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순문학 소설들... *..문........화..*



윤대녕의 소설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다. 대표작이 뭐냐고 물어보자 [은어낚시통신]이라고 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았다.

읽었다.

오오, 이런 소설이 칭찬을 받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박언니, 미안하다.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이먀말로 마초의 꿈을 완성한 소설이 아닌가!

새벽 바닷가, 한물 갔다고는 하나 어여쁜 모델이 멋지게 담배 한대를 피고 있다. 다가가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귀소 동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자 영혼이 통하고 키스와 섹스가 이어진다.

만날 때마다 섹스를 탐닉하는데, 여자는 쿨하게 떠나준다. 몇 년이 지나 잊을만 해지자 다시 "대주러" 나타난다. 이거야말로 마초의 환상을 그대로 투영한 소설이다. (이 줄거리는 내가 골조만 끄집어 낸 것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함)

같은 소설집의 첫 단편인 [은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바람피는 아내의 정부로 의심되는 남자의 카페에 들렀다가 은어를 연상케하는 아르바이트 여자를 만난다. "은어"라고 한마디 잘못했는데, 그 여자의 이름이 그와 비슷해서 여자는 남자와 사귀게 된다. 여자 사귀기 정말 쉽지 않은가?

이기호의 소설 [나쁜 소설]에서는 윤대녕의 이런 비현실성을 꼬집고 있던데, 이기호의 소설은 최근 읽은 것들 중 가장 나았다. 이 작가는 글을 맺을 줄 안다. 책임지지도 못할만큼 일을 벌리지 않기 때문에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무리를 못하는 작가로 박민규도 꼽을 수 있다. 최근 가장 주가가 높은 소설가일텐데, 미안하지만 나는 전혀 높이 평가해 줄 수가 없더라. [지구영웅전설]을 읽고 왕 실망했었고, 최근에 [카스테라]를 읽고는 기가 막혀 웃음도 안 나왔다. 마무리를 지을 수 없는 이야기를 모호함의 가면 뒤에 숨기면 그게 작품이 되는 건가?

하지만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확신범"일까? 자기 자신들한테는 그 이야기들이 마무리도 잘 되고, 하나도 모호하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이 소설들을 잘 썼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정말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임금님처럼 보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한 것일까?

책도 제대로 못파는 죽작가가 할 말이 아닌지도 모른다. 애초에 잘 팔리는 작품에는 뭔가가 있으며,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 바로 나니까. 나보다 잘 파는 저들에게는 뭔가 나보다 잘해나가는 것이 있겠지. 그게 뭘까? 이래서 나는 아직 죽작가인 모양이다.

덧글

  • 사발대사 2007/02/12 01:45 #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남자의 환상을 폼나게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것 아닐까요?
  • 카시아파 2007/02/12 01:51 #

    음....저는 제목 그대로 낚시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닥파닥한 여자(은어)를 낚는 마초의 환상. 쿨럭~

    윤대녕 박민규 둘 다 별로 안 좋아요~ 문장에 히매가리가 없어서..
  • 措大 2007/02/12 01:58 #

    -박민규가 마무리를 못짓는다는 부분은 제 감상과 비슷한 것 같군요 :)

    -윤대녕은 저렇게 줄거리를 잘라 드러내니 무슨 야설 같습니다. (...) 잘 구워진 생선살을 젓가락으로 벌려서 뼈를 드러내며 "먹을게 없어"라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윤대녕 소설에서 마초의 자기만족은...글쎄요. 일단 쿨하게 이상론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섹스'(...라기보단 화간이라고 해야하나?)에서 남자와 여자가 다를 이유는 없지요. 섹스든 키스든 (설령 거기까지 싸구려로 가더라도) 둘 다 정신적인 (또한 육체적인) 만족(쾌감?)을 얻었으면 둘 다 득을 본 거니까요. (물론 한국 현실에서 이게 말이 되느냐. 혼외정사는 결국 여자만 손해...구구절절은...일단 넘기구요 ;)

    윤대녕 소설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한다"라든가, "주책 덩어리 같은 고민을 고민이랍시고 하면서, 그 갈등을 해소는 또 너무 진부하다" 혹은 "갈등 해소 방식이 너무 만만하다(사람 좀 만나고, 연애 좀 하면 문제가 해결되니?)"라는 등의 비판은 많습니다만 ;;; (다만 몰현실성이 소설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비평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있습니다)

