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에 굳이 반응해 줄 필요는 없지만 궁금해 하는 분이 있어서 적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 그 미스테리에 대해 [한국사 미스테리 60]이라는 내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읽어볼 필요가 없다.
우선 이 반박문을 쓴 사람은 스스로를 수도권 A대학에 다니는 사학과 학생이라고 하고 있으며, 자기 글을 출처도 없이 퍼가는 사람들에게 무척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내 글의 일부만 따다 가서 반박문이라고 끄적여 놓았으며, 이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글인양 훔쳐가서 포장만 슬쩍 바꿔놓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고 있다. 벌써부터 표절에 도가 텄으니 장차 어찌 될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작자가 링크를 걸지 않았으니 나도 링크 같은 거 걸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 원문을 알려준 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성질만 부리면서 원문 같은 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더라.)
이자는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것만 반박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자기 편한 것만 반박해 보겠다는 이야기다. 빨간색이 이 사람의 반박내용이다. 60항목 중에 무려 17개나 반박하고 있다. 짝짝짝.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 이는 기상대 자료만 꼼꼼하게 따져봐도 당장 거짓임을 알수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15~20년정도를 주기로 이런 현상이 한반도내(더더군다나 남한만 따져도!!!)에서도 일어납니다. 몇년전 경상도쪽에서는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서 사람과 가축이 떠내려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같은날 충청도와 전라도쪽은 가뭄으로 논이 갈라지는 장면등이 뉴스에서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 이 글을 쓴 사람은 과거의 홍수 기록과 현재의 홍수 기록을 혼동하는 것 같군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시대는 대기오염, 환경오염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 상이라도 경상도에 홍수가 전라도에 가뭄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위의 기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위도와 경도가 다른 드넓은 중국 대륙입니다. 글쓴이가 과연 옛날 기상학 기록을 보고 반박을 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먼저 말할 것은 저 위의 내용은 내가 쓴 내용이 아니다. 저것은 다른분이 반박했던 내용이다. 그 분이 반박한 것과 내가 반박한 것이 혼용되어 편집된 글은 본 적이 없으니, 내 글을 반박할 수 없자 다른 분의 반박문을 가져다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웃기는 것은 이 분의 글 중 일부를 가져다가 내 글에 대한 반론에 뻔뻔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10번 항목에 나온다.
홍수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홍수기록으로 본 삼국의 강역 [클릭]을 보면 되지만 이게 귀찮은 분을 위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 시대에 경상감사가 홍수 났다고 장계를 올릴 때 전라 감사가 안 올리는 기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반박자의 의문 - 옛날 기상학 기록을 보고 반박을 했느냐에 대해서 당연하지라고 답해줄 수 있다. 반박자는 이런 쓸데없는 반박문 만들 시간에 조선왕조실록이라도 좀 뒤져보기 바란다. 요즘은 찾기도 쉽잖은가? 내가 저 글을 쓴 97년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렇게 이미 내가 쓴 글에 이 반박자의 글은 이미 다 반박이 되어 있다. 앞으로도 이 점이 증명될 것이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신라의 땅은 동남쪽으로 오늘날 조선의 경상도 강원도의 2개의 도를 아우르고 서북족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한 서쪽으로 개원 철령에 가깝다"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 713 ~ 741)이후 발해가 성할 때 압록강으로 경계하였다.
"구주(九州)의 설치는 동쪽으로 길림에 이르고 서쪽으로 광녕에 이른다"
그렇다면 만주원류고에 있는 위 기록은 구라란 말인가? 글쓴이의 무지를 알수 있게 한다. 과연 반박문을 쓴 이가 제대로 된 사서는 읽었는지 궁금하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럼 내 원래 반박문에는 뭐라 쓰여있는지 옮겨와 보겠다. 볼드체로 되어 있는 부분이 바로 반박자가 인용한 부분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요만큼 옮겨가서는 반박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누가 무지한 걸까? 더구나 반박자는 한문으로 된 원전을 소개하지도 않고 있다. 원전을 읽을 능력은 있는 걸까?
아래 옮겨온 반박문은 강조 부분이나 원전의 색을 바꿔 편집했던 것 등등은 무시한다. 원 모습대로 보고싶은 분은 위의 링크를 눌러서 전문으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문학 연구 결과를 들어 신라가 양자강 중류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 시대에는 양자강 중류지방을 만주라고 불렀나 보다.
이 주장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던지라 조금 찾아보았다. [만주원류고]란 청 건륭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1771년 아계阿桂라는 사람이 편찬. 문화 전통이 없는 만주족이 한족보다 나은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만든 책이다. 자기네 역사로는 당연히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까지 죄다 자기네 것처럼 그 안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만주원류고]는 청나라에서 행해진 동북공정이었다. 이제와서 재야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만주족도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책이 두고두고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여진족은 우리와 신화도, 언어도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도 공유하지 않았다. 재야들은 공유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 책은 신라, 백제, 부여, 발해, 숙신, 말갈 등등 우리나라 및 만주의 제 국가들을 다 언급하고 있는데 고구려는 쏙 빼놓고 있다. 왜 그럴까?
발해 편을 보면 대조영이 본래 고려별종이었다든가, 속말말갈이 고구려에 속해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편집해 놓았다. 이 책의 음흉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본론으로 돌아가자. 위에 언급한 문제의 글은 이런 것이다. 방점은 내가 찍었다. (이런 일로 방점까지 찍으며 이런 글을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주원류고 권 9 신라편 신라9주 조
謹案, 新羅始附庸於百濟, 後兼加羅 任那 諸國與百濟爲隣. 考其疆土, 東南並有今朝鮮之慶尙江原二道, 西北直至今吉林烏拉, 又西近開元鐵嶺. 唐顯慶以後, 又得百濟故地及高麗南境, 於是東西增九百里, 南北增千餘里. 開元以後, 渤海盛强其西北諸境, 盡爲所倂. 新羅所有僅鴨淥江以南.
우선 저기 첫대목에 나오는 [근안謹案]이라는 말에 주의하라. 이 책은 기존 사료에 있던 글들을 모은 다음에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을 [근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놓았다. 즉 이후에 나오는 말은 어떤 사료에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지네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대단한 사료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저 인용된 문구의 빨간 부분이 재야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략 번역하면 이렇다.
삼가 살피건대 신라는 처음에 백제에 부용되었으나 후에 인근의 가라, 임나 백제 등을 겸병하였다. 그 강토를 살펴보면 동남으로 지금 조선의 경상 강원 2도요, 서북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는 개원, 철령 부근이다. 당 현경(656-660년) 이후에 백제 옛땅과 고려 남쪽경계까지 얻어 동서로 구백 리, 남북으로 천여 리를 얻었다. 개원(713-741) 이후에 발해가 강성하여 그 서북 경계를 모두 병합하였고 신라는 압록강 이남의 땅만 차지하였다.
이 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이 글은 신라가 통일 전쟁 이후 9주를 설립했을 때의 영토를 설명한 글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 [만주원류고]는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뺐다고 했는데, 그에 맞춰 신라의 영토를 고구려의 영토까지로 확장해 놓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고구려를 병합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고의로 없애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졌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당(한족)에게 말갈(여진족)이 복속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빼버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땅은 발해가 당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이 신라 것이 되었다고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작을 대충 하다보니 [만주원류고]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신라9주 조의 마지막 항목에은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至九州之設, 東至吉林, 西至廣寧, 跨海蓋而包朝鮮幅員式擴矣
앞의 문장과 무엇이 다를까? 길림이 앞의 글에서는 [서북]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이 되었다. 방위가 왜 이렇게 들쑥날쑥할까? 윗 글을 쓸 때는 신라 입장에서 서북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밑의 글은 고구려 영역을 모두 신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런 황당한 사서가 [만주원류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만주원류고] 이외에는 이런 황당한 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만주원류고 안에서 밝혀야 하는 것은 청황실이 왜 이런 사고를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것을 가지고 고대사를 꾸며대는 일이 아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 그래서? 남한에 아파트가 서 있으니 미국 땅이라고 주장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서울에 관제묘가 있으니 중국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경상남도에 왜식 성이 세워져 있으니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더구나 저 이야기는 내몽골자치구와 요녕성의 경계 부근에서 발견된 성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에서 내몽골 자치구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또 요녕성과의 경계라면 어딘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저 <내몽골>이라는 말 때문에 지금 몽골의 어디쯤인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오산. 저런 말이 나온 근거는 이 기사다. <주간조선>고구려 정복로 1만3000리를 가다 <원문클릭>
==>이건 사실이다. 2~3년전 국내학자들이 몽골로 고구려 성터를 확인하기 위해 내몽골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전통의 성곽 축성기법과 일부 고구려 유물을 확인하였다. 다만 단지 땅위로 들어난 것만 확인했을뿐 구체적인 유물발굴등은 하지 못한 상태이다. 몽골과 더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자세한 유물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실상 정부나 학계에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하는 눈치다. 이 고구려 성터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고구려의 영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보다 배 가까이는 커지게 된다. 더군다나 만주뿐이 아닌 몽골지역의 초원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어 당시 실크로드의 하나인 '초원의 길'이 고구려의 영향력아래 있었는지를 밝힌수도 있는 유물들임에도 강단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깨질까봐 나서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일부러 나설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이후 연구는 답보상태로 알고 있다.(당시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이를 방영한적도 있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상식을 넘어서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접했다. 위에 반박자가 반박한 듯이 써놓은 글은 자기 글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서 자기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 베낀 원문을 먼저 보자.
