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반도를 정벌하는 사극을 만든다면? [송원섭 님 블로그에 링크]
쓰려는 주제와 꼭 일치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송 기자님의 댓글 재치에 감탄하여 링크를 걸었습니다. 평소에도 송 기자님의 댓글 센스에 놀라지만 그 여유로운 정신 세계는 정말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단 사람 중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더군요.
또한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극우망상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하면서 우리 역사가 제대로 남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 패배의 역사라고 스스로 강조하는 셈인데, 그 사람들은 그 패자의 역사는 조선사라고 밀어넣음으로써 자기네 주장에 대한 면죄부로 삼고 있죠.
꽤나 자주보는 문구인데, 과문한 탓인지 출전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 저 말의 출전을 아시는 분은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잠본이님 덕분에 출전을 알았네요. 위 말은 로마에서 전해지는 속담(라틴 속담)이었습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승자는 심판 받을 일이 없다"라는 것도 있군요.
속담이라면 이런 말도 성립할 수 있겠죠. 하지만 역사학에는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세상에 멸망한 나라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번 볼까요?
수메르는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게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수메르의 역사를 사르곤이 기록했나요?
이집트의 람세스는 히타이트 족에게 졌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역사를 히타이트 족이 써줬던가요?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역사를 게르만족이 남겼습니까?
켈트 족의 잉글랜드는 노르만 족에게 정복당했습니다.
그래서 켈트 족의 역사가 왜곡되었나요?
프랑스는 나찌 독일에 점령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역사가 사라졌나요?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습니다.
사마천이 "승자"라서 [사기]를 썼나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은 역사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술하려고 하지요. 그것은 "승자"나 "패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대의 기록이란 당대의 역사적 한계 속에서 작성된 기록일 뿐, 그 기록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아니죠.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당대의 기록" 속에 내포된 진실을 찾아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승자"도 남기지만 "패자"도 남깁니다. 승자만이 기록을 남긴다면 패망한 국가의 기록은 다 사라지고 승리한 자의 기록으로 늘 대치되었어야 하죠. 아니, 엄밀히 말해 기록은 아무나 남깁니다. 현대에는 엄청난 기록들이 있지요. 여러분 블로그도 모두 "기록"입니다. 그것이 "사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남겨진 기록에 불만족해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됩니다.) 대표적으로 [환단고기] 같은 위서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사실 알고보면 우리는 지금 패자라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패자라 우리쪽 역사는 안 남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환단고기]는 왜 남았다고 믿는 걸까요? 벌써 이 말에서 그 사람들의 모순이 드러납니다.)
그저 이적이 평양성에 불을 질렀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이적이 고구려 사적을 다 불태웠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죠. 그럼 대체 김부식은 뭘보고 [삼국사기]를 썼을까요? 이유립처럼 기억에 의지해서? 또 이런 사람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김부식이 고대 사서들을 불태웠다고 주장하는데, 이적이 다 태워버린 것을 김부식은 어떻게 또 태울 수 있었을까요? 김부식이 마술사처럼 모자에서 사서를 꺼내 읽은 뒤에 불태웠다고요?
사마천은 흉노와 벌인 전쟁 때문에 궁형을 받았습니다. 사실 목이 달아날 뻔 했지요. 그렇지만 사마천은 [사기] 안에 흉노열전을 넣었으며,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흉노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가령 "묵돌선우의 흉폭함에 두려워 그에게 복종했다"는 식으로 왜곡하지 않고 "묵돌 선우의 현능함에 감복하여 그를 믿고 복종했다"는 식으로 흉노의 영웅에 대해 객관적인 묘사를 했지요. 흉노가 보낸 편지에도 "천지가 낳으시고 일월이 세우신 흉노 대선우는 삼가 황제에게 문안하오니, 그간 무양하시오"라고 시작되는 한족으로서는 발칙해 보일 수도 말도 깎아버리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흉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사마천에게 빚진 것이 엄청납니다. 인정하세요. 사마천은 공정한 역사가였고,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기억하세요. 우리가 역사의 패자라서 기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는 풍부한 기록 유산이 남아있습니다. 스스로 패자라 생각하는 열등감은 좀 벗어버리시지요? 그게 그렇게 어렵나요?
