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 & 라섹 *..자........서..*



나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안경을 썼다.

학교에서 4자리 수 읽기를 배우던 때였는데, 선생님이 나를 지목해서 읽으라고 했다. 숫자가 가물가물 보여 대충 읽었더니 틀렸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혔다. 집에 돌아와 별 생각없이 아버지께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책장으로 데려가 책 제목을 읽게 하셨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 책장의 책 제목을 대부분 외우고 있었던 터라 그것으로는 테스트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테스트 항목을 달력으로 바꿨고, 내 눈이 심각하게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나는 전교에서 몇 안 되는, 아마도 3학년으로서는 최초의 [안경잡이]가 되었다.

내 눈은 갈수록 나빠져서 중학교에 갔을 때는 안경을 벗고는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근시와 난시가 심한 터라 안경을 벗고 있으면 금방 머리가 아파왔다.

안경을 써서 불편한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겨울에 실내에 들어가면 김이 서려 보이지 않게 되는 거라든가(버스를 타도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만원버스에서 앞도 보이지 않으면 자칫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다.) 라면을 먹을 때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거나, 공놀이를 할 때 안면으로 오는 공에 대한 공포감 유발 등등.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불편한 것은 이부자리에 누워 책을 편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안경을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것에 대해서도 늘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아침에 일어나 간혹 안경이 어딨는지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날 기분은 하루종일 꽝이 되기 십상이다.

엑시머레이저 수술법이 90년대에 등장했다. 이 수술을 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회복기간이 길고 컴퓨터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쥐약이라는 이야기에 포기.

그리고 라식이라는 수술법이 등장했다. 이 무렵에는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먹고살기 빠듯해서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라식 수술을 받다가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 집요하게 나돈 것도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라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1년이 넘도록 다들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점점 더 수술에 대한 욕구가 솟아올랐다.

2003년에 당시 가격의 반액 가량되는 돈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정도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때는 신문사에 다니던 때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있었다.)

검사 결과 나는 각막이 얇아서 라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라섹을 권유했다. 바로 수술에 들어가자고 말하는 바람에, 한시간 정도밖에 여유시간이 없었다. 나는 얼른 근처의 PC방에 가서 [라섹]을 검색해 보았다.

도움이 될만한 글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은 어떨는지?)

간단하게 말하면, 라식은 각막을 절삭한 뒤 수정체를 태우는 수술이고 라섹은 각막을 태우는 수술이다.

라식은 회복 시간이 빠르고 (수술이 끝난 후 두세 시간 안에 정상인의 시력을 갖게 된다. 늦어도 2-3일 안에 해결.) 라섹은 회복 시간이 더디다.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의사가 해준 말과 동일한 정보들밖에 볼 수가 없었다. 라식 수술은 받은 사람들의 경험담도 많이 올라와 있었으나 라섹 수술의 경우에는 그런 글들도 전혀 없었다.

라섹이 회복이 더디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라식 수술의 경우 수술 이후 눈에 큰 충격을 받으면 다시 눈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지만 라섹 수술은 그럴 위험이 없으며, 라식 수술의 경우 부작용으로 야간에 불빛 번짐 현상이 있을 수 있으나 라섹 수술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경우에 야간에 아무 부작용이 없다. (나는 본래 야맹증이 심한데 라섹 수술을 받아도 이것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수술을 받았다.

라식 수술은 수술 후 통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섹 수술은 통증이 좀 있다.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고 뜨끔뜨끔하는 불쾌한 통증이 온다. 수술 후에 하드 렌즈를 끼워주는데, 나는 평생 처음 렌즈라는 것을 낀 셈이었다. 수술 후 3시간 쯤 지나서 붕대를 떼자 앞이 보였다. 선명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앞이 보여서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다음날이 되자 한결 보이는 것이 좋아졌다. 그리고 사흘째가 되자 시력이 1.0은 되는 것 같았다. 회복이 아주 빠르다고 생각하고 매우 기뻐했다. 그날은 출근을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휴가라 별 부담이 없는 상태였다.

문제는 병원에 가서 하드렌즈를 제거한 다음부터였다. 렌즈를 제거하자 당장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은 것과 거의 동일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금방 좋아질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휴가가 끝나도록 상태가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열흘째가 되자 수술이 실패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의사는 아무런 잘못된 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회복이 늦을 뿐인데, 자기도 이런 경우를 처음 보았다고 툴툴댔다.

