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사..*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부키

 

(그림을 클릭하면 이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 중 임진왜란과 관련된 부분을 따로 편집한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의 임진왜란 관련 교양총서 중 하나로 발간된 것인데, 매우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사실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사전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나는 특별히 임진왜란과 관련해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므로 어쩌면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 많은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령 나는 풍신수길이 200명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거나, 육손이였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풍신수길은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처녀와 과부 중 예쁜 여자는 모두 성으로 불러와 하루 이틀 정도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음, 하나도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사실이라고? 그럴 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나는 일본군이 조선군을 어떻게 보았는지, 조선군과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 조선 해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병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이 책에서 처음 보았다. 이 모든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풍신수길은 중국 정벌을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일본 전국의 유일한 군주이며 중국을 정복하는 일 이외에는 내가 할만한 일이 남아 있지 않다. 설령 이 일을 진행하다가 내가 세상을 마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나는 이러한 계획을 단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으로서 도달한 일이 없는 영예와 명성을 후세에 남길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을 다 정복하지 못하고서 도중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며 불멸의 영예로써 영원히 기념될 것이다.

풍신수길은 북조씨직(호조 우지나오)를 정벌한 뒤 중국 정복의 야욕을 드러냈다. 그는 이 계획을 영주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뒤 그들을 조종하는 방편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점점 더 이 계획에 빠져들었다.

나는 일본 왕국, 곧 천하의 군주로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 재보, 번영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것들을 포기하고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명예롭고 경탄할 만한 계획을 나의 힘으로 성취하고자 한다. (중략) 비록 나의 아들이 소생하여 나의 발 아래 엎드려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아비의 자비를 기대하면서 이 계획을 단념토록 탄원하여도 나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

일본의 배가 약하고 원양 항해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 여러차례 되풀이되어 나온다. 일본이 중국을 치겠다고 하면서 조선을 향해 온 것도 바로 배로 인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일본군의 선봉장이었던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은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세례명은 "아고스띠뇨"다. 소서행장은 천주교 영주로 프로이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덕분에 이 책이 매우 읽을만한 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반면 소서행장이 자신의 전과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과장을 했는지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탄금대에서 일전을 벌인 신립의 병력은 대개 8천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는 신립이 8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나온다. 소서행장은 엄청난 조선군으로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치려는 일본군을 설득하기까지 했다고 말하여 자신의 거짓말에 신빙성을 더해 놓는다. 하지만 강에 막혀 대부분 도망갈 수 없었던 조선군들은 대부분 죽었다고 했는데, 그 수가 8천명에 가까웠다고 써놓아 스스로의 거짓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병력 수의 과장을 빼면 탄금대 전투의 진행 양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신립의 돌격과 그에 대응한 일본군의 사격 등은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포로로 잡힌 조선 장수가 자신의 목을 베라 요청한 내용도 여기서 처음 읽은 사실이었다.

조선 병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도 재미있었다.

병사들은 단단한 가죽갑옷을 착용하였고, 유럽인의 모자와 같은 철모를 쓰고 있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강철로 되어 있었고, 그 밖에는 무쇠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개머리판이 없는 총포와 수없이 많은 터키 식 활과 화살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선군이 벙거지에 검정 천옷을 착용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나오는 것 중 하나인데, 이 구절도 그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조선 여인에 대한 다음 평도 외부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조선의 여인들은 매우 정숙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조심성이 많다는 정평이...

동래성 전투에서 조선군은 널빤지 두 개를 붙인 방패를 만들어 조총 사격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동래성의 병력 수도 2만 명이었다고 뻥을 치고 있다. 역시 사망자 수는 대폭 줄어들어 5천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 수치도 과장된 것 같다.

소서행장은 풍신수길에게 "조선의 영주들은 농민을 혹사하였으므로 이제 전하께서 인정과 관대함으로써 그들을 대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고서 그들은 더없이 기뻐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조선 농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달아난 탓에 일본군은 추위와 기아로 고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임진왜란 당시 많은 비축미가 불타거나 명군의 식량으로 징발되었으며, 점령지의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 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에는 그 해답이 들어있었다.

임진왜란에 종군 수도사로 참여한 그레고리오 데 세스뻬데스 신부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프로이스에게 보낸다.