[여름나기님의 블로그]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에 대한 반박 - 1편 [클릭]
이는 사실입니다. 2~3년전 국내학자들이 몽골로 고구려 성터를 확인하기 위해 내몽골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전통의 성곽 축성기법과 일부 고구려 유물을 확인하였습니다. 다만 단지 땅위로 들어난 것만 확인했을뿐 구체적인 유물발굴등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몽골과 더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자세한 유물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실상 정부나 학계에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하는 눈치입니다. 이 고구려 성터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고구려의 영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보다 배 가까이는 커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만주뿐이 아닌 몽골지역의 초원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어 당시 실크로드의 하나인 '초원의 길'이 고구려의 영향력아래 있었는지를 밝힌수도 있는 유물들임에도 강단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깨질까봐 나서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일부러 나설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이후 연구는 답보상태로 알고 있습니다.(당시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이를 방영한적도 있습니다.)
내 글에 대한 반박문이 아니고 여름나기님이 [한국사 미스테리 60] 글에 대한 반론을 쓰면서 작성해 놓은 글을 자기 것처럼 포장해서(존대말을 반말로 바꾼 것이 이 작자가 손 본 전부다.) 써놓은 것이다. 파렴치한 인간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더 어이없는 것은 위 5번에 다른 분의 글이라는 그 출처가 바로 [여름나기]님이라는 것. 여름나기님 반론에서 어떤 것은 반대하는 글이라 까고, 어떤 글은 자기 입장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여 집어온 셈이다. 어디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 나온 것일까? 그러면서 자기 글 무단으로 퍼간다고 길길이 날뛴단 말인가? 정말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인간이다.
위의 내 글은 전문이 아니고 뒷부분이 없어진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구려 성이 발견된 부분이 거짓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원문에서 마치 장소가 지금의 몽골처럼 오독할 수 있게 만든 부분을 반론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성 양식이 같다고 해서 그곳을 실효지배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물, 유적 하나가 역사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고구려칸이라니? 이런 헛소리는 처음 본다.
==> 정재승 선생의 글은 못 보았나?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이런 헛소리를 하니 참 한심하다. 바이칼 호수 주변부족에 전승되는 신화와 우리의 신화가 일치되는 부분이 있고, 그들의 풍습이 우리와 같다. 게다가 우리의 전래동화인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발원지가 바로 이 곳이다. 이는 적어도 우리와 이들간의 풍속, 문화가 옛날에는 공유했음을 뜻한다. 고구려칸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의문점이 있지만 한번쯤 연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
정재승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봉우사상연구소든가 하는 곳의 연구소장이고 정신세계사와 뭔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무슨 사계의 권위자라고 들먹이는지 알 수가 없다. 별 걸 다 읽어보아야 하네. 반박자가 하는 수법을 잘 보기 바란다. [정재승 선생의 글은 못 보았나?]라고 말하면서 그 글이 뭔지, 어디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원문을 제시하면서 출전을 공개하는 자세와 비교해 보면 누가 공정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무턱대고], [무조건] 이런 말로 비난하기를 매우매우 좋아한다. 자기 자신도 의문점이 있는데 연구해 보아야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원래 내가 비판한 명제를 잘 보기 바란다.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라고 말한다. 또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라고 말한다.
내 글을 반박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원 글을 쓴 사람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박자는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 [고구려칸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의문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름끼치도록 닮았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가 같은 말인가?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라는 말은 [일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라는 말이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다시 보라.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라고 써놓았다. 내 이야기와 반박자의 이야기가 이 부분에서 뭐가 다를까? 반박자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즉 반박자는 내 의견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의견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무턱대고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라고 말해서 도덕적인 우위에 서보고자 함과 동시에 자기 주장이 옳다는 식으로 읽는 이들을 호도하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치우를 중국에서 고리국 황제라고 이야기한다는 말은 처음 본다. 황제라는 개념 자체가 진시황때 만들어진 것인데 무슨 헛소리인가?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련도 없다. 헛물 켜지 말기를. 저런 주장은 오히려 중국인들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지껄이는 헛소리인데, 우리가 거기에 장단맞춰주는 셈이다. 제발 정신차리기 바란다.
==> 중국 사서 사기는 읽어보았는지 의문이다. 사기를 보면 치우를 구려의 군주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려가 바로 고리국을 뜻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중국의 서욱생 교수는 치우가 동이족의 제왕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동이족 계열이었다. 그러니 결국 치우가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치우가 중화족보다는 우리민족과 연관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야말로 반박자가 [사기]를 읽어보았는지 궁금하다. 반박자가 써놓았듯이 치우를 구려의 군주라고 적어놓았지, 어디에 황제라고 적어놓았느냔 말이다. 이 부분도 물론 내 원문에 길게 길게 반박이 되어 있다. 지겨워서 옮겨오지 않겠다. 궁금한 분은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저 알량한 반박자와는 달리 원문과 출전을 모두 명기해서 작성해 놓았으니까. 저 반박자 식으로 한번 반박해 볼까?
반박자는 선진시대 동이와 그 이후 동이의 차이점을 아는가? 전해종 교수의 책이라도 읽어보았는지 의문이다. 여기서 전해종 교수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니 친일강단사학자 운운하는 소리는 제발 집어치워 주기 바란다.
이렇게 반박해주면 성의있고 멋진 반박문이겠지? 나도 쓰기 편해서 좋구만. 내 반박에 투정부릴 사람은 위 반박문을 만든 사람에게 먼저 투덜거린 다음 와주기 바란다. 저 반박문 읽은 사람 중에 [서욱생]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반박자는 정말 서욱생의 논문을 읽어보았을까? 그냥 재야에서 떠드는 소리 귀동냥하고 같이 떠드는 거 아니야? 나는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을 스무 번도 넘게 보았고, 이유립, 임승국의 글도 모두 읽어본 뒤에 인용했는데, 반박자는 정말 읽어보고 반박한 걸까? 반박자는 교차검증이라는 말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그냥 남이 한 말을 믿는 건 역사학도가 할 일이 아니거든. 아직 못 보았다면 꼭 읽어보고나서 떠들어줘. 읽을 능력이 안 되면 능력부터 기르고...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 이것에 대해서는 여길 보라.박창범-나대일의 삼국시대 일식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참고로 이것도 같이 보면 좋겠다.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를 무시하는가? 그리고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이라는 논문은 나와 동명이인인 전남대의 수준떨어지는 대학생이 어줍잖은 지식으로 나불댄 글이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대해 강단의 평가는 들었는지 궁금하다. 강단 중 일부 학자들은 박교수의 연구 결과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고대 천체기록은 매우 과학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 오차는 0.007%로 이는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가 사실임을 증명한다. 이를 부정하는 그대는 과연 진정 학문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내 링크가 깨져있으니 저 반박문 작성자는 링크에 걸린 글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자기는 읽었다면, 이 반박문을 보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안 읽은 것이 분명하겠지. 사실 그 뒤의 내용을 보면 안 읽은 것이 분명하다. 내 글을 전북대 이문규 교수의 글로 착각하고 있으니까. 착각의 정도가 심해서 멀쩡한 교수를 [대학생]이라고 왜곡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학도 전남대로 바꿔놓았다.) 이런 식의 왜곡이야 이 동네의 전매특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읽지도 않은 내용을 반박한다고 나서고 있으니... 아이구 머리야. 대체 이런 반박글을 칭송하는 무리는 대체 어떤 사고 구조가 뇌 속에 있는 걸까? 내 원문에는 많은 반박글이 링크되어 있다. 역시 궁금한 분은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위의 것과 동일하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문항 수만 불려놓는 것도 파렴치한 짓이다.
==> 한단고기가 현재 위서 시비에 휘말리고, 게다가 증산도측에서 종교 교리 전파하는데 사용한다고 증산도 측에서 나온 종교경전이라 곡해를 한다. 물론 한단고기가 위서 시비에 휘말리고 있지만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한단고기 영인본이 발견되었는데 영인본이 있다는 것은 한단고기가 무조건적인 거짓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서문을 보면 한단고기는 단 하나의 책이 아닌 옛 여럿 기록들을 하나로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가지 꼬투리를 잡고 위서다, 진서다라고 하기보다는 일단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검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반박은 매우 뜬금없다. 반박 문항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반박이랍시고 올려놓았다. 이게 무슨 반박이란 말인가? 더불어 내 블로그에 오는 분들은 알겠지만 옛날옛날에 진지하게 검토하여 결론을 내려놓은 장문의 글이 있다.
그리고 저 영인본. 에효효... 나는 이미 영인본 운운하는 내용이 엉터리라는 것을 내 블로그에서 알린 바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본 블로그의 역사 항목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반박자는 아무 근거도 대지 않고 그냥 [한단고기 영인본이 발견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근거도 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혹세무민하는 것이 역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참 멋진 반박문이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중국 대륙내의 요동이란 수나라때 설치된 요산현을 가리킨다. 지도에서 <요>자만 나오면 요동이라 우기고 있다.
==> 현재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요동 요서 개념은 거란족 요나라 때 확립된 것이다. 현재의 요동과 요서와 고대의 요동과 요서가 같을 수 없다. 수경주를 비롯한 고대 중국 사서에는 요하가 지금의 랴오허 강이 아닌 베이징의 난하였다는 기록이 무수히 존재한다.
[수경주]가 뭔지 아시는 분이 있는지? 저렇게 이야기해놓으면 참 그럴듯해 보이나 보다. [수경]은 한나라 때 상흠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이며, 여기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수경주]인데 북위의 [역도원]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 실려있는 [패수변]에는 이에 대한 상세한 논증이 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도록.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번에도 반박자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난하는 어디를 흐르는 강일까? 지금의 요녕성을 흐르는 강이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요서 지방에 있다. 여길 중국 내륙이라고 하던가? 한국사 미스테리에서는 중국 내륙에 요동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반박자는 뜬금없이 난하요동설을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 자기가 뭘 주장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 고구려를 칠 때 군인들이 징병된 곳이 저곳들이다. 그곳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왜곡을 하다니 한숨만 나온다.
