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조선총독부 간행) 목차와 그에 관련한 이야기 만들어진 한국사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가 현재 국사교과서와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자료

[조선사]는 모두 35편으로 작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사료집이다.
[사료집]이란 무슨 말이냐 하면 사료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럼 [사료史料]란 무엇이냐?
사료란 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문서, 기록, 유물, 건축, 조각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사]는 그중 문헌자료(즉 문서와 기록)를 집대성해놓은 책이다.

역사책이란 [사료]를 재료로 써서 만들어지는데, 거기에 [해석]이 들어가야 역사책이 된다.

이때 사료란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당서]와 같은 책과 [울진 봉평비]. [진흥왕 순수비]같은 비석이고, 역사책은 앞의 사료를 해석하여 만든 이종욱 교수의 [신라의 역사] 같은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사료이면서 역사책이 된다. [삼국사기] 안에는 김부식의 [해석]이 들어있다.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김부식의 해석까지도 [사료]로 이용한다. 사실 과거의 기록에 그 기록 작성자의 견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사]를 편찬할 때 이런 해석에 해당하는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1928년 7월 18일 중추원에서 열린 조선사편수회의 고문․위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을 살펴보자.

今西龍 : 다만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일은「사료」와「사설」을 구별하는 것이다.「사료」는 될 수 있는 대로 수집하겠으나 「사설」을 수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채용하지 않는 것이다.

금서룡이 한 말 중 사설을 수집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해석은 수집에서 배제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료의 채집 과정에서도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가게 된다. 어떤 것을 사료라 생각하고, 어떤 것을 사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역사가의 몫이고, 이 과정에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역사가의 [해석]이 깃들기 마련이다. 일제가 편찬한 [조선사]에는 이런 함정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제가 글자를 바꾸거나, 위조하지는 않았다. 자기들 사고에 맞는 사료들을 수집하여 참고용 사료집을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의 내용이라는 게 국정교과서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조선사]의 목차를 살펴보자. 목차를 보면 국사교과서와는 아무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사]는 역사책이 아니라 [사료집]이다.

 

구   분     권차           내          용                                  분량(쪽)  간행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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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목록       1      범례 및 목록                                              19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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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편           1      조선사료                                                  732      1932
  신라           2      일본사료                                                  352      1932
 통일이전      3      중국사료                                                  8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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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편
통일신라       1       신라 문무왕9년(669년)                             457      1932
 시대                           ~고려 태조 18년(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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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려 태조 19년(936년)~선종 1년(1083년)      530      1932
  3 편           2   선종 2년(1084년)~의종 1년(1146년)             600      1932
고려시대       3   의종 2년(1147년)~고종 10년(1222년)           581      1933
                   4   고종 11년(1223년)~충렬왕 5년(1278년)        550      1933
                   5   충렬왕 6년(1279년)~충혜왕 1년(1330년)       543      1934
                   6   충혜왕 2년(1331년)~우왕 1년(1374년)          479      1935
                   7   우왕 2년(1375년)~공양왕 4년(1392년)          48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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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 태조 1년(1392년)~태종 10년(1410년)    556       1932
  4 편           2   태종 11년(1411년)~세종 5년(1423년)           516       1933
조선시대       3   세종 6년(1424년)~세종 24년(1442년)           683       1935
  전기           4   세종 25년(1443년)~세조 12년(1466년)         756       1936
                   5   세조 13년(1467년)~연산군 3년(1497년)       1038      1937
                   6   연산군 4년(1498년)~중종 10년(1515년)         563      1935
                   7   중종 11년(1516년)~중종35년(1540년)            642     1936
                   8   중종 36년(1541년)~선조 4년(1571년)             772     1937
                   9   선조 5년(1572년)~선조 25년(1592년)             677     1937
                 10  선조 26년(1593년)~선조 41년(1608년)          128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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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해군 1년(1608년)~인조 3년(1625년)           537      1933
                   2   인조 4년(1626년)~인조 15년(1637년)            482      1933
                   3   인조 16년(1638년)~효종 8년(1657년)            584      1934
   5 편          4   효종 9년(1658년)~현종 14년(1673년)            546      1934
조선시대       5   현종 15년(1674년)~숙종 15년(1689년)          634      1935
    중기         6   숙종 16년(1690년)~숙종 36년(1710년)          810      1936
                   7   숙종 37년(1711년)~영조 2년(1726년)            852      1936
                   8   영조 3년(1727년)~영조 25년(1749년)          1034      1936
                   9   영조 26년(1750년)~영조 51년(1775년)          784      1937
                 10  영조 52년(1776년)~정조 24년(1800년)         10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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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조 1년(1800년)~순조 20년(1820년)            720      1934
 6 편            2   순조 21년(1821년)~헌종 6년(1840년)            710      1935
조선시대       3   헌종 7년(1841년)~철종 14년(1863년)            697      1936
 후기            4   고종 1년(1863년)~고종 31년(1894년)          11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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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색인          1   부록 - 색인                                                    89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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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신라통일이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의 세나라 사료가 각기 한 권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라통일 이전, 즉 삼국시대와 그 이전 사료는 절대량이 부족하여 외국의 사료를 참조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중국]사료집에는 기자 조선에 대한 사료들도 채록해 놓았다.
* 단군에 대한 사료는 이 1편에 포함되어 있다. 문정창이 1편에 단군조선 이야기가 없다고 한 이래로 수많은 떡밥이 생산되었는데, 1편 박혁거세 - 동명왕 기사 다음에 단군 사료가 들어있다. 1편 11쪽이다. (그림은 耿君님 포스팅에서 업어왔음) 
 