    일단 2007년은 윤대녕 소설(그것도 "은어낚시통신")을 읽기엔 너무 늦은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90년대에는 신선했지만, 이젠 그것도 아닌거 같고. 하지만 80년대에는 고민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던 얘기들을 써놓고, 황당스러운 해결의 얘기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그때에는) 신선했지요. 심하게 말하자면 이건 사실 하루키스러운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먹혔던 시장에서, 그와 같은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지 않을까요?
  • rumic71 2007/02/12 01:59 #

    암튼 판매부수 조작이 아닌 이상 잘 팔린다는데 더 할 말은 없지요. 예술성 논쟁이라면 모를까.
  • 초록불 2007/02/12 02:18 #

    措大님 / 2007년에는 유효하지 않다는 말씀. 그럴 수도 있겠군요. 20대에는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것들이 40대에게는 멋지게 보일 수 없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20년도 안 되는 시간 속에 허물어지는 것이 대중소설보다도 약한 모습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 chione 2007/02/12 04:30 #

    대학 다닐 때 윤대녕을 정말 좋아했었어요. 윤대녕을 통해 처음으로 마초에게도 순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윤대녕의 소설에는 여자의 판타지도 들어있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환상이죠.

    1990년대는 좀 독특한 시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대학 다니면서 제일 많이 들어본 말이 아마 포스트모더니즘이었을거에요. 모든 것을 해체해야 했고, 결말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했죠. 처음에는 신선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보는 사람까지 매너리즘에 빠지더군요. 한창 지쳐있을 때 뭔가 다르게 등장했던 작가가 전경린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고 다들 '뭐가 좋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었죠.
  • 민레스 2007/02/12 04:32 #

    윤대녕씨 장편 <미란>도 <은어낚시통신>과 살짝 비슷하군요 -_- 윤대녕씨에겐 이런 류의 마초의 환상이 있는걸까나요; 크흠
    뭐 저는 윤대녕도 박민규도 안 좋아하지만. 단편 <은어낚시통신>과 <카스테라>를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어요. 솔직히 대중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가르는 것 자체도 전 그닥 탐탁지 않더군요. 요즘 문단도 그런 벽 같은 것이 조금씩 사라지는 추세인 것 같아요. 꽤 오래 전 편혜영씨의 소설집을 판타지 코너에서 발견한 기억이 있어요. 이 분은 분명 등단 과정을 거치셨지만, 등단작도 이후의 작품들도 하드코어 판타지랄까 그런 느낌이거든요. 보고 막 웃었더랬죠.
    소설을 보는 눈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요. 결국 따지고 보면 어떤 소설을 보고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소설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그 사람의 취향이라든가 일정한 기준이라든가, 가 아닐까요.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거나 문단에서 극찬을 받거나 하는 것도 다 그런 '공감'에서 연유하는 문제가 아닐지.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는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대로 작품을 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읽은 뒤에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고 좋은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저는 그런 마인드거든요.
    <염소를 모는 여자>는 정말 명작이었어요. 작가의 목소리에 너무 힘이 들어가지도, 너무 주저하지도 않는 느낌이랄까, 문체도 간결하면서 너무 가볍지 않고. 그치만 이후의 작품들이 다 똑같은 레퍼토리라 결국 전경린도 지겨워져 버렸지만; 솔직히 말해서 요즘엔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없어요. 여러 곳에서 극찬받는 김훈씨의 작품도, <언니의 폐경> 읽고서 정말 토할 정도로 실망한 후로부터는 그닥 탐탁지 않구요; 김애란씨랑 한유주씨랑 정도에 살짝 관심이 있달까.
  • 리체 2007/02/12 11:25 #

    이도우님이 예전에 윤대녕에 대해서 언급하신 포스팅이 있었답니다. 여자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이라는 제목에서 윤대녕 글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있었죠. 이성복, 함성호 시인과 함께. 초록불님과 비슷한 감상을 그때 봤습니다. 제 생각에 윤대녕은 양반이고, 일본 남자 작가는 더 합니다. 무라카미 류 같은 개마초도 있고. 근데 대부분 마초 성향을 내뿜는 남자 순문학 작가의 글들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들고 일어나서 옹호하는 건 남성 독자들이 대부분이라.... 윤대녕의 문학성이나 글발에 대해서 논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보기에는 불편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거고, 그게 불편하게 만드는 건데 그걸 서로 이해 못하는 거지요.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구역질 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는 그런 불편한 시선도 존재할테니 말이죠. 초록불님 같은 분이 정말 드물어요ㅠ
  • luxferre 2007/02/13 20:46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고 박민규가 정말 싫어졌습니다.
  • 총천연색 2007/02/14 08:29 #

    수..순소설이 저런 거 였나요? (멍~)
  • 이요 2007/03/13 23:19 #

    와...너무 공감! 저도 윤대녕 소설 볼 때마다 열받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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