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역사학대회, 과학사분과 발표문, 2003년 3월 20일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 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학사 연구에 대하여 ―
* 이 글은 필자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를 잘못 읽다"라는 제목으로 『서평문화』 제49집 (2003년 봄)에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이 문 규
(전북대 과학학과)
1. 머리말동아시아 전통 과학에서 천문학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새삼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천문학은 매우 일찍부터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어 하나의 전문 과학으로 자리잡았고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천문학에서 얻어진 구체적 성과와 그것이 가지는 의의를 밝히려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중국 고대 천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藪內淸는 역법에 초점을 맞추어 전통시대 중국 천문학 전반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천문학 관련 고대 문헌에 대한 고증학적 연구 전통을 가진 중국에서는 특히 自然科學史硏究所가 발족된 이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다양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천문학사 연구는 20세기 초 和田雄治, Rufus와 같은 주한 외국인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첨성대, 세종시대의 각종 천문의기, 재이기록, 칠정산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특히 고대사의 경우 남아 있는 사료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현대 천문학 지식을 이용하여 한국 고대 천문학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결과가 나와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박창범 교수의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김영사, 2002)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하늘에…』는 저자가 지난 10여간 한국 천문학사를 연구하면서 가졌던 생각과 경험을 소개한 책으로, 그 안에는 이미 전문 학술지를 통해 발표한 연구결과가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하늘에…』에서 이용하고 있는 연구방법, 즉 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하늘에…』의 출판 이후 여러 언론매체와 일반인들이 크게 주목했던 단군조선의 천문기록과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2. 단군조선의 천문기록『하늘에…』의 3장 천문 기록으로 찾아간 단군조선>에서는 『단기고사』와 『한단고기』 「단군세기」에 나와 있는 천문현상 기록에 대해 현대 천문학 지식을 동원한 이른바 '과학적 검증'을 시도하고 있는데, (
이 내용은 본래 박창범·라대일,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한국상고사학보』 14 (1993), 또는 La, Daile and Park, Changbom, "On Astronomical Records of Dangun Chosun period", Journal of the Korean Astronomical Society 26 (1993)으로 발표된 것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고대 문헌에 들어 있는 일부 천문기록의 사실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② 이를 통해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들어 있는 오행성의 결집(B.C. 1733년)과 썰물 기록(B.C. 935 년)이 조작되지 않은 단군조선 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것임을 확인했다.
③ 이로써 학자들은 이 책들을 마냥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옥석을 가리는 마음으로 책의 내용을 진지하게 재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이것이 마치 단군조선의 실존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저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결과로 전적으로 저자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부분을 읽어 가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을 내리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한편, 『단기고사』와 『환단고기』는 이미 학계의 철저한 사료 비판을 거쳐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僞書로 판명된 책으로 이 자리에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①∼②를 통해 ③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사료 비판 방법을 제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①과 같이 현대 천문학을 이용하여 과거의 천문 기록을 검토하는 일은 현대 천문학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가 학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①을 통해 ②와 같이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기록들이 조작되지 않았다고 해석한 데 있다.나는 ①이므로 ②라고 말한 박창범 교수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나오는 'B.C. 1733년에 다섯 행성이 루 별자리에 모였다 (五星聚婁)',
'B.C. 935년에 큰 썰물이 있었다(南海潮水退三尺)'는 기록이 현대 천문학을 이용하여 계산한 실제 발생했던 천문현상과 부합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시대에 기록되었다거나 또는 당시의 기록이 잘 전승되어 이후 『단기고사』와 「단군세기」가 씌어질 때 그 안에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 박창범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 오행성은 실제로 '루'에서 약 130°떨어진 바다뱀자리 근처에서 모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기고사』와 「단군세기」는 오행성이 모인 위치를 '루'라고 틀리게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후대의 개입'이라고 보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나아가 'B.C. 1733년 오행성이 모였다', 'B.C. 935년에 큰 썰물이 있었다'는 기록 자체도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 현상이 일어난 시기와 그것이 기록된 시기 사이에는 수 천년의 시간차가 있다.
『단기고사』와 「단군세기」가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면 3,600년 또는 2,800년이 넘으며,
설령 이 책들이 발해 초와 고려 말에 완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1,500년이 훨씬 넘는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이와 같은 기록이 그처럼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전승될 수 있었을까?
고대 문명권에서 천문학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이 사이 어떤 형태로든 유사한 천문기록을 오늘날까지 전해질 정도로 충분하게 남겼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또한 박창범 교수가 이 기록이 조작될 확률을 오행성 결집의 경우 0.007(2×2/550=0.007), 큰 썰물의 경우 0.04(1×8/200=0.04)로 제시하면서, 이 기록이 조작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록이라고 주장한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확률이란 아무런 천문학 지식도 없는 사람이 임의로 몇 년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이 정도로 근사하게 들어맞을 확률일 뿐이다.