또한 조선사 1편 3권 지나사료 편은 <고조선>이라는 항목으로 시작된다. (역시 그림은 그림은 耿君님 포스팅에서 업어왔음)
* 자, 이제 누가 저 [조선사]와 [국사교과서]가 똑같다는 것에 대해서 해명하기를...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덧글

  • 愚公 2007/01/07 19:45 #

    그런데 '삼국유사'는 사서로 보기에는 좀;;
  • 愚公 2007/01/07 20:08 #

    '산해경'이나 '그리스신화'가 유용한 사료이기는 하지만 역사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모 방송국에서 기획하는 '단군' 드라마에 호녀, 웅녀가 쑥,마늘 먹기 시합을 벌이는 시퀸스가 등장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설마;;)
  • 초록불 2007/01/07 20:09 #

    愚公님 / 삼국유사에는 중요한 사료가 매우 많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고조선으로부터 삼국의 역사까지 잘 들어있죠. 사서로 보아서 안 될 이유가 없답니다...^^;;
  • 초록불 2007/01/07 20:11 #

    앗.. 맥락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서 지우고 다시 썼는데, 그새 댓글을 다셨군요. 산해경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삼국유사는 비교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삼국유사의 왕력, 기이, 흥법은 역사서의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07/01/07 20:11 #

    그나저나 [단군] 드라마...라니.. 잘 만들어질지 의문이군요.
  • 愚公 2007/01/07 20:23 #

    아마 제가 유학계통 사서들만 봐서 그런가 봅니다. ^^;
    삼국유사 외에 비슷한 체제의 서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단군이야 뭐... 이미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_-
  • joyce 2007/01/07 21:01 #

    "<조선사> 는 단순한 통사가 아니라 하나의 사료집이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논문이나 단행본을 저술하는데 왕왕 이 책을 자료로서 인용하였고, 기본사료에 애로를 느끼는 사람은 지금도 이것을 사용한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사료를 볼 수 없는 입장에서 이것만이 보급되어 있다면 이것은 유일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식민지 통치 당국이나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 고문과 위원들은 이런 점에 착안하였다.

    그 리하여 외관상으로는 모든 사료를 망라하여 서술한 것으로 되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취사선택이 행해졌다. 그들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것은 되도록 많이 채록하고 한국사의 본질적인 문제나 민족문제 그리고 그들에게 불리한 것은 수록하지 않았다. <조선사>가 그들의 식민지 통치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크고 원대한 것이었다."

    -- 김용섭(1966?)

    자주 인용되는 글 같아서 댓글에 붙여넣어 봅니다. '유리한 건 많이 채록하고 불리한 건 수록하지 않았다'는 테제가 김교수님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실증적으로 연구가 된 적이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 초록불 2007/01/07 21:49 #

    joyce님 / 인용하신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사]가 일반인들에게 쉽게 열람되는 자료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이 책에 대해 특별히 연구된 바가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대학때 도서관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어머, 뜨거라"하고 집어던진 기억이 있군요.
  • 초록불 2007/01/07 21:50 #

    愚公님 / 사적해제 시간에 졸았나 봅니다.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삼국유사의 기술 방식은 사실 독특하죠. 고승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정치쪽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는 특히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사, 불교사, 문화사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講壇走狗 2007/09/22 20:00 #

    저 취사선택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냐는 건 의문인데, 고대사로만 한정할 경우,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게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넣은 게 흠이라면 흠일까. 단군신화는 1편의 1권 박혁거세 원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동시에.
  • 講壇走狗 2007/09/22 20:01 #

    가령 중국사료에서 "夷"가 들어간 문장은 거의 다 집어넣었다 할 정도로 지나치게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오히려 초기 재야학자들은 이걸 참고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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