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은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실려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환단고기]는 1911년에 편집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 근거가 없으며, 1979년에 세상에 나온 것이 분명한 책이다.
사실 이 증거 중 하나가 천부경이기도 하다. 나는 그 수많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이 이런 명백한 모순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매우 궁금하다.
1911년에 [환단고기]를 편집한 계연수가 1916년에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자기가 1911년에 책에 써넣은 경전을 어떻게 해서 1916년에서야 발견할 수 있는 걸까?
桂延壽書搭天符經原本於妙香山石壁送來時書
僕嘗聞之師 東方開荒之祖 檀君神人 持天符三印 自天降世 德化大行于今四千餘年 事在鴻濛 未知三印 爲何物 如何寶物而天符 卽設敎之經 尙今遺傳處 人若得而誦之卽災厄 化爲吉祥 不良化爲仁善 九九成道卽子孫繁昌 壽富連綿 必得仙果 但愚昧者 藏之一本 可免災禍矣 云而僕 銘在心中 求之不得矣 浚乃鍊成爲工 採藥爲業 雲遊名山十許年矣 昨秋入太白山 信步窮源 行到人跡不到之處 澗上石壁 若有古刻 手掃苔蘚 字劃分明 果是天符神境 雙眼忽明 拜跪經讀 一以喜檀君天祖之寶經 一以喜孤雲先生之奇蹟 心中充然 若有所得 始覺吾師不發虛言 乃百步疊石 記其道路 歸携紙墨 更入山中 非復前日經過處 東尋西覓 暗禱山靈 三宿而始得 時九月九日也 纔搭一本 字甚模糊 更欲搭之 雲霧忽起 乃間關而返山寺 終夜解釋 不得要領 自顧少短學識 老滅聰明 無復硏之道 但口誦而已矣 適有自京來人 說到京城 有檀君敎云耳 聞心欣然 意欲躬往 足跡齟齬 未得遂意 荏재(草+再)發春 路逢歸京人 玆以搭本獻上 望須解釋經旨 開喩 衆生卽衆生 必受福祿 敎運從此發與矣 竊爲貴敎賀之 又聞檀世有神誌氏古文字 傳來又高麗云 竊惟求之若得之 更當付呈爲 然得之則幸矣 若不得而不送 勿以無信 垂諒焉
爲祝誠心修道 丁巳正月初十日
香山遊客 桂延壽 再拜
계연수가 천부경의 원본을 묘향산 석벽에서 박아 써 보낼 때의 것을 적노라.
제가 일찍이 스승에게서 들으니 동방의 거칠은 땅을 개척하신 할아버지 단군(檀君)님은 신인(神人)이시라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잡으시고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 오시사 그 덕화가 행하여진 지 이제 사천 년여 년이 되는지라.
그 동안 어두움에 빠져서 이 삼인(三印)이 어떠한 것인지 또는 어떠한 보물인지를 알지 못하였나니 이 천부(天符)는 곧 단군께서 교화를 베푸신 글이라 오히려 이제야 세상에 전하게 되니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재액(災厄)이 변화하여 길한 상서(祥瑞)가 되고, 어질지 못한 이가 변화하여 착한 이가 되나니 이같이 오랫동안 도를 이루면 자손이 번창하고 장수함과 부유됨이 계속되어 반드시 신선 결과를 얻을 것이요, 다만 어리석은 이라도 이 책 한 권을 감추어 가지면 가히 재앙을 면하리라 하신 바 제가 이를 마음속에 새겨 두고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였더니 정성껏 성품 단련함을 기능으로 삼고, 약 캐기를 업으로 삼아 명산에서 구름과 놀기를 십여 년 동안 하다가 지난 가을에 태백산(太白山, 묘향산의 옛 이름)에 들어가서 유심히 깊은 골짜기를 걸어감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곳에 이르니, 시내 위의 돌벽에 옛날에 새겨 놓은 것이 있는 듯한지라.
