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에 수록된 단편 [조강] *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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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님이 [조강]이 가장 좋았다는 말씀을 해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각이 났다.

2000년에 역사단편소설집 [다정]을 냈다. 이 소설책은 첫 편인 [축생]만 읽고 편집장이 OK를 놓아 출간하게 되었다. 그 단편집에 있는 소설 중 [천망]은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다. 이젠 연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작은 아래아한글 1.2버전으로 썼으니까.

소설의 단편 중 애정이 과하게 가는 작품은 [축생], [다정], [천망], 그리고 [조강]이다. [축생]은 까다로운 편집장의 눈을 통과해 책을 내게 해준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다정]은 표제작이 될 정도로 공이 들어갔던 작품이다. [다정]은 원고지 100매를 썼다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몽땅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었다. 앞의 작품을 버리고 뒤의 것을 쓰면서 나는 역사학도의 물을 빼고 조금은 소설가다워질 수 있었다. [천망]은 가장 오래동안 굴린 작품이라 애정을 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조강]은 금방 썼다. 삼국사기에 잘 알려져 있는 [강수]와 [강수의 처]에 얽힌 이야기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처럼 술술 이야기가 쏟아져나와 써놓고서 잠시 고민을 했다.

누가 이미 쓴 이야기를 언젠가 읽고 잠재의식 속에 재워 놓았다가 꺼내놓은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표절을 한 거면 어떡하나?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소설은 본래 내 계획에 없던 소설이었다. 9편의 단편으로 대충 책이 되었으면 하고 있었는데, 깐깐한 편집장이 한 편 더 쓸 것을 요구했다. 단지 분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단편들은 삼국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지."

나는 편집장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며, 그 안에는 메시지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모두 [조강] 안에 녹아들어갔다.

책이 나온 뒤에 지인들에게 소감을 강요했는데,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들은 [축생]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한 반면, 아이들을 둔 친구들은 모두 [조강]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편집자가 작가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때 처음 알았다. (책도 처음 내면서 이런 좋은 편집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책을 낼 때 같이 일한 편집자들이 대부분 훌륭했다. (도로시님이나 노는칼님 같은 전문적 식견과 꼼꼼한 기질을 가진 편집자를 만나는 것은 내게 인복이 있는 덕분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는데, 불행히도 그 이를 마저 채울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내가 뭔가 큰 명성을 얻기 전에는 되지 않을 듯해서 서글프다. 단편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좀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요새 종종 하게 된다.

덧글

  • Pluto 2006/12/29 09:32 #

    이런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저도 아이를 둔에 포함 되는 군요.ㅎ 제 포스팅에는 작가말에 있던 거라 쓰지 않았지만... 그 말씀도 무척 좋았습니다. [남편이 죽자 모든 걸 나눠주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만 봐도 충분히 존경받을만 하다는 의견]요.^^ 하지만 그게 당연시 되는 세상은 오지 않겠죠.ㅎ
  • 언에일리언 2006/12/30 01:13 #

    저도 결혼하지 않은터라 축생이 인상적이었었습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축생 바로 다음편에 구라지랑 문노가 같이 나오는 그 단편이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랑이라는 이름처럼 꽃처럼 아름다우면서 강한 소년 검객 문노가 구라지를 보고 충격받고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은 문노가 좋았습니다. 문노가 주인공인 장편소설을 써주신다면 가보로 간직할 수....도 있습니다.
  • 초록불 2006/12/30 01:22 #

    언에일리언님 / 그 소설은 [격검]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이것을 표제작으로 했으면 했지요. 사실 그 책에 수록되지 않은 단편으로 문노가 거칠부와 함께 고구려로 가는 [북행]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졸작인지라 언제 다시 손봐서 공개하기로 하겠습니다.

    문노는 저도 매우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입니다. 고맙습니다.
  • 언에일리언 2006/12/30 01:35 #

    오오오오오오~~~ 북행이라. 제목부터 무진장 재미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군요.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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