==> 과연 위 글을 쓴 자가 산동성의 향토지는 읽어봤을까? 지난 역사스페셜에서도 위 전설과 관련해서 중국 향토사학자가 자기네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연개소문 전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럼 이 지방에 내려오는 연개소문 전설은 무엇이란 말인가? 향토사학자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건가?
정말 짜증나는 반박글 아닌가? 나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반박자는 제목만 나열하고 원문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체 이런 게 무슨 반박문이란 말인가?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 아주 웃기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고려성터는 존재한다. 그것도 고구려 양식이다. 이는 고구려가 적어도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상당기간 동안 고구려가 이 지역을 지배했음을 뜻한다.
내 원문은 이렇다. 읽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선 위 중국 지도에서 강소성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주장은 그런 것이 있으니 거기가 우리땅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썼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이것은 중국측 강소성 금호현 사이트에 나온 글이 출처라 한다. 우리나라에 떠도는 글과 중국 사이트의 글은 좀 다른데, 우리 측에 있는 글이 가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성의 이름은 高麗城이 아니고 高黎城이라는 것과 이것이 송(宋) 영종(英宗) 1064 ~ 1067년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고구려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살펴보시라.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5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 신채호 선생은 중국 베이징 일대를 답사해서 고려영진을 발견했고, 고려성터가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성 역시 고구려 양식 계통이다. 그리고 문헌상으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했음을 증거한다. 위 반박문을 쓴 이는 중국인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철저히 우리 역사를 깔아뭉개고 있다. 고구려가 북경지역까지 진출했음은 삼국사기, 진서 등의 문헌이 증거한다.
이것도 짤라먹은 반박문인데 드디어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걸핏하면 상대방을 중국인, 화교 등등의 소리를 써가며 남의 조상을 욕먹이는 것을 즐겨한다. 천하의 잡놈이나 이런 식으로 남의 조상을 욕하는 글을 쓰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좋다고 박수를 친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중국 기록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런 식의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다. 중국의 문헌? 이름조차 대지 않고는 있다고 우기는 것 뿐이다. 한마디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저런 문헌을 가져올 수 있는가?
==> 중국 사서인 사기를 보면 한무제가 조선을 쳐서 사군을 설치했다 기록했다. 그런데 그 사군이 낙랑, 현도, 임둔, 진번이 아니라 날양, 추저, 홰청, 평주 4군이라 한다. 그리고 이 4군의 제후로 봉해진 자는 위만 조선 유민이다. 조한전쟁에 참가한 한나라 장수들은 대개 사형 같은 극형에 처했다. 그리고 낙랑, 진번, 임둔, 현도 소위 한 사군은 후한 대 이후의 역사서에 등장한다. 당대 기록인 사기의 기록이 정확할까? 후대 기록이 정확할까? 당연히 당대 기록이 정확하다. 결국 한사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한사군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가?
이미 내 원문에서 비판해 놓은 이야기다. 반박자가 주장하는 것은 고조선 멸망 후 투항한 사람들이 봉해진 곳을 한사군이라고 우기는 것인데, 제발 [사기]를 읽어보고 와서 주장했으면 좋겠다. 제후로 봉해진 사람은 다섯이고 지역도 다섯이 나온단 말이다. 옛날 옛날에 임승국이 그렇게 떠들었다가 천관우에게 개박살난 이야기란다. 그리고 대체 어느 중국사서에 한무제가 동명성왕에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동명성왕이 BC108년에 한무제와 싸우고 BC37년에 고구려를 세웠단 말이냐? 반박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 왕의 출신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는 한심한 생각에 기인한 이야기다. 영국 왕실은 독일에서 왔다. 그러면 영국은 독일땅인가? 노르만인 윌리엄이 영국왕이 되면 영국 역사는 노르만의 역사로 변하나?
==> 그럼 위 반박자의 논리대로라면 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네... 이 땅의 사학자, 엣 실학자들이 구라를 까고 있겠네... 국사 교과서에는 발해의 지배계층이 고구려인,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고구려 유장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위 반박자의 논리라면 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겠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아예 원문에 달아놓은 바 있다.
그럼 발해는? 이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 발해의 주민이 고구려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국내 발해전문학자들의 글 좀 읽어보고 나서 덤비기 바란다.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강점한 기간동안은 한국사가 아닌 것이 된다. 누구보고 친일파라고 짓까부는지 모르겠다. 대동아공영론에 동조동근론을 착실히 받쳐주고 있는 인간들이 말이다.
딱 반박자 논리를 비판한 것은 아니니, 조금 더 부연설명해 놓자. 저 반박자는 왕 일인과 지배계층을 동일시 하고 있다. 역사학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요금을 왜 정복왕조라고 부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이런 원문을 보여주시죠...
그런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원문 제시라도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원문 보여드리죠 ㅎ "(아골타가 세운 나라를)"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
내가 오늘에서야 [만주원류고]를 한글로 써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하하. 역시 내 글에는 원문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니 궁금한 분은 내 원문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저 글도 내 글과 다른 사람의 글을 섞어 놓은 것이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 그렇다. 유주자사가 관직이었으니 태수들을 거느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자들은 이런 것을 증거로 고구려가 유주를 다스렸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사라는 관직이 고구려의 관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고구려에는 자사라는 관직이 없었다.
==> 진이 거쳐간 벼슬을 아는가? 그 벼슬 중에 국조대형이라는 벼슬이 있다. 국조대형이 어느 나라 벼슬인 줄 아는가? 바로 고구려의 벼슬이다. 간혹 위의 반박자와 같은 인간들은 진이 유주자사를 지냈는데 고구려가 자사라는 관직이 없었으므로 진은 망명객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오늘날 베이징인 연군 지방을 습격했다는 기록과, 이 곳에 발굴되는 고려성터, 고려 관련 지명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고구려가 유주 까지 지배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고구려가 유주를 차지못했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위에 인용된 부분 뒤에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읽어보고 생각하기 바란다.
사실, 위의 내용만으로 보면 미스테리라고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역사학계에서 무척 오랫동안 논의하고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위에 써놓은 입장을 지지하지만 국내학자 중에도 나와는 다른 의견(물론 그게 삼국재대륙설은 아니다. 그런 거짓말은 역사학계 안에 설 곳이 없다.)을 내는 경우도 있다. 정말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고대로부터의 통신]같은 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인터넷의 엉터리 주장들만 열심히 찾아다니지 말고, 제대로된 글도 좀 읽으란 말이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대개 이 대목은 요서백제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남중국계 사서에 백제의 대륙지배가 들어있으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대는 아는가? 북중국 계열 사서에 백제의 대륙지배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 같다.
북조 사서인『북제서』에는 서기 571년 북제의 군주가 백제의 위덕왕을 ‘사지절(使持節)/도독(都督)/동청주자사(東靑州刺史)’로 삼았다는 구절이 있는데, 사지절은 황제가 신임한다는 표시인 부절(符節)을 지녔다는 뜻이며, 도독은 군사의 최고 책임자이고 자사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이므로 이 구절은 북제가 백제의 동청주 지배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동청주(東靑州)는 지금의 산동반도 동남부에 있는 땅으로서 오늘날의 청도(靑島) 시인데, 백제가 해로의 요충지인 이곳을 손에 넣고 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최치원전」에 나오는 “고구려와 백제가 강한 병사 백만을 이끌고 유(幽)/연(燕)/제(齊)/노(魯)/오(吳)/월(越)로 쳐들어가 중국의 근심이 되었다”는 구절과 맞아떨어져(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는 산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음) 북조 사서도 백제의 담로를 다루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됨을 덧붙인다
참고로 구당서에는 백제의 영토에 대해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양쯔강 지방)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백제가 황해를 건너 대륙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자료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박자가 아마도 유일하게 자신있는 부분인 모양이다. 출전도 있고 한문도 부기해 놓았다. 아마 한국사 시간에 레포트로 제출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하. 그런데 이 글도 짤라먹고 쓴 것이다. 그럼 짤라먹은 글을 살펴보자.
대개 이 대목은 백제요서경략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한가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북위]가 수전에 약해서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기병이 바다를 못 건너긴 왜 못 건너겠는가? 임진왜란이 항주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어느 게 더 비현실적일까?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부분이라고 해놓았다. 수십년간 논쟁 중이라는 이야기.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조선사는 역사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사료집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대체 읽어봤으면 저런 무식한 주장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자들의 특징은 읽어보지 않고 비난하는 데 있다.
==> 반박자는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흐름을 알고 하는 말인가? 조선사 날조의 원흉 이마니시 류의 수제자가 바로 진단학회의 이병도이다. 해방 후 한국 국사학계를 이끈 이가 바로 이병도이다. 그의 학풍은 이기백, 신석호, 이기동, 송호정으로 이어졌다는 걸 모르는가? 그리고 그대는 아는가? 1987년 이병도가 죽기 전에 한국사가 일본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발언한 사실을...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이병도가 노망들었다고 평한다.
역시 핀트를 맞추지 못하는 반박문이다. 조선사와 국사교과서의 내용이 거의 똑같다고 해서 그렇지 않다는데, 그에 대한 반론은 한 글자도 없다. 눈은 뭐하러 달고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역사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사료는 대체 어떻게 보겠는가? 없는 글자도 만들어서 볼 사람이다.