덕분에 컴퓨터를 604*480 모드로 놓고 인상을 찡그려가며 일을 해야했다. 제일 곤란한 것은 전화가 오는 일이었다. 휴대폰의 문자를 읽을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서 오는 전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전화를 걸 수가 없는 문제가 더 컸다. 원래 전화번호를 못 외우는 체질인 데다가 모든 번호를 휴대폰 안에 넣어둔 상태여서(당시에는 PDA에 주소록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PDA에 주소록을 만드는 법을 익혔다.) 전화번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휴대폰의 번호버튼에 적혀있는 한글 자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보름이 지났을 때, 딱 보름이 지났을 때 갑자기 흔들리던 사물이 고정되기 시작하더니 시야가 고화질 화면 모드로 변했다. 핀이 딱 맞는 시야가 되는 순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 상황에서는 햇살의 한가닥도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시력을 재니 1.5가 나왔다. 의사는 다시 좀 나빠지면서 1.0 전후에서 고정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후 병원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대략 1.0에서 0.8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사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라섹 수술은 6개월 가량 안약을 투입해야 한다. 이점도 라식 수술보다 불편한 점이다. 이때 인공눈물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때 맛들린 덕분에 요즘도 눈이 피곤하면 인공눈물을 넣곤 한다.

수술 부작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수술 직후에 느낀 점이었는데, 수술 후에 비문증이 심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문증이란 검은 먼지같은 것이 눈 속에 떠다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 경우에는 오른쪽 눈에 비문증이 심해졌다. 이게 피곤할 때는 훨씬 심해지는 것 같아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것이 라섹 수술의 후유증인지, 오비이락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안과 사이트를 살펴보니 비문증은 답이 없는 병이라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불치병이라는 이야기...)

수술을 받은 뒤 한 동안은 세면대 앞에 서서 안경을 벗으려는 동작을 무의식 중에 했다. 물이 이렇게 잘 보일 리가 없으니까. 목욕탕에 가서 내 때가 밀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에 속했다. (사실 나는 대학 이후로는 안경을 쓰고 탕에 들어갔다.)

라섹 수술은 다행히도 내가 받은 유일한 수술인데, 사실 수술받는 동안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눈에 마취약을 넣고 수술이 시작되면 천장에 있는 붉은 점을 쳐다보라고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레이저 총이 내 각막을 태우는 것이다.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밝은 불빛이 오락가락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절대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섬세한 수술이라 움직이면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개 웃지말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수술은 5분도 안 걸린다. 만약 길었다면 웃음을 참다가 숨넘어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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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夜風 2006/05/05 17:49 #

    아... 저도 라식은 불가능한 눈이라 라섹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봤는 데
    고마운 정보입니다.
  • 초록불 2006/05/05 18:17 #

    夜風님 / 시간 여유를 낼 수 있다면 라섹이 더 권할만한 수술일 듯 싶습니다. 야간 눈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모두 야간운전에 불편하다고 투덜대더군요.
  • 오거 2006/05/05 19:54 #

    마침 라식/라섹 고민하던 참인데 지런 경험담이... 글 잘 읽었습니다.
  • 이안 2006/05/05 21:22 #

    와아...
  • ExtraD 2006/05/06 00:02 #

    올초에 입원하고 나서 한 동안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입원 기간동안 눈을 별로 사용하지 않아서 휴식의 결과로 그랬는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의 한달 가량을 안경없이
    아무 불편함이 없어서 이제 안경과 작별하나 했는데 결국 다시 나빠지더군요.

    라식, 라섹..관심이 생기네요.
  • 수룡 2006/05/06 00:29 #

    예전에 아는 사람이 라식을 하고난 뒤에 아침에 눈을 딱 떴을 때 천장 벽지 무늬가 보여서 감동했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관심을 가졌다가 말았는데, 지금도 다시 관심이...
  • 초록불 2006/05/06 00:37 #

    ExtraD님 /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안과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의사들의 수술솜씨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하더군요. 귀국하셨을 때 받아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어차피 의보는 안됩니다.)
  • 히카리 2006/05/06 04:46 #

    좋은 정보네요. 저도 하고 싶긴 하지만.. 역시 무서워서;;
  • 지이 2006/05/06 08:09 #

    저는 라식을 했는데, 수술 직후엔 눈이 아파서 약을 먹고 잤습니다. 한 서너시간 잔 후 일어났을 때 침대 맞은편에 있던 벽시계가 또렷이 보일 때의 감격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지금은 수술 후 몇년 지났다고 원래부터 세상이 또렷하게 보인 양 모니터 앞에서 눈 혹사하며 살고 있습니다만; 생각난 김에 눈운동도 하고 멀리 보기도 하고 해줘야겠어요.
    참, 라식은 야간 빛번짐 현상이 있는데, 피곤한 정도에 따라 이것도 오락가락하더라구요, 제 경우엔. 면허는 있지만 운전할 생각이 없으니 평소엔 불편함을 못 느끼지만, 피로도가 훨씬 잘 느껴진다는 건 밤샘해야할 땐 확실히 불리하더군요.^^;
  • 초록불 2006/05/06 09:03 #

