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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먼저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 (4)

어렸을 때 읽은 계몽사판 문고 중에는 (국판형의 작은 명작문고로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갠지스 강의 저녁놀]이라는 책이 있었고(이준님님의 지적에 따라 수정), 그 책에는 대강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느 부강한 나라의 국왕이 왕비를 맞아들였다. 왕비는 아름답고 현숙한 사람으로 흠잡을 곳이 없었기에 왕은 왕비를 무척 사랑했다. 어느날 자신의 왕국이 내려다보이는 성루에 왕비와 선 왕은 자신의 나라를 자랑한 끝에 왕비에게 말했다.
- 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겠소. 내가 그대를 이처럼 사랑하기 때문이오. 이제 그대가 말해보시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오?


어렸을 때, 나는 그 대답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강대한 국가의 국왕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였다.

한참 성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왕비는 이렇게 말했다.
- 대왕이시여,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나는 난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가 아닌가? 그러나 왕의 대답은 또 내 생각을 넘어섰다.

왕은 웃으며 말했다.
- 그렇소. 옳은 대답이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겠소.


나는 훨씬 후에야 대개 종교의 밑바탕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황금률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근본이 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어렸을 때 본 그 책의 내용은 대부분 불경 안에 들어있던 것들이라 저 이야기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도통 찾을 수가 없다.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쓴 것이라 내용이 틀릴 수도 있겠다.

저 이야기를 쓰다보니 중학교 때 쯤 배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님이시여]라는 시구도 떠오르는데, 이것도 유행가 가사말고는 찾지를 못하겠다. 미당의 시가 아니었나 싶은데, 왜 찾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luxferre님 도움으로 찾은 시는 이런 것이다.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서정주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조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오르는 가슴 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가는 바람속에 지새는 나날이여.
땅 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 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이 한 마딧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인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釋迦)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香囊)을 차고
이 싸늘한 바윗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도 내 것이로다.





미당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한국이 낳은 천재시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겠다.
by 초록불 | 2006/08/03 14:51 | *..만........상..* | 트랙백(1) | 덧글(10) |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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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c4mE at 2006/08/03 16:01

제목 :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초록불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블로깅을 워낙 드문드문 하던 즈음 닉을 만들었던 이유와 내 가치관 1호를 다시 반추해보게 만들어준 글이여서 급히 트랙백. [#!_DC for ME = 나를 위한 나|DC for ME = 나를 위한 나_!#]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 국어선생은 갓 교사가 된 고대출신의 박신수 라는 선생이였다. 이 양반 무지 특이한 양반이였다. 교사에 부임하기 전에 짱개를 했던 선생이였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이 그 얘기를 했으니 워낙 캐릭터가 특이했던 사......more

Commented by itsme at 2006/08/03 15:58
나를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어르신들의 가르침은 존경을 해도해도 끝이 없네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6/08/03 16:09
1. 계몽사 문고가 첨부터 100권은 아니었습니다. 차츰 늘어났지요. 그래서 아마 판이 다른가 봅니다. 제가 읽은 버젼은 "갠지스 강의 저녁놀"이라는 엄한 제목이었고. 무려 편저 "고은" 삽화 홍성찬이었죠. 거기에 잠시 언급이 된걸로 압니다.
Commented by luxferre at 2006/08/03 16:55
검색어를 바꿔가면서 찾아봤는데요 혹시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아닌가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이"라는 싯구가 들어갑니다.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서정주-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조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오르는 가슴 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가는 바람속에 지새는 나날이여.
땅 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 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이 한 마딧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인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釋迦)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香囊)을 차고
이 싸늘한 바윗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도 내 것이로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6/08/03 17:24
luxferre님 / 맞습니다. 사실 아래 층에 내려가 미당 시집을 들춰보기가(시집은 모두 아래층에 있습니다) 귀찮았던 것인데, 인터넷에서 못 찾으니까 미당이 아니었던가, 기억이 이렇게 나빠졌는가... 싶어졌었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6/08/03 17:30
이준님님 / 그 제목이 맞겠네요. 저도 그 책이 [고은 편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갠지스 강의 저녁놀]이라... 계몽사의 그 문고본은 본래 50권으로 나왔다가 100권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메리 포핀스나 치티치티빵빵,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책 제목이 [두꺼비 영웅]이었나 뭐 그런 거였을텐데...) 등등을 다 그 책으로 봤지요.
Commented by sharkman at 2006/08/03 21:07
말당선생...
Commented by young026 at 2006/08/03 22:19
제가 가지고 있던 계몽사문고는 120권이었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6/08/03 22:21
young026님 / 계몽사에서 나온 전집류 문고본은 종류가 많습니다...^^;;
Commented by catnip at 2006/08/04 11:14
언급하신 내용은 사실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갠지스강의 저녁놀하니 뭔가 어렴풋합니다.
50권짜리로 갖고 있었는데 치티~랑 그 애물단지 두꺼비얘기는 아직도 종종 생각난답니다.^^;;
비슷한 얘기가 될진 몰라도 내가 나자신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날 좋아한다는 사람이 별로 맘에 들리가 없을듯하다는 헛소리를 입밖에 낸적도 있습니다....( ..)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07/06/12 18:41
저도 계몽사 문고를 좋아했습니다. 1권이 <백경>을 다이제스트한 <흰고래 모비 딕> 이었고 118, 119, 120권이 <조디와 아기사슴1> <조디와 아기사슴2> <하얀 매> 였죠. 아직도 그 내용이 상당히 많이 머릿속에 남아서, 120권 전질을 찾아다 방 안에 갖다 놓을까 생각중입니다 ( --)

제가 읽을 때즈음에는 이미 상당히 오래 된 책들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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