손으로 바위에 낀 이끼[苔蘚]을 쓸고 보니 글자 획(劃)이 분명한 천부경(天符經)이 나타는지라 두 눈이 문득 밝아옴에 절하고 꿇어앉아 공경히 읽으니, 한편으로는 단군 한배검(檀君天祖)의 보배로운 글임에 기쁘고, 한편으로는 고운 선생(孤雲先生, 최치원(崔致遠))의 기적(奇蹟)이 있음에 기뻐한지라. 마음속에 음을 비로소 깨닫고 이에 백 걸음이나 돌을 쌓아 그 길로 기억하게 하고, 돌아와 종이와 먹을 가지고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니 전날의 지나던 곳이 아니라 동서로 찾다가 마침내 산신령[山靈]에게 빌며 사흘 밤을 자고 비로소 찾아 얻으니, 이때는 구월 구일이라 겨우 한 벌을 박으니 글자가 심히 흐릿하여 다시 박으려 하니 구름과 안개가 문득 일어나는지라. 이에 그만 산 절[山寺]로 돌아와 밤이 새도록 풀어 보았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으니, 스스로 돌아 보건대 젊어서 배움이 짧고 늙어 총명함이 덜어짐으로 다시 연구하여 뚫을 길이 없고 다만 입으로 읽을 뿐이더니 마침 서울에서 온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서울에 단군교(檀君敎)가 있다 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심히 기뻐서 뜻으로는 가 보고자 하나 걸음이 어긋나서 그 뜻을 수행하지 못하고 덧없이 봄이 되는지라.
길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을 만나 박은 책을 드리오니 바라건대 이 글 뜻을 잘 풀어 중생(衆生)을 열어 가르치면 그들이 반드시 복록을 받고 교운(敎運)이 이로부터 일어날 것이니 그윽이 귀교(貴敎)의 하례(賀禮)가 됨이며, 또 들으니 단군 때에 신지(神誌)의 옛 글자[古文字]가 고구려(高句麗)에 전하여졌다 하니 깊이 구하여 만일 얻으면 다시 응당 보낼 계획이오나, 얻으면 다행이요, 얻지 못하면 보내지 못할지라도 신용이 없다 하지 마시고 양해하시기를 바라노라. 성심으로 수도함을 빌면서 정사(丁巳) 정월 초 열흘날 향산유객(香山遊客) 계연수(桂延壽) 재배(再拜)
단군교당(檀君敎堂) 도하(道下) 이 편지는 정사년에 보낸 것인데 정사년은 1917년이다. 그 전해 9월 9일에 비문을 발견했다 하니, 천부경을 발견한 것은 1916년이다. 더구나 이 편지를 받은 [단군교]란 친일 인사들이 [대종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악질식민빠님의 포스팅
본편 - 환단고기의 성립 III [클릭]을 참고하기 바란다.
묘향산 석비본 천부경은 다음과 같이 만들어져 있다.
一始無始一
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
匱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
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
妙 衍萬往萬來用變不
動 本本心本太陽
昻明人
中天
地一一終無終一
이 석벽본은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 (석벽본을 실제로 보지 못했음)
천부경은 대략 이무렵부터 유명해지긴 했던 모양이다. 1925년 최치원의 후손인 최국술(崔國述)이 편찬했다는 [최문창후 전집(崔文昌候全集)]에도 천부경이 들어있다고 한다. (내 눈으로 확인은 못했음) 아래 위 천부경에 빨갛게 칠해놓은 것은 서로 다른 부분이다.