[추가]
역사학자들은 당대의 한계 상황 속에서 쓰인 사료들을 보면서 당대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군요. 여러가지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가령 삼국의 고대 국가 건설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초기 연구자들은 상당히 그 기원을 후대에 잡고 있었으나, 최근 연구자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신뢰해야 한다는 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일반인들은 그동안 배웠던 역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밝혀낸 것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과거의 불충분한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오늘날 알게 되는 것일까요?
쉬운 예를 들어봅시다. 일제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어서 대원군에게 박해를 받고 옥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제하의 연구자들은 그렇게 믿었지요. 하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런 사실의 오류를 밝혀내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연구의 올바른 결과를 밝혀냈습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해서 일제가 조작한 것이 사실이 되지 않는 것이죠. 고대사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기록이 왜곡되어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대사를 돌아보아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승자들에 의해서 영영 감춰질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의 모든 사실을 다 알아낼 수는 없다 해도, 큰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승자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물론 그 의심에는 그만한 근거가 존재해야 합니다. 실제 우리 세계에는 맨인블랙 같은 조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말살하고,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 있는 조직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사료란 모두가 '편파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에 미루어 역사가들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결론 짓는 그런 회의론자들은, 미래의 역사가들이 자신의 회고록을 진실로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는 정치가들만큼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리처드 에번스, <역사학을 위한 변론>, 이영석 옮김, 소나무, 1999, 40~41쪽)
덧글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멋있게 꾸밀려고 했다는 느낌뿐입니다;
혹시나 해서 영어로 찾아보니 라틴 속담이라고 실어놓은 데가 있더군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http://www.tinyrevolution.com/mt/archives/000840.html
별 상관없지만 여기 토론 중에 초록불님 말씀과 비슷한 한 마디가 있네요.
'If history is written by the winners, how come almost everything known about the Vietnam war was written by Americans?'
이 경우엔 미국이 아직 멸망한 게 아니니 좀 미묘하게 다르겠지만 =>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그렇다면 더욱이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이야기는
'우리는 옛날엔 한나라보다 문화가 후달렸다' 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더욱더 부정되겠지만요. (웃음)
rumic71님 / 저도 그 댓글 보고 웃었습니다.
(좋아해야 할 일인지.. 그거 참..)
가끔은 본문에 대해서도 칭찬을 해 주시면, 흑.
큰 걱정부터 앞섭니다. _-_ 여하튼 역사에 대한 인식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었군요.
^^ 감사합니다.
그런 지적을 하면, 역사를 바로잡는 거라고 대드니....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승자의 유물 보존과 패자의 유물보존이 같다고 본다거나 사마천의 기술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입장을 반영했다거나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싶군요.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열등의식과는 별개의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댓글들을 보니 내막은 모르겠으나 무엇인가 선입관들이 많이 깔린 듯한 분위기인듯 합니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자면
1. 미메시스님이 [우리가 모르는 역사]라는 게 뭘 말하는지 저는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혼자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던지시면 제가 뭐라 하겠습니까?
2. 승자의 유물 보존이나 패자의 유물 보존이라... 이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답답하군요. 대체 인류가 언제부터 [유물 보존]이라는 역사 인식을 가졌을 것 같습니까?
3. 사마천이 [우리의 입장을 반영]했다니, 미메시스님은 흉노의 후예셨습니까?
4.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란 대체 무슨 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흉노의 후예]라는 현실입니까? [유물 보존]이라는 현실입니까?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입니까?
5. 사람들은 다 자기 입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글루는 성인 블로그니 더욱 그렇지요. 그게 어떻다는 말씀인지요?
위에 쓴 글은 물음표는 달려있으나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댓글로 상반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 글에 반론이 있으시면 트랙백으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물보존이라고 말씀하신건 그 시대 사람들이
유물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보존하고자 애썼다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A라는 나라와 B라는 나라가 전쟁을 해서 A라는 나라가 이겨서 통합하였다고 볼때,
후대에 사람들에게 A 나라의 유물과 기록이 더 많이 남겨질까요..
아니면 B나라의 유물과 기록이 더 많이 남겨질까요..
