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논쟁의 보도 자세 *..역........사..*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제목의 [낚시 기사]가 떴다.

[조선일보]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 [클릭]

뒤에 물음표가 찍히긴 했어도 제목만으로 보면 또 어떤 국주주의 찬양 기사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의외로 내용은 이런 것이다.

12월 8일 문화부에서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는 황당한 제목의 학술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것. 이 대회는 문화부에서 수년간 시행해오고 있는 [민족문화원형] 사업의 일환인 [민족문화 원형 발굴 및 문화 정체성 정립 기본 10개년 계획]의 하나로 열린 것이다. (저 [민족문화원형사업]의 황당성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나마라도 하긴 해야 하니까 그냥 참고 간다.)

역시 이런 주장은 주로 사학계가 아닌 동네서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시작된다. 보도를 따르자면,

임재해 안동대교수(민속학)는 비교민속학회와 한국구비문학회의 학회장을 맡고 있는데, 두 학회가 바로 ‘고대에도 한류가~’를 주관했고, ‘ 민족문화의 원형과 정체성 정립을 위한 학술대회 1’이라고 스스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라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비과학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주장이 너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 위 기사의 요지다. 따라서 왜곡된 시각이 주입된 유사역사가들에게는 [식민강단사학계]가[ 자기네 밥그릇]을 지키려고 개소리를 한 보도가 되겠다.

임재해 교수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는 1만5000년전 재배 볍씨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라고 주장했으나, 전곡리 유적을 직접 발굴했던 배기동 한양대교수(구석기)와 허문회 서울대명예교수(농학)는

“중국 광서성 백색(白色)유적이나 황하 중류 남전유적 등에서도 모두 아슐리안형 손도끼가 나왔는데 중국에서는 70만~80만년 전 것으로 주장한다”며 “전곡리유적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거나 발달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배교수는 또 “지금부터 1만5000여년전 한반도는 무척 추운 때에 해당하는데 (아)열대 1년생 식물인 벼를 재배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중국에서도 호남성 옥섬암유적에서 1만2000년전 재배볍씨가 출토됐다고 주장했지만 세계학계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소로리볍씨가 출토된 주변 지역에서 경작 흔적이 발굴된 것도 아닌데 재배 볍씨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며 학문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

허문회 교수는 소로리 볍씨와 관련해 재배 볍씨일 가능성을 주장하는 기사마다 그 이름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물론 기사들이 허 교수가 그렇게 주장했다는 내용은 없었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그냥 이름만 올라온 수준이긴 했지만...

거기다 한심한 수준인 북한의 논문을 이용해 자기 주장을 폈다는 인간도 있었다. 상명대 사학과 박선희(朴仙姬·50) 교수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논문을 이용해,

“청동기문화는 황하유역에서 서기 전 2200년경 시작됐고, 시베리아 카라수크문화는 서기전 1200년경, 그리고 고조선은 서기전 2500년경에 시작됐다”며 고조선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청동기문화를 이뤘다

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이건무 용인대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청동기전공)는,

“북한은 주체사상에 따라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 평양에서 건국했다고 주장하는 나라”라고 전제, “세계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비과학적 연대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고조선이 (박교수 등의 주장처럼) 4000여년전 그렇게 넓은 땅을 지배했다면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됐어야 할 텐데 빗살무늬토기인들의 수준으로 그것이 가능하냐”

고 반박했다.

박선희 교수는 갑옷이 고조선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파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겨레] “갑옷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원조” [클릭]

숙신을 우리나라의 계열인 것처럼 취급하고, 그것을 자료라고 함부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띤다. 논리가 슬그머니 숙신=뼈갑옷=상 왕조의 갑옷에 영향=고조선이 미친 영향으로 넘어가면서 숙신을 고조선으로 슬쩍 대치해 놓고 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정백동 제1호묘는 [부조예군]의 도장이 나와 유명한 곳이다. 기원전 2세기말에서 기원전 1세기초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덧널 무덤=나무곽으로 되어 있음. 덧널 무덤은 중국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봄.) 이것을 기원전 3세기로 연대를 올리는 이유는 뻔하다. 그래야 한무제의 고조선 정벌 전이 되기 때문이다.

덧글

  • 페로페로 2006/12/11 10:45 #

    요즘에는 말이죠... 정말 낚시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스포츠 신문에서나 나오던 것들이 이제는 일반 신문에서도 보이죠. 거기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한 수많은 낚시들까지 포함하면 정말 다양한(?) 정신구조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6/12/11 11:22 #

    페로페로님 / 그래도 조선일보에 국수주의자들이 득실대는 상황에서 위 기사는 상당히 의외였네요.
  • 포더윙 2006/12/11 13:40 #

    조선일보의 패턴은 강약강강약중강약
  • 어부 2006/12/11 19:32 #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자격이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 Binoche 2006/12/11 19:49 #

    조선일보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언론이긴 하지만 환빠류의 기사를 쓰지는 않죠.
  • 초록불 2006/12/11 19:59 #

    Binoche 님 / 이덕일이 환빠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죠. 그리고 이덕일에게 컬럼 자리를 내준 게 조선일보고, 거기 글 쓰는 조 모 기자도 거의 환빠 수준으로 나아가서 국수주의 냄새를 물씬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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