기아, 추위, 질병 그밖에 일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곳 천주교도들의 궁핍함은 너무나도 극심합니다. 왜냐하면 관백(풍신수길)이 이곳에 식량을 보내주기는 하지만 여기에 도착하는 양이 너무도 작아서 모든 병사들을 먹여살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겠습니다.

왜 도착하는 양이 너무도 적었던 것일까? 프로이스는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수송 인력은 소수였기 때문에 조선의 병사들은 지리에 익숙한 점을 십분 활용해 각지에서 매복해 있다가 습격하여 일본 병사들을 죽이고서는 운반하던 식량을 남김없이 약탈하였다.

그렇다. 일본군에게 가던 군량미가 조선 백성들의 식량이 되었던 것이다. 역시 먹고사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어쩌면 의병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이순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수군에 대해서는 이런 인상적인 멘트가 나온다.

그들의 배는 견고하고 높았으며 무기, 탄약, 식량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들이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해적질을 하였는데 일본 배를 발견하면 곧바로 습격하고 약탈하였다. (중략) 조선 수군 쪽에서 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인을 몹시 애먹이고 괴롭혔기 때문에, 일본인은 조선인들의 이 성가신 접근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멀리 나아가는 전술로 응전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노를 저어 배와 함께 달아날 수 없게끔 튼튼한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을 위에서 집어던졌기 때문에 일본 배들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매우 놀라운 이야기였다. 일본 장수들의 변명이 그대로 들어있는 걸까? 나는 당시 해전이 원거리에서 포격전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 글을 보면 포격전은 포격전이되, 근접 포격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배들이 원거리에서 조선 배를 어떻게 공격할 수 있다고 "멀리 나아가는 전술" 따위를 쓰려 했을까? 이건 "도망치려 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이스는 이 전쟁으로 15만명의 일본군이 조선으로 건너갔으며 그중 5만명이 전투보다는 기아, 과로, 추위, 질병으로 죽었다고 전한다. 조선인은 훨씬 많은 수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전한다. 구주(규슈)에 잡혀온 조선인들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프로이스는 전쟁 중에 이 책을 썼으므로, 전쟁이 마칠 때까지는 더 많은 조선인들이 포로가 되거나 죽었을 것이다.

어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한다. 서울에 일본군이 진주하자 백성들이 먹을 것을 들고나와 환영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지금의 관념으로는 매우 기분나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개연성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왕자들을 잡아서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에게 바친 조선인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우리쪽 이야기만 보고 들었다. 상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어떤가? 나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글을 보고 첨가합니다.

(조선인들이) 타는 배는 견고하고 크며, 상부에 갑판을 두르고 있다. 화약 용기와 화기들을 사용하며, 쇠로 된 사석포와 같은 포를 쓰는데, 탄환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쇳조각을 물고기 꼬리처럼 덧붙인, 사람 넓적다리 굵기의 나무 화살을 채워 넣어서 발사한다. 이들 화살은 부딪치는 어떤 것도 다 꿰뚫어 파괴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밖의 무기는 위력이 없고, 특히 칼은 짧으며 그다지 쓸모가 없다. 개머리판이 없는 몇가지 총포를 사용한다고도 한다.

상부에 갑판이 있다는 것은, 거북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판옥선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덧글

  • 措大 2007/02/12 01:46 #

    꼭 읽어봐야 할 책이 늘어나는군요 ^^;

    원거리 포격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시기 유럽에서 있었던 해전 양상을 보면 - 그 당시 유럽인들의 기대와 달리 - 원거리 포격전을 통해 함대를 분쇄하기엔 함포의 성능과 전술이 모두 수준 미달이었음이 드러나지요. 그 유명한 무적 함대에 대해서도 영국 함대는 함포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거리 사격으로 적의 함선을 박살내지는 못했습니다. 명중탄이 나와도 스페인 함선은 함렬을 이탈해서 수리하고 다시 복귀할 수 있었지요.

