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언에일리언님 블로그에 링크
[맛의 달인]은 무척 좋아하는 만화인데, 아무튼 이 만화가 일본만화라는 것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음식문화는 나라마다 크게 틀린 법이라 이 만화를 보다 보면 일본과 우리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종종 느끼곤 한다.
가령 음식을 담는 접시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라든가, 순두부를 모르고 있다든가 하는 따위의.
그중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 중 하나가 과자에 대한 것이었다.
[맛의 달인]에서는 과자의 기원이 [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언에일리언님은 이번에 허영만의 [식객]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고 하는데, 만화가 애매하게 설명을 달아놓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다.
지난 번 컴퓨터 사고 이후에 아직 고려사를 인스톨하지 않아 고려사를 참조할 수는 없었다. 이점은 고려사를 깐 뒤에 보강하기로 하자.
대신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았다.
헌데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짚고 갈 것들이 있다.
과자의 한자는 菓子다. 菓는 과일을 뜻하는 한자로 菓子라는 말은 과일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국어사전을 잠깐 찾아보자.
과자菓子 1 = 열매
과자菓子 2 = 밀가루나 쌀가루에 설탕, 우유 따위를 섞어 굽거나 기름에 튀겨서 만든 음식. 주로 간식으로 먹는다.
이렇게 나와있다. [식객]에서 과자菓子라는 한자 대신 우리나라에서 썼다고 이야기하는 한자는 果子인 것 같다. 이 과자果子라는 것의 뜻은 그냥 과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자라고 하면 당연히 위 사전 정의의 [과자菓子 2]를 연상한다.
[맛의 달인]을 본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아삼삼하지만, 그 만화책에서는 일본에서 [과자菓子 2] 자체가 나온 것이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취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맛의 달인 전권을 가지고 있는 좌백님 쪽을 흘깃 바라본다.)
그럼 다시 왕조실록으로 돌아가보자. 왕조실록 기록을 검토해보면 菓子와 果子가 둘다 보인다. (입력오류일 수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점은 확인불가능이니 접어두자.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두가지가 다 [과일]이라는 뜻 이상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菓子의 경우는 꼭 분盆과 같이 쓰이며 매枚나 편片이라는 단위로 세고 있었다. 즉 이것은 과일을 단지에 담아서 바친 것이며, 몇 단지를 바쳤는지 세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들이 익히 아는 [과자菓子 2]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과자果子의 경우는 세조 5년 8월 23일자 기사에 재밌는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밀과자蜜果子 오궤五櫃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꿀을 바른 과일 다섯 궤짝이라는 이야기다. 그냥 과일이 아니라 가공한 것이므로 오늘날 과자와 그나마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을 뒷받침할만한 기사가 연산군 9년 12월 11일 자에 있다.
傳曰: “於書筵廳造進宴時果子, 限事畢, 停書筵。”
전교하기를 "서연청에서 진연 때 쓸 과자를 만드니, 일이 끝날 때까지 서연을 정지하라." 하였다.
그냥 과일이라면 그것을 造(만들다)한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손이 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
아마도 과자를 가지고 밀과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가공한 과일이 [과자菓子 2]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약과藥果는 어떤가? 약과는 과자일까, 과일일까?

약과는 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서 모양을 낸 후 기름에 지진 것이다. 분명히 [과자菓子 2]의 개념과 일치한다. (설탕 대신 꿀인 셈인데 당분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이 약과에 대한 것은 이미 세종 때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 한과韓菓의 대표주자인 유과油果는 어떨까? 유과의 본 이름은 유밀과油蜜果다.

태조 5년 1월 24일 기사에 유밀과 쓰는 것을 금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매우 흔하게 해먹은 과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이 [과자菓子 2]와 비슷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럼 이게 과자果子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약과나 유밀과의 과에 果가 쓰였을까? 확실히 이 점에서는 과일이 달다는 점이 고려된 명칭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과자의 유래가 [감]이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달다는 것은 속성일 뿐이다. 감이 발전하여, 즉 감을 가공하여 과자를 만든 것이 아닌 다음에야 감이 과자의 원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은 문제는 과자라는 단어의 한자가 菓子가 맞을지 果子가 맞을지 일텐데, 이 점에서는 菓子가 맞다고 생각한다. 果子는 과일이라는 뜻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약과와 유밀과에 果가 쓰였다고 果子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것은 이상한 생각이다. 오늘날 서양 과자는 菓子로, 우리나라 전통 과자는 韓菓로 명칭이 분화되었으니 그냥 그렇게 알고 살면 될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우리가 익히 아는 과자라는 것이 이미 600년 전에 만들어져 먹고 있었던 것이니 과자의 원형이 [감]이라는 소리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약과나 유밀과 같은 종류가 정말 없었던 걸까? 아니면 만화가가 오버한 것일까? 또는 내가 그 만화 내용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추가
우여곡절 끝에 고려사 CD를 깔았습니다. 살펴보니 유밀과에 대한 기록이 있군요. 이것이 아마 유밀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겠지요.
