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본래 뜻보다 부정적인 뜻에 자주 동원되면서 본래 뜻조차 나쁜 뜻인 것처럼 오해받게 되는 단어들이 몇가지 있다.
[칠칠하다]는 본래 좋은 말인데, [칠칠찮다]가 훨씬 많이 사용되면서 칠칠하다 자체가 사장되어 버렸다.
[면목이 없다]에서 [면목]도 비슷한 사태에 처해 오늘날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생색]도 그런 단어 중 하나다.
엠파스 국어사전으로 보면 이렇게 [생색]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생색(生色)[명사] 남에게 어떤 도움을 준 일로 떳떳해지는 체면. 생광(生光). 그러나 다들 잘 알다시피 [생색]은 거의
"그깟 일로 생색내기는..."이라는 부정적인 문장의 한 부품으로 작동하고 있다.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난 척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만큼 인기가 없는 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의 깊은 영향으로 인간이라면 당연히 생색을 내기보다는 겸양을 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든 다른 사람 덕에 잘 되었다고 말해야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별고 없으시지요?"
"덕분에요."아주 흔한 대사다. 그런데 물어본 사람 입장에서 속으로
"내가 뭘 해줬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자신이 잘해서 떳떳한 일은 당연히 생색을 내야 한다. 본인이 생색을 내지 않으면 그 공로는 잊혀진다. 더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손해를 가져가 자신의 것처럼 써먹어버린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중요 프로젝트를 달성한 경우, 간혹 뒤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그 프로젝트, 사실은 김부장이 다 해낸 거라며?"
"그래? 그런데 왜 생색은 왜 최부장이 내고 다녀?"
"김부장이 순해서 그렇지 뭐."같이 일한 사람들은 진실을 알지 모른다. 하지만 경영진은 모른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기억해라. 생색을 내지 않으면 남들은 모른다는 것.
나는 중학생 시절 온갖 집안 심부름을 다 했다. 형은 입시에 목멘 고등학생이고 동생은 아직 어린 국민학생이므로 내가 심부름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였다. 따라서 뭔가 심부름거리가 나오면 자진해서 내가 수행했다. 그리고 나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심부름은 여전히 내가 하고 있었다. 당연히 동생이 심부름을 하겠다고 나설 줄 알았는데, 동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미안. 그건 당연히 오빠가 하는 건줄 알았어."생색을 내지 않은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집안의 형제들 중에는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묵묵히 그 짐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감당하는 것은 좋다. 그리고 생색을 내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어렵게, 또 얼마나 큰 부담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월이 지나 그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생색]이 되어버린다. 별 것 아닌 일로 생색내려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형제 간의 아쉬운 이야기에 속하게 될 때면 더욱 그렇다.
집안의 여자 형제들이 남자 형제를 위해 취업하고 뼈가 휘도록 일한 이야기는 우리 부모대에는 매우 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 형제들이 그런 일들을 까먹는 것도 매우 유명한 이야기였다. 생색을 내지 않으니까.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옛다, 그 학비!"이렇게 돈봉투를 던지는 일도 있었던 거다. 20년 전의 그 금액 그대로 말이다.
회사에서 제일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은 남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로챔을 당하고도 동양의 미덕인 겸양 정신을 발휘해서 조용히 있는 사람들도 문제기는 하다. 그것을 떠드는 것을 생색내는 일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여. 상관은 당신의 가치를 그만큼 낮게 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잘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해도 괜찮다. 주변의 눈치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그만큼 잘해 주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능력 없는 이가 당신의 공을 가로채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훨씬 나쁜 일이다.
회사건 가정이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해낸 일에 대해 생색을 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