 하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교당 건물이니만큼 너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주례사는 삼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근대사를 전공하신 교수님이 주례를 서실 예정이니, 수운회관이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이광린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시라는 것을. 주례사로 고린도전서를 인용하시는 바람에 사실 주례사를 들으면서 좀 불안감을 가졌다. 물론 주례사가 기독교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구절 하나가 나왔을 뿐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처와 함께 찾아뵈었을 때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기억에는 좋은 이야기였다라는 것만 남아있다.) 우리 과 교수님들이 대부분 다 원칙에 충실하신 분들이었기에, 나는 대학생활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교생실습 때도 그렇게 말씀해 주신 덕분에 나는 최근세사를 한 줄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했고, 그 정도의 지식이 머리 속에 남았으니까.
빈소는 세브란스라고 한다. 오늘 찾아가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한 못난 제자가 마지막 인사를 올려야겠다.
서강대 사학과에 얽힌 에피소드를 보고 싶은 분은 클릭하세요.
[연합뉴스] 원로사학자 이광린씨 별세 [클릭]
키가 작은 분이었으나 단단하게 보이는 외모를 지니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87년에 [한국사적해제], 88년에 [한국최근세사]를 수강한 듯 하다. (세월이 이쯤 흐르니 이런 기억도 불확실해진다.)
88년 때, 나는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다. 실습 기간 동안 결강을 하게 되기 때문에 담당교수님들을 찾아 뵙고 양해를 구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중간고사를 리포트로 대체해 주시기로 했기에 사학과도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다른 선생님들의 경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광린 선생님은 남다르셨다.
"시험을 볼 수 없다고? 그럼 성적도 없지."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교생실습 나가는 사학과 4학년들)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건 부전공 필수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건데요..."
이광린 선생님은 여전히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자네들이 교직 과정을 부전공하는 것은 장차 미래를 위해 대비하려는 것 아닌가? 자네들의 미래를 위해 내 수업에 빠지겠다는 건데, 자네들에게 점수를 주면 수업 열심히 듣고 시험까지 치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하는 일이 되지 않는가?"
그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4학년 선배들은 교생실습 기간동안 이광린 선생님 과목은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매년 같은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가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있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건가?"
"중간고사를 리포트로 대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러지. 하지만 좋은 점수는 기대하지 말게."
그것은 그냥 엄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과목에서 B+를 받았는데(물론 열심히 공부했다.) 그 정도면 나쁜 점수는 아니었다.
결혼할 때 이광린 선생님이 주례를 서 주셨다. 나는 수운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알다시피 수운회관은 천도교 건물이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형식적이나마 입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나도 어느 종교단체에 소속된 사람으로 통계에 잡히리라 생각한다.) 그때 수운회관측 관계자가 이런 주의를 주었다.
"주례를 어떤 분이 하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교당 건물이니만큼 너무 종교적 색채가 짙은 주례사는 삼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근대사를 전공하신 교수님이 주례를 서실 예정이니, 수운회관이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이광린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시라는 것을. 주례사로 고린도전서를 인용하시는 바람에 사실 주례사를 들으면서 좀 불안감을 가졌다. 물론 주례사가 기독교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구절 하나가 나왔을 뿐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처와 함께 찾아뵈었을 때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기억에는 좋은 이야기였다라는 것만 남아있다.) 우리 과 교수님들이 대부분 다 원칙에 충실하신 분들이었기에, 나는 대학생활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교생실습 때도 그렇게 말씀해 주신 덕분에 나는 최근세사를 한 줄이라도 더 보려고 노력했고, 그 정도의 지식이 머리 속에 남았으니까.
빈소는 세브란스라고 한다. 오늘 찾아가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한 못난 제자가 마지막 인사를 올려야겠다.
서강대 사학과에 얽힌 에피소드를 보고 싶은 분은 클릭하세요.
덧글
그 분 생각이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