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와 약자,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인간의 도리 *..만........상..*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탤런트 부부의 싸움을 보는 관점이라든가, 현대 노조 사태를 보는 관점, 대통령과 북한을 보는 관점들을 보다 보니 이런 부분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어떤 일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올바른 일입니다. 또한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 깊은 사고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일의 원인이 결과의 잘못을 보상해주지는 않습니다.

어려서 읽은 책의 인상깊은 구절은 평생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이런 생각 끝에 떠오르는 구절은 늘 똑같습니다. [검은말 이야기] 혹은 [블랙 뷰티]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어린 마굿간지기는 주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역주한 [블랙 뷰티]의 몸이 뜨끈뜨끈하자 몸이 식으라고 담요를 덮어주지 않습니다. 어린 마굿간지기의 행동은 [선의]에 의한 것이고, 말의 특성을 [잘 몰랐을 뿐]이죠. 하지만 그 집의 마부는 매우 엄하게 그 아이를 대합니다. 주변에서 단지 잘 몰랐다는 것 뿐이잖느냐고 항의하자 이렇게 말하죠.

"잘 몰랐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뭐, 구절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이 구절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실수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잘 모르면 잘 아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일지라 해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과실치사]도 범죄로 취급되고, [미필적고의]라 해도 책임을 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현상을 만났을 때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원인을 알아냈다 해서 결과를 상계하려 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령, 한국 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요지부동의 확고한 사실입니다. 한국 전쟁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고, 그 원인 중에는 남측의 호전적인 자세도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것은 북한이며 이 책임은 결코 면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원인에는 한국의 유사역사가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이 한몫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북공정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으로 이해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고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이미 일어난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져서 결과를 옹호하려는 자세는 공정한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사실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강자와 약자 문제가 들어가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집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하거나, 강자가 약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누구도 누구를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의외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는 약소국가니까 민족주의를 해도 돼.
북한은 약자니까 핵무기라도 있어야 해.
일본은 돈을 많이 버니까 일본 만화를 복제해도 돼.
마이크로소프트는 돈을 많이 버니까 소프트웨어를 복제해도 돼.

그나마 누구라도 저쪽이 강자라고 생각하는 쪽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서로 자기가 약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래도 돼"를 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대노조 - 자본가가 강자, 우리는 약자.
노대통령 - 언론이 강자, 나는 약자.
유사역사학 - 강단이 강자, 나는 약자.

자신을 객관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약자 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쪽이 정말 약자인가 잘 생각해 보아야한다는 것이죠. 약자인 척하는 강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약자로 보여야 여론에 유리하기 때문이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약자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양 측이 공정하게 서로를 대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약자라고 반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적 상황의 예외라는 건 존재하지만, 그것은 정말 특수한 경우죠.)

상대가 반칙을 했다고 나도 반칙으로 대하는 것은 더 최악입니다.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자라고 해서 폭력이 긍정되지는 않습니다. 그 때문에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 도리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공자가 한 말입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죠.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말인데, 이 말이 나온 앞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자공이 물었다. "평생의 지침으로 삼을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서恕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난 내가 잘못하면 맞을 각오가 서 있으니, 남이 잘못한 경우에 때리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것은 폭력이기 때문이죠. 조직폭력배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가서 "너 잘못했으니 맞아야겠다"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다가는 때리긴 커녕 자신이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훨씬 높겠죠. 결국 폭력이란 자신이 상대에 대해 우위에 서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럼 모든 폭력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냐고 물을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극단적인 예외는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구분할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죠. 미적지근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보편적인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은 최후에, 정말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순간에 의지해야 하는 마지막 열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는 한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지를 찾아 세계를 구원했으나, 그 자신은 안식을 찾을 수 없었던 프로도처럼...

덧글

  • marlowe 2007/01/08 15:34 #

    결국 상식에서 출발하면, 문제의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겠지요.
    문제는 그 상식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많다는 거지만요.
  • 타이밍 2007/01/08 15:40 #

    남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않는 것..당연히 지켜야되는거죠. 초록불님 글 읽으면서 오늘도 생각합니다.
  • 이지스 2007/01/08 18:45 #

    음칼형과 제가 늘 하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군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 말줄임표 2007/01/08 20:46 #