그대와 같은 얼빠진 사대주의자가 더 이상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그대와 같은 얼빠진 극우민족주의자가 더 이상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게 많다. 사서의 부족, 우리민족의 활동무대가 오늘날의 중국이라는 점 등으로 우리의 역사 복원이 요원하다. 그럼에도 그대는 왜 우리의 역사를 깎아내리는가?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게 많지. 그대 같은 헛소리하는 인간들로 인해 우리 역사의 복원이 요원하다네. 그럼에도 그대는 왜 우리 역사를 거짓말로 뒤범벅해 놓는 건가?
우리 역사가 일제에 의해 많이 왜곡되고, 일제에 의해 많은 사서를 잃었다.
그리고 오늘날은 그대같은 인간들로 인해서 왜곡되고 있다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밝히지 않으면 그 누가 밝힌 것인가?
역사를 밝히기 전에 국어 공부 좀 하게. [그 누가 밝힌 것인가?]가 아니라 [그 누가 밝힐 것인가?]라고 써야 한다네. 그동안에도 오타가 무수했지만 참고 봐주었는데 여기선 한소리했네.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이 글이 전부가 사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전부가 거짓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필자는 위 60가지 중 사실로 입증될만한 명제를 추려 뽑은 것이다. 우리의 역사 찾기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한두개 정도는 거짓말이라고 하진 않은 것 같은데? 궁금하면 그대가 한번 세어보게나.
이제 우리는 식민사관, 반도사관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자국의 역사학 박사들을 매도할대로 매도하면서 진정한 우리 역사를 찾겠다니. 이자들은 박창범 교수 글을 반박하려면 천문학 박사여야 한다고 떠들면서 역사학 박사들은 왜 이리 개무시할까? 진정한 우리 역사 찾는다면서 개구라치는 일은 그만 두길 바란다네.
추가 : 너무 웃긴 일이 있어서 반박문과는 관련이 없지만 적어놓기로 한다.
그 얼토당토 않은 글이 있는 블로그에 가보았다가 무척 웃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블로그에는 글 퍼서 만든 카테고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내 글도 떡하니 가져다 놓았더라.
내 글인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퍼서 가져가서 엉뚱한 출처를 달아놓고 있으나 현재 이 블로그에 있는 글이다.
읽어본 뒤 간직해 둘만한 글이라고 생각해서 옮겨놓았겠지. 쯧쯧...
(하지만 그 작자가 확인하면 확 지워버리겠지...^^;;)
어떤 사람이 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었던데, 잽싸게 댓글만 지워버렸더라.
무단전제는 미안하다 정도의 말을 할 소갈머리는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 그보다도 원문 링크 정도는 걸 줄 알았더니.
(차라리 잘 됐지 뭔가? 그렇게 링크 걸면 나도 링크 걸어줘야 할 거 아닌가.)
이 작자가 자기 글 퍼가지 말라고 하면서 써놓은 글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틀린 맞춤법은 고쳐주지 않는다. 내가 국어선생님도 아니고.)
글에는 그 사람의 노력, 결실이 담겨있습니다.
남의 글을 출처도 안 밝히고 무단 개재하는 건
그 글을 쓴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남이 공들여 쓴 글을 무단으로 퍼가는 건 옳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 양심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글 퍼가실 때 출처는 남기는건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행위라는 걸 명심하시길...
우리나라의 역사, 그 미스테리에 대해 [한국사 미스테리 60]이라는 내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읽어볼 필요가 없다.
우선 이 반박문을 쓴 사람은 스스로를 수도권 A대학에 다니는 사학과 학생이라고 하고 있으며, 자기 글을 출처도 없이 퍼가는 사람들에게 무척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내 글의 일부만 따다 가서 반박문이라고 끄적여 놓았으며, 이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글인양 훔쳐가서 포장만 슬쩍 바꿔놓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고 있다. 벌써부터 표절에 도가 텄으니 장차 어찌 될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작자가 링크를 걸지 않았으니 나도 링크 같은 거 걸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 원문을 알려준 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성질만 부리면서 원문 같은 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더라.)
이자는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것만 반박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자기 편한 것만 반박해 보겠다는 이야기다. 빨간색이 이 사람의 반박내용이다. 60항목 중에 무려 17개나 반박하고 있다. 짝짝짝.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 이는 기상대 자료만 꼼꼼하게 따져봐도 당장 거짓임을 알수있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15~20년정도를 주기로 이런 현상이 한반도내(더더군다나 남한만 따져도!!!)에서도 일어납니다. 몇년전 경상도쪽에서는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나서 사람과 가축이 떠내려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같은날 충청도와 전라도쪽은 가뭄으로 논이 갈라지는 장면등이 뉴스에서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 이 글을 쓴 사람은 과거의 홍수 기록과 현재의 홍수 기록을 혼동하는 것 같군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시대는 대기오염, 환경오염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 상이라도 경상도에 홍수가 전라도에 가뭄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위의 기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위도와 경도가 다른 드넓은 중국 대륙입니다. 글쓴이가 과연 옛날 기상학 기록을 보고 반박을 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먼저 말할 것은 저 위의 내용은 내가 쓴 내용이 아니다. 저것은 다른분이 반박했던 내용이다. 그 분이 반박한 것과 내가 반박한 것이 혼용되어 편집된 글은 본 적이 없으니, 내 글을 반박할 수 없자 다른 분의 반박문을 가져다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웃기는 것은 이 분의 글 중 일부를 가져다가 내 글에 대한 반론에 뻔뻔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10번 항목에 나온다.
홍수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홍수기록으로 본 삼국의 강역 [클릭]을 보면 되지만 이게 귀찮은 분을 위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조선 시대에 경상감사가 홍수 났다고 장계를 올릴 때 전라 감사가 안 올리는 기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반박자의 의문 - 옛날 기상학 기록을 보고 반박을 했느냐에 대해서 당연하지라고 답해줄 수 있다. 반박자는 이런 쓸데없는 반박문 만들 시간에 조선왕조실록이라도 좀 뒤져보기 바란다. 요즘은 찾기도 쉽잖은가? 내가 저 글을 쓴 97년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렇게 이미 내가 쓴 글에 이 반박자의 글은 이미 다 반박이 되어 있다. 앞으로도 이 점이 증명될 것이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신라의 땅은 동남쪽으로 오늘날 조선의 경상도 강원도의 2개의 도를 아우르고 서북족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한 서쪽으로 개원 철령에 가깝다"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 713 ~ 741)이후 발해가 성할 때 압록강으로 경계하였다.
"구주(九州)의 설치는 동쪽으로 길림에 이르고 서쪽으로 광녕에 이른다"
그렇다면 만주원류고에 있는 위 기록은 구라란 말인가? 글쓴이의 무지를 알수 있게 한다. 과연 반박문을 쓴 이가 제대로 된 사서는 읽었는지 궁금하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럼 내 원래 반박문에는 뭐라 쓰여있는지 옮겨와 보겠다. 볼드체로 되어 있는 부분이 바로 반박자가 인용한 부분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요만큼 옮겨가서는 반박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누가 무지한 걸까? 더구나 반박자는 한문으로 된 원전을 소개하지도 않고 있다. 원전을 읽을 능력은 있는 걸까?
아래 옮겨온 반박문은 강조 부분이나 원전의 색을 바꿔 편집했던 것 등등은 무시한다. 원 모습대로 보고싶은 분은 위의 링크를 눌러서 전문으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문학 연구 결과를 들어 신라가 양자강 중류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 시대에는 양자강 중류지방을 만주라고 불렀나 보다.
이 주장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던지라 조금 찾아보았다. [만주원류고]란 청 건륭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1771년 아계阿桂라는 사람이 편찬. 문화 전통이 없는 만주족이 한족보다 나은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만든 책이다. 자기네 역사로는 당연히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까지 죄다 자기네 것처럼 그 안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만주원류고]는 청나라에서 행해진 동북공정이었다. 이제와서 재야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만주족도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책이 두고두고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여진족은 우리와 신화도, 언어도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도 공유하지 않았다. 재야들은 공유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 책은 신라, 백제, 부여, 발해, 숙신, 말갈 등등 우리나라 및 만주의 제 국가들을 다 언급하고 있는데 고구려는 쏙 빼놓고 있다. 왜 그럴까?
발해 편을 보면 대조영이 본래 고려별종이었다든가, 속말말갈이 고구려에 속해 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편집해 놓았다. 이 책의 음흉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본론으로 돌아가자. 위에 언급한 문제의 글은 이런 것이다. 방점은 내가 찍었다. (이런 일로 방점까지 찍으며 이런 글을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주원류고 권 9 신라편 신라9주 조
謹案, 新羅始附庸於百濟, 後兼加羅 任那 諸國與百濟爲隣. 考其疆土, 東南並有今朝鮮之慶尙江原二道, 西北直至今吉林烏拉, 又西近開元鐵嶺. 唐顯慶以後, 又得百濟故地及高麗南境, 於是東西增九百里, 南北增千餘里. 開元以後, 渤海盛强其西北諸境, 盡爲所倂. 新羅所有僅鴨淥江以南.
우선 저기 첫대목에 나오는 [근안謹案]이라는 말에 주의하라. 이 책은 기존 사료에 있던 글들을 모은 다음에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을 [근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놓았다. 즉 이후에 나오는 말은 어떤 사료에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지네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대단한 사료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저 인용된 문구의 빨간 부분이 재야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략 번역하면 이렇다.
삼가 살피건대 신라는 처음에 백제에 부용되었으나 후에 인근의 가라, 임나 백제 등을 겸병하였다. 그 강토를 살펴보면 동남으로 지금 조선의 경상 강원 2도요, 서북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는 개원, 철령 부근이다. 당 현경(656-660년) 이후에 백제 옛땅과 고려 남쪽경계까지 얻어 동서로 구백 리, 남북으로 천여 리를 얻었다. 개원(713-741) 이후에 발해가 강성하여 그 서북 경계를 모두 병합하였고 신라는 압록강 이남의 땅만 차지하였다.