    히카리님 / 맹장 수술할 때도 사망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거든요. 길가다 교통사고 당할 확률 쯤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이님 / 눈 나빴던 때가 언젠가 싶기는 하죠...^^;;
  • 찬별 2006/05/06 10:47 #

    요즘은 라섹 말고 뭔가 하나 더 있다고 하던데요
  • 초록불 2006/05/06 11:58 #

    찬별님 / 알고보면 수술방식이 개량되면서 뭔가 이름이 자꾸 생겨나는 것 같아요. 내가 받은 수술도 정확하게는 뭔가 이름이 미묘하게 틀리더라는... 하지만 수술방법은 절삭형(라식), 태우기형(라섹-엑시머레이저) 두가지 뿐인 것 같아요.
  • sharkman 2006/05/06 13:53 #

    무좀은 치료가 됩니다.
  • 초록불 2006/05/06 18:17 #

    재원님 / 치료가 된 다음에 재발하는 거 아닙니까?
  • sharkman 2006/05/06 20:45 #

    아닙니다. 완치가 된다는 것으로 압니다.
    어느 다큐멘터리 인가에서 소위 3대 불치인 감기, 대머리, 무좀 중에서 무좀만은 치료가 가능하다 라는 걸 본 기억이 나네요.
  • 초록불 2006/05/06 20:50 #

    재원님 / 흠.. 그 기적의 영약이 아직 판매가 안 되고 있는 겁니까?
  • 루드라 2006/05/06 21:59 #

    무좀 치료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2개월 정도만 계속 약을 발라주는 인내심만 있으면 됩니다.(신문 같은데서는 연고를 권하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연고보다는 물약이 훨씬 나았습니다) 일단 제가 이렇게 해서 나았고, 김해 내려와서 어머니가 무좀 있는 걸 보고 2개월 정도 매일 밤마다 발라드렸더니 나았습니다. 그 뒤로 전혀 재발 안하고 있습니다.

    발톱무좀의 경우가 좀 어려운데 우리 아버지의 경우 오존발생기를 물에 담가놓고 그 물에다 아침마다 20분 정도 담그는 걸 3개월 정도 계속해서 많이 나았습니다.(거의 2년이 됐는데도 재발은 안합니다만 발톱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더군요) 아버지의 경우 무좀으로 수십년간 고생하셨지만 이제는 발톱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걸 빼면 다른 고생은 안 하십니다.
  • Gerda 2006/05/07 00:32 #

    먹는 무좀약이 있어서 간기능 검사를 하고 약을 복용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대머리는 옆머리와 앞머리의 대머리화가 약간 달라서, 앞머리는 불가능하지만 옆머리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약이 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06/05/07 00:41 #

    루드라 Gerda님 / 그렇군요. 3대 불치병에서 무좀은 이제 빠지겠군요. 본문의 무좀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 당근매니아 2008/03/05 00:10 #

    얼마전에 라섹 수술하고 관련포스트를 올렸는데 선생님 포스팅이 딱 연결되어 있어서 들렀습니다. 이제 날짜 지났으니 엿새째인 셈인데 전 아직도 좀 괴롭네요...ㅠㅠ
  • 머스타드 2008/08/19 12:54 #

    무좀은 2~3달 정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발라야 진균이 완전히 사라져서 완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지 2~3주면 무좀 증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가 무좀이 완치가 된 것으로 오해하고 더이상 약을 복용하지 않아서 낫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술안먹고 약을 꾸준히 먹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절대 불치병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좀 외에도 어루러기나 완선 같은 진균이 원인이 된 질환은 대부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제가 무좀+어루러기 때문에 거의 십 년을 고생해봐서 잘 알아요. ㅠㅠ)
  • 아이 2010/07/28 12:58 #

    라섹 하셨군요!!! 보름이 관건+_+;;;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10/07/28 12:58 #

    옛날 글이라... 요즘은 더 기술이 좋아졌겠지요..
  • 2010/07/28 12: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0/07/28 12:59 #

    물론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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