또 이긴 A나라에서 B나라에 대한 기록을 할때,
정치적 입장, 식민나라에 대한 우월감 등등의 수많은 감정속에서
자유로운 인간 사학자는 이 세상에 얼마만큼 존재할까요..
유튜브에 보면,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동영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보다보면, 한국에 대한 큰 애정과 한국인 친구들을 가진 그들도
여러가지 틀린 정보를 가지고 있죠.
하물며 한때 적이었던 나라에 관해 쓸때는 오죽이나 할까요..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인것 같군요.
지금 중국을 이루는 주류 민족이 한족이지요.
청나라를 지나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은 가히 한족의 나라라 할만하던데요?
사절지님은 A라는 나라가 이기면 후대에 A나라 유물이 더 많이 남겨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사절지님은 역사를 너무 단순화해서 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왠지 여기서 여러분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저 다른 의견을 가진 어떤 사람이 아니라,
환빠에 극우에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을것 같았거든요..
환빠들이아니라.. 일반인들이 보통 말하는 [승자의 역사]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전쟁의 승패가 물론 아니라.. (게다가 사마천을 거세한 주체는 무제이지 흉노가 아니죠.. 사마천이 흉노를 깔 이유가 없는거죠)
또 모든 사서가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컨데, 고려사를 저술한 조선을 말하는 것이며..
중국 역대 집권 왕조가 공식적으로 전조의 역사를 쓰는 것을 말하며..
통상, 전조가 왜 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쓰고 있으며(물론 결과론적으로 망해 있으니.. 한국 축구가 0:5로 진 마당에는 누구나 그럴듯한 패인을 제시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
.. 이부분은 몰지각한 일부를 공격하고자, 일반인들의 인식수준을 보다 저차원으로 내려보고 있는 감이 있구요..-.-
고고학도로서.. 논지와 관계 없이 한말씀 드리자면..
현 고고학계에서는
역사학계 일부나, 서울 경기지역의 일천한(죄송합니다..;;)고고학계에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맹신하고 있는 것은..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순발 교수의 계수호나 남조와 관련된 자기의 전세(傳世)가능성을 고려하지않은 편년관에 근거한 한성 백제.. 몽촌 토성 출토 스에끼에 근거한 편년은 여지없이 공격받고 있고
신라-가야는 논란중입니다만..요약하자면
경북대/영남대를 비롯한 경북지역 연구자들은 신라가 대략 4세기이후 부터는 고대 국가로 성장하며 주변지역을 공격 / 복속시키기 시작했다고 보는 반면.
부산대 출신 연구자들은 금관가야의 세력이 호태왕 남정(400년)이전까지는 영남을 제압할 정도로 강성하였으며.. 금관가야 몰락 이후에도 유민들은 대가야와 연합하여 여전히 신라와 경쟁하다가.. 6세기 들어서야 점차 신라에 밀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멸망(562년)하는 것으로 보는 차이가 있으나..
신라 본기는 수정론(기년을 조정해야 된다)이 대세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는 왜 이리 많은가? 이부분입니다.
물론 모르는 역사가 많다는것 동의 합니다. 그런데 그 모르는 역사가 무엇인지 한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신적 있느냐고 묻고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우리의 역사는 엉터리고 식민사관에 오염되었다. 라는 주장만 단순 수용해서 생긴 선입관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엉터리라고 말들하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은 한번 해보셨습니까? 환단고기매니아들이 주장하는 소위 말하는 강단사학의 학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한번 알아보신적은 있으십니까?
제가 단정 지어볼까요? 없죠. 있으면 위에 말씀하신 그런말 나오지 않죠.
바로 선입관과 편견에서 나온 말 아닐까요?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좀 다르죠. 일단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일부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 사람들은 사실 역사학자들이 승자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랍니다. 신우, 신창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역사학자가 있겠습니까?
위 포스팅에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모든" 역사가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 승자의 역사로 볼 수 있을 때도 역사학자들은 승자에 의해서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학계에 계시다면, 무분별한 국수주의자들에 의한 삼국이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이나, 태왕사신기처럼 백제가 산동성, 강소성 등을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이런 황당한 인식이 자꾸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초록불님의 논지는 충분히 와닿고, 이해합니다만^^; 글을 전개하실때 상대방에게 빌미를 제공할 소지가 있어보이는 것들이 있어, 새삼 지적을 드려 본 거구요..
