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환단고기로부터였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란 모름지기 위대해야만 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매우 크거나,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니 매우 오래되고 매우 큰 것을 만들어야 했지요.
그래서 환단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중국을 가르치고, 만주와 바이칼 호를 넘어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수밀이 국같은 구절을 넣어서 아시아 전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점도 마음에 들었죠.
그런데 어떤 인간이 이상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삼국사기를 검토한 이 사람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땅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메뚜기 피해가 적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메뚜기 피해가 발생할 수 없다.
토함산은 화산인데, 우리나라 토함산은 화산이 아니다.
지진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뭄과 홍수의 기록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이 중국 땅에서 발견된다는 것.
뭐, 대강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고려사나 조선사에도 제시한 증거들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메뚜기 피해도, 토함산 문제도, 지진 문제도, 가뭄과 홍수 문제도 모두 후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사를 보니 삼국시대 지명 계승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나옵니다.
거짓말(사실은 무식한 거였죠.)은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승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당시 재야끼리도 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훼손하는 자들이라고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들 대륙빠들을 욕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제시된 증거를 모두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중국 땅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증거는 조선에도 있었는데, 왜 고려까지만 중국땅에 있었다고 주장했을까요?
그것은 그동안 환단고기 주창자들이 죽어라 조선을 욕했기 때문에 심리적인 저항에 걸렸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재야의 주장은 세갈래로 쪼개졌습니다.
첫번째 부류를 환단고기 정통론자라고 부르죠. 이들은 낙랑군 등 한의 동방변군(이른바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없었다는 정도로 만족합니다. 임승국이 이 부류에 속하죠.
두번째 부류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만 중국 땅에 있었다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소수입니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좀 특이합니다. 이들은 서울대 박창범 교수 때문에 등장한 사람들입니다.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일식 관측도라는 것을 내놓은 덕분에 그 내용에 맞춰서 삼국이 중국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를 따르면 통일 신라 이후는 한반도에 정착하고 있으므로 그 주장에 착실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부류는 고려 말에 이성계가 무주공산이었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중재가 이 주장의 대표주자죠. 이 사람들은 한반도 안의 조선 이전 유물들은 다 이주하면서 들고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경주의 왕릉 같은 경우도 모두 조선 시대에 축조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다보탑, 석가탑 등 삼국시대 탑들은 어찌 가져왔는지, 한반도 안에 있는 고인돌은 누가 세웠는지, 고려 청자는 어디서 나온 건지 물어보면... 네! 다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유물도 따라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당연히 이해했겠지만, 세번째 주장은 너무 말이 안 되는 거라 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화가 두 방향이었죠.
그 한 방향이 네번째 부류입니다. 이들은 한반도 내의 유적을(유물은 들고 다녀도 유적이야 못 들고 다닌다는 상식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결하기 위해 클론설(이름은 내 마음대로 붙였습니다.)을 주장합니다. 한반도에도 삼국이 있었고, 중국땅에도 삼국이 있었다는 것이죠. 고구려는 그냥 영토를 널찍하게 확장하면 그만이었고, 신라는 서신라, 동신라로 나눕니다. 백제도 반도백제와 대륙백제가 있었던 것으로 만들죠. 신라는 정말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나라가 됩니다. 교통로도 없는 쪼개진 나라가 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문제입니까? 이제 한반도 내의 유적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부류는 더욱 황당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이들은 유적 유물 같은 것은 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유적, 유물을 만든 사람을 들이대주면 되는 거잖아요? 한반도의 유적 유물을 만든 이들은 '왜'입니다. 한반도는 왜의 땅이었던 거죠. 그럼 언제 우리가 한반도에 와서 살게 된 걸까요? 그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분열하게 됩니다. 분열된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이 동네 이야기부터 하죠. 우리가 이땅에 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라고 주장합니다. 왜 일제가 한반도를 한민족에게 내주고 자기들은 섬에 가서 살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주장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중국 땅에 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증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때 국민들을 세뇌시켜서 모든 기억을 지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극단적인 여섯번째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는 한민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인입니다. (그럼 일본인은 뭘까요?) 한민족은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얄타회담 때 한반도의 왜인들에게 너희는 한민족이야라고 세뇌를 시켰답니다. 이 역사공작대의 활약은 '맨인블랙'을 능가합니다.