명종 22년(1192년) 5월에 제(制)하기를,
“옛적에 어진 임금이 천하를 교화(敎化)함에 절검(節儉)을 숭상하고 사치를 배척한 것은 풍속을 순후(醇厚)하게 하는 까닭이었는데 지금 세속(世俗)은 부화(浮華)를 숭상하여 무릇 공사(公私)의 연회를 여는 데에 다투어 더 낫게 하는 것을 자랑으로 숭상하여 곡속(穀粟)을 쓰기를 진흙, 모래와 같이 하고 기름, 꿀 보기를 찌꺼기와 같이 하여 헛되이 보기 좋게만 하여 막대한 비용을 헤아리지 못하니 이제부터 유밀과(油蜜果)를 쓰는 것을 금하고 과실[木實]로써 대용(代用)하되 작은 연회는 세 그릇을 넘지 못하고 보통 연회는 다섯 그릇을 넘지 못하고 큰 연회는 아홉 그릇을 넘지 못하며 찬(饌)도 또한 3품을 넘지 못하여 만약 부득이하여 더 하고자 할진대 말린 고기나 젓을 섞어 내는 것을 정식으로 하고 령(令)과 같이 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해당 관사가 죄를 탄핵하라.”
고 하였다.
그런데 유밀과는 연회에는 사용되어도 제사에는 사용되지 않았군요. 제사에는 늘 과일만 사용된 것 같습니다.
아참.. 고려사에는 과자果子라는 말도, 과자菓子라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덧글
"과자는 원래 과일을 뜻한다고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감은 일본 특유의 과일입니다. 중국이 원산지로 헤이안 시대에 일본으로 유입된 후 개량을 거듭하여 수많은 종류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은 다른 과일과 다르게 보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귀중히 여겨졌던 겁니다. 나는 수분이 있는 과일을 과자의 중간점, 바꿔 말해 과자의 원형으로서 곶감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곶감의 자연스러운 단맛, 부드럽고 온화한 풍미, 이것이야말로 대지가 만든 결실이 아닐까요."
지로도 그러죠.
"센다이에서 전통 과자가게 주인과 얘기를 나눴을 때, 전통 과자의 감미는 곶감에서 왔으며 그 맛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설명은 이것 뿐인데... 별다른 역사적, 과학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인 듯하네요.
맛의 달인에서는 저 사탕수수 설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기껏 단 맛을 내는 방법이 담쟁이 덩쿨을 불린 것 정도인 걸로 봐서 곶감의 단맛이 일본 과자의 기준...이라는 걸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당시는 북방은 오호십육국 시대였고 북방에서 쫓겨온 유민들이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동진을 세워서 살던 시대니까 기후적으로도 사탕수수 재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 에피소드를 보면 당시 사탕수수는 저렇게 가공안하고 씹어 먹었던 모양입니다. 사탕수수 재배지역에선 지금도 그렇게 먹는다고 하더군요.
루드라님 / 역시 감사드립니다.
이오공감 축하드립니다. ^^
고대 인류, 특히 북방인이 의도적으로 단맛의 기호품을 추구하면서 얻을 수 있는 산물은 과일, 꿀, 팥이었을 텐데, 팥은 보다 곡물에 가깝고, 꿀은 누구나 쉽게 다량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반해 과일은 철 만 되면 일반인들도 자주/쉽게 접할 수 있고 직접 키워 먹을 수 있고, 그 자체로 완성된 먹을 것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이 과일/과실이 '기호적인 먹거리'의 대명사가 되고,
과일을 주 재료로 하여 인공으로 조리된 물건(곶감이나 과일타르트 등)으로 의미가 확장된 과자라는 명사가 생겨나고,
아예 과일을 쓰지 않거나 분량이 줄어들고, 다른 단맛나는 꿀,엿,팥 등을 쓴 먹거리도 역시 과자라고 불리웠다고 추론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단 것을 좋아하는건 역시 사람의 본능인 모양입니다.
http://gogen-allguide.com/ka/kashi.html
간단하게 번역하면...
과자(菓子)는 한문으로'과일(果物)'을 의미한 말.
중국에서'菓'와'果'는 같은글자이지만 식물을 강조하기 위해서'菓'글자가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도 근세무렵까지는 菓子를 과일의 의미로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794~1185)에 중국으로부터 밀가루(小?粉)를 써서 만든 당과자(唐菓子)나 엿이나 떡등이 들어와서 무로마치 시대에는 다과(茶菓子)로 나오는 단 과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外?이나 만두도 들어 왔기 때문에 식사 이외 간식을 모두'菓子'라고 하게 되었다.
아직, 이 당시는 과일에도'菓子'의 말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에도시대에는 과자와 과일을 구별하기 위해 과일을 '水菓子'라고 부르게 되어, 과자로부터 과일의 의미가 없어졌다.
라고 하네요. 감에서 왔다는 건 작가의 그냥 생각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