말씀처럼, 역사(고고학이든 인류학이든 마찬가지겠죠..)가 정치적인 목적이나 돈벌이에 악용되는 것은 학도로서 지극히 못마땅한 바.. 공감과 응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그 분들이 다시 보실런지는 모르겠지만...
현묘님/소위 강단사학들이 주장하는 바들이 지금 올바른 의견들로 증명되고 있나요?
전혀 아니었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아실것 입니다.
초록불님/ 님은 모르는 우리역사가 전혀 없습니까. 대륙의 백제지역을 비정할 수 있나요?
임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단계십니까? 청동기나 철기, 그리고 볍씨 출토시기등과 관련하
많은 부분들이 수정되고 있음을 미리 다 아셨나요?
뭐 기타 등등 많습니다만, 제가 말하려했던 선입관은
위에서 언급한 멸망한 국가들의 역사들이 언제 제대로 찾아졌는지 모르는 것처럼 논지를 편다는 것은 단지 반박만을 위한 선입관이 있는 의견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멸망한 국가들의 역사들이 곧바로 제대로 기록되는 사례를 한 번 대시겠습니까?
사마천과 흉노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비록 사마천이 왜곡될지언정 기록이라도 남겼으니 이나마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것은 '승자의 기록'을 언급하는 목적과는 상관없는 얘기 아닙니까?
오랑케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디코스모는 중국이 제시하는 자료에 종속되지 말라는 충고를 남겼죠. 흉노와 지속적으로 영토 싸움을 해 온 중국의 흉노에 대한 기록은 '승자의 기록' 이 갖는 폐해를 정확히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론을 위한 반론, 해서 위계가 흐트러진 논리 전개..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상당 부분 그런 것이 보이기에 선입견이 깔린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덤으로 이글루 운영진들이 밸리에서 철거해버린 제글도 관심좀,
앵무새 죽이기라는 포스팅을 대수맥이라는 인간의 블로그에서 줏어오는 기분인데 말이죠
'아, 정말 역사는 승자의 편으로 기록되는 구나' 하는것을 느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과장된 악평을 깨닳았다고 해도,
이 세상 위에 씌여진 수많은 역사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외곡된 역사는 또 얼마나 있을까요?
심지어 과거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강대국에게 유린당하는 진실이 참 많군요.
이런게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거나, 승자의 역사가 되거나..
저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신 역사가가 존재해서 외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겠죠?^^
본문을 읽으면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대해,
행간을 읽지 않고 너무 곧이 곧대로 해석하신것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의견을 조심히 올려봅니다..
사료란 모두가 '편파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에 미루어 역사가들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결론 짓는 그런 회의론자들은, 미래의 역사가들이 자신의 회고록을 진실로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는 정치가들만큼이나 본질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리처드 에번스, <역사학을 위한 변론>, 이영석 옮김, 소나무, 1999, 40~41쪽)
제가 알기로는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 라는 소설의 맨마지막 부분(줄)에 등장합니다.
대학시절 들었던 저 말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도서관에 가서 뿌리라는 소설의 마지막 줄만 확인하고 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대략 30년전 쯤 일이긴 하지만 아마 정확할 겁 니다.
추가..
yes24에가서 확인해보니 저자랑 제목은 정확하네요.
대학시절 저말 자체가 워낙 임팩트있게 다가와서 일부러 도서관까지 가서 소설책의 마지막 줄만
읽고왔던 기억이 너무도 또렸합니다.
아마 설사 알렉스 헤일리가 재인용했더라도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글에서 비교하는 나라들의 경우 상황이 저희 나라와 많이 달랐다는 점에서
비교군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저희 나라처럼, 일본의 민족말살정책과 같은 문화 전반부에 걸친 소거 작업이 시행된
나라는 예시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당시 근대역사관에 맞춰 역사가 재정립되던 시기였기에 역사적 해석과 편집에
상당히 많은 일제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가령 트로이와 (신)마야의 경우 멸망하면서 제대로된 역사에 관한 기록 또한 멸실되었고
그들에 관한 사료는 대부분이 승자들의 기록이 아닌가요?