삼국재대륙설이든, 고려재대륙설이든, 조선재대륙설이든 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중국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유방은 로마인이며 항우는 파르티아인이라는 주장.
장안은 티벳의 라싸라는 주장.
중국은 감숙성에 있었다는 주장 등등.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난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해동海東이라 일컬어지고, 중국의 동쪽에는 바다가 있고, 우리나라의 서쪽에도 바다가 있거든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있는 바다 - 서해가 걸림돌입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은 해海는 바다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쯤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죠. 사서의 임의왜곡을 시작하더니, 더 이상 우길 수가 없게 되자 역공을 취했습니다. 역시 공격은 최선의 방어죠. 이들에게 남은 무기는 딱 하나였습니다. 지명입니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촌'이라는 지명을 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편번호 입력하면서 보면 같은 동명洞名이 얼마나 많은지 금방 알 수 있죠? 중국 역사 5천년 동안 나온 지명을 다 훑어내린 다음 비슷한 이름만 발견하면, 우리땅이라고 깃발을 꼽습니다. 그것이 거리도, 방위도, 시대도 맞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도 틀리다는 것쯤은 이들에게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을 속이는데는 그정도면 충분하니까요. 어려운 한자가 줄줄 나오고 디립다 긴 글을 써놓고 "봐라! 이러니 대륙설이 진실이니라!"라고 외치면 그것만으로 기가 질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주니까요. 그리고 합리적인 반론, 즉 백제 서쪽에 있는 바다는 어디 갔어요와 같은 질문은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무시할 때도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요. "저 사람은 이병도 식민사관에 매몰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논의가 끝납니다. 역시 식민사학을 공부한 사람은 엉터리 주장을 하는군. 이렇게 거들어주는 사람들이 나오니까요. 역사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실증 환단고기]나 [신라국가형성사연구]나 똑같이 그저 한권의 책일 뿐입니다. A는 [실증 환단고기]를 전거로 들고, B는 [신라국가형성사연구]를 전거로 드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 수십권의 책을 들이대면서 "내 말이 옳아"라고 외치니까 일반인은 "뭐가 진짜야?"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그런데 B는 식민사학과 출신이고, A는 우리민족이 위대했다고 주장하는데 B가 속절없이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단 말이죠. 까짓거 중국도, 일본도 다 거짓말하는데 우리도 하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A가 드는 전거의 불합리성은 따져볼 필요도 없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학문이 아니라 그냥 믿음이죠.
보는 시야가 좁아지니 자기 신념에 대드는 인간은 모두 혼내줘야 합니다. 그러니 반대 주장을 보면 바로 욕부터 나가죠. 매사를 이중잣대로 판단합니다. 자기 주장과 같은 사람은 욕을 해도 되지만 반대편에 선 인간은 투덜대기만 해도 인간성 더러운 놈이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딱 자기가 내놓은 증거를 반박하지 않으면 반박당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도 100% 반박을 하지 않으면 반박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100% 반박을 당하면, 그때는 반박한 사람이 옹졸한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 애초에 일부를 반박하든, 전부를 반박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애초에 진실을 알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요.
부디 이 단계까지 망가지기 전에 제 블로그에서 의심하는 의식을 조금이나마 되살리는 분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란 모름지기 위대해야만 합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매우 크거나,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니 매우 오래되고 매우 큰 것을 만들어야 했지요.
그래서 환단고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중국을 가르치고, 만주와 바이칼 호를 넘어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수밀이 국같은 구절을 넣어서 아시아 전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점도 마음에 들었죠.
그런데 어떤 인간이 이상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삼국사기를 검토한 이 사람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땅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메뚜기 피해가 적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메뚜기 피해가 발생할 수 없다.
토함산은 화산인데, 우리나라 토함산은 화산이 아니다.
지진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뭄과 홍수의 기록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이 중국 땅에서 발견된다는 것.
뭐, 대강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고려사나 조선사에도 제시한 증거들이 모두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메뚜기 피해도, 토함산 문제도, 지진 문제도, 가뭄과 홍수 문제도 모두 후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려사를 보니 삼국시대 지명 계승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나옵니다.
거짓말(사실은 무식한 거였죠.)은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승복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당시 재야끼리도 싸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훼손하는 자들이라고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들 대륙빠들을 욕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제시된 증거를 모두 무효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중국 땅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증거는 조선에도 있었는데, 왜 고려까지만 중국땅에 있었다고 주장했을까요?
