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족오(三足烏)는 말 그대로 세발 달린 까마귀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오烏가 그냥 새鳥라고 우기기도 한다. 까마귀는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태양의 흑점을 보고 만들어진 상상의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태양 속에 흑점이 있다는 것을 고대인이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삼족오를 고구려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래서 이런 나찌틱한 행사도 열린다.

삼족오 소년소녀대 발족식
삼족오를 고구려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삼족오 그림이 고구려 고분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잠깐 검색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무수히 찾을 수 있다.
삼족오 벽화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2호 고분, 개마총,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5호묘, 중국 요녕성 조양(朝陽)지구 원태자벽화묘(袁台子壁畵墓) 등에 나온다.
어? 다른 묘는 다 알겠는데 원태자벽화묘는 뭘까? 훗, 이것은 후연의 묘다. 후연의 묘에 왜 삼족오 벽화가 들어있을까?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삼족오는 우리 것이니까, 삼족오가 나온 묘는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 저게 후연의 묘라고? 그런 건 그냥 무시해버린다. 삼족오가 있는데 저게 후연의 묘일 리가 없다. 우리 거야! 논증 끝.
그럼 삼족오 그림이 있다는 저 무덤들의 편년을 알아보자. (편년은 전호태 교수 견해에 의거)

각저총의 삼족오 그림
쌍영총 - 5세기 후반
각저총 - 5세기 초반
덕흥리 고분 - 408년 (5세기 전반)
개마총 - 6세기 초반
강서중묘 - 7세기 초반
천왕지신총 - 5세기 중반
장천1호분 - 5세기 중반
무용총 - 5세기 중반
약수리벽화분 - 5세기초
오회분 - 6세기 전반~후반
제일 빠른 것이 408년이다. 그럼 중국 쪽은 어떨까?
전한 유안(劉安, BC 179 ? ~ BC 122)의 책인 [회남자] 精神訓에 "해 속에 준오(踆烏)가 있고 달 속에 섬여(蟾蜍=두꺼비)가 있다는 말이 벌써 나온다. 한무제 때 시인 사마상여(司馬相如, BC 179 ~ BC 117)는 대인부(大人賦)라는 글에 "나는 오늘 서왕모를 뵈리니(吾乃今日睹西王母)…삼족오를 사자로 삼으리라(有三足烏為之使)"라고 쓰고 있다.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태평어람(983)에는 한나라 때 책 [춘추원명포(春秋元命包)]의 글을 인용해 놓았다.
陽數起於一,成於三,故日中有三足烏。
양수는 1로부터 시작되어 3에서 완성된다. 그런고로 해 안에는 삼족오가 있는 것이다.
왕충(王充, 30? ~ 100?)이 쓴 [논형] 설일(說日) 편에도 "해 속에 삼족오가 있다."라고 나온다.
또한 호남 장사성에서 발굴된 마왕퇴 1호 고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삼족오 그림이 있는 비단이 출토되었다. (정확히는 두발 까마귀로 아직 발 세개까지는 진화하지 않았다. 다만 삼족오가 있는 해 그림 아래 여러개의 해가 묘사된 것이 보일 것이다. 바로 예가 10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유물은 BC 2세기의 물건이다. BC 3세기에 쓰여진 [초사(楚辭)] 천문 편에는 "예(羿)는 어이해 태양을 쏘았는가? 까마귀는 어이해 깃털을 떨어뜨렸을꼬? (羿焉彃日?烏焉解羽?)"고 적혀있다. 이것은 해 안에 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관념이 이미 BC 3세기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위 그림이 바로 이런 전설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삼족오는 중국 것"이냐? 그런 편가르기는 제발 좀 그만 둬 달라고요.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인들 것이라고 분류하고,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 것이라고 잘라야 하는 건가? 미국인인데 아폴로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는 건가? 이런 편협한 사고는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삼족오"가 "고구려"만을 뜻하는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족오를 고구려인들이 많이 좋아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관념은 도가와 결합하여 동아시아 전체에 퍼진 것이다. 그러니 일본 국가대표 서포터 측이 삼족오를 앰블럼으로 삼았다고 해서 우리 역사를 빼앗아간다고 흥분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삼족오의 고향은 태양이다. 모든 문헌과 고분 벽화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태양은 중국의 것도 고구려의 것도 아니니 이제 삼족오의 고향을 가지고 다투지 말라.
물론 고구려의 많은 고분 벽화에서 삼족오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삼족오를 고구려의 상징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히틀러 유겐트 복장의 삼족오 소년소녀대는 어쩌면 좋누... 으이구...
그런 면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도장이 삼족오로 된 것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삼국 모두 삼족오의 전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수주의적으로 비춰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뭐, 그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걸 건네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데 붕어빵 하나 걸 수는 있지만.

반기문 사무총장의 도장.
그런데 우리는 사무총장이라고 번역하지만 영어표기로 보니 총비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북한에서는 혹시 유엔 총비서라고 부르는 거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사무총장이라고 번역하지만 영어표기로 보니 총비서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북한에서는 혹시 유엔 총비서라고 부르는 거 아닐까?
아참, 한가지 추가.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삼족오에 대한 우리측 문헌 기록으로 이것 하나를 댄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8대 우서한 단군 기사 중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
갑인 7년 삼족오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
뭐, 기록대로라면 우리는 BC 20세기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거다. 짱 먹으셈~
덧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기사에는 선물로 받을 반기문 사무총장이 공식인으로 사용한단 말등의 공식발언은 전혀 없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뭐..공식기록상에는 아무래도 도장보단 싸인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_-;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세상에 상식이 남아있을거라고 믿습니다 --
200.4%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딱 사진 보니 유겐트부터 떠오르더군요.
http://orumi.egloos.com/2920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