이 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이 글은 신라가 통일 전쟁 이후 9주를 설립했을 때의 영토를 설명한 글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 [만주원류고]는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뺐다고 했는데, 그에 맞춰 신라의 영토를 고구려의 영토까지로 확장해 놓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고구려를 병합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고의로 없애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졌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당(한족)에게 말갈(여진족)이 복속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빼버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땅은 발해가 당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이 신라 것이 되었다고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작을 대충 하다보니 [만주원류고]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신라9주 조의 마지막 항목에은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至九州之設, 東至吉林, 西至廣寧, 跨海蓋而包朝鮮幅員式擴矣
앞의 문장과 무엇이 다를까? 길림이 앞의 글에서는 [서북]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이 되었다. 방위가 왜 이렇게 들쑥날쑥할까? 윗 글을 쓸 때는 신라 입장에서 서북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밑의 글은 고구려 영역을 모두 신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런 황당한 사서가 [만주원류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만주원류고] 이외에는 이런 황당한 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만주원류고 안에서 밝혀야 하는 것은 청황실이 왜 이런 사고를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것을 가지고 고대사를 꾸며대는 일이 아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 그래서? 남한에 아파트가 서 있으니 미국 땅이라고 주장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서울에 관제묘가 있으니 중국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경상남도에 왜식 성이 세워져 있으니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더구나 저 이야기는 내몽골자치구와 요녕성의 경계 부근에서 발견된 성에 대한 이야기다. 지도에서 내몽골 자치구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또 요녕성과의 경계라면 어딘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저 <내몽골>이라는 말 때문에 지금 몽골의 어디쯤인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오산. 저런 말이 나온 근거는 이 기사다. <주간조선>고구려 정복로 1만3000리를 가다 <원문클릭>
==>이건 사실이다. 2~3년전 국내학자들이 몽골로 고구려 성터를 확인하기 위해 내몽골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전통의 성곽 축성기법과 일부 고구려 유물을 확인하였다. 다만 단지 땅위로 들어난 것만 확인했을뿐 구체적인 유물발굴등은 하지 못한 상태이다. 몽골과 더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자세한 유물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실상 정부나 학계에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하는 눈치다. 이 고구려 성터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고구려의 영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보다 배 가까이는 커지게 된다. 더군다나 만주뿐이 아닌 몽골지역의 초원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어 당시 실크로드의 하나인 '초원의 길'이 고구려의 영향력아래 있었는지를 밝힌수도 있는 유물들임에도 강단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깨질까봐 나서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일부러 나설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이후 연구는 답보상태로 알고 있다.(당시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이를 방영한적도 있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상식을 넘어서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접했다. 위에 반박자가 반박한 듯이 써놓은 글은 자기 글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을 베껴서 자기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 베낀 원문을 먼저 보자.
[여름나기님의 블로그]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에 대한 반박 - 1편 [클릭]
이는 사실입니다. 2~3년전 국내학자들이 몽골로 고구려 성터를 확인하기 위해 내몽골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전통의 성곽 축성기법과 일부 고구려 유물을 확인하였습니다. 다만 단지 땅위로 들어난 것만 확인했을뿐 구체적인 유물발굴등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몽골과 더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자세한 유물조사가 가능하겠지만 실상 정부나 학계에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하는 눈치입니다. 이 고구려 성터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 고구려의 영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영토보다 배 가까이는 커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만주뿐이 아닌 몽골지역의 초원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어 당시 실크로드의 하나인 '초원의 길'이 고구려의 영향력아래 있었는지를 밝힌수도 있는 유물들임에도 강단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깨질까봐 나서지 않고 있고 정부는 일부러 나설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이후 연구는 답보상태로 알고 있습니다.(당시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이를 방영한적도 있습니다.)
내 글에 대한 반박문이 아니고 여름나기님이 [한국사 미스테리 60] 글에 대한 반론을 쓰면서 작성해 놓은 글을 자기 것처럼 포장해서(존대말을 반말로 바꾼 것이 이 작자가 손 본 전부다.) 써놓은 것이다. 파렴치한 인간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더 어이없는 것은 위 5번에 다른 분의 글이라는 그 출처가 바로 [여름나기]님이라는 것. 여름나기님 반론에서 어떤 것은 반대하는 글이라 까고, 어떤 글은 자기 입장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여 집어온 셈이다. 어디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 나온 것일까? 그러면서 자기 글 무단으로 퍼간다고 길길이 날뛴단 말인가? 정말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인간이다.
위의 내 글은 전문이 아니고 뒷부분이 없어진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구려 성이 발견된 부분이 거짓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원문에서 마치 장소가 지금의 몽골처럼 오독할 수 있게 만든 부분을 반론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성 양식이 같다고 해서 그곳을 실효지배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물, 유적 하나가 역사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고구려칸이라니? 이런 헛소리는 처음 본다.
==> 정재승 선생의 글은 못 보았나?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이런 헛소리를 하니 참 한심하다. 바이칼 호수 주변부족에 전승되는 신화와 우리의 신화가 일치되는 부분이 있고, 그들의 풍습이 우리와 같다. 게다가 우리의 전래동화인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발원지가 바로 이 곳이다. 이는 적어도 우리와 이들간의 풍속, 문화가 옛날에는 공유했음을 뜻한다. 고구려칸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의문점이 있지만 한번쯤 연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
정재승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봉우사상연구소든가 하는 곳의 연구소장이고 정신세계사와 뭔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무슨 사계의 권위자라고 들먹이는지 알 수가 없다. 별 걸 다 읽어보아야 하네. 반박자가 하는 수법을 잘 보기 바란다. [정재승 선생의 글은 못 보았나?]라고 말하면서 그 글이 뭔지, 어디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원문을 제시하면서 출전을 공개하는 자세와 비교해 보면 누가 공정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무턱대고], [무조건] 이런 말로 비난하기를 매우매우 좋아한다. 자기 자신도 의문점이 있는데 연구해 보아야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원래 내가 비판한 명제를 잘 보기 바란다.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라고 말한다. 또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라고 말한다.
내 글을 반박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원 글을 쓴 사람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박자는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 [고구려칸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의문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소름끼치도록 닮았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가 같은 말인가?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라는 말은 [일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라는 말이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다시 보라. [닮은 부분도 있고,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라고 써놓았다. 내 이야기와 반박자의 이야기가 이 부분에서 뭐가 다를까? 반박자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즉 반박자는 내 의견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의견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무턱대고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라고 말해서 도덕적인 우위에 서보고자 함과 동시에 자기 주장이 옳다는 식으로 읽는 이들을 호도하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있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치우를 중국에서 고리국 황제라고 이야기한다는 말은 처음 본다. 황제라는 개념 자체가 진시황때 만들어진 것인데 무슨 헛소리인가? 치우는 우리 민족과 아무 관련도 없다. 헛물 켜지 말기를. 저런 주장은 오히려 중국인들이 동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지껄이는 헛소리인데, 우리가 거기에 장단맞춰주는 셈이다. 제발 정신차리기 바란다.
==> 중국 사서 사기는 읽어보았는지 의문이다. 사기를 보면 치우를 구려의 군주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려가 바로 고리국을 뜻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중국의 서욱생 교수는 치우가 동이족의 제왕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동이족 계열이었다. 그러니 결국 치우가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치우가 중화족보다는 우리민족과 연관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야말로 반박자가 [사기]를 읽어보았는지 궁금하다. 반박자가 써놓았듯이 치우를 구려의 군주라고 적어놓았지, 어디에 황제라고 적어놓았느냔 말이다. 이 부분도 물론 내 원문에 길게 길게 반박이 되어 있다. 지겨워서 옮겨오지 않겠다. 궁금한 분은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저 알량한 반박자와는 달리 원문과 출전을 모두 명기해서 작성해 놓았으니까. 저 반박자 식으로 한번 반박해 볼까?
반박자는 선진시대 동이와 그 이후 동이의 차이점을 아는가? 전해종 교수의 책이라도 읽어보았는지 의문이다. 여기서 전해종 교수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니 친일강단사학자 운운하는 소리는 제발 집어치워 주기 바란다.
이렇게 반박해주면 성의있고 멋진 반박문이겠지? 나도 쓰기 편해서 좋구만. 내 반박에 투정부릴 사람은 위 반박문을 만든 사람에게 먼저 투덜거린 다음 와주기 바란다. 저 반박문 읽은 사람 중에 [서욱생]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반박자는 정말 서욱생의 논문을 읽어보았을까? 그냥 재야에서 떠드는 소리 귀동냥하고 같이 떠드는 거 아니야? 나는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을 스무 번도 넘게 보았고, 이유립, 임승국의 글도 모두 읽어본 뒤에 인용했는데, 반박자는 정말 읽어보고 반박한 걸까? 반박자는 교차검증이라는 말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그냥 남이 한 말을 믿는 건 역사학도가 할 일이 아니거든. 아직 못 보았다면 꼭 읽어보고나서 떠들어줘. 읽을 능력이 안 되면 능력부터 기르고...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 이것에 대해서는 여길 보라.박창범-나대일의 삼국시대 일식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참고로 이것도 같이 보면 좋겠다.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
=>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를 무시하는가? 그리고 고대 천문학 기록 연구에 대한 반론이라는 논문은 나와 동명이인인 전남대의 수준떨어지는 대학생이 어줍잖은 지식으로 나불댄 글이다.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대해 강단의 평가는 들었는지 궁금하다. 강단 중 일부 학자들은 박교수의 연구 결과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고대 천체기록은 매우 과학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 오차는 0.007%로 이는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가 사실임을 증명한다. 이를 부정하는 그대는 과연 진정 학문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내 링크가 깨져있으니 저 반박문 작성자는 링크에 걸린 글을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자기는 읽었다면, 이 반박문을 보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안 읽은 것이 분명하겠지. 사실 그 뒤의 내용을 보면 안 읽은 것이 분명하다. 내 글을 전북대 이문규 교수의 글로 착각하고 있으니까. 착각의 정도가 심해서 멀쩡한 교수를 [대학생]이라고 왜곡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학도 전남대로 바꿔놓았다.) 이런 식의 왜곡이야 이 동네의 전매특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읽지도 않은 내용을 반박한다고 나서고 있으니... 아이구 머리야. 대체 이런 반박글을 칭송하는 무리는 대체 어떤 사고 구조가 뇌 속에 있는 걸까? 내 원문에는 많은 반박글이 링크되어 있다. 역시 궁금한 분은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위의 것과 동일하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문항 수만 불려놓는 것도 파렴치한 짓이다.