그것은 그동안 환단고기 주창자들이 죽어라 조선을 욕했기 때문에 심리적인 저항에 걸렸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재야의 주장은 세갈래로 쪼개졌습니다.
첫번째 부류를 환단고기 정통론자라고 부르죠. 이들은 낙랑군 등 한의 동방변군(이른바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없었다는 정도로 만족합니다. 임승국이 이 부류에 속하죠.
두번째 부류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만 중국 땅에 있었다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소수입니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좀 특이합니다. 이들은 서울대 박창범 교수 때문에 등장한 사람들입니다.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일식 관측도라는 것을 내놓은 덕분에 그 내용에 맞춰서 삼국이 중국 땅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를 따르면 통일 신라 이후는 한반도에 정착하고 있으므로 그 주장에 착실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부류는 고려 말에 이성계가 무주공산이었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중재가 이 주장의 대표주자죠. 이 사람들은 한반도 안의 조선 이전 유물들은 다 이주하면서 들고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경주의 왕릉 같은 경우도 모두 조선 시대에 축조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다보탑, 석가탑 등 삼국시대 탑들은 어찌 가져왔는지, 한반도 안에 있는 고인돌은 누가 세웠는지, 고려 청자는 어디서 나온 건지 물어보면... 네! 다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사람이 움직이면 유물도 따라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당연히 이해했겠지만, 세번째 주장은 너무 말이 안 되는 거라 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화가 두 방향이었죠.
그 한 방향이 네번째 부류입니다. 이들은 한반도 내의 유적을(유물은 들고 다녀도 유적이야 못 들고 다닌다는 상식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결하기 위해 클론설(이름은 내 마음대로 붙였습니다.)을 주장합니다. 한반도에도 삼국이 있었고, 중국땅에도 삼국이 있었다는 것이죠. 고구려는 그냥 영토를 널찍하게 확장하면 그만이었고, 신라는 서신라, 동신라로 나눕니다. 백제도 반도백제와 대륙백제가 있었던 것으로 만들죠. 신라는 정말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나라가 됩니다. 교통로도 없는 쪼개진 나라가 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문제입니까? 이제 한반도 내의 유적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부류는 더욱 황당한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이들은 유적 유물 같은 것은 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유적, 유물을 만든 사람을 들이대주면 되는 거잖아요? 한반도의 유적 유물을 만든 이들은 '왜'입니다. 한반도는 왜의 땅이었던 거죠. 그럼 언제 우리가 한반도에 와서 살게 된 걸까요? 그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분열하게 됩니다. 분열된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이 동네 이야기부터 하죠. 우리가 이땅에 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라고 주장합니다. 왜 일제가 한반도를 한민족에게 내주고 자기들은 섬에 가서 살았는지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주장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중국 땅에 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증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때 국민들을 세뇌시켜서 모든 기억을 지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극단적인 여섯번째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는 한민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인입니다. (그럼 일본인은 뭘까요?) 한민족은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면 얄타회담 때 한반도의 왜인들에게 너희는 한민족이야라고 세뇌를 시켰답니다. 이 역사공작대의 활약은 '맨인블랙'을 능가합니다.
삼국재대륙설이든, 고려재대륙설이든, 조선재대륙설이든 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중국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유방은 로마인이며 항우는 파르티아인이라는 주장.
장안은 티벳의 라싸라는 주장.
중국은 감숙성에 있었다는 주장 등등.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난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해동海東이라 일컬어지고, 중국의 동쪽에는 바다가 있고, 우리나라의 서쪽에도 바다가 있거든요.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있는 바다 - 서해가 걸림돌입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은 해海는 바다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쯤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죠. 사서의 임의왜곡을 시작하더니, 더 이상 우길 수가 없게 되자 역공을 취했습니다. 역시 공격은 최선의 방어죠. 이들에게 남은 무기는 딱 하나였습니다. 지명입니다.
