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넷 상에 나온 자료는 잘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옳거나 그르거나 그렇지만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오래 살아남아 해악을 끼치는 것 같다.
[동아일보] [신복룡교수의 한국사 새로보기] 오역(誤譯)의 역사 [클릭]
위 글을 다 읽어볼 필요는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다.
국사학에서 씻을 수 없는 오역은 ‘高麗’,‘高句麗’를 고려와 고구려로 오독한 것이다. 이는 ‘고리’와 ‘고구리’로 읽어야 옳다. 조선 시대까지도 ‘麗’를 ‘리’로 읽다가 일제 시대에 들어와 ‘려’로 읽기 시작한 것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려’로 읽고 있다. 나의 이러한 주장이 미심쩍은 독자들께서는 큰 옥편에서 ‘麗’ 자를 찾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란다.
국사학의 씻을 수 없는 오역이 아니라 신복룡 교수의 씻을 수 없는 과오다. 옥편 찾아볼 시간에 도서관에서 조선시대 책자나 좀 들여다보지, 쯧쯧. 이후 걸핏하면 고구리, 고구리 하는 정신나간 인간들이 양산되어 눈꼴 사납게 만든다.
[삼강행실도]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책자로 성종 21년(1491년) 언해, 즉 한글 번역본이 만들어졌다. 고기서 요 부분을 읽어보자.


빨간 테두리 안에 [고구려]라고 적혀 있다.
파란 테두리 안에는 [평양 도읍이라]는 주석도 붙어 있다.
역시 경남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된 것으로 선조 연간에 재간된 것으로 보이는 책의 박제상 이야기 부분을 캡처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삼강행실도 중 야은 길재에 대한 이야기다.

빨간 테두리 안에 [고려]가 보이는지?
하나만 더 보자.
삼강행실도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내용을 옮겨놓는다.
목판본, 3권 1책이다. 1431년(세종 13)에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설순(偰循) 등이 왕명에 따라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 등 3강(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한 책이다.
각 사실에 그림을 붙이고 한문으로 설명한 다음 7언절구(七言絶句) 2수의 영가(詠歌)에 4언일구(四言一句)의 찬(贊)을 붙였고, 그림 위에는 한문과 같은 뜻의 한글을 달았다. 그후 이 책은 1481년(성종 12)에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되었고, 이어 1511년(중종 6)과 1516년, 1554년(명종 9), 1606년(선조 39), 1729년(영조 5)에 각각 중간되어 도덕서로 활용되었다.
[추가부분] 백과사전에는 1431년에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에 한글이 부가된 것으로 나오지만, 최근 연구서적을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이때는 아직 훈민정음 반포전(훈민정음 반포는 1446년)으로 한글이 나올 수 없는 때다. 현재 성종 12년(1481년)에 번역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존 판본이 열녀전만 있으며 나머지까지 포함한 한글 판본은 성종21년(1491년)에 등장한다. 중종 때에 더 많은 판본이 인쇄되고, <속삼강행실도>가 중종9년(1514년)에 간행된다.
이외에도 영조 때 나온 [동몽선습 언해]라든가, 정조 때 나온 [오륜행실도]에도 고려, 고구려라고 적혀 있는데 일일이 제시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헛소리는 이제 그만. 재야사학이라는 주장이 대개 이 모양이라는 거, 이해 하시길...
추가
논점을 이해 못하는 분들이 있어서 추가해 놓습니다.
중국에서 [고구려]의 [려]를 [리]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인의 문자 발음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가령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뭐라 나오건 그것은 고려인들의 발음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발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려]를 [리]라고 읽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위에 제시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려]라고 읽고 있습니다. 대체 우리 선조들의 발음을 무시하고 중국인들의 발음대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자신들이 [자주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러니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요?
추가2
서길수 교수가 또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군요. 자칭 고구려사 전문가라고 하면서 이런 간단한 조사도 하지 않고 함부로 지껄이는 걸 보면 참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애초에 별 기대를 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분명 100년 전에 갑자기 [고구려]라고 읽지 않은 것을 본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서길수 교수는 [대동지지]에도 [고구리]로 읽으라는 주석이 달려있다고 주장했다는데, 그 원문을 보시죠.