一始無始一
碩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
愧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
杳 演萬往萬來用變不
同 本本心本太陽
仰明人
中天
中一一終無終一
1925년 1월 26일에 단재 신채호는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조선사연구초]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신채호는 천부경이 위조품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민족주의자 시절의 신채호도 믿지 않았던 후인 위조의 천부경. 환단고기에는 이 천부경이라는 물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부경(天符經)은 천제한국(天帝桓國)에서 말로만 전해지다 환웅(桓雄) 대성존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의 글로써 이를 기록케 하였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일찍이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이를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갑골문으로 작성된 천부경이 등장했다고 난리가 난 바 있다. 전통 옥새전각장인인 민홍규閔弘圭 씨의 집에서 선조였던 고려말 충신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수은 김충한과 함께 6은으로 불리웠던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의 유품으로 천부경문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 물건은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이 천부경도 원문 천부경과는 몇 글자가 다르다는데, 이 갑골문 천부경을 현재 한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一始無始一
新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匱
從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
氣合六生七八九
衷三四成環五七一妙
衍萬往萬來用變不動
本本心本太陽昻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그런데 글자 틀린 것을 떠나, 저 갑골문은 되게 웃기는 물건이다. 갑골문인 주제에 맨 위에는 [천부경]이라고 해서로 글씨가 쓰여져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한문은 ↓방향으로 글을 써나가는데, 위의 갑골문은 이런 세로 방식이 아니라 ←방식으로 쓰인 가로 갑골문인 것이다. 이것은 유례가 없는 갑골문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다음 글자를 보자. 8행 5번째 글자이다.

이 글자는 태太자다. 천부경 원문 상으로도 그렇고, 저 글자도 한 눈에 태太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갑골문이 쓰이던 시절에는 태太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음 글자를 보자. 2행 8번째 글자(좌측부터 세어서)인데, 본本자이다. 고람거사님은 과거에 DC역사갤러리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는데, 나야 갑골문에는 문외한이니 고람거사님 논의를 정리해 보겠다.

나무 목木과 비슷한 글자 밑에 ∀ 모양 세개가 붙어 있다. 문제는 바로 이 ∀모양이다. 고람거사님 견해를 따르면 갑골문에서는 이 모양이 뾰족하게 만들어진 경우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훗날 나온 의견들을 모아 보아도 이 모양은 ㅂ처럼 네모지게 만들어지거나 ∪자처럼 둥글게 만들어질 뿐 ∀로 뾰족하게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 ∀모양으로 본本자를 표기한 것은 후한대 만들어진 [설문]의 글자라는 것이다. 그럼 아래 그림을 보자. 갑골문자전의 스캔본이라고 한다. (사실 반론이라고 올라온 것에서 가져왔다. 그 글을 쓴 사람은 고람거사가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것을 연구한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영어의 뿌리가 한국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가령 박朴에는 나무껍질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것은 영어의 bark가 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음... 아무튼 그런 사람이다.
위 그림을 보면 갑골문 천부경에 나오는 ∀모양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림 안에 있는 검은 색 박스 안의 글자가 바로 [설문]에 나오는 본本자다. 천부경의 본本자와 똑같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다음 그림을 보자.

이것은 8행의 일부분이다. 글자를 오른쪽에서부터 읽으면 본심본본本心本本이 된다. 갑골문에서 저 글자는 본本이 아니고 도夲라는 글자라고 한다. 후대에 오면서 본本과 도夲를 혼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저 천부경을 만들던 이가 혼동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
살펴본 바와 같이 천부경이란 물건은 1920년대에 첫 등장하여 민족의 경전이 되어 온갖 위조품이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일에 현혹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농은유집 천부경이 갑골문? [클릭] 소하님 포스팅에 링크
아참 글 쓰다가 까먹은 게 있다. 가로쓰기 갑골문이 욕을 먹자 슬그머니 세로쓰기 갑골문도 등장해서 돌아다니고 있다. 아래 그림을 보라. (아참, 혹시 이건 갑골문은 아닌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이쪽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사족 2 : 근간 판타지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이 제사를 지내며 천부경을 읊조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에 쓰인 천부경 내용은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쓴 이경숙의 해석법이다. 이경숙이 환빠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사족3 : 환빠들이 민족주의 사가라고 숭배해 마지 않는 신채호도 천부경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조선사연구초] (1926)에 이런 말이 나온다.
10만 책의 장서 다락 속에서 앉고 눕고 하더라도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세 사람이 위조한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거룩한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중)아이고, 천부경과 신채호를 동시에 믿는 사람들은 어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