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변 자서 *..역........사..*



고사변 자서
고힐강 지음, 김병준 옮김/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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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 [고사변]에 대해서 배울 때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문 실력은 형편없고 민국 시절에 쓴 책이니 백화문일 것이 뻔하여 차마 구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렇게 자서나마 나와 고힐강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고힐강은 1893년에 태어나 1926년 이 책을 썼다. 30대 초반에 이런 업적을 이룬 셈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의 소개를 잠깐 인용한다.

중국 고대사는 위조된 전설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변위총간(辨僞叢刊)》을 간행, 《고사변(古史辨)》(7책)을 편집하였으며, 전통문화를 의심하여 그 우상을 타파하는 데 힘써 의고파(擬古派)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고힐강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역사는 보통 모두 5천년이라고 알고 있다. (위서에 따르면 227만 6천년이 된다) 그러나 위사 또는 위서에 의거해 성립한 위사를 제거하면 단지 2천년에 불과하여 '반값'으로 줄어버린다. 여기에 이르게 되자 위사를 뒤집어보겠다는 웅대한 뜻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81쪽)

중국에도 환단고기를 능가하는 책이 있어 227만 6천년 전의 역사를 기술했던 모양이다. 시대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지만 그의 뜻을 나도 따르고 있는 셈.

간혹 책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의외로 가까운 시대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하는데, 고힐강이 1981년에 죽은 것도 그런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중학교 때 사르트르의 사망 소식을 들었었는데, 역사가 내 앞으로 확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고사변 자서]는 고사변의 서문이다. 공감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 감동스러웠다. 가령 이런 부분.

1. 학문이란 무엇인가?
2. 무엇때문에 학문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하는가?
3. 무엇때문에 오늘날의 학문이 있게 되었는가?
4. 오늘날의 학문은 마땅히 어떠해야만 하는가?
이 네가지 문제를 갖게 된 뒤로는 틈이 날 때마다 생각을 해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찾아보고 비평해 보았다. (중략) 내가 맨 처음 '학문'의 정의를 내렸을 때에는 학문이 인생을 끌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배웠는데도 쓸모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배울 필요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며,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생각을 한 뒤에야 비로소 학문의 범위가 본래 인생의 범위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우리들이 진실된 지식을 원한다면 우리들은 인생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응용의 측면에서는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반드시 구별해야 하더라도, 학문에서는 진리인지 아닌지를 물어야지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 학문은 물론 응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응용은 학문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지 학문을 시작할 때의 목적은 아니다.


고힐강의 고대의 위서를 변증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았다.

첫째, 위사 중의 내용들이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어떻게 변천하였는지를 하나씩 고찰한다.
둘째, 위사 중의 내용들에 대해 이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저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하나씩 고찰하고 그것들을 조목별로 열거하고 비교하여, 마치 재판관처럼 그들의 황당한 말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셋째, 위작자들은 각기 서로 다른 말을 하지만 결국은 공동으로 지키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이란 무엇인가?

고대사는 누층적으로 조성되며 발생의 순서와 배열되는 계통은 반비례한다.
(1) 시대가 뒤로 내려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삼국유사의 단군 이야기가 규원사화 - 환단고기로 가면서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보라!)
(2)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중심인물이 위대해진다. (단군은 위대해지다 못해 48명으로 분화되기까지 했다.)
(3) 원래 사건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 사건이 전설 속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의 상황은 알 수 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국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유립이 그걸 지어낸 때의 상황은 알 수 있다는 것!)

고힐강은 이런 원칙 하에 역사 속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전통 관념을 타파해야한다고 주장한다.

(1) 모든 민족이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일원적 생각. (모두가 단군에서 나왔다는 사고를 버리라고)
(2) 모든 지역이 원래 통일되어 있었다는 생각. (환국이 모든 영토를 다스렸다는 생각)
(3) 신화를 모두 인격화하려는 생각. (환인이 황제 헌원이라는 따위의 생각, 치우가 단군 중 하나라는 생각)
(4) 고대가 황금시대라는 생각.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가림토로 소통하는 환국 따위의 생각)

중국에도 물론 국수주의자들이 차고 넘치는 데다가 고힐강의 시대는 민족혁명의 시기이기도 했으니 그에 대한 반박과 비방도 엄청 났다. 그러나 학자로서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담담하게 반론에 재반론을 펼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좋은 책이다. 일독을 강추한다.

 

추가 : 이렇게 엄밀한 고증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연구한 학자를 안호상을 필두로 하여 우리나라의 상고사 포장에 걸핏하면 이용해먹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선학을 모독하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7/03/10 13:58 #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네요. 그런데 저 227만 6천년은....혹시 반고가 알(...)을 깨뜨리기 시작한 시기부터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계산을 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 tloen 2007/03/10 14:11 #

    저 책 정말 좋지요. 사실 변위총간 같은 책을 누가 꼼꼼한 주석을 달아서 번역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만, 대체 누가?
  • 시퍼렁어 2007/03/10 15:24 #

    백화문이 뭔가요
  • 초록불 2007/03/10 15:32 #

    시퍼렁어님 / 현대 중국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문과 백화문은 라틴어와 이태리 어 같은 거라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ExtraD 2007/03/10 16:19 #

    학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학문은 물론 응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응용은 학문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지 학문을 시작할 때의 목적은 아니다."
  • 다음엇지 2007/03/10 16:51 #

    아... 뭔가 가슴 속을 울리는 힘이 있는 글이로군요. 저도 여유를 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 獨劍 2007/03/10 19:10 #

    1. 모든 민족은 하나라고 생각했는데요; 우리 조상님은 '루시'아닌가요? 저기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우리는 환국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사람;;;
  • 초록불 2007/03/10 19:35 #

    獨劍님 / 그건 모든 민족이 하나라는 게 아니고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뜻이지요.
  • 세실 2007/03/10 20:42 #

    학문에 대한 글에서 감명먹었습니다! 꼭 사봐야 될 것 같네요~^^
  • 식인양떼 2007/03/10 23:46 #

    저래야 학자지요...

    정말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 존다리안 2007/03/11 15:47 #

    고대가 황금시대라는 생각을 타파하자는 부분이 최고.^^
    그러고 보니 앨빈 토플러도 현대문명 이전 사회가 낙원이었다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죠.-수명도 짧았고 전염병,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였다나...-
  • 쫑알쫑알 2007/03/11 16:05 #

    오호... 고힐강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었군요!!
    이전부터 기다리고있었는데 당장 질러야겠습니다. 좋은 정보감사드립니다.^^
  • 레이나 2007/03/11 21:05 #

    학문은 물론 응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응용은 학문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지 학문을 시작할 때의 목적은 아니다. <= 저도 이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ㅠ_ㅜ
  • 총천연색 2007/03/11 21:11 #

    '고사문'에 대한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감사.
  • 사과향기 2007/05/19 00:13 #

    글쎄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제가 봐선 그저 그런데 고힐강이 타고난 환경부터 책,학문을 가까이 하면서 자연 가까이하고 집안 환경상 남에게 굽히는 것에 익숙치 못한 사람의 글로 보일 뿐인데? 어떤 면에서??? 다만 그 내용면에서(개인적인 내용 제외한)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이런 건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는??? 잘 모르겠네요.
  • 초록불 2007/05/19 00:32 #

    사과향기님 / 책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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