중국은 오랜 역사와 넓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촌'이라는 지명을 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편번호 입력하면서 보면 같은 동명洞名이 얼마나 많은지 금방 알 수 있죠? 중국 역사 5천년 동안 나온 지명을 다 훑어내린 다음 비슷한 이름만 발견하면, 우리땅이라고 깃발을 꼽습니다. 그것이 거리도, 방위도, 시대도 맞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자도 틀리다는 것쯤은 이들에게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을 속이는데는 그정도면 충분하니까요. 어려운 한자가 줄줄 나오고 디립다 긴 글을 써놓고 "봐라! 이러니 대륙설이 진실이니라!"라고 외치면 그것만으로 기가 질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주니까요. 그리고 합리적인 반론, 즉 백제 서쪽에 있는 바다는 어디 갔어요와 같은 질문은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무시할 때도 좋은 무기가 있으니까요. "저 사람은 이병도 식민사관에 매몰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논의가 끝납니다. 역시 식민사학을 공부한 사람은 엉터리 주장을 하는군. 이렇게 거들어주는 사람들이 나오니까요. 역사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실증 환단고기]나 [신라국가형성사연구]나 똑같이 그저 한권의 책일 뿐입니다. A는 [실증 환단고기]를 전거로 들고, B는 [신라국가형성사연구]를 전거로 드는데 이런 식으로 서로 수십권의 책을 들이대면서 "내 말이 옳아"라고 외치니까 일반인은 "뭐가 진짜야?"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그런데 B는 식민사학과 출신이고, A는 우리민족이 위대했다고 주장하는데 B가 속절없이 자꾸 딴지를 거는 것 같단 말이죠. 까짓거 중국도, 일본도 다 거짓말하는데 우리도 하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면 A가 드는 전거의 불합리성은 따져볼 필요도 없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학문이 아니라 그냥 믿음이죠.
보는 시야가 좁아지니 자기 신념에 대드는 인간은 모두 혼내줘야 합니다. 그러니 반대 주장을 보면 바로 욕부터 나가죠. 매사를 이중잣대로 판단합니다. 자기 주장과 같은 사람은 욕을 해도 되지만 반대편에 선 인간은 투덜대기만 해도 인간성 더러운 놈이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딱 자기가 내놓은 증거를 반박하지 않으면 반박당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도 100% 반박을 하지 않으면 반박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100% 반박을 당하면, 그때는 반박한 사람이 옹졸한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 애초에 일부를 반박하든, 전부를 반박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애초에 진실을 알겠다는 생각이 없으니까요.
부디 이 단계까지 망가지기 전에 제 블로그에서 의심하는 의식을 조금이나마 되살리는 분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덧글
2. 재미있는건 저런 주장 자체를 메이저 언론에서 꽤 잘 다루어준다는 거죠. 박창범 교수 학설이야 신동아에서 꽤 자주 다루어준 걸로 압니다. (뭐 사실 서울방송에서도 대륙 조선설을 다루어준 적 있지만 이건 거의 "기인열전" 수준으로 다루었으니)
3. 내용 자체는 황당이라는 말도 아까운 수준인데.. 사실 다른 진리도 저런 식으로 왜곡하는 건 "업계의 관행"이자 "이미 파악된 공격패턴"이거든요 -_-;;; 이념때문에 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이 왜곡되었던게 남과 북 공통이니 그렇지요. 뭐 70년대 "진짜" 김일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서나 김일성 열전 (그러니까 김일성이란 사람이 6~7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한심한 김일성이 나머지 김일성의 업적을 훔쳐서 북한 정권의 수장을 한다는 -_-;;;)에 평생을 바친분도 있지요. 뭐 대륙조선설에 필적하지 않습니까?
功名誰復論님 / 서안 오릉원의 경우 환빠들은 절대 인정 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릉원의 박물관도 우리나라 진실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주장도 보았습니다. 거기서 발굴된 단군조선의 유물을 중국이 다 빼돌렸다는 인간도 있습니다. 근거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ExtraD님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오류를 찾아냈다거나 페르마의 정의를 몇 줄로 증명했다고 하거나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거나 천동설을 주장하는 뭐 그런 인간들(크랙풋이라고 하던가요?)과 닮은 꼴이랍니다...^^;;
地上光輝님 / 저같은 죽작가보다 더 장사가 잘 될 겁니다.
이준님 / 이 사람들 주장 중에는 5.18이 중국 광저우에서 일어났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도 설마... 싶습니다만... 5공재대륙설이라고 하던가... 원...