행성이나 해와 달의 위치를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확률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천체위치를 독자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된 세종시대 이후에는 이런 기록을 쉽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수 천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이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보다, 오히려 후대에 계산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②가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3.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삼국사기』의 일식기록에 대한 해석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박창범 교수가 단정지어 '삼국의 영토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이었다'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부분은 역사학자의 몫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객관적 사실'만을 찾아 보여 주고자 할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의 4장 삼국 시대 천문 기록이 밝혀 준 고대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되고 있다.
(
이 내용은 처음 박창범, 라대일, "三國時代 天文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 『한국과학사학회지』16-2 (1994)로 발표된 것이다.)
①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은 독자적 관측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② 특히 일식의 경우 『삼국사기』가 바로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 실제로 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기록의 비율, 즉 실현율이 가장 높은 사서이다.
③ 이를 토대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우연히 최적 관측치가 중국 대륙 동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측한 기록이다.
①에서 『삼국사기』의 행성과 달의 접근 현상과 금성이 낮에 나타난 현상에 대한 기록을 보고,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만 관측 기록된 독자적인 것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결과를 확대하여 ②, ③ 주장의 전제가 되는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은 모두 독자적으로 관측 기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삼국이 일식을 독자적으로 관측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국에서 다른 천문현상처럼 일식도 독자적으로 관측하고 기록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이 독자적인 관측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중국 기록을 참고하여 불확실한 삼국의 일식기록을 바로잡았을 가능성을 제시한 박성래 교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실제로 박창범 교수가 정리하여 부록으로 싣고 있는 삼국 시대의 천문 현상 기록>을 보면, 일식의 경우 독자 기록은 단 2번에 불과하다. 그것도 이른바 천체 역학적 계산방법으로 검증해서 실제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식이 발생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판명된 사례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일식기록에 대해 삼국의 독자 관측 기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②의 일식 실현율에 대한 부분도 지나친 해석이다.
『삼국사기』에는 약 1,000년 동안 67개의 일식기록이 들어 있다(중복사례 포함).
이에 비해 중국의 일식기록은 아주 많아서 같은 기간 동안 400개가 넘는다.
대략 1/6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록에 대해서 실현율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일로 보이며,
더욱 이와 같이 계산된 실현율을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독자적인 실제 관측에 근거하여 기록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의 일식기록 37개의 실현율이 86%라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어떻게 실현율 80%로 계산된 『삼국사기』에 대해 실현율이 가장 높은 사서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가 단지 일식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한 것(日有食之)에 비해, 이미 『漢書』와 같은 고대 중국의 사서에서 '일식이 일어났는데 개기식이었고 그 때 해의 위치가 영실9도이다'(日有食之 旣 在營室九度)와 같이 자세하게 일식을 기록한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느 책이 일식을 더 정확하게 기록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신라, 고구려, 백제의 일식기록에 대한 최적 관측지점을 계산하여 ③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도 무리한 해석이다. 일단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①, ②의 전제를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박창범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최적 관측치를 추정한 그림을 보아도 대부분의 일식은(최적 관측지점은 아닐지라도) 신라, 고구려, 백제 모두에서 관측되었을 터인데도, 삼국에서 함께 일식을 기록한 경우가 겨우 2번에 불과한 이유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하다.당시 세 나라가 서로 다른 일식만을 기록하기로 합의했던 것일까?
오히려 일식기록에 대한 분석에서 중요한 사항은 최적 관측지가 아니라 관측 가능한 지역을 찾아보는 일이며, 이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삼국사기』는 삼국에서 관측한 일식 기록을 직접 실은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관측 가능하여 중국의 正史에 실렸던 일식 기록을 참고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4. 맺음말지금까지 단군조선의 천문기록과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에 대한 박창범 교수의 해석에 대해 살펴보면서, 현대 천문학을 이용한 역사 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다시 강조하지만 그 문제란 현대 천문학 지식을 이용한 계산과정이나 그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결과에 대한 해석, 특히 역사를 해석할 때 제기되는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 천문학으로 계산하면 B.C. 1734년 7월 13일 초저녁 태양으로부터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늘어섰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은 B.C. 1733년 오행성이 모였다는 기록과 1년밖에 차이가 없다. 또는 서기 205년 9월 4일 오후 4시경 달이 금성에 2.1°까지 가까워졌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것은 서기 205년 음력 7월 금성이 달을 범하다(太白犯月)는『삼국사기』의 기록과 잘 들어맞는다는 부분은 박창범 교수의 말대로 "누가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 그렇지만 이런 작업은 우리나라 전통 천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대 천문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학자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결과를 가지고 B.C. 1733년 오행성의 결집에 대한 기록을 조작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록이라고 해석하거나 그것을 기록한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와 같은 책의 위서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삼국사기』에만 실려 있는 일부 천문 기록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인된다는 사실만으로 일식 기록까지 독자적으로 관측한 내용이 그대로 『삼국사기』에 실렸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고대 동아시아 문명권의 일식 기록 전통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삼국에서 일식을 가장 정확히 관측하여 기록했다거나 삼국의 위치가 중국 대륙이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