    천자총통 재현 실험 같은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긴 하지만, 판옥선 몇 척이 가진 함포만으로 비폭발성 탄자(돌이나 나무)를 써서 적함을 침몰시킬 수 있었을까요. 원거리 포격전으로는 무리라고 여겨지며, 근거리에서도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16세기 이전 유럽의 해전 양상도 그랬구요. 오히려 근거리에서 집중 사격을 통해 함상 구조물을 파괴하고 인원을 살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전투 이후 왜선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무수히 나오는 것이 아닐지. 또한 천자총통보다 저구경 함포들이 더 많았던 이유도 여기 있는게 아닐지.)

    당시 함포의 원거리 명중률은 극히 낮았을 것 같고, 탄자 성능을 고려하면 한 두 발로 굉침시킬 수도 없었을 듯 하니. 결국 근거리 사격이 주류를 이루는 (조란환 같은 포도탄을 썼겠지요) 함포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전투 사거리는 대폭 줄어들게 되겠지요. 당대의 전투 묘사에서 조선군이 활을 사용했다거나 왜군이 조총으로 조선군을 살상했다는 장면들을 보면, 대충 사거리가 나옵니다. 원거리 포격전만으로 일본 함대를 침몰시키는 것이 가능했다면, 기동성이 우수한 판옥선으로 아웃레인지 사격을 하지 않고 접근전을 할 이유는 없었겠지요.
  • 초록불 2007/02/12 01:51 #

    措大님 / 그러고보니 조선 수군의 무기에 대한 부분도 언급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본문 안에 보강해 놓겠습니다.
  • BigTrain 2007/02/12 02:38 #

    대략 200여년 후 유럽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더 큰 함선과 더 좋은 함포, 더 많은 수량의 무기들을 가지고 싸운 유럽의 해전도 기본적으로는 근접 포격전이었지요. '혼블로워'를 보면 실감나게 알 수 있듯이.

    해전의 양태는 분명 다릅니다만 - 기동이 자유스러운 판옥선과 부자유스러운 전열함 - 기본적으로 함포라는 수단이 비슷한 만큼 전투의 양태는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ps. '혼블로워'에서, 갑판을 쓸어버리는 캘버린의 위력은 정말 ㄷㄷㄷ입니다.
  • 둔저 2007/02/12 02:54 #

    풍신수길의 저 말을 읽으니 열 받네요. 저런 또라이 자식 때문에 전쟁이 터지다니... 침략당해 죽은 조선 백성들도 그렇고, 윗대가리들 명령 받고 끌려온 일본 병사들도 그렇고... 또라이가 위에 있으니 애꿏은 사람 목숨이 엄청나게 죽어나가네요. 하아...
  • 얼음칼 2007/02/12 09:17 #

    아, 오타 많아요. 가등청장도 그렇고, 대부분이 한 줄에 두번 반복되는 것도 그렇고. 크하핫.
  • zert 2007/02/12 09:30 #

    저도 읽어 보았는데 주석이 풍부한다는 점에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죠.
    뭐 역자 말대로 오다 노부나가와 친했던 탓인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행한 일을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읽는 사람이 판단해야할 문제고....

    안골포, 한산도 즈음의 인상적인 기록을 보았습니다.

    "일본수군은 조선해적-_-을 잡으려고 300척을 파견하였는데.....(중략)
    조선수군은 일본군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일본수군을 발견하자
    고함을 지르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ㅁ-"

    ....일본수군을 위해서 묵념(....)
  • 이준님 2007/02/12 10:06 #

    1. 사실 저 자료 자체는 전두환때 발굴이 되었죠. 일부 발췌본이 조선일보에 실렸습니다. 그때가 마봉춘에서 조선왕조 5백년 : 임진왜란 편이 한창 방영되었을때지요.

    2. 이 책 자체가 소서행장-대부분의 장교가 세레명으로 되어 있습니다.-등의 천주교계 일본 장교들과 종군 신부들의 이야기를 보고서로 취합한겁니다. 그래서 "들은것"의 경우는 꽤 재미있거나 상상으로 한게 많지요. 초록불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 책 자체가 무려 "대륙 조선설"의 증빙자료로 이용됩니다. -_-;;;

    3. 아무래도 업계쪽 일이니까 천주교계열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고 반천주교쪽이나 토요토미 계열(천주교 박해를 시작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고 있지요.