저정도까지 중증이었을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이건 뭐 결과를 정해놓고 사료를 끌어다 맞추는 억지 수준조차도 이미 한참 넘어서 있군요
최소한의 상식선 조차 없는 주장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역사가지고 하는 DDR은 좀 안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catnip님 / 아니죠. 이 사람들은 최하층의 사람입니다. 잘못된 것이라도 믿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는 거죠.
실버님 / 그런 소설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김현님 / 문제는 잘 풀리신 건가요?
뭐 저 같이 전문적인 학식이 없는 일반사람은
그냥 알아서 되겠지. 해버리고 냅두는게..핫핫핫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와 유라시아 유목민족은 모두 동족들
이기 때문에, 아틸라도 한민족, 칭기스칸도 한민족, 아골타도 한민족,
누르하치도 한민족... 그러므로 로마 제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모두
우리 민족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거죠. 위에 예시하신 주장들을 보니,
차라리 아틸라가 배달 민족의 자랑스러운 조상이라는 주장이 무진장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OTL
아참, 실례가 안된다면 링크를 데려가겠습니다.
다크엘님 / 낚이지만 않으면 해는 없습니다.
고독한별님 / 인간은 결국 하나의 조상에서 진화했잖습니까? 인류의 역사가 결국 우리의 역사인 거죠.
...아직도 저런 허황된 얘길 믿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부끄럽군요. 완전 일본 우익 저리가라 수준입니다.
*고등학교때 "한"단고기를 재미있게 읽던 기억은 납니다만... 어릴때 공상과학 읽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 책이 아닐런가 싶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학교다닐때 국사수업을 하면 교사들이 고구려 이야기만 하면 100%쓰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광활한" 바로 이단어...그리고 지금의 영토와 비교하면서 조선을 비하해왔습니다. 그 덜떨어진 선생들의 수업이 환빠의 등장을 부추긴겁니다.
자국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고 뭔가 큰것을 숭배하고...(흡사 남근 숭배사상 비슷한것 같습니다. 왜 남근석 같은것들은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지 않습니까? 큰것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러다보니 대물이었던 역사를 찾아 뒤지게 만들고, 없는것 같으니 만들고 조작하고 엉터리를 믿는 신흥 사이비교를 만든것 아닙니까?
학생들의 가치관이란게 뭐 그렇게 만들어지는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부분은 교사들의 영향이 작용하지요. 요즘도 학교교육 역시 그럴껄요?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적 배반으로 규정하는 교사들 말입니다. 결국은 그것 역시 대물 숭배사상의 일환이지 싶은데 말입니다.
첫째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이후 신라본기의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대륙에 있던 신라가 현금의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설입니다.
둘째는 박창범/라동현선생의 일식기록 분석으로 인한 일식 최적 관측지 기록일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일식기록을 첨삭하지 않았다면, 두 분 선생님의 과학적 실험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물론 신뢰수준은 낮지만 그럴 여지가 전혀없는 것은 아니지요.
셋째는 중국25사의 기록입니다. 중국25사의 기록은 중원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중원의 사가들이 살피어 잘잘못을 크게 따지지 않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인 수용도 잘못이지만, 때로는 일부 반박 논리에도 잘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추가로 현재 중공이 신라에 대해서는 동북공정 문제를 일으키지 아니하나 만약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우리는 어떤 대응논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중국25사에서는 신라를 진나라 망명유민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본래가 중국백성이라는 논리가 되겠지요. 이것은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에 해당하는데 참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논리입니다.
혹은 저를 이병도의 추종자 또는 이병도의 망상에 물든 자로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강단이나 재야사학 어느 곳으로 불려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강단이나 재야나 다소 논리에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안고 가야할 동지입니다.