(이부분이 저희 나라와 비교군이 된다거나 이부분을 일반화 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이러한 사례로 미루어 보아 반대 의견도 일리가 있어보인 다는 것입니다.)
또한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진나라 시황제의 분서갱유의 사례에서도 분명 역사적으로 많은
소실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특히 사상학적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사서는 승자에게 유리하게 쓰여진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패망한 나라가 계속해서 그에 관한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을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패하여 속국이 된 나라가 과연 승자의 눈치를 전혀 안보고 책을 출간할 수 있을까요? 단어의 선택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아무래도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더 최신의 기록이고 전파되기도 쉬우니 여러 측면에서 역사도 승자에게 유리하게 기록되었다는 명제는 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마천이 후대에서도 사관으로서 존경받고 있고 칭송받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사마천의 사관으로서의 태도가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습니다.사마천의 그러한 태도가 다른 모든 사관들한테 기복적으로 다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이유로 사마천이 존경받을리는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우리나라의 조선왕조 실록도 그러한 면에서 높이 평가되는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의 사기도 승자의 입장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있는 것을 보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결론 짓자면, 물론 일반적으로 확고히 역사는 무조건 승자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생각되지만 어느 정도는 승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항상 공정성과 객관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재판에서도 한쪽에 불리한 경우, 일반의 원칙에서 벗어나서 약자에게 유리하도록 그 절차와 방법을 변경해줍니다.
가령 소송에서의 입증책임은 일반적으로 원고에 있다고 할 것인데, 제조물책임이라던가 의료책임의 경우 그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또한 약관의 해석에 있어서 그 해석이 애매하거나 불확실한 경우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법이나 역사나 매한가지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법에서도 이러한 태도가 있듯이, 역사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중립의 위치에서만 해석하고 분석하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보이며,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역으로 객관적이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역사가 승자에 유리한 면이 있다면 역사의 해석과 분석에 있어서 그러한 면을 고려하여 패자에 조금 더 유리하게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도 좋은 역사가의 태도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역사"라는 말에 대한 정의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역사"를 현재 서술되고 있는 "역사 기술"에까지 확장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글은 그런 모순에 대한 지적인 것입니다.
즉 글의 말미에서 쌔파란사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역사가들은 과거에 기록된 "역사"가 여러가지 의미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과거의 기록들을 검토합니다. 그 점은 위 본문에 이미 자세히 적어놓은 것입니다. 다시 되풀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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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당대의 한계 상황 속에서 쓰인 사료들을 보면서 당대의 역사를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승자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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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 우리나라를 가리킬 때, "저희 나라"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우리나라"는 낮춰질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주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orumi.egloos.com/410903
제 기본적인 자세는 저 포스팅에 가깝습니다.
위 문장의 메타포는 기록하는 그 당시의 기록자(기록하게한 셰력)의 관점과 주체(기록의 이용자 또는 전승자)의 의미를 파악하고 기록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 나름 객관적 비평 또는 다른 관점에서의 조명을 요구하는 명제는 아닐까 합니다.
호랑이는 동물이다 .
흐랑이는 맹수다.
호랑이는 산속의 왕이다.
호랑이는 여러 생물중에 하나일 뿐이다.
호랑이는 산길을 넘어가는 행인에게 위험해서 죽였다.
등등등 ..
위 문장은 역사관련도 승자 개념도 없는 절대적 객관적 문장일까?
이때 만약 .. 위 호랑이가 위 문장을 이해하고 안다면 .. 호랑이는 이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객관적인것도 있고 주관적인 것도 있다고 ..?
무엇보다 역사 기록을 가지고 학문적 논쟁이나 해설의 다양성으로 사회구성원의 여러 상이한 집단이나 부류가 다투는 것이 불과 최근이라는데 동의 하신다면 ..
흔히 인쇄가 보편화 되기전의 역사 기록이나 발간 .. 보관의 의미는 ..분명 승자 또는 가진자 지배집단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봐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