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 |
박노자는 러시아에서 한국에 귀화한 한국사 전공학자다. "한국학을 하는 사람으로 한국인과 운명을 같이 해야한다"는 이유로 귀화한 박노자가 쓴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눈으로 들여다본 대한민국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다른 시각으로 찔러오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를 한국으로 이끈 은사는 임수 교수라고 한다.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본 임 교수는 홍범도 장군의 유격대원으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 1세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절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능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에게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학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아는" 교수라고 한다.
1990년대 북한 기아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옐친 정권이 북한에 대한 원조를 끊어버린 것을 비난하고 있는데, 북한 기아사태에 그런 원인이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박노자 또한 "결국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대량 아사 상태"로 북한 기아사태를 표현하고 있다.
박노자는 북한의 단군 숭배 파동을 이렇게 비판한다.
북한이 이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으로 실추된 '계급혁명적' 정통성을 신화적 국수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는 분석과 김일성 정권의 전근대적인 기본틀이 드디어 노정되었다는 의견이 세계 한국학계의 공론이었다. 그러나 '단군묘 발굴' 당시 발굴자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여태까지 북한을 '북괴'로 불러온 남한의 몇몇 저명한 국수주의자들이 북한에 가서 성급히 만들어진 '단군' 앞에서 참배할 뜻을 밝혔다는 소식이었다. (중략) 고대 게르만족의 신들에 대한 숭배를 부활시킴으로써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파쇼 권력의 정당성을 과시했던 독일 나치나 조선인에게까지 신사 숭배를 강요한 일제의 선례를 생각하면, 오늘날 '단군숭배'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민족 포스팅 연작에서 나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가 갖는 민족 개념은 매우 계급적이다. 이 책에는 러시아 한인 교포의 말이 이렇게 실려있다.
그들은 말로는 우리를 같은 민족, 같은 동포라고 부르지만, 각자의 의식을 들여다보면 같은 인권을 가진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들에게 단지 불쌍히 여겨 동냥해야할 하층민들이죠. 물론 러시아로 귀국해서 공부하면 인종차별을 일삼는 모스크바 경찰들에게 신분증 검사를 당하고 가끔 모욕도 당하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깡패적인 차별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차별보다 덜 무서워요.
이 대목을 읽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면, 서글픈 일이다. 박노자는 미션스쿨이 교인만을 교직자로 뽑는 행위에 경악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그 점을 당연시했던 내게는 무척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군역 거부에 대한 의견도 시각이 달랐다. 군대 문화의 폭력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아무래도 [북한의 위협]이라는 말 아래 거부감을 가질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100%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시각을 본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일독할 가치를 가진다.
한국이 러시아가 행한 고려인에 대한 탄압을 이야기하지 않는 점과 노근리 학살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점, 서해교전에서 죽은 북한 군인을 보는 남한 측 시각에 대한 이야기, 386 운동권이 투사에서 충복으로 변한 점을 비판하는 것, 교수가 조교를 노예 부리듯이 하는 것에 대한 비판(그리하여 교수란 "한국식 관료주의적 재벌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코리안 드림"이라고 정의한다.), 유교주의자가 민족주의자로 둔갑하는 한국사의 현실 등등.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박노자의 이야기는 매우 도움이 되었다. 가령 이런 이야기.
보편적인 의미의 인간의 존엄성은 열렬한 민족주의자에게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다. '보편적인 도덕'도 그렇다. '우리'와 관계 있는 것은 본래 다 도덕적이다. '남'의 도덕성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남'이 '우리'의 적대자가 되면, '남'이 '악마'가 되고 '우리'가 천사가 되는 흑백논리가 당장 적용된다.
바로 환단고기에 빠진 국수주의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표현해 준 말이다. 박노자는 이어서 세계 각국의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을 비판한다.
터키 - 기원전 2천년 경에 소아시아에서 세계제국을 건설한 고대 이집트, 앗시리아, 히타이트 족까지 기원에 포함한다. 터키족은 5백년 전에 그 땅으로 이주했는데. 이라크 - 후세인은 이라크의 역사를 4천년 전 바빌론으로 소급한다. 중국 - 기원전 1,700년 경의 은상문화를 '한족'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한족 꺼 아니고 동이족 꺼 소리할 환빠 여러분은 즐!)
책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몽골인 불법체류자 바트 자갈에 대한 이야기도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그때 몽골인들에 대해서 존경심을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무분별한 반한 감정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을 속이고 학대한 기업인들을 싫어했지만, 그것은 '한국인'으로서 싫어했다기보다는 '불량 자본가'로서 혐오한 것이었다. (중략) 그들에게는 사회 상층부의 도덕적인 추락과 비행은 '민족 대 민족'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나 역시 외국인에 대한 판단은 외국과 그다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내 사고 구조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받은 대로 굳어져 있는 셈이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가장 큰 충격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나는 당연하게 행하지 못한 것이다.
백년 전에는 이 땅에 없던 인종주의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침투하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흥미진진하며 동시에 반성을 촉구하게 해주었다.
내가 본 것은 1권이 붙어있지 않았는데, 그새 2권도 출간된 모양이다. 그것도 읽어보아야겠다. |
사족 : 알라딘과 이글루의 협약에 의해 위 사진을 링크하고 책을 구매하면 제게 낙전 수입이 생기는군요. 싫어하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대환영이오니 팍팍 눌러서 구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뻔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