    4. 이 책을 보면 자꾸 떠오르는게 제임스 클래벌의 "쇼군"입니다. 미국 제작사에서 만들었다는 이유로 소시적에 왜색이 상당히 짙어도 버젓히 수입된게 압박인데. 개인적으로 원작을 너무 재밌게 읽은터라 어느 이 책도 꽤 재밌게 읽었죠.(물론 쇼군은 가톨릭 사제들이 악마 사촌이고, 임진왜란 부분은 "압록강에서 중국군과의 전투를 벌인" 수준으로 잠시 설명됩니다. - 아시겠지만 이름은 바뀌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무려 나카무라 다이코라고 지칭되지요. 강경파 일본 장수가 무려 "조선의 정복자"인게 별명이고)


  • 초록불 2007/02/12 10:08 #

    얼음칼님 / 가등청정이죠. 다른 부분은 무시.
  • 초록불 2007/02/12 10:10 #

    이준님 / 이 책 안에는 대륙조선설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반박할 증거가 산더미로 쌓여 있죠. 지들 편한 부부만 잘라내서 주장하는, 단장취의의 표본을 그치들이 보여주고 있죠.
  • 고어핀드 2007/02/12 10:27 #

    저도 이 책 읽었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책이더군요.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조만간 질러다 방에 꽂아놓을 생각입니다 :D
  • 페로페로 2007/02/12 13:02 #

    사봐야 겠습니다, 돈이 없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말입니다. 어쩌면 제가 막혀있던 부분을 해결해 줄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zert 2007/02/12 16:07 #

    措大님//음...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원거리 포격은 "조선수군이니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루이스 선교사의 말에 나오는 "사람의 다리만한 화살"을 바로 대장군전으로 말하는 것인데 허약한 왜선에 맞추면 그대로 배밑바닥까지 뚫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기록상 천보(1킬로미터) 까지 사격이 가능한게 천자총통(대장군전 전용? 총통)이죠-_-;;

    다만 일본수군과 일본배가 지나치게 허약하여-_- 과다하게 화약을 잡아먹는 천자, 지자 총통은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죠(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 조선수군ㅠㅠ)

    거기에다가 현대의 전함처럼 재장전이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니 장전하는 시간, 판옥선과 비슷하거나 좀더 빠른 왜수군의 배의 속도 등등을 고려하면 결국 접근전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뭐 그나마 일본수군이 조선수군에 "감히" 접근한 것도 임진왜란 초기일 뿐이죠-_-;
  • 초록불 2007/02/12 17:19 #

    zert님 / 그 원거리와 접근전이라는 것의 거리 관계가 서로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같은 말을 서도 다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너 뛸 정도의 거리보다는 멀고, 근대 함포 사격보다는 가깝고, 뭐 그런 거였겠죠.
  • 풍백비렴 2007/02/12 22:03 #

    풍신수길은 왜란 초기에 일본군이 승승장구하자 그에 고무되어 중국을 정벌후 자신의 동생을 중국의 관백(일종의 수상정도일까나;ㅣ;;)으로 삼아 다스리고 베트남을 정벌하러 떠나겠다고 했더군요.. 참 꿈과 상상력은 요즘 양산형 무협&판타지 작가같군요..
    조선 해군의 주력은 판옥선이죠.. 귀선은 어디까지나 교란용. 그리고 거북선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한거 아닌가요?; 거북船? 차라리 거북배나 龜船이;; 나을듯;;
    아 그리고 멀리 나아가는 전술에 대한 설명 즐겁게 보았습니다. 과연 그렇게 보는거구나..
  • 시퍼렁어 2007/02/12 22:39 #

    해전 지식이 워낙 짧은지라 .... 그나저나 환빠가 있듯이 일본에도 그런 크랫팟들이 즐비하겠죠?
  • 초록불 2007/02/12 23:49 #

    시퍼렁어님 / 물론이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몽골로 건너가 징기스칸이 되었다는 양호한 이야기로부터, 세계의 모든 종교는 신도에서 나왔다고 믿는 일빠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환단고기를 번역한 녹도승도 바로 그런 신도지상주의자죠.
  • 총천연색 2007/02/14 08:28 #

    _-_ 나중에라도 재확인 해야 할 듯.
  • Tzar Bomba 2009/03/18 17:09 #

    재미있는 글이네요. 과제끝내면 다히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이틀만에 과제를 4개 해야한다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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