大東地志 / 方輿總志卷四
高麗
... 內史侍郞徐熙語契丹蕭遜寧曰 我國卽高句麗之舊地故號高麗 按麗音離 而東史寶鑑作麗音呂 是未詳何義也 今華人猶呼音離 而韻學等書皆從之 東人變呼音呂
내사시랑 서희가 거란 소손녕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즉 고구려의 옛땅에서 일어나 고려라 이름하였다. (이제부터 서교수가 이야기한 주석이다.) 살피건대麗의 음은 리(離)이다. 그러나 동사보감은 麗음을 려(呂)라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인은 [리]라고 부르고 음운학 책은 모두 그를 따르지만 우리나라 사람(東人)은 [려]라 바꾸어 부르고 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아셨는지요? 정말 한심합니다. 정말 정말 한심합니다. 서길수 교수의 주장은 고구려라고 읽어야 하는 근거를 거꾸로 이용한 것입니다. 옥편이니, 운서니 하는 중국인들이 [리]라고 읽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구려]라고 읽는다고 저렇게 나오는데 말입니다!
덧글
여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지만, 다음 주 예고편을 보고 완전 충격받았습니다. 아마도 동북공정의 반대급부를 위해서는 필연적이었겠지만 "고구려의 위대함"에 대해 30분을 할애해서 방송한다고 하네요. 거리에 지나다니는 젊은이들 상대로 전성기 고구려의 강역 그려보기 같은 것도 하고... 그런데 예고편만 봐도 딱 불안한 것이, MBC에서 제작한 지도의 고구려 강역이 요동 요서를 넘어 완전 베이징까지 들어가 있더군요. 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윗쪽의 몽골 초원까지 올라가고. 치우 얘기도 잠깐이지만 나왔고...
저 이야기는 그냥 넘어갔지만, 동학 관련 문제는 거의 소송이 걸리다시피한 뭐 그런 일도 있었지요. (동학 혁명이야 그렇다고해도 3.1 운동 부분은 "당시"의 일본쪽에서 나온 요승(妖僧)손병희류의 기사 -_-;;;를 참조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반기독교, 반신라주의자이지요. 반신라주의니까 친백제 그리고 동북공정 비슷한 그런 쪽이 많았고...
2. 책 안 읽은건 당연합니다. 저 교수님이 이전에 번역한 책이 상당히 제자들 작품인게 (이건 관행이지만) 많아서 문제가 되자 아예 몇장부터 몇장은 번역실명제를 했거든요. 근데 책 한권의 쳅터 "두개"만 본인 번역이었답니다.
원래 느낌표 그 코너도 동북공정이랑은 무관하였죠
ps: 혹시 반중 무드가 심화되면 "중공군"이랑 싸우는 한국전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드네요. -_-;;;; 이제 다른 사극들도 슬슬 악마의 처삼촌 중국에 저항하는 "쥬신"의 후예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_-
좋은 내용에 항상 감사합니다.
하긴 '가오리'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냥 "까오리 빵즈"라고 부르고 살면 딱 좋겠네.
그런데 찾아보니까 반론도 있네요. (용비어천가)
http://egloos.zum.com/coreai84/v/5402852
그렇다면 조선 중기 이전에는 '고려'와 '고리'가 혼용됐다고 정리해도 될까요?
저는 대개 언어는 언중에 의해서 발음되는 쪽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가령 "자장면"이라고 표기해야 하던 시절에도 언중은 "짜장면"이라고 발음하고 있었죠) 고려라고 읽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제 생각이고요. 고리아이님의 이야기처럼 고려와 더불어 고리라고 조선 시대에 발음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려나 조선 전기의 발음을 확실히 알아내는 것은 확실히 힘들 수 있지만, '고구려 사람들이 고구려를 어떻게 읽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좋은 우회로가 있는데, 고구려와 직접적인 교류를 가졌던 일본인들이 그 수십 년 이내에 남긴 기록들입니다. 고대 일본어에 kure가 나타나기 때문에, 고구려인들이 자국을 부르는 명칭은 '고려'였다고 보아도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