==> 한단고기가 현재 위서 시비에 휘말리고, 게다가 증산도측에서 종교 교리 전파하는데 사용한다고 증산도 측에서 나온 종교경전이라 곡해를 한다. 물론 한단고기가 위서 시비에 휘말리고 있지만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한단고기 영인본이 발견되었는데 영인본이 있다는 것은 한단고기가 무조건적인 거짓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서문을 보면 한단고기는 단 하나의 책이 아닌 옛 여럿 기록들을 하나로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가지 꼬투리를 잡고 위서다, 진서다라고 하기보다는 일단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검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반박은 매우 뜬금없다. 반박 문항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반박이랍시고 올려놓았다. 이게 무슨 반박이란 말인가? 더불어 내 블로그에 오는 분들은 알겠지만 옛날옛날에 진지하게 검토하여 결론을 내려놓은 장문의 글이 있다.
그리고 저 영인본. 에효효... 나는 이미 영인본 운운하는 내용이 엉터리라는 것을 내 블로그에서 알린 바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본 블로그의 역사 항목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반박자는 아무 근거도 대지 않고 그냥 [한단고기 영인본이 발견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근거도 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혹세무민하는 것이 역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참 멋진 반박문이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중국 대륙내의 요동이란 수나라때 설치된 요산현을 가리킨다. 지도에서 <요>자만 나오면 요동이라 우기고 있다.
==> 현재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요동 요서 개념은 거란족 요나라 때 확립된 것이다. 현재의 요동과 요서와 고대의 요동과 요서가 같을 수 없다. 수경주를 비롯한 고대 중국 사서에는 요하가 지금의 랴오허 강이 아닌 베이징의 난하였다는 기록이 무수히 존재한다.
[수경주]가 뭔지 아시는 분이 있는지? 저렇게 이야기해놓으면 참 그럴듯해 보이나 보다. [수경]은 한나라 때 상흠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이며, 여기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수경주]인데 북위의 [역도원]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 실려있는 [패수변]에는 이에 대한 상세한 논증이 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도록.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번에도 반박자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난하는 어디를 흐르는 강일까? 지금의 요녕성을 흐르는 강이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요서 지방에 있다. 여길 중국 내륙이라고 하던가? 한국사 미스테리에서는 중국 내륙에 요동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반박자는 뜬금없이 난하요동설을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 자기가 뭘 주장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 고구려를 칠 때 군인들이 징병된 곳이 저곳들이다. 그곳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왜곡을 하다니 한숨만 나온다.
==> 과연 위 글을 쓴 자가 산동성의 향토지는 읽어봤을까? 지난 역사스페셜에서도 위 전설과 관련해서 중국 향토사학자가 자기네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연개소문 전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럼 이 지방에 내려오는 연개소문 전설은 무엇이란 말인가? 향토사학자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는 건가?
정말 짜증나는 반박글 아닌가? 나는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반박자는 제목만 나열하고 원문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체 이런 게 무슨 반박문이란 말인가?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 아주 웃기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고려성터는 존재한다. 그것도 고구려 양식이다. 이는 고구려가 적어도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상당기간 동안 고구려가 이 지역을 지배했음을 뜻한다.
내 원문은 이렇다. 읽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선 위 중국 지도에서 강소성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주장은 그런 것이 있으니 거기가 우리땅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 서울을 한자로 한성漢城이라 썼다. 서울이 중국 땅이었나 보다.
이것은 중국측 강소성 금호현 사이트에 나온 글이 출처라 한다. 우리나라에 떠도는 글과 중국 사이트의 글은 좀 다른데, 우리 측에 있는 글이 가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성의 이름은 高麗城이 아니고 高黎城이라는 것과 이것이 송(宋) 영종(英宗) 1064 ~ 1067년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고구려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궁금한 분은 직접 살펴보시라.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5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 신채호 선생은 중국 베이징 일대를 답사해서 고려영진을 발견했고, 고려성터가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성 역시 고구려 양식 계통이다. 그리고 문헌상으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했음을 증거한다. 위 반박문을 쓴 이는 중국인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철저히 우리 역사를 깔아뭉개고 있다. 고구려가 북경지역까지 진출했음은 삼국사기, 진서 등의 문헌이 증거한다.
이것도 짤라먹은 반박문인데 드디어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걸핏하면 상대방을 중국인, 화교 등등의 소리를 써가며 남의 조상을 욕먹이는 것을 즐겨한다. 천하의 잡놈이나 이런 식으로 남의 조상을 욕하는 글을 쓰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좋다고 박수를 친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 중국 기록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런 식의 주장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다. 중국의 문헌? 이름조차 대지 않고는 있다고 우기는 것 뿐이다. 한마디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저런 문헌을 가져올 수 있는가?
==> 중국 사서인 사기를 보면 한무제가 조선을 쳐서 사군을 설치했다 기록했다. 그런데 그 사군이 낙랑, 현도, 임둔, 진번이 아니라 날양, 추저, 홰청, 평주 4군이라 한다. 그리고 이 4군의 제후로 봉해진 자는 위만 조선 유민이다. 조한전쟁에 참가한 한나라 장수들은 대개 사형 같은 극형에 처했다. 그리고 낙랑, 진번, 임둔, 현도 소위 한 사군은 후한 대 이후의 역사서에 등장한다. 당대 기록인 사기의 기록이 정확할까? 후대 기록이 정확할까? 당연히 당대 기록이 정확하다. 결국 한사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한사군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가?
이미 내 원문에서 비판해 놓은 이야기다. 반박자가 주장하는 것은 고조선 멸망 후 투항한 사람들이 봉해진 곳을 한사군이라고 우기는 것인데, 제발 [사기]를 읽어보고 와서 주장했으면 좋겠다. 제후로 봉해진 사람은 다섯이고 지역도 다섯이 나온단 말이다. 옛날 옛날에 임승국이 그렇게 떠들었다가 천관우에게 개박살난 이야기란다. 그리고 대체 어느 중국사서에 한무제가 동명성왕에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동명성왕이 BC108년에 한무제와 싸우고 BC37년에 고구려를 세웠단 말이냐? 반박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 왕의 출신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는 한심한 생각에 기인한 이야기다. 영국 왕실은 독일에서 왔다. 그러면 영국은 독일땅인가? 노르만인 윌리엄이 영국왕이 되면 영국 역사는 노르만의 역사로 변하나?
==> 그럼 위 반박자의 논리대로라면 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네... 이 땅의 사학자, 엣 실학자들이 구라를 까고 있겠네... 국사 교과서에는 발해의 지배계층이 고구려인,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고구려 유장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위 반박자의 논리라면 발해는 우리 역사가 아니겠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아예 원문에 달아놓은 바 있다.
그럼 발해는? 이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 발해의 주민이 고구려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국내 발해전문학자들의 글 좀 읽어보고 나서 덤비기 바란다.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강점한 기간동안은 한국사가 아닌 것이 된다. 누구보고 친일파라고 짓까부는지 모르겠다. 대동아공영론에 동조동근론을 착실히 받쳐주고 있는 인간들이 말이다.
딱 반박자 논리를 비판한 것은 아니니, 조금 더 부연설명해 놓자. 저 반박자는 왕 일인과 지배계층을 동일시 하고 있다. 역사학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요금을 왜 정복왕조라고 부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이런 원문을 보여주시죠...
그런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원문 제시라도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원문 보여드리죠 ㅎ "(아골타가 세운 나라를)"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
내가 오늘에서야 [만주원류고]를 한글로 써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하하. 역시 내 글에는 원문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으니 궁금한 분은 내 원문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저 글도 내 글과 다른 사람의 글을 섞어 놓은 것이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 그렇다. 유주자사가 관직이었으니 태수들을 거느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자들은 이런 것을 증거로 고구려가 유주를 다스렸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사라는 관직이 고구려의 관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고구려에는 자사라는 관직이 없었다.
==> 진이 거쳐간 벼슬을 아는가? 그 벼슬 중에 국조대형이라는 벼슬이 있다. 국조대형이 어느 나라 벼슬인 줄 아는가? 바로 고구려의 벼슬이다. 간혹 위의 반박자와 같은 인간들은 진이 유주자사를 지냈는데 고구려가 자사라는 관직이 없었으므로 진은 망명객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오늘날 베이징인 연군 지방을 습격했다는 기록과, 이 곳에 발굴되는 고려성터, 고려 관련 지명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고구려가 유주 까지 지배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고구려가 유주를 차지못했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위에 인용된 부분 뒤에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읽어보고 생각하기 바란다.
