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때는? *..자........서..*



서강대 뒷산 이름이 노고산인데, 매우 낮은 산이다. 이 산의 뒷편, 즉 연세대 방향 쪽으로는 지방 대학생들을 노린 자취집들이 바글바글했다. 문제는 이쪽 집은 어쩔 수 없는 북향이라는 것.

대학 2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노고산 뒤의 자취방에는 과 동기 둘이 함께 자취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우리들은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갈 차편이 끊어진 통에(당시는 심야버스라는 것이 없었다.) 그 친구 자취방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그 작은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던 친구들은 최소한 넷, 어쩌면 다섯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방에 모두 누우니까 어깨가 서로 부딪쳤으니까.

한창 때인 갓 스물이 된 남자가 부대끼고 누웠으니 추울 리가 없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친구가 연탄불이 꺼졌다고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다 누워서 자면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비록 이불 밖으로 나온 얼굴 위로는 숨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날밤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데모를 하다 경찰에 쫓긴 나는 비행기에 올라 어느 낯선 나라의 공항에 내렸다. 그 공항이 모스크바에 있었는데, 모스크바가 왜 시베리아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그런데다가 나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무릎까지 들어가는 눈 벌판을, 추격해 온 경찰을 피해 뛰어다니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무릎 아래에 감각이 없었다. 다리를 끌어올려 웅크리고 자고 싶었으나 다닥다닥 붙어있는 친구 놈들 때문에 웅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 앉으려 해도 이불을 놓치면 죽음이라고 여기며 있는대로 틀어쥐고 있는 양 옆의 친구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달달 떨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자 나만 그런 꿈을 꾼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얼음바다에서 밤새 구조를 기다리며 헤엄쳤다는 놈도 있었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다 크레바스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잊을 수 없이 추웠던 기억이 하나 더 있다.

87년 대통령 선거 당시였다. 나는 본래 후보단일화 (김대중 김영삼)를 이루지 못하면 만사휴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강력하게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선거는 독재정권에게 면죄부를 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후보단일화가 물 건너간 뒤, 공명선거감시인단 운동이 벌어졌을 때에 그런 운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감시 운동에 나가게 되었고, 1시간도 안 되어서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붙잡은 친구들을 노량진 경찰서 취조실에 몰아넣었다. 취조실이라는 걸 본 건 그게 처음이었는데, 5공 정권 아래서 고문치사 당했던 박종철 군이 죽은 방과 비슷한 구조였다. 한쪽 구석에 놓인 욕조를 보니, 대체 이게 여기 왜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절로 들었던 것.

그 작은 방에 스무 명 가까운 학생을 몰아넣었는데, 밤이 되니 잘 일이 큰 문제였다. 행동이 재빠른 친구들은 가운데 놓여있던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를 붙잡은 친구들도 있었다. 콘크리트 맨바닥에서는 도저히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도 택하지 않은 욕조로 들어갔다. 오목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내 체온으로 덮혀지리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체온은 북명신공에 걸린 내공처럼 끊임없이 욕조로 빠져나갔다. 새벽 2시쯤 나는 항복 선언을 하고 욕조에서 기어나왔다. 그 작은 평상 위에 이미 열 명 가까운 학생들이 요리조리 기묘하게 꼬여서 자고 있었는데, 나도 어찌어찌 그 틈새로 기어들어가 잘 수 있었다. 키 180에 59킬로그램이었던 당시 체형이니 가능했지, 지금처럼 80킬로그램이 넘는 몸이었다면 서서 밤새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울 것을 각오하면 추위를 견디기 쉬워진다. 아마도 저 때 그렇게 추웠던 것은 추위를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오늘 이번 겨울 들어 제일 춥다지만, 따뜻한 방안에 앉아 있으니 창문 밖의 추위는 그저 남의 일인 것만 같다.

덧글

  • 江湖人 2006/12/21 15:50 #

    87년 당시에 저도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새벽녘 굴러다니는 신문지 한쪽의 따뜻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어부 2006/12/21 20:52 #

    그 때는 아직 고딩 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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