    한 때는 저도 상식의 공유와 보편적 가치의 존중이 가능함을 믿어 왔고 이를 지향하는 것이 전체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생각해 왔으나 사회생활을 할 수록 그 것이 순진한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차 듭니다. 왜냐하면 그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 자신의 물적토대에 따라 정해지고, 이렇게 정해진 주관적 기준들이 다시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폭력'으로 변질되곤 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지요. 이건희, 황우석 등의 사익이 국익이란 이름으로 미화되고, 그 '국익'이 전체국민이 지켜야할 보편적 가치로 강요되는 현실을 종종 목격하고 있습니다. 점차 다원화 되가는 사회에서 '보편성'을 강요하는 건 비현실적일 뿐만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또다른 폭력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을 인정할 수 있는 극단적인 예외의 경우라는 것도 평균 수입이상을 이상을 올리는 중산층과 농약먹고 자살하는 농민이 결코 같은 기준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 우리의 노동법들과 집시법 등은 선진국 수준에 비해 한참 모자릅니다. 그렇다면 그 악법의 직접적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시민불복종에 나서야 겠지만(우리가 서구의 노동자, 농민들 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면), 실질적인 피해를 받지 않는 집단에게는 이러한 불복종이 민주적 사회를 혼란 시키는 이기주의라 생각되겠지요.

    그렇다면 부자든 빈자든, 자본이든 노동이든 간에 무엇보다 자신의 물적토대에 솔직해지고, 그 이해집단간의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성을 억지로 도출해 내려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힘의 균형이 철저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현실에서 보편성을 내세우는 것은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약자에 대한 일방적인 수탈과 억압으로 변질 될 위험이 더 크겠지요.(물론 현대차 노조가 시무식에 폭력을 행사한 건 잘못된 일이라고 봅니다. 노사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파업이 시작되었을 때 각종 법률이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게 될 경우 이에 맞서 투쟁을 하는 건 지지할 수도 있겠지요. 구체적 사례와 관계없이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풀어 봤고, 이로 인해 초록별 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와 핀트가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초록불 2007/01/08 22:17 #

    말줄임표님 / 보편적 기준이라는 말은 개별 사례를 통해 하나씩 설명하기에는 너무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사용한 용어입니다. 말줄임표님께서 생각하신 보편적 기준은 [사회적 합의]나 자기 기준에 의한 [상식]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런 오해를 하신 것은 제 글이 단순하게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말줄임표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보편성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은 눈을 가져야 한다는 전체주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역시 뜬구름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제게 있어서 보편성이란 생명에 대한 존중 - 기소불욕 물시어인에 그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 Beatriz 2007/01/08 22:42 #

    마지막 문단이 가슴에 박히네요.
    반지를 찾아 세계를 구원했으나 그 자신은 안식을 찾을 수 없었던 프로도처럼.
    피없는 혁명을 꿈꾸었으나 결국 공포정치라는 수식어를 뗄 수 없게 된 로베스피에르처럼.
    언젠가 싸움이 없는 세상이 올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링크 추가할게요. ^^a
  • chione 2007/01/08 23:21 #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도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나아지겠죠...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누구도 마지막 열쇠를 쓰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열쇠를 쓰고 나면 결국 그 사람도 불행해질테니까요.
  • Vincent 2007/01/08 23:32 #

    아랫 말씀이 가장 와닿는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하거나, 강자가 약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누구도 누구를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죠.
  • kunoctus 2007/01/09 00:09 #

    과거엔
    육체적 강자였던 남자가 약자였던 여자를 패는 것이 비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면...
    현대엔 사회적 강자연 여자가, 약자인 남자를 갖고 농락하거나 사회적 강제력을 악용하는 것도 참으로 비겁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찬별 2007/01/09 00:11 #

    좋은 말씀입니다. 과정은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고, 다만 참작의 여지가 있을 뿐이지요.
  • 찬별 2007/01/09 00:16 #

    그런데 확실히 여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강자가 약자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고, 최근에는 약자는 강자에게 반칙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정도인 것 같군요.
  • 쇠나무 2007/01/09 02:49 #

    참으로 명쾌하군요. 오늘도 좋은 글 가슴 시원하게 잘 보고 갑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머미 2007/01/09 17:55 #

    그런데 담요를 안 덮어준게 아니라 찬물 한통을 시원하게 꿀꺽꿀꺽 다 마시게 해 준 것 아니었던가요? (아, 물론 논지에는 대단히 공감합니다. 그냥...)
  • 초록불 2007/01/09 19:54 #

    머미님 / 찬물 한통을 먹이고 담요를 안 덮어주었지요...^^;;
  • kunoctus 2007/01/11 03:20 #

    반칙을 쓰는 건 나쁘다곤 생각하지만, 반칙외엔 방법이 없는 구조를 만든 강자는 그럼 도대체 뭘로 응징해야할까요? :-)
  • 초록불 2007/01/11 11:04 #

    소민님 / 그 정도면 예외 사항이죠. 저는 손놓고 죽자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 kunoctus 2007/01/11 19:08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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