사실, 위의 내용만으로 보면 미스테리라고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역사학계에서 무척 오랫동안 논의하고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위에 써놓은 입장을 지지하지만 국내학자 중에도 나와는 다른 의견(물론 그게 삼국재대륙설은 아니다. 그런 거짓말은 역사학계 안에 설 곳이 없다.)을 내는 경우도 있다. 정말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고대로부터의 통신]같은 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인터넷의 엉터리 주장들만 열심히 찾아다니지 말고, 제대로된 글도 좀 읽으란 말이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대개 이 대목은 요서백제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남중국계 사서에 백제의 대륙지배가 들어있으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대는 아는가? 북중국 계열 사서에 백제의 대륙지배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 같다.
북조 사서인『북제서』에는 서기 571년 북제의 군주가 백제의 위덕왕을 ‘사지절(使持節)/도독(都督)/동청주자사(東靑州刺史)’로 삼았다는 구절이 있는데, 사지절은 황제가 신임한다는 표시인 부절(符節)을 지녔다는 뜻이며, 도독은 군사의 최고 책임자이고 자사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이므로 이 구절은 북제가 백제의 동청주 지배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동청주(東靑州)는 지금의 산동반도 동남부에 있는 땅으로서 오늘날의 청도(靑島) 시인데, 백제가 해로의 요충지인 이곳을 손에 넣고 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최치원전」에 나오는 “고구려와 백제가 강한 병사 백만을 이끌고 유(幽)/연(燕)/제(齊)/노(魯)/오(吳)/월(越)로 쳐들어가 중국의 근심이 되었다”는 구절과 맞아떨어져(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는 산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음) 북조 사서도 백제의 담로를 다루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됨을 덧붙인다
참고로 구당서에는 백제의 영토에 대해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양쯔강 지방)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백제가 황해를 건너 대륙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자료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박자가 아마도 유일하게 자신있는 부분인 모양이다. 출전도 있고 한문도 부기해 놓았다. 아마 한국사 시간에 레포트로 제출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하. 그런데 이 글도 짤라먹고 쓴 것이다. 그럼 짤라먹은 글을 살펴보자.
대개 이 대목은 백제요서경략설과 연관짓거나, 고구려의 오기라고 본다. 기록이 북쪽에 정통하지 못한 남중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한가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북위]가 수전에 약해서 바다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기병이 바다를 못 건너긴 왜 못 건너겠는가? 임진왜란이 항주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어느 게 더 비현실적일까?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는 부분이라고 해놓았다. 수십년간 논쟁 중이라는 이야기.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조선사는 역사책이라고 보기보다는 사료집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대체 읽어봤으면 저런 무식한 주장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자들의 특징은 읽어보지 않고 비난하는 데 있다.
==> 반박자는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흐름을 알고 하는 말인가? 조선사 날조의 원흉 이마니시 류의 수제자가 바로 진단학회의 이병도이다. 해방 후 한국 국사학계를 이끈 이가 바로 이병도이다. 그의 학풍은 이기백, 신석호, 이기동, 송호정으로 이어졌다는 걸 모르는가? 그리고 그대는 아는가? 1987년 이병도가 죽기 전에 한국사가 일본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발언한 사실을...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이병도가 노망들었다고 평한다.
역시 핀트를 맞추지 못하는 반박문이다. 조선사와 국사교과서의 내용이 거의 똑같다고 해서 그렇지 않다는데, 그에 대한 반론은 한 글자도 없다. 눈은 뭐하러 달고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역사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사료는 대체 어떻게 보겠는가? 없는 글자도 만들어서 볼 사람이다.
그대와 같은 얼빠진 사대주의자가 더 이상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그대와 같은 얼빠진 극우민족주의자가 더 이상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게 많다. 사서의 부족, 우리민족의 활동무대가 오늘날의 중국이라는 점 등으로 우리의 역사 복원이 요원하다. 그럼에도 그대는 왜 우리의 역사를 깎아내리는가?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게 많지. 그대 같은 헛소리하는 인간들로 인해 우리 역사의 복원이 요원하다네. 그럼에도 그대는 왜 우리 역사를 거짓말로 뒤범벅해 놓는 건가?
우리 역사가 일제에 의해 많이 왜곡되고, 일제에 의해 많은 사서를 잃었다.
그리고 오늘날은 그대같은 인간들로 인해서 왜곡되고 있다네.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밝히지 않으면 그 누가 밝힌 것인가?
역사를 밝히기 전에 국어 공부 좀 하게. [그 누가 밝힌 것인가?]가 아니라 [그 누가 밝힐 것인가?]라고 써야 한다네. 그동안에도 오타가 무수했지만 참고 봐주었는데 여기선 한소리했네.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이 글이 전부가 사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전부가 거짓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필자는 위 60가지 중 사실로 입증될만한 명제를 추려 뽑은 것이다. 우리의 역사 찾기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한두개 정도는 거짓말이라고 하진 않은 것 같은데? 궁금하면 그대가 한번 세어보게나.
이제 우리는 식민사관, 반도사관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자국의 역사학 박사들을 매도할대로 매도하면서 진정한 우리 역사를 찾겠다니. 이자들은 박창범 교수 글을 반박하려면 천문학 박사여야 한다고 떠들면서 역사학 박사들은 왜 이리 개무시할까? 진정한 우리 역사 찾는다면서 개구라치는 일은 그만 두길 바란다네.
추가 : 너무 웃긴 일이 있어서 반박문과는 관련이 없지만 적어놓기로 한다.
그 얼토당토 않은 글이 있는 블로그에 가보았다가 무척 웃긴 사실을 발견했다.
그 블로그에는 글 퍼서 만든 카테고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내 글도 떡하니 가져다 놓았더라.
내 글인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퍼서 가져가서 엉뚱한 출처를 달아놓고 있으나 현재 이 블로그에 있는 글이다.
읽어본 뒤 간직해 둘만한 글이라고 생각해서 옮겨놓았겠지. 쯧쯧...
(하지만 그 작자가 확인하면 확 지워버리겠지...^^;;)
어떤 사람이 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었던데, 잽싸게 댓글만 지워버렸더라.
무단전제는 미안하다 정도의 말을 할 소갈머리는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 그보다도 원문 링크 정도는 걸 줄 알았더니.
(차라리 잘 됐지 뭔가? 그렇게 링크 걸면 나도 링크 걸어줘야 할 거 아닌가.)
이 작자가 자기 글 퍼가지 말라고 하면서 써놓은 글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틀린 맞춤법은 고쳐주지 않는다. 내가 국어선생님도 아니고.)
글에는 그 사람의 노력, 결실이 담겨있습니다.
남의 글을 출처도 안 밝히고 무단 개재하는 건
그 글을 쓴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남이 공들여 쓴 글을 무단으로 퍼가는 건 옳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 양심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글 퍼가실 때 출처는 남기는건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행위라는 걸 명심하시길...
덧글
소위... 환빠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크고, 그에 대한 반박의 기회는 주어지지조차 않아요.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일본의 극우 사학계에서 배운 사기극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의 유래라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 저 중에 몇이나 있었을까요....
講壇走狗님 /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사실 저글을 예전에 본적이 있는데 제 반박문과 초록불님의 반박문을 자기 취향대로 섞어놨더군요. 차라리 제 글에 대해서만 반박을 했거나 초록불님의 반박문만 무어라 했더라면 저나 초록불님이나 나서기가 편했을텐데 자기 맘대로 짬봉을 했거나 아니면 제가 반박했던 글중 어떤글은 자기 취향에 맞았는지 제가 반박한 부분을 자기가 썼다는 식으로 놔두었더군요.
솔직히 제가 쓴 반박문보다는 초록불님의 반박문에 태글을 거는 부분이 많으니 제가 나서기도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본것은 꽤 되었는데 그냥 놔두고 있었습니다.
다음 어느 까페에서 자기들끼리 올려놓고 댓글들로 난리도 아니더군요. 회원가입해야 볼수 있는 까페글에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반박물이라고 올려놓은게 참... 그렇게 떳떳하면 초록불님이나 제 블로그에 와서(분명히 출처를 표시해놨을텐데...) 한바탕 하던가... 회원가입해야 하는 까페에 반박문이라고 떳하니 글 올려놓고 히히덕거리는 행동은 또 뭔지... 도대체 무어라고 반박했을까하고 까페 가입하고 글 봤다가 피식하고 웃고는 다시 그 까페 안가고 있습니다. 제발 짜집기나 하지 말고 한사람의 글에 대한 반박이나 하던가...
그런것에 아직도 울컥하는거 보면 저도 수양이 많이 부족하기는 한것 같더라구요...^^ 초록불님께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괜히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 없을것 같더군요. 저따위 짜집기한 글을 반박문이라고 올린거 보니...
즉, 10번의 초록불님의 반박문에 대한 반박문은 제가 쓴 부분인데 이 사람이 자기가 쓴든 날조한 겁니다..-_-;;
http://rx78gd.egloos.com/1787414 에 가셔서 10번 부분을 보시면 제가 쓴 글임을 확인하실수 있을듯 합니다. 아주 자기취향에 맞는대로 남이 쓴 글을 짜집기 했다는데 무척 짜증이 나더군요.
08년에 이글을 읽다보니 삭제된 링크도 몇개 있네요-_-;;
10번의 여름나기님 글이 [http://rx78gd.tistory.com/10]로 바뀌었습니다
그럼 남은 글도 잘 읽겠습니다
서너번 읽어보는데 뭔가 신선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위화감이 들기도 하고...
내일 한국사 전공 교수님께 들고 가보려 했는데... 이 곳을 먼저 발견해서 천만 다행입니다.
웃긴 부분도 있고 해서 2시가 넘도록 신나게 읽었네요.. 오전 수업이 큰일입니다.
정답은 있지만 틀린건 없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성향의 입장이든 이해해 보려합니다.
