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한문화 (그림을 클릭하면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스누피의 인기를 업은 다음, 논술이 글쓰기라 믿는 사람들의 착각에 힘입어 잘 팔리리라 예상되는 책.
이 책의 제목은 문제가 많다. 이 책의 원제는 [Snoopy's Guide to the Writing Life]인 모양인데, 한국 시장에 발맞춰 위와 같은 전과 같은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믿고 이 책을 산다면 그건...
사기 당한 것이다.
이 책에는 32인의 [작가들]의 조언이 들어있다고 표지에 적혀 있다. 등장하는 [작가들]의 수를 세보진 않았으나 틀림없을 거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정말 [작가들]이 등장한다. 소설가가 주로 많지만, 교양서 집필자도 있고, 요리책을 쓴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편집자도 들어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강조한다. 한국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이 책의 독자가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이 책을 산다면 거의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스누피와 친구들의 멋진 만화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도록 하라.
이 책의 독자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그나마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내용대로 써가지고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쪽 심사위원들은 "이 글은 너무 통속적이고 상업적이야"라고 집어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그런 평을 뛰어넘을만큼 잘 쓴다면 기적적으로 등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저명한 추리작가 김성종 씨는 그렇게 해서 등단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이유로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글들은 나도 동의했고, 어떤 글들은 동의하지 않았어.
옮긴이가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를 뒤에 대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게 한국에서 이른바 [순문학]을 하고 있는 작가의 어쩔 수 없는 경계가 표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그런 점을 떠나서 이미 작가인 사람이거나, 정말 글쓰기가 소중하다는 사람들은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조금은 생소한 미국 만화니만큼(스누피가 생소하다고? 하지만 옷에 그려진 스누피 캐리커쳐 이외에 스누피 만화를 정말 읽거나 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가령 아래 만화를 보자.

이건 쉽게 알겠지만, 윌리엄 와일더 감독이 벤허 시사회 후에 했다는 말의 패러디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에 대해서 아무 주석도 없다. 쉬운 이야기니까 없는 걸까?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래 내용도 쉬울까? 이 책 121쪽에 나오는 내옹을 보자.
라이너스 : 네 소설은 도입부가 너무 느려. 힘차게 시작해야 한다고.
스누피는 잠시 생각 후에 타자를 친다 :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다오.
이 대목을 보고 바로 뭔가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독서에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잠깐 생각해 보시라.
위 글은 [모비딕]의 첫 구절이다. 사실 번역이 조금 이상하다. 191쪽에는 우드스톡이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데,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의 영어 원문은 본래 이렇다.
Call me Ishmael.
대개의 번역본에서 "나는 이슈메일이라고 한다." 정도로 번역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이 부분에 [모비딕]의 첫대목을 인용했다고 달아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고 놓친 부분이 심심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령 142쪽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라이너스 : 탐정 소설을 쓴다고 들었어. 값진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꼭 넣어야 해.
스누피는 잠시 생각 후에 타자를 친다 : 개덫
우리는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지만 미국에서는 같은 장르를 [탐정소설]이라고 부른다. 뭐, 그 이야기는 아니다. 위의 [개덫]이라는 말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놓치는 부분이 얼마나 될지...
마지막으로 나도 이해를 못해 네이버의 힘을 빌린 구절이 있었다.
그러니 스누피, 이 친구야. 올리베티를 찾아가렴. 네 애인들을 괴롭혀!
라는 구절이었는데, 올리베티가 누군지 몰랐다.
타자기 이름이었다.
덧글
갑자기 다시 모비딕을 잡아보고 싶네요. 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
2. 한때 중앙에 연재된 "베이비 블루스"에서 주인공 가장이 듣는 오디오북을 플레이하자 나온 어구도 이거였죠. "나이트 라이더"-전격 Z 작전-에서 가짜 데본 마일즈가 나오는 에피중에 앞부분에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주오~~"라는 어구때문에 가짜인걸 알아채는 이야기도 있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정구씨가 느끼하게 읇는게 압권이었지요)
하지만 25세기에 깨어나는 SF 이야기를 하면서 스누피가 타자하는 [비글 벅]은 [벅 로저스]를 패러디 한 것인데, 이 부분은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합니다.
정글고등학교에 등장하는 만년삼처럼 말입니다.
(정글고등학교를 본적없는 경우라면 이게 또 뭔소린가 하겠네요.^^;;)
(그렇다고 영화광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또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