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미스테리 *..역........사..*



갑자기 또 한국사 미스테리라는 낚시글이 폭주 중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글 중 정말 개념없는 글을 보았다. 아, 진짜 욕나온더라는....

일부만 옮겨놓는다.


한양으로 모아진 사고들은 모조리 일본으로 빼돌려지고 10여년이 흐른다음 이분들을 죽이는데 일조하고 돈을주고 벼슬을한 이광수 최남선 한용운 등이 역사서를 쓰게 됩니다. 왜놈들과같이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한국역사 입니다.

이것들이 어디다 만해 한용운을 끼워놓고 있는 거야!
아, 진짜 욕 나와서...-_-;;



그리고 한국사 미스테리 60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은 이 글을 보도록...
글이 컴퓨터 화면 2개를 넘어가는 건 못 읽는다는 분은 아예 보지 말길...-_-;;

한국사 미스테리 60 [클릭]

덧글

  • 다크엘 2007/01/07 01:13 #

    아니 만해 한용운이 어째서 그런 곳에 언급이..-_-;;
  • 치오네 2007/01/07 01:15 #

    저건 개념을 안드로메다도 아니고 더 먼 어딘가로 보낸... -_-;;
  • MrNoThink 2007/01/07 01:32 #

    만해 한용운... 그냥 할 말을 상실하게 만드는 군요. 정말 놀라운 재주입니다.
  • 둔저 2007/01/07 01:37 #

    동명이인일지도...라고 억지로 생각 중입니다.-_-;
  • 초록불 2007/01/07 01:50 #

    다크엘님 / 달래 환빠겠습니까마는... 이건 정말 너무... 아주... 으이구....

    치오네님 / 퀘이사 너머로 보낸 겁니다.

    MrNoThink님 / 초등학교 방학한 것을 실감케 합니다.

    둔저님 / 아는 이름은 다 주워섬긴 거죠. 저거 앞뒤글 전체 다 읽으면 정말 뒤집어집니다.
  • 슈타인호프 2007/01/07 02:05 #

    이런 뭐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군요-_-;;
  • windxellos 2007/01/07 02:32 #

    정말이지 기가 차는군요. 어떻게 저 분을 다른
    변절자들과 동류로 넣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머엉)
  • 고어핀드 2007/01/07 02:34 #

    사실 저런 나르시시즘적인 낚시글이 폭주하는 현상은 심리학적 연구 대상일지도. 그만큼 믿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게 아닐까요.
  • 둔저 2007/01/07 02:58 #

    혹시 고도의 '한국사 미스테리' 안티(이걸 뭐라고 해야하나..)가 아닐까요?
    -_-;
  • 루드라 2007/01/07 03:17 #

    진짜 저런 부류 사람들의 심리를 한 번 진지하게 연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 이준님 2007/01/07 08:44 #

    한용운이 나온건 고은 선생의 영향이 크죠-고은 선생이 그런 이야기했다는 건 아니고- "지나 사변"때의 일본의 역할 관련해서 한용운 선생이 쓴 글에 대해서 고은 선생이 씹었거든요-좀 그런 글입니다. 그 덕택에 게시판 찌질이들로서는 일빠건 우파 민족주의자건 "한용운 일제 찌질이"론이 커진거지요
  • nauta 2007/01/07 13:22 #

    저런거 쓰는 애들은 초딩이라고 욕도 못하겠어요. 초딩들에게 미안해지거든요.
  • zelga 2007/01/07 14:13 #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사를 편찬할때 그나마 육당이 발해가 한민족의 역사라는것을 강하게 주장하여 발해사를 끼워넣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음 우리는 오늘날 동북공정에 대응할 중요한 무기 하나를 잃을뻔 했다는 논문을 읽은적이 있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 일제 앞잡이라는 문제는 절대 용서할수 없지만 그정도는 기억해 줘야죠. 그의 잘못만을 생각하여 성과를 무조건 잘못된것으로 몰아버리면 곤란할겁니다.

    그리고 저런 허랑방탕한 소리들을 하고 있으니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더욱 강화하는 겁니다. 재야사학자들이 주류강단학계에 새로운 경향을 줬고, 일반인에게 민족의식을 각성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다른면에서 이러한 민족주의의 반작용으로 중국에게 위기의식을 가지게 해서 동북공정을 불러일으킨 잘못도 있습니다. 한족의 문화는 모든것을 끌어당겨 녹여버리는 성격이 있어요. 그들이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의 조상으로 섬기던 황제와 헌원에 우리들이 동이의 조상이라고 말했던 치우를 끼워넣어 중화삼조로 모시는걸 봤다면 좀 자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대로된 근거나 교차검증없이 무조건 책팔아 먹고 인터넷 조회수 올리기 위한 무분별한 저질글의 양산은 좀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
  • 오우거 2007/01/07 16:14 #