정답이 필요할 때면,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삼국지 - 정사엔 , 관도전이전, 그러니깐 동탁사후에 여러 제후들이 활기찾을떈
지들맘대로 자사가 된다거나 , 임명하다거나 , 죽어서 공백이 되엇으니 스스로 오르시오 ..
등등 그리고 도겸이 유비를 어디 자사로 임명햇다고도 하는데 ..
저 반박자는 "동청주자사" 만되면 동청주가 백제가 되는줄 아나봐요 ^^:
그렇담 위나라가 오나라 손씨들에게 "회계왕 , 건업왕" 등등을 하사하기 이전엔
그땅에서 대가리 역활 안한줄아나 ㅋㅋ .
신비의 대륙조선사 78가지
<현중국인의 증언>
1. 현중국의 한 학자가 한글재단 이사장에게 말하였다.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를 감추고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읍니다”
2. 현중국의 어떤 학자가 대한민국 초대문교부장관에게 말하였다.
“한자는 동이족의 조상(=고조선)이 만든 문자입니다.”
3. 장개석은 임시정부 이시영 부통령에게 말했다.
“중국전체가 조선인들의 역사무대 입니다.”
4. 주은래가 말했다.
“중국의 역사는 조선인들에게 귀속됩니다.”
5. 청나라는 조선의 한양, 경기도지역을 중국이라 칭했다.
<조선의 영토>
6. 조선의 서쪽은 압록강이 한계이다.
7. 조선의 북쪽은 말갈, 동남쪽은 모두 바다에 닿아있다.
8. 조선의 북쪽은 대황(=큰사막)에 접해있고, 서쪽은 몽골에 닿아있다.
9. 조선의 서남쪽은 한토(명,지나족)에 가까워 험준한 고개가 끝이 없다.
10. 조선에는 강폭이 16km나 되는 큰강이 있고, 그 강으로 명과 경계를 삼았다.
11. 강남(=대륙 양자강이남)도 조선의 황제가 다스리는 땅이다.
<조선의 크기>
12. 독립신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조선은 세계 가운데서 큰나라이고, 토지는 동양에서 제일이다.”
13. 조선은 요수의 동쪽 장백산남쪽으로부터 지역의 넓이가 만리가 된다.
14. 조선 세조때 상소문에 조선의 토지의 넓이는 만리가 되었다고 한다.
15. 조선의 지방은 고구려보다 2배 더 크고 산천이 험준하다고 한다.
16. 1800년대 러시아가 제작한 조선의 지도에는 중국,한반도, 만주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17. 조선 태종때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거의 조선영역을 나타낸다.
18. 일본이 만든 유전자지도를 보면 조선인의 유전자가 한반도,몽골,중국중부,만주,일본지역
주민의 것과 비슷하다.
19. 독립신문(1896)에 이런 글이 있다.
“미국이외에 조선만큼 인구가 많은 나라는 없다. 조선의 인구는 1600만명이다.”
<조선8도>
20. 조선의 경기도 정서쪽에 황해도가 있다.
21. 조선의 황해도에는 총령(=파미르고원)이 있다고 한다.
22. 조선의 평안도와 영안도(함경도)는 사막지대와 가까이 있었다.
23. 조선의 함흥부에는 만리장성이 지나간다.
24.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침략한 조선의 함경도는 현 만주지방을 나타내고 있다.
25. 1905년 한 스웨덴인의 조선여행기에 나온, 부산에서 한성까지의 거리를 추적해 보았더
니, 960km가 나왔다.
<자연,지형>
26. 조선의 압록강을 건너기전, 중앙에 큰사막이 있다. 조선의 사막은 몇날, 며칠을 가도
끝이 없다고 한다.
27. 대동여지도 서문에는 조선을 나타내는 지명중에 큰사막이 나온다.
28. 독립신문의 독립문이 나온 사진을 보면 뒷산의 모습이 초원이나 준사막지대처럼 나무가
별로 없다.
29. 조선을 방문한 하멜은 경기도의 남한산성의 높이를 2메일(3218m)라고 하였다.
30. 조선 한성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31. 조선의 강은 모두 동쪽으로 흐른다.
32. 조선의 지형을 보면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33. 조선 한라산의 남쪽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34. 1905년 한 스웨덴인의 조선여행기에 “서울로 향하는 철로(=경부선)는 강(=양자강)을
따라 달리다가 북쪽으로 꺽인다”고 한다.
35. 세종실록지리지에 삼각산은 화산(華山)으로 나온다.
77. 조선의 백두산은 수만봉의 민족의 영산으로 그 크기는 한반도보다 더 컸다.
<궁성,황제>
36. 조선의 수도 한성의 남대문(숭례문)은 정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37. 조선의 창경궁성,경희궁성이 한성의 4대문밖에 있다고 한다.
66. 반도서울의 경복궁, 덕수궁, 종묘의 도시계획축이 남산일왕신사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이는 조선의 황궁을 신사를 만든해에 급히 새로 만든 명백한 증거이다.
76. 1902년도 반도서울의 경복궁의 사진을 보면, 잡초가 무성하고 사람이 산 흔적이 없다.
38. 서울의 심장부는 대리석으로 장식하였는데, 그 대리석은 형산에서 이송해 온 것이다.
39. 대륙 섬서성 빈주는 조선황제가 있던 곳이다.
40. 세조때 조선황제에게 “황은이 망극하여이다“라고 하였다.
<군사,외교>
67. 조선시대의 군대는 100만대군이었다.
69. 명나라황제의 제위기간은 조선의 황제 제위기간과 거의 같다.
70. 청나라황제의 제위기간은 조선의 황제 제위기간과 거의 같다.
71. 중앙아시아의 티무르제국의 황제의 초기 제위기간은 조선의 황제 제위기간과 거의 같다.
72. 북경의 자금성이 명나라, 청나라 의 황궁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북경은 조선의 일개의 도성에 불과하다.
<임진왜란>
41. 조선의 거제도등 남해안과 칠천량 전투가 있었던 바다밑에서는 임진왜란때 침몰한 배들
의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
42. 조선의 선조가 이순신의 죽음을 애도하며.“양자강과 회수를 방비하는 것을 이순신에게
만 의지하였다”고 말하였다.
43. 선조실록에 이렇게 나온다.
" 복건성,절강성에서 왜적을 잘 막았기 때문에 요양,천진지역이 안전했습니다".
44. 임진왜란때 동래에 침투한 왜군은 서쪽으로 진격하였고, 한성의 선조도 서쪽으로 피신
하였다.
45. 일본의 실력자 풍신수길은 조선의 제후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46. 선조실록의 상소문에는 " 왜군이 조선을 침입시 낙양,산동,절강,양광(=광동,광서)의 경비를
미리 단단히 해야 한다" 는 내용이 있다.
47. 조선에는 강이나 하천에서 싸우는 수군은 있었으나, 해군은 없었다.
48. 이순신의 수군은 주로 양자강내부,산동성,요녕성근해에서 왜군과 싸웠다.
<동식물,특산물>
49. 조선에는 야자나무와 파인애풀이 즐비했다.
50. 조선의 충청도에는 열대식물이 다양했다.
51. 조선에는 악어가 많고 물소가 있었다.
68. 신사임당은 그당시 농촌의 물소를 그렸다.
52. 조선에는 원숭이가 있었다.
53. 초원지대로 보이는 조선의 수도 한성에는 키우고 있는 양들이 너무 많아 규제가 심했
다.
54. 조선의 황해도에는 암염(=소금바위) 이 풍부했다.
55. 조선시대 주된 도자기 생산지는 숭산, 낙수가 있는 낙양이었다.
<문학>
56. 조선의 민요 성주풀이에는 조선의 도시로 “낙양”이 나온다.
57. 조선의 민요 심청가의 배경은 대륙의 양자강, 호남성 동정호주변이다.
58. 조선의 시 양사언의 태산가에는 조선의 명산 “태산”이 나온다.
<종교,역사서>
59. 조선 천주교 전파 및 서학서의 출판은 한일합방이전까지 모두 중국대륙에서 행해졌다.
60. 일제때 일본이 천인공노하게 조선의 역사서 20만권을 불태웠는데도, 다행히 서울대규장
각에는 역사서 20여만권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데 거의 연구를 하지 않고 그냥 잠들어 있다.
<만주>
61. 김좌진장군이 승리했던 청산리는 내몽골자치구 호화호특서쪽 대청산이다.
75. 대륙 내몽골자치구 오해시를 지나면 개마고원이 있고, 만주리란 지명이 나오는데, 이곳이 만
주의 원조이다.
<흔적 >
62. 태극문양은 조선을 뜻하는데, 몽골의 국기에 태극문양이 있다.
63. 아사달문양은 조선을 뜻하는데, 러시아 브리야트공화국의 국기, 몽골의 국기에는 아사달문양
이 있다.
64. 솟대는 조선의 문화를 뜻하는데, 시베리아에서 일본까지 솟대문화가 살아있다.
65. 삽살개는 조선의 고유품종의 토종개인데, 에스키모인들이 사용하는 개와 흡사하다.
73. 조선의 멧돌문화는 서남아시아국가, 유럽, 콜럼부스 신대륙발견전의 인디언들 사이에서 통용
되었었다.
74. 조선의 여인네들의 외출시 머리를 덮고 다니는 의상은 서남아시아 아랍국가들의 히잡과 매우
흡사하다.
78. 대륙 내몽골자치구박물관 4층에는 몽골인 의상중 한복이 있다. 끝.
ㅋㅋㅋㅋㅋㅋㅋㅋ오랜만에 웃습니다 ㅋㅋㅋㅋㅋ
44번의 경우 일부국내학자들은 님과 다른주장을 펼친다고 하셧는데
그분들은 연군태수등이 중국지명관리를 뜻하는게 아닌
고구려내 지명이란의미등으로 해석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