강단이나 재야사학이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의 계보가 문제가 있음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분석결과가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강단에서는 언급자체를 회피하거나, 계보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재야에서는 공백상태로 보고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오는 시기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륙설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① 첨해이사금에서 흘해이사금까지의 왕의 계보를 부정한다면, 왕의 성씨가 박·석에서 김씨로 바뀌었으므로, 중공에서는 서로 다른 왕조라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신라와 대륙의 신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왕조라고 주장을 할 텐데 동북공정의 대응 논리로 적정한지요. 또 박·석·김을 동일한 족속으로 본다 하더라도 나라를 옮겨 세웠다고 하기엔 거리 또한 너무 멉니다. 그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면 왕실이나 종실은 좋은 배를 타고 옮겨 가겠지만 그 안에 살았던 백성들도 왕실과 똑같은 배를 타고 건넜겠습니까. 어차피 피지배층인데 누가 왕이면 뭐 합니까. 누가 더 자신에게 잘 해주냐가 문제고 자신의 모든 기반을 포기하고 옮기겠느냐는 생각해 보십시오. 남의 땅이라도 벌어먹을 수 있으면 그게 더 나은 것이지 이동 중에 죽을지도 모르고, 옮겨가서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옮겨가지는 않지요. 어찌됐든 절반 이상의 인구가 옮겨갔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② 대륙에 살던 사람이 한반도로 옮겨왔다면 사서 상에 최소한의 자료는 남아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인용한 사서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서는 없고 그럴 거라는 設만 존재하지요. 그럼에도 대륙설을 확고히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이론은 이렇습니다.
① 초기 신라는 성씨로 왕위 승계가 되지 않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을 왕으로 세웠죠. 내물이사금 이전까지 아들이나 손자가 왕위를 승계 받는 숫자보다 동생, 조카, 사위, 왕비의 새로운 남편이 승계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았죠. 이건 성씨 불문하고 박·석·김으로 승계가 됩니다. 이는 성씨가 그렇다 뿐이지 박·석·김은 모두 한 조상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중원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② 중국 25사의 신라의 출자는 진의 망명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부 타당한 면도 있으나 잘못이 있습니다. 이는 조분이사금과 첨해이사금의 어머니이고, 미추이사금의 누나였던 옥모의 출신지를 말합니다. 옥모가 후에 진골이 되었는데 신라 초기의 진골의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옥모 - 홍모 - 아이혜 - 광명 - 보반’으로 여자쪽으로 계보가 이어집니다. 중국25사에서 말하는 여인국이란 바로 신라를 일컫습니다. 중국25사는 옥모의 출신지인 소문국을 신라의 출자로 봄으로 인하여 마치 신라가 진의 망명인이 세운 나라로 둔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소문국=동예=진한8국으로 정리된 앞의 저의 글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③ 신라는 수도를 옮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없다입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발견된 고서에는 그런 내용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고 신라사초에 의하면 신라왕의 계보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신라왕의 계보뿐만 아니라, 금관가야의 청예왕과 거등왕의 재위기가 일치하고, 왜의 비미호의 재위기까지 일치합니다. 신라사초에 의하면 벌휴의 어머니 지진내례가 벌휴의 樹王으로 지정한 나무가 흘해이사금 시기에 부러집니다. 신라가 이사 올 때 아름드리나무까지 옮겨왔을 리는 없겠지요.
④ 이와는 별개이지만 공손씨가 성립한 곳은 마한입니다.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전에 공손씨가 있는 이유를 모르시죠. 공손씨가 마한에서 섰기 때문입니다. 마한 위에 낙랑이 있는 것은 공손씨가 남마한 위에 공손씨의 낙랑군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공손씨가 마한에 세웠던 낙랑과 대방2군은 궁준과 유무의 패배로 마한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즉, 진서 마한전의 마한과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제가 선 곳이 마한의 땅이자 대방의 고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땅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너주고 나죽자’식의 싸움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제시한 항목에 대한 답변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진짜 역사를 공부하려고 하다 보니, 어떤 역사가 진짜 역사인지, 어떤 역사가 가짜인지 모르겠습니다.
초록불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자료는 감사히 참조하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에 중국의 지명만 가져온것으로 끝나면 될문제인데...
인문지리학 동국여지승람이 문제이지요.
각 지명마다 역사적 명칭 변경과정,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인물, 특산품등을
기록에 남긴 초기 조선의 학자들이 나쁜놈이 되어 버렸습니다.
동래현(부산)의 지명에 2가지 상충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래현에는 주필산과 대마도가 있습니다.
대마도는 왜가 몰래 이주해 살던 지역이고요.
주필산은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투를 치룬 장소라고 합니다.
(지명만 남기지... 어설프게 역사적 설명은 왜 추가한것인지... 썩을 조상님들 ? )
조선의 지리학자들이 그릇된 인문지리서를 만들어 후손에게 전달하다보니
부산 주변에서 당태종이 전투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선 학자들이 그릇된 지식을 후손에게 전달하다보니 조선이 망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