    저도 먼 옛날에 낚여서 파닥거렸던 떡밥이군요...
    잊혀질 만하면 올라오길 반복하는건 아직도 낚일 사람은 많다라는거겠지요.
  • 리라이벌 2007/01/14 18:06 #

    만해가 저런데 끼어야 하다니...... 개념은 어디 안드로메다에 처박아 뒀는지 정말... 그리고 또 조선이 화교국가라고 찌질되는 놈들도 있던데 그럼 화교국가가 만든 훈민정음 쓰지말란 말야!! 환국이 쓰던 글이나 써!! 한자로 끄적이던지!! 이렇게 말하면 또 한글은 주시경선생이 만들었는데 주시경 선생걸 보고 화교 들이 사서를 위조했다고 찌질될지도 모르겠군요.. =_=;;
  • 홍예 2007/06/20 02:06 #

    궁금한게 있는데,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해서.;
    그, 한국사 60 미스테리인가 하는 반박문을 보고 쓰는건데요.

    첫번째에 봉황성의 위치에 대한 글 때문에 질문 드립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서 눈을 잃었는지는 상고할 길이 없으나, 대체로 이 성을 안시라 함은 잘못이라고 한다.
    '당서'에 보면 안시성은 평양서 거리가 5백 리요, 봉황성은 또한 왕검성이라 한다 하였다.
    '지지(地誌)'에, 봉황성은 평양이라 하기도 한다 하였으니 이는 무엇으로 이름함인지 모르겠다.
    또 지지(地誌)에 옛날 안시성은 개평현(봉천부에 속하는 지명)의 동북 70 리에 있다 하였으니,
    개평현에서 동으로 수암하까지가 3백리, 수암하에서 다시 동으로 2백 리를 가면 봉황성이다.
    만일 이 성을 옛 평양이라 한다면 당서에 이른바 5백 리란 말과 부합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은 단지 지금 평양만 알므로 기자가 평양에 도읍했다 하면 이를 믿고 평양에 정전(井田)이 있다 하면 이를 믿으며,
    평양에 기자묘가 있다 하면 이를 믿어서, 만일 봉황성이 곧 평양이다 하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요동에도 또 하나의 평양이 있었다 하면 이는 해괴한 말이다 하고 나무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요동이 본시 조선의 땅이며,
    숙신, 예, 맥 등 동이(東夷)의 여러나라가 모두 위만의 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오자, 영고탑, 후춘 등이 본시 고구려의 옛 땅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아니하고 함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이쪽에다 몰아 넣어서, 억지로 사실을 이끌어다 구구히 분배하고
    다시 패수(浿水, 강이름 패)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을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이는 무슨 까닭일까. 평양을 한 곳에 정해 놓고 패수 위치의 앞으로 나감과 뒤로 물리는 것을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르는 까닭이다.
    나는 일찍이 한사군의 땅은 요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여진(女眞)에까지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그런 중 아느냐 하면 한서(漢書) 지리지에 현토나 낙랑은 있으나 진번과 임둔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부분이 있는데요,
    이런 부분들은 환단고기를 떠나서 그 이전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서 봉황성의 위치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 초록불 2007/06/20 09:30 #

    홍예님 / 뭔가 초점을 잘못 맞추신 것 같습니다. 연암의 글은 당시 많은 유학자들이 고구려 영토를 압록강 이남으로 설정하던 현실에 반발한 것입니다. (믿기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실제 그런 유학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 글에서 봉황성의 위치가 변경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왜 봉황성의 위치가 다르다고 생각하신 건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일기답게 매일 매일의 행로가 잘 적혀 있습니다.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넜고
    6월 25일 구련성을 지나고
    6월 26일 탕산성을 지나
    6월 27일 책문에 도착하였으며
    6월 28일 봉황성에 도착하여 쓴 글의 일부가 위에 인용하신 겁니다.

    조선 사신들이 북경으로 가던 연행로는 자세히 조사되어 있으며, 봉황성의 위치가 다른 곳으로 움직일 가능성이란 0%입니다.
  • Shaw 2007/06/20 11:27 #

    안시성이 평양에서 500리라는 말도 기실은 당서에 없지 않습니까?
  • 초록불 2007/06/20 11:30 #

    Shaw님 / 제 기억으로도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하지만 위 질문은 연암의 이론을 검증하자고 한 것이 아니므로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 꼬깔 2007/07/13 02:32 #

    거참... 어이가 없네요. 만해 한용운이 저기에 끼어 있다니... 도대체 누가 쓴겁니까?
  • 초록불 2007/07/13 02:55 #

    꼬깔님 / 어이가 없지요. 댓글이었으므로 누가 쓴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John 2007/07/13 17:00 #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저런 친일파와 같이 이름이 쓰여있다니... 이런 웃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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